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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지 님의 서재입니다.

리퍼스(RE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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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지
작품등록일 :
2014.08.31 20:54
최근연재일 :
2014.11.28 23:5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4,985
추천수 :
182
글자수 :
548,127

작성
14.11.28 23:50
조회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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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76 (完) [마지막의 마지막]

DUMMY

REAPERS (리퍼스) 76 (完) [마지막의 마지막]


십 년이 흘렀다.


리퍼스는 어느덧 전래동화 속의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노인들이 아이들의 침대맡에 앉아 들려주는 이야기 속 이름들이 되었다. 이제 둘 남은 크루세이더의 존재만이 그들이 언젠가 살아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뿐. 사람들은 평안한 일상생활로 돌아갔고, 리퍼스에 대한 기억은 살림살이와 집안일과 학교 숙제들 속에 파묻혀 어디론가 무심히 치워졌다. 인간의 망각의 힘은 강했다.


케이듀 로니 경은 그 십 년 동안, 그가 원한 원대한 것들을 차근차근 이루어나갔다. 그의 입지는 나날이 더욱 확고해졌고, 그의 힘은 갈수록 강해졌다. 국왕들은 예전처럼 그를 휘두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도 더 이상 그들 앞에서 시답잖은 겉치레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안티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손에 쥔 사내였다. 매일매일, 그는 자신이 시작한 게임의 끝을 향해 한 발짝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황제의 꿈이 목전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룰 강대한 제국의 한 부품으로서 크루세이더 루크 로드카서와 네드 클락슨이 있었다. 헤이슨은 고향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고, 테즈는 죽었다. 두 사람만이 남아 로니 경의 양 옆에 서 그를 보좌했다. 시그매어는 여전히 로니 경의 곁에 남아 업무를 돌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은 여전히 온갖 번뇌와 혼란으로 얼룩져 있었을 테다.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무엇보다 네드가 달라져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그날을 기점으로, 순수하고 정의롭던 시골 청년은 위화감이 들 정도로 바뀌었다. 장난기로 반짝이던 두 눈은 냉소적인 찬 빛을 띠었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입은 말을 잃었다. 크루세이더로서 맡은 모든 임무를, 가장 사무적이고도 기계적으로 처리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로니 경과 마주하고 있었을까? 테즈를 죽인 로니 경과……? 로니 경의 추악한 뒷면을 다 알고도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그의 말에 복종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네드 본인이 말을 하지 않으니 루크는 알 수 없었다. 낯설어진 옛 동료와 대화 한마디 없이 서 있는 그 역시 십 년 동안 그 날의 진실을 철저히 함구해왔다. 그날 있었던 일은, 그 자리에 있었던 시그매어와 네드, 헤이슨, 테오도르, 로니 경의 뒤처리를 하고 다니는 동양인 남자아이, 그리고 루크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루크 또한 끝까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시그매어가, 괴로움에 싸인 낮은 목소리로 그날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아무도 알아서도 안 되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 * *


루크는 말을 타고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울창한 숲을 지났다.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와 작은 동물들이 발 빠르게 바스락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전부인, 아주 고요한 숲이었다. 흰 빛 줄기가 실처럼 이곳저곳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와 말발굽 아래를 비추었다.


루크가 고삐를 살짝 당겨 말을 멈추었다. 나무 줄기 위로 십자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들어 표시 너머의 숲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앞으로 움직였다.


나르크의 사아 숲은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귀신의 숲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귀신의 울음소리 대신 청명하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 숲을 두려워하며, 귀신의 영역을 알리는 십자 표시를 넘어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곳은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


나무들이 들어선 저 너머로 땅, 땅, 하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크는 말을 몰아 소리 가까이 다가갔다. 나무들을 하나둘 지나치자, 작게 뚫린 공터에 작은 오두막집이 서 있었다. 그리고 집 왼편에 세워진 작은 헛간에서 키가 큰 남자가 쇠를 땅, 땅, 두드리며 검을 만들고 있었다. 루크는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남자를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그가 가까이 가자, 남자가 돌아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얼굴은 땀에 젖은 채로. 그리고는 가만히 멈춰서서 루크를 응시했다. 그 남자는 토야였다.


루크가 본 토야는 그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텅 빈 구멍 같았던 까만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반짝임이 서려 있었다. 몸에서 가득 풍기던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랫동안 네 행방을 쫓아왔다.”


루크가 입을 열었다. 긴 세월 속에, 루크의 눈도 별 수 없이 물러져 있었다. 눈에 날을 세우고 서려 있던 경계심과 긴장감은 별 수 없이 무뎌져 있었다.


“네가 그 날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녀의 눈물이 네 몸 속으로 방울져 스며들었다고 들었으니까. 성녀의 눈물은 자신을 방어하는 능력이 있지 않나. 그래서 비밀리에 개인적으로 너를 계속해서 찾아왔다. 원귀로서의 네 시발점이었던 이곳…… 결국 이곳으로 돌아올 마음을 먹었군. 고향으로 돌아오듯 너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어.”


