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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지 님의 서재입니다.

리퍼스(REAPERS)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윤조지
작품등록일 :
2014.08.31 20:54
최근연재일 :
2014.11.28 23:5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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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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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48,127

작성
14.10.2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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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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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54 [회상편 – 토야(4)]

DUMMY

REAPERS (리퍼스) 54 [회상편 – 토야(4)]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자, 어슴푸레하게 새벽이 밝아왔다. 무거운 철문이 끼익 하고 열리더니, 장정 둘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토야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입술은 허옇게 부르트고, 눈에는 피멍이 든 처참한 몰골이었다. 어두운 감방에서 끌려 나오자 그는 눈이 부셔 퉁퉁 부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의 발이 힘없이 땅 위로 질질 끌려갔다.


일어설 힘조차 없던 그가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그는 달구지에 실려 멍석이 덮인 피투성이 시체 옆을 지나고 있었다. 멍석 밖으로 부르트고 터진 손이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를 붙잡은 억센 손들을 밀쳐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아무리 몸을 흔들어도 그를 끌고 가는 손아귀 힘은 더욱 억세졌다.


“……아버지……”


시체의 손등에 깊게 패인 흉터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쇠를 두드리던 아버지의 강인한 손에 새겨진 흉터를.


“아, 아아아, 아…… 아버지…… 아버지…… 아, 버지……!!”


아버지의 손이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핏줄이 불거진 손은 석고로 만든 모형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갈색으로 변색된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바닥에 대고 어찌나 할퀴었던지 손톱은 너덜너덜했다. 대포알이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간 것 같은 현실감이 없는 엄청난 고통이 그를 휩쓸었다. 모든 고통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강도에, 허파가 쪼그라들어 모든 숨이 빼앗긴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미칠 것만 같았다. 눈알을 뽑고 심장을 뜯어내고만 싶었다. 흉골이 부러질 때까지 가슴을 마구 치고 싶었다.


“난동 피우지 마라! 얌전히 하지 못할까!”


주먹이 퍽 하고 날아와 그는 등이 푹 하고 아래로 꺼졌다. 양옆에서 반 시체가 된 그를 우악스럽게 잡아 끌어 마을 사람들이 둘러싼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던져놓았다. 억지로 무릎이 꿇려져, 토야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모래 바닥에 세게 박혔다.


“아주 예쁜 꼴을 하게 되었구나. 밤새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해 반성은 하였느냐?”


힘들게 고개를 들자, 저 앞에 높은 단상 위에 거드름을 피우며 앉은 새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관청의 관리로 보이는 자가 앉아있었다. 새던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 자에게 음흉한 눈짓을 주었다.


토야는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기세로 몸을 비틀었으나, 마음 가는 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 그는 바닥 위로 다시 고꾸라졌다. 그의 뒤에 선 장정 둘이 반항하는 그를 몽둥이로 퍽 내리쳤다.


새던은 혀를 끌끌 찼다.


“역시 배우지 못한 놈은 제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르는구나. 괘씸하다. 네 죄를 자백하고 깊이 반성하는 뜻을 보인다면 네 목숨만은 사해주려 했다만, 아무래도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마을의 관례대로 네 놈을 죽도록 패 숲의 귀신에게 먹이로 던져주어야 하겠구나.”


토야가 고개를 들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새던을 노려보며, 그가 입안에 머금은 피를 뱉으며 울부짖었다.


“더러운 개자식……!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죄를 지어내 사람을 죽이려거든 나 혼자만 잡아다가 죽이면 될 것을, 무고한 우리 아버지까지 죽여……? 아버지께는 무슨 죄를 뒤집어 씌울 테냐! 우리 아버지는 무슨 죄목으로 잡아다가 고문을 하고, 죽였다고 할 테냔 말이야!!!”


몽둥이질이 다시 빗발쳤다. 새던은 쯧쯧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이십니까? 관찰사 어른? 저 자가 저리도 오만한 자입니다. 네 이놈, 네 아비가 너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느냐? 네 이놈, 천륜을 어기고 연약한 아녀자를 겁탈하려 시도한 것도 모자라, 이가 실패하자 살인까지 하려 하고도 하늘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구나!”


“개……자식……! 돈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니 뭐든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세상의 모두가 네 발밑에 있어, 멋대로 밟고 싶은 대로 밟아도 된다고 여기나 보지……? 하늘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설친다는 게 딱 네놈을 보고 하는 말이다……!”


