퀵바

Tiphareth 님의 서재입니다.

도플갱어의 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Tiphereth
작품등록일 :
2024.03.26 19:19
최근연재일 :
2024.05.09 12:15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41
추천수 :
0
글자수 :
194,695

작성
24.03.29 22:35
조회
6
추천
0
글자
12쪽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5)

DUMMY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5)



“악!”


자신과 지현 사이에서 일어난 어떤 폭발의 충격으로 시안이 두세 걸음 뒤로 밀려났다.


반면 반대쪽에 있던 지현과 카사는 뒤로 튕겨나가듯 열 걸음 넘는 거리를 날아간 것으로 모자라 바닥에서 몇 바퀴를 더 뒹굴었다.


“으으.”


지현은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 신음을 흘리고 있고, 그나마 카사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충격이 컸는지 바로 일어서진 못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시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달아나야 해.’


하지만 이내 이것이 기회라는 걸 깨닫고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끌려가면 어찌 될지는 몰라도 지현의 이야기나 저들의 반응을 떠올려 봤을 때 말로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번화가까지만 가면......’


시안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유흥가를 떠올렸다.


이 시간이라면 그곳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터, 인파 속에서 당장 자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으슥한 데로 불러낸 것도 그렇지만, 저들이 누구든 아직 저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이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서 추정한 것.



얼마나 달렸을까. 공원이 끝나고 건물들 사이로 접어들었다.


벽에 반사되어 들려오는 자신의 발소리.


적어도 자신의 발소리 외에 다른 이의 발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기에 불안감은 덜해졌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



경사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형세 덕분에 달아나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수월했지만, 번화가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헉... 헉...


벌써 숨이 목까지 차올라왔다.


심지어 올라갈 때부터 힘이 없었던 다리는 슬슬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달아, 나야 해.’


순간 전신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과 몸살에 걸렸을 때나 느낄 묵직한 통증이 동시에 느껴졌다.


뭔가가 자신의 전신을 확 옥죄는 느낌도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저들이 무엇을 한 것인지 더럭 겁이 났지만, 달아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적어도 여전히 다른 발소리가 들려오진 않는 것이 한 가닥 위안이 되었다.


통증이 점점 심해졌지만 쫓기는 입장에 차마 멈출 수는 없었기에 시안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런데 뭔가 묘했다. 전신 통증이 심해질수록 반대로 숨이 찬다거나 다리에 힘이 없다거나 하는 증상이 서서히 완화되었다.


‘불빛이다.’


저 멀리서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보였다. 어느새 시안의 주변도 이미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자 뒤를 힐끔거렸다.


그녀의 뒤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인근 지역의 대표적인 유흥가라 이미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는 인파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점점 그곳에 가까워지며 그 너머에 펼쳐진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기 시작하자 점점 발걸음이 느려졌다.


유흥가 입구까지 도로 하나를 남겨둔 시점에서 시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저, 저게 뭐야?”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테라스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 또 다른 술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벌써 술에 취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 목소리 높여 다투는 사람들까지. 인근을 지나다닐 때마다 한 번씩 보던 모습이다.


문제는 그곳에 그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투명하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흡사 유령마냥.


그들은 몇몇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말을 속삭이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물론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문제는 시안이 유령이나 귀신같은 것을 엄청 싫어한다는 것.


시안은 이내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그쪽을 향해 가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 중 몇몇과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름이 돋았다.


우웅~ 우웅~


하필 그 순간 폰이 울렸다.


“꺄악!”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느껴진 진동에 시안이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급히 전화를 꺼내 들자 화면에 지현의 이름이 찍혀 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시안이 주변을 휙 둘러보았지만 지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명으로 저들의 시선을 확실히 끈 탓일까? 유령 같은 형체 몇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시안은 전화를 손에 든 채 급히 방향을 틀어 길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쪽은 집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그동안에도 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만약 이게 진짜 지현이라면 어떻게 하지?’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이도, 이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이도 지현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직까지 진짜 지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니 전화를 받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대체 언제부터 저 호문클로스가 지현의 모습을 대신한 걸까? 둘 중 하나야. 약속 장소에 오는 동안?’


