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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지 님의 서재입니다.

리퍼스(REAPERS)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윤조지
작품등록일 :
2014.08.31 20:54
최근연재일 :
2014.11.28 23:5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4,986
추천수 :
182
글자수 :
548,127

작성
14.11.25 17:06
조회
367
추천
4
글자
16쪽

73 [그 남자]

DUMMY

REAPERS (리퍼스) 73 [그 남자]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토야는 돌계단 아래로 구르고 굴렀다. 그의 위로 몸을 던진 루크도 한데 엉켜 그와 함께 굴러 떨어졌다. 팔이 꺾이고, 돌 위로 부닥친 이빨에서 피가 새어 흘렀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았고, 토야는 이를 악물고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정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루크의 손아귀가 그의 옷자락과 어깨에 강하게 얽혀 들어왔다. 그가 밀쳐내고 위로 기어오르려고 하면 할수록 루크는 더더욱 거머리처럼 그에게 엉겨왔다.


‘그래, 내가 원한 것이 이거야. 내가 원한 것이 바로 이런 거야.’


루크가 자꾸만 속으로 읊조렸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뼈가 부서질 듯 아파왔지만, 어째서인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후, 후, 하고 뜨거운 입김을 연거푸 불어냈다. 온 몸이 짜릿짜릿했다. 그래, 이렇게 시시하게 끝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었다. 진정한 악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패배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진정한 승부가 눈앞에 나타났다. 눈앞에 드디어, 나타났다.


토야는 기어코, 기어코 계단 위로 기어올라가려 했고, 루크는 그를 기어코, 기어코 잡아 끌어내렸다. 토야는 그를 뒤로 끌어내리려는 루크와 처절할 정도로 사투를 벌였다. 그의 손이 계단 끝에 매달려 뭉개지고 밟혔다. 손톱이 깨지고 부서져 피가 철철 흘렀다. 토야가 붙잡혀 있는 동안 이지는 한 발 앞서 층계 위로 훨훨 날 듯 뛰어올라갔다. 멀어져 가며, 이지가 등뒤로 짧게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우선은 이지에게 세유를 맡겨야 했다.


“드디어, 드디어······! 내 손으로 너를 죽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너를 끝장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가······!”


흰자위를 번뜩거리며, 루크가 쉰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그는 무언가에 씐 사람 같았다. 그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광기로 얼룩덜룩해진 얼굴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대장······!”


바로 뒤에서 네드와 헤이슨이 그를 쫓아 올라왔다. 네드가 당장이라도 루크와 토야 사이에 끼어들 듯 몸을 내던졌다.


“꺼져! 이건 내 싸움이다! 끼어들지 마!”


루크가 소리질렀다.


싸움 한복판으로 달려들려던 네드는 움찔하며 멈춰섰다. 그리고는 조금은 놀라고 두려운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루크가 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리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흡사 짐승이라도 된 듯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족의 얼굴이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옆에서 헤이슨이 네드의 팔을 꾸욱 잡았다. 옆을 돌아보니, 헤이슨이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저놈은 루크에게 맡겨놓자. 로니 경이 먼저야.”


그리고 그들은 서둘러 루크와 토야를 지나쳐 최상층의 집무실을 향해 달렸다. 애써 방금 전 본 루크의 얼굴을 잊은 척 하며.


“죽어, 이 자식······!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루크가 벌개진 눈을 부릅뜨며, 손과 무릎 위로 기어가려는 토야의 목덜미를 두 손 안에 쥐었다. 그리고 마구 조이고 흔들었다. 목과 턱에 힘이 들어가자, 그의 윗입술이 부르르 떨리며 말려 올라갔다. 팔과 손등에 굵은 핏줄이 돋아나며 쿵쿵 뛰었다.


그때, 목이 졸리던 토야가 팔을 힘차게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 순간 루크의 코에서 피가 펑펑 쏟아졌다. 그가 뒤로 휘청 하며 계단 위로 나뒹굴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땅을 짚자, 흰 바닥 위로 시뻘건 피가 주룩주룩 흘러 둥글게 웅덩이를 만들었다.


루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토야 역시 헐떡이며 바닥 위로 몸을 굴렸다. 몸을 가누며, 그가 얼굴에 묻어난 핏자국을 손바닥으로 눌러 닦았다. 그가 몸을 세우면서 루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맞닿았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를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겠지.”