새던의 눈썹이 꿈틀했다. 화를 억지로 눌러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호라…… 네놈이 정녕 실성했나 보구나. 내가 오늘 아주 관찰사 어른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네놈을 반쯤 죽여놓을 것이다. 이미 관청으로부터 네놈에게 내 자의대로 벌을 내려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놓았다. 그래, 언제까지 지금처럼 입을 놀릴 수 있을지 두고 보자……!”


그가 자신의 양옆으로 선 무장한 부하들에게 손을 까딱했다.


“이 놈이 입 하나 뻥긋 못하도록 증인을 데리고 오너라!”


부하들이 빠르게 단상 아래로 내려가 벽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허름한 행색의 중년 남자 한 명을 데리고 나왔다. 긴장한 기색을 보이며 남자가 단상 앞에 섰다. 토야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얼른 시선을 회피했다.


“히단 아저씨……”


부르튼 입술 사이로, 토야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 남자를 향해 있었다. 남자는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네가 저 비열한 놈의 이웃이라고 들었다. 자아, 네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거짓없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말해보거라.”


새던이 음흉하게 웃으며 명령했다. 땅만 쳐다보는 남자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빠르게 이동했다.


“저놈이 아가씨께 집착을 한 것은 바우곤도샤 사람들이라면 대충 다 알고 있습죠. 아가씨께서 시집을 가신 후 저놈이 아가씨를 툭하면 저택 밖으로 협박을 하여 불러내었고, 저희들은 저 집 사람들이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 집의 바깥양반도 그렇고 저놈도 그렇고, 무기를 만지는 사람들이라 난폭한 짓도 많이 저질렀고, 저희들은 보복이 두려웠습니다요.”


남자가 슬쩍 토야의 눈치를 보았다.


“이틀 전 나무를 하러 숲에 들어갔는데, 저놈이 아가씨를 잡고 억지로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는 것을 봤습죠. 수상하다고 생각한 저는 바로 그 길로 어르신 댁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러고는 군졸들이 숲 속으로 들어간 후 저는 수풀 속에 가만히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얼마 안 되어가지고 저놈이 칼을 들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나오더군요.”


새던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등받이 뒤로 기대었다.


“그 말이 사실이렷다.”


“한 치의 거짓말도 없습니다요.”


남자가 굽실거렸다. 토야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남자가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안이 벙벙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 지금, 지금 그게……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남자는 애써 토야의 말을 무시했다.


“아저씨, 히단 아저씨……”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남자는 아버지의 오랜 술친구였다. 술에 흥겹게 취해 둘이서 토야 집 마루에 앉아 옛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어린 토야의 무등을 태워주고 시냇가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삼촌이나 다름없는 이웃 아저씨였다.


“이곳에 모인 바우곤도샤의 주민들은 앞으로 나오거라.”


새던이 두 팔을 벌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토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빙 둘러싼 많은 인파 속에서, 열 명 가까이 되는 어른들이 걸어 나왔다. 조금은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성큼성큼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토야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던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 자가 앞서 증언한 내용이 사실임이 틀림없느냐?”


새던의 질문에, 수염을 무성하게 기른 남자가 제일 먼저 나섰다.


“예, 틀림이 없습니다. 바우곤도샤 주민 전원이 사실임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옆에 선 그의 아내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려서부터 덩치는 큰 놈이 어찌나 왈패 짓을 하고 다니는지, 피해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놈이 언젠가는 몹쓸 짓을 저지를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제일 바깥쪽에 선 몸집이 작은 남자도 거들었다.


“아가씨께서 혼인을 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저희 모두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아가씨께서 시집을 가고 나시면 단념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런 사건을 일으켜 놀랐습니다.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엄중히 벌을 내려주십시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사람이 한 말에 한 명씩 한 명씩 살을 붙이며, 삽시간에 토야는 어마어마한 괴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등하교길을 언제나 함께하던 학교 친구의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와 주말마다 카드 게임을 하던 모임 멤버도 와 있었다. 농담조로 토야에게 자기 딸에게 장가를 들라던 이웃집 아주머니도 입을 댔다. 토야와 학교 아이들을 모아 앉혀놓고 수박을 먹였던 인심 좋던 채소밭 아저씨도 증언을 했다. 토야가 태어나서부터 쭈욱 살아왔던 작은 동네에서, 어떤 식으로든 토야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고 추억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이 자리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토야는 괴물로 만들어졌다. 부풀려지고 뒤틀려 그는 추악한 짐승으로 변해갔다.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가 만들어졌다.


“자, 새아기를 불러오너라.”


