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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hareth 님의 서재입니다.

도플갱어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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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hereth
작품등록일 :
2024.03.26 19:19
최근연재일 :
2024.05.09 12:15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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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95

작성
24.04.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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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 또 다른 길, 초월(1)

DUMMY

6. 또 다른 길, 초월(1)



“시영, 뒤!”


갑작스레 들린 말소리에 순간적으로 소연과 시영이 기운을 전개하며 크리스의 앞뒤를 막아섰다.


“비형 아저씨?”


많이 들어본 목소리에 시안은 기억 속에 떠오른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비형? 그 비형?”


시영의 중얼거림.


“그 비형이 맞을 겁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크리스티안.”


단단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 차량 뒤에서 나왔다.


“아저씨!”


그 뒤를 따르는 몇 명의 남성들.


“어? 삼촌들!”


반가움에 앞으로 나서려던 시안을 크리스가 제지했다.


“정말 오래간만이군. 헌데 내자불선이라 했던가?”


“제 대녀의 건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생각지 못한 단어에 크리스가 멈칫했다.


“대녀? 이 아이가?”


“네. 사정이 좀 있어서 그리 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래서 그런 거였군.”


허탈한 웃음.


“네?”


“아니,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아는 듯 대화를 나누자 시안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이 아이가 미끼였던 것인가?”


“아닙니다. 이쪽 일은 모른 채 그저 보통의 인간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랬던, 조카 같은 아이입니다.”


“자네와 얽힌 이상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을 텐데?”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진 실제로 거의 벗어나지 않았었고요.”


“그럴 리가. 터지기 직전의 상태로 발견되었었다네. 벗어나자마자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더군.”


“어쨌든 윤회의 흐름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었지요.”


“시간문제였을 거야. 그나저나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건가? 수호로 데려갈 건가?”


‘응? 수호? 비형 아저씨가 수호자?’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기에 같은 해방에 속해있을 줄 알았는데.


수호란 말에 거북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살포시 찌푸려지는 미간.


“저 아이를 수호자로 키우는 꼴은 못 보겠는데?”


곁눈질로 그런 시안의 변화를 확인한 크리스는 기꺼운 표정으로 못을 박았다. 뒤늦게 시안의 표정을 확인한 비형의 미간에도 골이 생겼다.


질문의 의도, 그리고 시안이 수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된 까닭이다.


“제 대녀입니다. 제가 지켜주어야 함이 옳지요. 그리고,”


“글쎄? 저 아이의 의견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말을 끊는 크리스.


...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비형 아저씨, 정말, 수호에 속해 있으신 건가요?”


그럼에도 확인해야 할 건 해야 했다.


끄덕.


비형의 수긍.


“설마, 다른 삼촌들도?”


“그래. 모두.”


“어떻게, 어떻게...”


생각보다 충격이 큰 듯 했다.


“그래서, 시안아 넌 어떻게 하고 싶어?”


크리스의 눈짓을 받은 소연이 물어왔다.


소연의 목소리에 눈빛이 흔들렸다. 며칠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며 보고 겪은 것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수호로 갈 거야?”


자신에게 접근한 도플갱어도, 그녀로 인해 겪었던 일들도 차례로 떠올랐다.


자신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저녁에 겪은 사고 같은 그런 일 속으로 희생자를 밀어 넣는?


아무리 대부인 비형이 그곳에 속해있다 할지라도 모두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그런 일을 선뜻 하겠다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자신이 커나가는데 일조한 이들이라는 게 걸린다.


“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저하는 시안.


그런 그녀를 보는 크리스의 웃음이 더욱 진해진다. 시안의 힘을 목격한 그로서는 그녀가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초월이나 수호와의 충돌을 불사하더라도 데려가야 할.


시안의 주저함 속 내포된 뜻을 깨달은 비형이 한숨을 쉰다.


사실 저들로서도 자신이 시안과 연이 있다는 사실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런 자신들을 공격할 명분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시안이 가진 수호자에 대한 거부감을 건드리는 것이었을 것이고, 시안의 반응을 보건대 그 의도는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 역시 또 다른 비책이 있었다.


“이샤님, 나와 주시겠습니까?”


비형이 뒤를 향해 손짓했다.


‘이샤?’


비형의 패를 본 크리스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는 분이다. 긴장 풀어도 된다.”


앞을 막아선 소연을 지나서 그 앞으로 나서는 크리스.


“이샤 님, 예상 밖의 장소에서 뵙는군요.”


새로이 등장한 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다.


“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유다. 아니, 지금은 크리스티안이라는 이름을 쓰시던가요.”


이샤라는 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크리스에게 답했다.


“네.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 지금은 그런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대녀를 초월로 인도해 달라는 비형의 청이 있어 이리 방문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오랜 인연을 만나게 되는군요.”


“하기야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다른 초월자들에겐 부탁하기 어려웠겠지요. 그렇다 해도 당신께서 평범한 아이의 일에 이곳까지 이렇게 걸음하실 줄이야.”


크리스가 이샤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저도 그분의 의지만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일전 그에게 몇 가지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하기야 비형이 수호로 가는 바람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루 만에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샴발라를 나오시는 것 만해도 시간이 걸리셨을 텐데요?”


“아. 마침 외부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밖에 나와 있었던 터라 이렇게 바로 올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후. 저희가 운이 없었군요.”


“그보단 애초부터 이렇게 되려던 것이었겠지요.”


비형의 답에 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수호로 넘어 가더니 이젠 수호자 같은 말을 하는군, 비형.”