토야가 가쁜 숨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루크의 얼굴에 환희가 번졌다. 이빨에 피가 잔뜩 묻어 시뻘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를 죽이려 해봐라. 위로 올라가고 싶거든 나를 죽여봐라.”


루크가 검을 뽑았다. 토야도 길게 기다리지 않고 검을 손에 쥐었다. 그가 입안에서 피를 우물우물하더니, 탁 하고 뱉어냈다. 그 모습을 보며 루크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치고 올랐다. 손이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세차게 칼날이 부딪치고 진동했다. 더욱 더 세게, 더욱 더 빠르게 루크는 검을 몰아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신경 하나하나를 따라 희열이 찔러 올라, 사지를 향해 뻗어갔다. 기뻤다. 기쁘고, 즐겁고, 짜릿했다. 머릿속은 놀라우리만큼 또렷했고, 살갗이 따끔따끔할 만큼 온몸의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쉴 새 없이 검으로 베고 찌르고 몰아치면서도, 코에서 피는 계속해서 펑펑 쏟아져 루크의 얼굴은 금세 피범벅이 되었다. 형의 얼굴과 같았다. 브리도르 가문의 외동딸이 천장에 목을 매어 죽어있던 그 방 안에서, 그가 홧김에 휘두른 주먹에 나가떨어졌던 불쌍한 시녀의 얼굴과 같았다. 그와의 대련에서 무참히 패배한 후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선배의 얼굴과 같았다. 로드의 호수에서, 마지막으로 수습했던 시체더미 속 케리셀의 얼굴과 같았다······


그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뜨거운 피가 그의 얼굴과 목과 가슴 위로 내리 쏟아지고 있었다. 그의 가슴이 쿵쿵 울렸다. 효율만을 이야기하고, 차갑게 승률을 계산하고 전술을 구상했던 그의 안에서 커다랗고 뜨거운 무언가가 응어리져 부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희열이 번졌다. 형의 얼굴과 같았다. 동생의 검을 처음 쥐어보고, 너무나도 천진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러보며 즐거워하던 바보 형의 얼굴과 그의 지금 얼굴이 같았다.


‘이상해······ 왜 갑자기 이런 기억들이 떠오르는 거지······?’


불현듯, 그의 정신이 아득히도 먼 과거를 거슬렀다. 기억 속에서 형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졌다. 주먹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가 있었다. 형의 앞에 서자마자 그는 있는 힘껏 주먹을 형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형이 카펫 위로 나뒹굴었다. 코에서는 피가 펑펑 쏟아졌다. 형은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더라······?’


급박한 사투 속에서도, 그는 멍청하게도 잠시 멍해졌다.


‘아······ 기억났다······’


즐거워하던 형의 얼굴을 보고 몹시도 화가 났었다. 바보인 주제에. 검을 다루는 자세도 엉망인 주제에. 그런 주제에 그렇게도 행복한 얼굴을 하다니. 그렇게 순수하게 즐거운 얼굴을 하다니.


‘그래······ 그깟 시시한 검술 따위에······’


검술은 그에게 언제나 시시했다. 너무나 쉬웠다. 모두들 그를 가리켜 천재라고들 했다. 그는 항상 최고였다. 그에겐 너무 당연했고 시시한 것이었는데, 그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얼굴은 이상했다. 조부모님은 기대감에 가득한 표정으로— 무능한 아버지는 조금은 복잡한, 질투와 자괴감으로 그늘진 표정으로— 동기들과 선배들은 그를 시기심과 경멸로 가득한 표정으로— 바보 형은 움찔거리며 겁먹은 표정으로— 여자들은 재빨리 거울을 꺼내 화장을 확인하며 선망에 가득한 표정으로—.


그런데 그의 얼굴은 항상 차갑게 굳어있었다. 항상, 항상.


그런데 지금, 그랬던 그의 표정이 해체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 마왕의 시체를 보았던 그때 그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완벽하게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의 희열로.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짜릿함으로.


퍽—!


루크의 가슴을 마침내, 토야의 검이 뚫었다.