토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묘하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무심한 눈빛을 하고, 듣고만 있었다.


“너는 어느 쪽이지……? 성녀의 눈물인가? 아니면, 리퍼였던 토야 시리우인가?”


루크가 물었다.


알 수 없었다. 눈앞에 선 저 검은 머리의 남자가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


저 남자의 안에는, 리퍼의 추악한 영혼이 들었는가, 아니면 성녀의 눈물의 고결한 영혼이 깃들었는가. 성녀의 눈물은 리퍼의 타락한 영혼을 정화하는 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실패하고 소멸했는가, 그도 아니면 상극인 두 영혼이 함께 저 남자의 껍데기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가.


루크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남자는 그 자리에 나무처럼 서서, 가벼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 무심한 태도로 다시 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땅, 땅, 하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말해 주어라. 이 세상에 ‘희망’은 남았는가……? 나는,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을, 제대로, 잘 걸어가고 있는 건가……? 이대로 쭈욱, 걸어가도 되겠는가……?”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마음을 꽉 붙잡고, 애써 흔들리는 생각들을 다잡으며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세상에…… ‘세유’는 남았는가……?”


땅, 땅, 하는 소리 사이로, 남자가 시선을 잠시 돌려 루크를 바라보았다. 십 년의 세월이 피로하게 내려앉은 루크의 얼굴을 응시하며, 그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살포시 입가에 틔었다.


성스러운 숲의 맑고 청명한 공기가 루크의 머리와 어깨 위로 이슬처럼 내려앉았다.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본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장 추악한 존재에 깃든 한없이 투명한 깨끗함이었는지, 아니면 성스러운 고결함마저 우악스럽게 삼켜버리고 숨어버린 패배자이었는지.


루크는 말 머리를 돌려 숲을 빠져 나왔다. 따스한 애잔함이 루크가 서 있던 자리를 대신해 채웠다. 그리고 땅, 땅, 하는 소리는 계속해서 경쾌하게 이어졌다.


작가의말

지금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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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1 김봉달선생
    작성일
    14.11.30 17:34
    No. 1

    이거 설마 완결인가요?! 안돼.. 세유,세유를 보여주시와요!!
    아니 그보다 잠깐 나왔던 마왕님의 시체요.. 움찔하셨잖아요. 왜그런건가요.. 설마 진짜 이게 완결인것은아니겠죠??! 안돼요..ㅠ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윤조지
    작성일
    14.12.01 18:54
    No. 2

    리퍼스는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완결입니다...ㅠㅠ 세유(희망)가 이 세계에 남았을지 소멸하고 말았을지... 그것은 남겨진 루크, 네드, 시그매어 공이 선택해 갈 길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항상 불안해하며 생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끝에, 이러한 결말까지 다다랐네요...
    마지막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세유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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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76 (完) [마지막의 마지막] +2 14.11.28 534 2 8쪽
75 75 [모든 것이 끝난, 그 후] 14.11.27 360 0 19쪽
74 74 [끝을 향해] +2 14.11.27 441 1 21쪽
73 73 [그 남자] 14.11.25 367 4 16쪽
72 72 [처형식] 14.11.24 364 0 16쪽
71 71 [뿌리] 14.11.21 367 2 21쪽
70 70 [드러낸 발톱] 14.11.21 403 1 14쪽
69 69 [민중의 영웅] 14.11.19 401 3 16쪽
68 68 [모든 것의 끝] 14.11.18 448 1 12쪽
67 67 [인간] 14.11.17 419 1 19쪽
66 66 [자백] 14.11.14 397 2 19쪽
65 65 [도망] 14.11.13 361 2 12쪽
64 64 [‘벽’] 14.11.12 259 2 12쪽
63 63 [까발려지다] 14.11.11 405 1 18쪽
62 62 [진실은 잔혹했다] 14.11.10 356 2 18쪽
61 61 [치닫다] 14.11.07 395 3 15쪽
60 60 [마지막 남은 나의 성역(聖域)] 14.11.06 375 7 18쪽
59 59 [서서히 돌아가는 룰렛] 14.11.05 402 3 20쪽
58 58 [재] 14.11.04 400 4 19쪽
57 57 [‘툭’] 14.11.03 457 3 20쪽
56 56 [‘성’이라는 감옥] 14.10.31 432 3 14쪽
55 55 [회상편 – 토야(5)] 14.10.30 470 2 16쪽
54 54 [회상편 – 토야(4)] 14.10.29 379 3 17쪽
53 53 [회상편 – 토야(3)] 14.10.28 329 0 21쪽
52 52 [회상편 – 토야(2)] +1 14.10.27 458 0 17쪽
51 51 [회상편 – 토야(1)] 14.10.24 311 2 17쪽
50 50 [잔혹한 재회] 14.10.23 386 1 16쪽
49 49 [귀신의 숲] 14.10.22 474 1 19쪽
48 48 [죄인] 14.10.21 381 1 16쪽
47 47 [순항] 14.10.20 40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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