새던이 이렇게 지시하자, 뒤편에서 시녀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시아레가 걸어 나왔다. 핼쑥해진 모습으로, 그녀가 조금 불안정하게 발걸음을 떼며 새던 앞에 와 다소곳하게 인사를 올렸다.


“몸도 좋지 않을 텐데 여기까지 나오게 해서 미안하구나. 어서 자리에 앉거라.”


새던이 부드럽게 일렀다. 의도된 자상함이었다. 시아레는 관찰사를 향해 다시 한 번 예를 갖추고는 새던 옆에 준비된 의자에 정갈한 자세로 앉았다.


“죄인처럼 행동할 것 없다. 나는 네 결백함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죄가 있다면 저 금수만도 못한 놈에게 죄가 있지, 네게는 죄가 없으니 고개를 들어라. 괴로울 것은 알지만, 네가 꼭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 저놈이 네게 하려 한 것을 말해주었으면 한다.”


시아레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새던이 타이르듯 말했다.


“저놈과의 옛 정은 잊거라. 너는 심성이 너무도 고와 탈이다. 저놈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모두 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해다오. 그것이 너를 위한 길이다.”


토야는 망설이는 모습의 시아레를 바라보았다. 밤새 앓은 것 같이 창백한 얼굴에, 눈 밑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각본대로였다. 그녀는 불명예 속에 괴로워하다 자살을 기도한 고결한 아녀자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고개를 살포시 숙인 채 조신하게 앉아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마음이 강하지 못하고 사내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여 치욕을 당할 뻔 했습니다. 다행히 변은 피하였으나, 심려만 끼쳐드려 아버님께는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가녀린 여자의 모습을 하고, 그녀가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아니다. 네가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네 탓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아라. 나는 무엇보다도 너에 대한 걱정이 가장 앞서느니라.”


새던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무대 위에서 광대 두 명이 과장된 어조와 행동을 취하며 연기를 하고 있었다. 주위 관객들은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어설프게 움직이며, 박수를 치고 호응을 했다. 관찰사랍시고 정부에서 파견한 자는 입도 한번 뻥긋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자리만 차지했다. 잘 꾸며낸 한 편의 코미디 연극이었다. 단순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삼류 연극.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보던 토야는 저도 모르게 ‘하……!’ 하고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새던의 눈초리가 토야를 향해 사납게 번뜩였다.


토야는 다시 한 번 짧게 ‘하’ 하고 웃음을 뱉어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웃음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상황이 너무도 배꼽이 빠질 만큼 우습고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성한 사람처럼 그는 웃기 시작했다. 크게, 더 크게, 세상 그 무엇도 들리지 않을 만큼 크게 그는 웃었다.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새던이 침을 튀기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몽둥이가 공중으로 치켜올라갔고, 그는 몽둥이 세례 속에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가 터졌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차마 참혹한 광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가렸다. 눈 깜짝하지 않고 그를 괴물로 몰아가던 사람들이 눈을 가리는 꼴을 보고, 토야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보며 머리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그는 미쳐 있었다.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저, 저 놈이 아주 실성했구나……!”


팔걸이를 잡은 새던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이 사색이 된 그는 의자를 꽉 붙잡고서야 몸을 지탱할 수 있는 듯했다. 그의 옆에 앉은 시아레는 허얘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저 놈을 매우 쳐라! 정신을 차릴 때까지 치고 또 쳐라!”


새던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추악한 개자식……!!”


토야가 부르짖었다.


새던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허리를 세운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이 눈에 확연히 보였다.


“네놈은 우리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더럽히고, 우리 아버지의 신념을 왜곡했다……! 그래, 좋다. 어디 나의 육체를 부러뜨리고, 심장을 파내고, 혀를 잘라내어 보아라……! 나는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네놈을 찾아가, 우리 아버지 몫의 복수를 하고, 내가 당한 것만큼의 벌을 내릴 것이다……! 밤에 잠들기가 무섭도록, 한 숨도 편안히 자지 못하도록, 내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찾아가 너를 괴롭힐 것이다! 마침내는 네 목을 따고 아버지의 무덤 앞에 걸어 아버지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그래, 내가 그렇게 할 것이다!”


토야가 컥 하고 피를 왈칵 토해냈다.


새던은 매질을 하고 있는 군졸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토야를 가리킨 손가락이 마구 흔들렸다.


“뭐하고 있느냐! 저놈이 닥치도록 마구 쳐라! 죽여놓아라! 죽여놓으란 말이다!”


토야는 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모래밭에 얼굴을 박고 기었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며 모래를 움켜쥐었다. 그가 모래에 얼굴을 문지를 때마다 피가 번져갔다.