비아냥 섞인 말투에 비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해방 분들이 여기서 긴 시간을 보내시는 건 좋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른 이들을 교란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직 추적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이다. 아까와는 달리 처리반일 가능성이 높다.


“알겠네.”


비형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시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우리가 물러설 수밖에 없는 것 같구나. 들어서 알겠지만 너는 저분과 함께 수호가 아닌 초월로 가게 될 것이다. 우리와 함께하는 것보다는 안전할 거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거취. 하지만 크리스가 저리 말하는 이상 자신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크리스님, 이 아이를 구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비형이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다.


“고마워할 건 아니지. 그게 우리 역할이니까. 뭐, 그리 생각한다면 다음에 우리 애들 좀 봐 주면 좋겠군.”


“꼭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힘이 필요한 일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비형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크리스는 그 명함을 받아서 힐끗 쳐다보고는 지갑 속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시안과 작별을 나눌 시간 정도는 줄 수 있겠지?”


비형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의 표정이 복잡하다.


“언니...”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레 그들과 헤어져야하는 상황에 시안의 마음속은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소연이 먼저 나서서 그녀를 꼭 안아주자 시안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다 흘러내렸다.


“잘 지내. 초월과 해방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니 서로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떨어진다고 해서 우리 인연이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니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소연이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자 시안이 안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언니도 조심하세요.”


소연이 자신의 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고, 시영과 진수도 그녀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크리스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서자 그들이 조금 뒤로 빠졌다. 시안이 먼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구해주신 거, 알려주신 거. 모두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크리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잊지 마. 그리고 이건 선물이다.”


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어 건넨다.


“이건?”


크리스티안의 목에 걸린 것과 같은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다.


“나와 관련이 있는 이라는 증표다. 적어도 우리 일파의 초월자라면 이 목걸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적대감을 가라앉힐 거야. 반대로, 이 징표를 가진 이에게도 손속에 자비를 두어주면 좋을 것 같군.”


“네. 꼭 그리할게요.”


시안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는 초월이라면, 그리고 네가 정말로 진심을 다해 다른 이들을 돕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곳에서는 분명히 벽을 느낄 거야. 만약 인간이 무엇이고, 인간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면 한 번쯤 소연에게 전화를 걸어봐. 도움을 줄 테니까. 해방은 그 목걸이를 가진 네게 언제나 열려있을 거야.”


시안이 입을 굳게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크리스가 시안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잊지 마. 차를 멈춰 세운 건 소시안, 너였어. 힘이 강한 우리가 아니라.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하고 싶다는 의지는 우리 중 네가 가장 확고했다는 거지.”


그 말에 시안의 표정이 흔들렸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크리스는 시안에게 마지막 당부와 함께 작별 인사를 건넸다.


“꼭두각시든, 가짜 인간이든, 저들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표현하더라도 모두는 결국 너와 같은 인간이란 걸 잊지 마. 다음에 볼 때까지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바라고. 잘 지내고 있어.“


크리스는 시안에게 손을 흔들고 이샤에게 향했다. 그와 웃는 얼굴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른 이들에게 목례한 후 소연 일행이 기다리고 있던 차에 탔다.


시안의 앞을 지나갈 때 내려진 창문 너머로 소연이 전화하라는 제스처를 보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시안은 그들이 탄 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안아,”


비형의 부름에 시안이 비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진실을 엿본 시안은 예전처럼 비형을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그늘진 얼굴에서 시안이 세운 어떤 벽을 느끼며 비형이 쓰게 웃었다. 그녀가 자신을, 그리고 수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난 네가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어찌 되었든 초월자가 된 걸 축하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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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7. 초월 한국본부 (3) 24.05.09 1 0 15쪽
33 7. 초월 한국본부 (2) 24.04.29 2 0 14쪽
32 7. 초월 한국본부(1) 24.04.25 3 0 12쪽
31 Interlude 03. 존재의 이유 24.04.24 5 0 9쪽
30 6. 또 다른 길, 초월(4) 24.04.22 5 0 12쪽
29 6. 또 다른 길, 초월(3) 24.04.19 5 0 12쪽
28 6. 또 다른 길, 초월(2) 24.04.18 5 0 17쪽
» 6. 또 다른 길, 초월(1) 24.04.17 5 0 11쪽
26 5. 진실된 세상에서 (4) 24.04.15 5 0 14쪽
25 5. 진실된 세상에서(3) 24.04.12 6 0 12쪽
24 5. 진실된 세상에서 (2) 24.04.11 6 0 14쪽
23 5. 진실된 세상에서 (1) 24.04.09 7 0 16쪽
22 5. 진실된 세상에서 (0) 24.04.08 6 0 15쪽
21 Interlude 02. 추적 24.04.06 6 0 14쪽
20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5) 24.04.04 6 0 14쪽
19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4) 24.04.03 6 0 13쪽
18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3) 24.04.02 6 0 12쪽
17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2) 24.04.01 6 0 14쪽
16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1) 24.04.01 6 0 15쪽
15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0) 24.03.31 7 0 11쪽
14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5) 24.03.29 6 0 12쪽
13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4) 24.03.29 4 0 11쪽
12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3) 24.03.29 5 0 12쪽
11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2) 24.03.29 3 0 11쪽
10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 (1) 24.03.28 4 0 12쪽
9 Interlude 01. 붉은 알약 24.03.28 5 0 11쪽
8 2. 그 날 있었던 일은(4) 24.03.28 4 0 11쪽
7 2. 그 날 있었던 일은(3) 24.03.27 7 0 11쪽
6 2. 그 날 있었던 일은(2) 24.03.27 5 0 12쪽
5 2. 그 날 있었던 일은(1) 24.03.27 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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