만약 저들이 정말 국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메시지의 확인이나 도청 등으로 약속 장소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지현이 도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의 희망은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메시지를 보내기 이전부터?’


이미 지현이 끌려가고 나서 호문클로스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고 문자를 보냈다면 어느 누구 기댈 이가 없다는 것이니 상황은 절망적이다.


게다가 호문클로스라는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생각하던 사이 잠시 중단되었던 진동이 다시 이어졌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며 시안이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시안아, 어디야!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함이 섞인 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현아~”


“시안아, 누가 찾아갔었지? 잘 피했어?"


걱정 섞인 지현의 목소리에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며 시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단은 피했어. 넌 어디야?“


울먹이는 시안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전해지자 지현이 되물었다.


“너희 집 쪽 방향으로 가는 중이야. 일단 유흥가 쪽으로 가 있어. 사람 많은 곳이 더 안전할 테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그쪽에 이상한 것들이 있어서 못 들어갈 것 같아.”


“이상한 게 보인다고?”


잠시 침묵하던 지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시안의 등줄기로 싸한 느낌이 타고 내려갔다. 뭔가가 낯설었다.


“지현이...... 아니야?”


풀린 눈으로 중얼거리던 시안은 전화를 든 손을 자연스레 툭 늘어뜨렸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걸 깨달은 순간 발걸음도 멈추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섰다.


아까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아나야 했기에 어떻게 할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운 좋게 도주에 성공해 본들 정작 자신에겐 갈 곳도, 기댈 곳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 머무르고 있는지는 이미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엄마에게 기댈 수도 없단 생각에서다.


갑작스레 닥친 시련들에 홀로 남겨진 느낌까지. 외롭고 막막해졌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투두툭.


시안의 볼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이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스윽.


누군가가 시안의 손에서 부드럽게 휴대폰을 빼내었다.


흠칫 놀란 시안이 상대를 바라본다. 조금 전 뒤늦게 나타난 카사라는 이였다.


“자영아, 나야.”


- 카사 언니? 따라잡으셨군요.



그녀는 빼앗은 전화로 자연스레 통화를 이어 나갔지만 시안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벽에 기댄 채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고마워, 덕분에 수월하게 잡았다. 몸은 좀 어때? 꽤 강한 수호부라도 있었던 모양인데, 괜찮아?”


- 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잡았으면 된 거죠.


주변이 정적에 싸여있던 탓일까. 시안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상대의 목소리를 비교적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건 평소 자신과 통화할 때의 지현의 목소리, 말투는 물론 끝을 엑센트까지 완전히 동일했다.


정말 지현이가 아닌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지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게. 그나저나 한동안 못 보겠네?”


- 네. 언니. 잘 해결하시고 나중에 봐요.


“그래. 고마워.”


- 아, 언니. 그 아이, 갑자기 저쪽 세계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던데, 한 번 확인 해보셔야 할 거예요.


“그래? 알아볼게.”


두 사람의 통화가 끝이 날 때까지 시안은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벽에 기대어 통화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멍한 표정과는 달리 두 눈에는 빛이 돌아와 있었다.


‘이들이 지현이 만났다는 이들인가? 아니면 대체한다는 존재?“


도망치기 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카사라는 이가 했던 말이 있으니, 후자는 아닐 것이다.


- 호문클로스라니. 조금 섭섭한데?


호문클로스라는 존재가 있지만 자신들은 그런 저급한 것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뉘앙스.


심지어 대화에서 느껴지는 친밀감은 두 사람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임을 알게 해 줬다. 지금과는 다른 본래의 모습이 있다는 이야기고 그건 지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호문클로스로 대체 되는 건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지현의 폰을 자영이라는 이가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는 지현은 이미 저들에게 잡혔다는 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삼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친구 생각할 때가 아닌가?’


쓴웃음이 절로 머금어진다.


“잘 썼어.”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은 카사가 휴대폰을 내밀면서 중단되었다.


시안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이지, 친구의 안부도, 저들이 누구인가 하는 호기심도 아니었다.


“안 받아?”


카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보자 갑자기 시안의 몸이 떨려왔다.