피가 꿀럭 하고 토해져 나왔다. 루크는 심장을 토해낼 것만 같은 울림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귀가 솜뭉치로 틀어 막힌 것 같았다. 피범벅이 되어, 그는 천천히 땅 위로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자마자, 토야는 뒤를 돌아볼 생각도 않고 계단 위로 뛰어올랐다. 루크 혼자 텅 빈 층계 위에 쓰러져있었다. 몸 아래로 피 웅덩이를 고이며.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몸이 무거운 납덩이가 된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입술이 떨리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눈물도 나왔다. 그는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더럽게 심장이 울리는군······’


갑자기 무서워졌다. 심장이 쿵쿵쿵 터질 것처럼 울렸다. 피가 쏟아져 나오는 만큼 수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사소한 기억까지도. 죽기 전 파노라마라는 것이었을까?


사실은, 사실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오면, 혼자 덩그러니 방 안에 서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곤 했다. 모든 게 다 무료했다. 쉽고, 지루했고, 재미없었다. 모든 게 일, 일이었다. 지독하게도 그는 일에 파고들었다. 힘 들이지 않고도 남들이 선망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케리셀의 위치에 집착했다. 케리셀이 죽고 그 자리에 대신 오르고 나서는 리퍼스에 집착했다. 자꾸만, 자꾸만 올라가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니까. 이상한 얼굴들을 하고 자꾸만 쳐다보니까.


후련했다. 그런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자꾸만, 자꾸만 새어 나왔다. 죽게 되어서야 처음으로 심장이 이렇게도 열심히, 온 힘을 다해서 쿵쿵 뛰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


공기가 갑자기 귓가에서 부르르 떨렸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뒤에서 그 누군가가 달려와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긴 적갈색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걸 보니, 테즈인 것 같았다. 테즈가 울고 있었다. 공기의 떨림으로 울음소리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 따스했다······







화이트타워의 최상층. 로니 경은 노발대발하며 옆에 세워진 의자를 밀어 넘어뜨렸다. 우당탕 하며 요란스럽게 귀가 울렸다.


“그 인간들의 모략이야······!!! 그 놈들이 나를 엿먹이려고 뒤로 몰래 간계를 꾸몄어······!!!!”


세유는 그가 그리 길길이 날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이성을 잃지 않았다. 항상 모든 상황에 준비되어 있었다.


“내 그놈들은 반드시 처단하고 말겠어! 감히 이런 중요한 날에 내게 망신을 줘? 가만두지 않겠어······ 결단코 가만두지 않겠어······! 일국의 왕이라는 놈들이 그런 더럽고 천한 술수를 써?! 높으신 왕이라는 놈들이?!”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위에 모든 물건들을 쓸어버렸다. 사방에서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소운······!”


그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방 한구석에 선 소운에게로 홱 돌렸다.


“지금 당장 나가서 이곳으로 들어오려는 놈들을 처단해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소운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저벅저벅 밖으로 나갔다.


소운이 나간 후에도 로니 경은 한참을 화를 삭이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는 밀쳐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내리눌렀다. 이를 악물고, 그는 눈을 꾸욱 감아 이성을 다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구경하는 재미가 좋으시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성녀의 눈물께서는 변함 없이 무관심한 표정이시로군요. 역시나 대단하십니다······! 대단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가 가만히 서 있는 세유에게 화살을 돌렸다.


세유는 자신을 노려보는 로니 경을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방안에서 매섭게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거기엔 분노도 있었고, 조바심도 있었고, 불안감도 있었고, 공포도 있었다. 그 감정들을 가슴에 안으니, 어째서인지 모든 게 다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피 흘리며 죽어갔던 신녀를 생각했다.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는 왜 ‘희망’으로서 이 세상에 남겨졌던 것일까?







이지는 최정상에 거의 다다라있었다. 고지가 눈앞에 놓이자, 그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는 검을 뽑았다. 저 문 너머에 세유가 있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더니, 소운이 홀로 걸어 나왔다. 계단 위를 내딛던 이지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소운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이지를 길게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왔다. 손에는 오래 전부터 보아왔던 긴 칼집처럼 생긴 쇠막대가 들려있었다. 소운이 조금씩 가까워져 오며, 칼자루를 쥔 이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머뭇거릴 틈도 없이, 바로 쇠와 쇠가 맞부딪쳤다.