“그리고 네놈들……”


토야가 타는 듯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가 힘겹게 조금씩 앞으로 기었다.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났다. 피가 흘러 들어가 충혈된 두 눈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향했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네 놈들도 내가 다 죽여버릴 거야…… 내가 네 놈들 모두 지옥의 불구덩이 속까지 끌고 들어갈 거야…… 더러운 배신자들…… 간사한 아첨꾼들…… 공포에 질린 생쥐를 몰 듯 한 명 한 명 끝까지 추격해,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주고 말겠어…… 죽여버리겠어…… 전부 다 죽여버리겠어……!”


그가 갑자기 시선을 홱 돌렸다. 핏발 선 두 눈이 단상 위에 앉은 시아레에게로 향했다. 핏기가 가신 얼굴을 한 그녀가 두 손으로 왼쪽 가슴을 꼭 부여잡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네가 이제야 가면을 벗었구나…… 처연하고 청초하던 배우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순수한 공포심만이 네게 남았구나…… 그런데 왜 떨고 있어? 이런 내가 무서워? 소름 끼쳐? 하하, 하…… 무서운가 보구나. 헌데, 나는 네가 무섭고, 네가 소름 끼쳐. 너를 사랑한다면 이런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너는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 말만은,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 말만은……”


토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땅 위로 처박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퍽, 퍽, 퍽, 개 패듯이 몽둥이질을 하는 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마지막으로 그가 하늘을 향해 필사적으로 떨리는 고개를 치켜들어 부르짖었다.


“돈과 권력이 좋긴 좋구나……!! 이 개자식들아!!!!!”


그리고 그때까지 입술을 꾹 닫고 있던 창백한 안색의 시아레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그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에 또렷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날 밤, 반 시체가 된 토야는 사아 숲 경계선 안쪽에 버려졌다. 귀신의 먹이가 되도록.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숲 속에서 그는 정신을 차렸다. 어둠과 적막함 속에 먹혀, 그는 죽은 사람처럼 엎드려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귓가에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윙윙 울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던 그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뻗어 차가운 흙을 긁어 쥐고, 그는 천천히, 힘겹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기어나갔다.


그는 사아 숲 중심부까지 기어들어갔다.


죽으려고.


안으로,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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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6 (完) [마지막의 마지막] +2 14.11.28 533 2 8쪽
75 75 [모든 것이 끝난, 그 후] 14.11.27 360 0 19쪽
74 74 [끝을 향해] +2 14.11.27 441 1 21쪽
73 73 [그 남자] 14.11.25 367 4 16쪽
72 72 [처형식] 14.11.24 363 0 16쪽
71 71 [뿌리] 14.11.21 367 2 21쪽
70 70 [드러낸 발톱] 14.11.21 403 1 14쪽
69 69 [민중의 영웅] 14.11.19 400 3 16쪽
68 68 [모든 것의 끝] 14.11.18 448 1 12쪽
67 67 [인간] 14.11.17 419 1 19쪽
66 66 [자백] 14.11.14 397 2 19쪽
65 65 [도망] 14.11.13 361 2 12쪽
64 64 [‘벽’] 14.11.12 259 2 12쪽
63 63 [까발려지다] 14.11.11 405 1 18쪽
62 62 [진실은 잔혹했다] 14.11.10 356 2 18쪽
61 61 [치닫다] 14.11.07 395 3 15쪽
60 60 [마지막 남은 나의 성역(聖域)] 14.11.06 374 7 18쪽
59 59 [서서히 돌아가는 룰렛] 14.11.05 402 3 20쪽
58 58 [재] 14.11.04 400 4 19쪽
57 57 [‘툭’] 14.11.03 457 3 20쪽
56 56 [‘성’이라는 감옥] 14.10.31 432 3 14쪽
55 55 [회상편 – 토야(5)] 14.10.30 470 2 16쪽
» 54 [회상편 – 토야(4)] 14.10.29 379 3 17쪽
53 53 [회상편 – 토야(3)] 14.10.28 329 0 21쪽
52 52 [회상편 – 토야(2)] +1 14.10.27 457 0 17쪽
51 51 [회상편 – 토야(1)] 14.10.24 311 2 17쪽
50 50 [잔혹한 재회] 14.10.23 386 1 16쪽
49 49 [귀신의 숲] 14.10.22 474 1 19쪽
48 48 [죄인] 14.10.21 380 1 16쪽
47 47 [순항] 14.10.20 40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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