여전히 카사가 폰을 내밀고 있어 시안은 휴대폰을 받아 들었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휴대폰이 바로 바닥에 떨어졌다.


“쯧. 도망가기에 강단이 좀 생긴 줄 알았더니. 역시 어쩔 수 없구나.”


카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고는 휴대폰을 주워 직접 시안의 가방 속에 넣어 주었다.


카사와 시안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공포로 얼어버린 시안은 그녀의 이야기에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카사는 그런 시안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휴대폰을 그렇게 울리게 해 두고 다니니 쉽게 추적당하지. 다음부터 도망 다닐 때는 전화기부터 꺼 두고 다녀. 아니다. 그럴 일이 또 없는 게 더 좋겠지.”


‘다음?’


“아무쪼록 협조 부탁해.”


다음이 있다는 이야기에 적어도 자신을 죽여 입막음하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현이는, 어디 있어요?”


넌지시 친구의 안부를 물어 자신이 어떻게 될지 확인하고자 하는 시안.


“친구? 걱정 마. 비틀림이 심각하지 않다고 했으니 요 며칠간의 기억만 지우고 돌려보낼 거야.”


‘기억을 지운,’


퍽.


뒷목을 가격당한 시안이 정신을 잃었다.


“미안하지만 괜한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거든.”


게다가 시안이 수호자들을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괜히 다른 수호자들을 마주쳤다가 유령으로 오인하고 비명을 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


까딱.


그녀의 손짓에 어둠 속에서 인간의 형체를 한 희끄무레한 이가 등장해 축 늘어진 시안의 몸을 덮었다.


그 상태로 몸을 일으키자 시안의 몸이 세워졌다.


“되었어?”


몇 번 천천히 손발을 움직여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아까 거기가 좋아 보이던데, 돌아가자.”


카사가 앞장서고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가는 시안.


의지를 잃은 이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이면 세계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이라면 시안의 몸 주변으로 뿌연 무언가가 덮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겠지만, 처음 마주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한 사람과 두 수호자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플갱어의 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7. 초월 한국본부 (3) 24.05.09 1 0 15쪽
33 7. 초월 한국본부 (2) 24.04.29 2 0 14쪽
32 7. 초월 한국본부(1) 24.04.25 3 0 12쪽
31 Interlude 03. 존재의 이유 24.04.24 5 0 9쪽
30 6. 또 다른 길, 초월(4) 24.04.22 5 0 12쪽
29 6. 또 다른 길, 초월(3) 24.04.19 5 0 12쪽
28 6. 또 다른 길, 초월(2) 24.04.18 5 0 17쪽
27 6. 또 다른 길, 초월(1) 24.04.17 5 0 11쪽
26 5. 진실된 세상에서 (4) 24.04.15 6 0 14쪽
25 5. 진실된 세상에서(3) 24.04.12 6 0 12쪽
24 5. 진실된 세상에서 (2) 24.04.11 6 0 14쪽
23 5. 진실된 세상에서 (1) 24.04.09 7 0 16쪽
22 5. 진실된 세상에서 (0) 24.04.08 6 0 15쪽
21 Interlude 02. 추적 24.04.06 6 0 14쪽
20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5) 24.04.04 7 0 14쪽
19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4) 24.04.03 6 0 13쪽
18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3) 24.04.02 6 0 12쪽
17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2) 24.04.01 6 0 14쪽
16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1) 24.04.01 6 0 15쪽
15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0) 24.03.31 7 0 11쪽
»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5) 24.03.29 7 0 12쪽
13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4) 24.03.29 4 0 11쪽
12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3) 24.03.29 5 0 12쪽
11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2) 24.03.29 3 0 11쪽
10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 (1) 24.03.28 4 0 12쪽
9 Interlude 01. 붉은 알약 24.03.28 5 0 11쪽
8 2. 그 날 있었던 일은(4) 24.03.28 4 0 11쪽
7 2. 그 날 있었던 일은(3) 24.03.27 8 0 11쪽
6 2. 그 날 있었던 일은(2) 24.03.27 5 0 12쪽
5 2. 그 날 있었던 일은(1) 24.03.27 9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