이지는 순간적으로 뒤로 훅 밀려났다. 계단 위에서부터 밀고 내려오는 소운에게 힘이 더 실린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위치적으로 유리한 점을 제쳐놓고서라도, 소운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아직 채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에게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표정을 한 채, 기계적으로 내리치고 후려치기만 하는데도 강했다.


제대로 방어를 해보기도 전에, 이지의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소운은 거의 병기 같았다. 구름보다도 가볍게 움직였고 묵직한 무게감으로 내리쳤다. 오래 굶고 감금되어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소운과 대등하게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지는 이를 악물고 팔의 근육을 있는 힘껏 당겨 검을 내리쳤다. 검이 이렇게도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든 검의 무게 하나를 감당하는 것만 해도 이지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이지, 비켜······!”


갑자기 토야가 뒤에서 뛰어들었다. 이지가 휘청거리며 몸을 피하자, 토야가 소운을 덮쳐 내리눌렀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히며, 소운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토야, 세유를······!!”


뒤로 비틀거리며, 이지는 토야를 향해 세유의 이름을 부르짖어 불렀다.


토야는 소운의 몸을 짓밟아 누르며 뛰어올랐다. 토야의 몸이 위로 솟구치며, 찢겨진 소매가 너덜너덜하게 매달린 그의 팔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이지는 뒤로 떨어졌다. 심장이 쿵쿵쿵 했다. 곡선을 그리며, 그는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시간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땅 위로 떨어지는 순간이 포근할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칼날이 그의 가슴 한중간을 단숨에 찔러 뚫었다.


급작스럽게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모든 감각이 멀어졌다.


헤이슨이었다.


그새 따라잡은 거인 같은 그가, 짐승처럼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는 이지의 몸을 옆으로 밀쳐 치워버렸다. 걸리적거리는 물건을 치우듯이 간단하고 무심하게.


헤이슨의 바로 뒤에 테오도르가 서 있었다. 충격과 놀라움이 번진 그의 눈동자가, 이지가 피로 물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멀리 저 아래서 두 명의 크루세이더가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그매어도 휘청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숨이 멎은 듯 시공간이 정지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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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6 (完) [마지막의 마지막] +2 14.11.28 534 2 8쪽
75 75 [모든 것이 끝난, 그 후] 14.11.27 360 0 19쪽
74 74 [끝을 향해] +2 14.11.27 441 1 21쪽
» 73 [그 남자] 14.11.25 368 4 16쪽
72 72 [처형식] 14.11.24 364 0 16쪽
71 71 [뿌리] 14.11.21 367 2 21쪽
70 70 [드러낸 발톱] 14.11.21 403 1 14쪽
69 69 [민중의 영웅] 14.11.19 401 3 16쪽
68 68 [모든 것의 끝] 14.11.18 448 1 12쪽
67 67 [인간] 14.11.17 419 1 19쪽
66 66 [자백] 14.11.14 397 2 19쪽
65 65 [도망] 14.11.13 361 2 12쪽
64 64 [‘벽’] 14.11.12 259 2 12쪽
63 63 [까발려지다] 14.11.11 405 1 18쪽
62 62 [진실은 잔혹했다] 14.11.10 356 2 18쪽
61 61 [치닫다] 14.11.07 395 3 15쪽
60 60 [마지막 남은 나의 성역(聖域)] 14.11.06 375 7 18쪽
59 59 [서서히 돌아가는 룰렛] 14.11.05 402 3 20쪽
58 58 [재] 14.11.04 400 4 19쪽
57 57 [‘툭’] 14.11.03 457 3 20쪽
56 56 [‘성’이라는 감옥] 14.10.31 432 3 14쪽
55 55 [회상편 – 토야(5)] 14.10.30 470 2 16쪽
54 54 [회상편 – 토야(4)] 14.10.29 379 3 17쪽
53 53 [회상편 – 토야(3)] 14.10.28 329 0 21쪽
52 52 [회상편 – 토야(2)] +1 14.10.27 458 0 17쪽
51 51 [회상편 – 토야(1)] 14.10.24 311 2 17쪽
50 50 [잔혹한 재회] 14.10.23 386 1 16쪽
49 49 [귀신의 숲] 14.10.22 474 1 19쪽
48 48 [죄인] 14.10.21 381 1 16쪽
47 47 [순항] 14.10.20 40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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