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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2,974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1.01.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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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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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
17쪽

지룡地龍의 소굴로(1)

DUMMY

드워프 왕 라이칸 프로스트에게서 다시금 연락이 온 것은 딱 보름 후의 일이었다.


그가 보낸 전언에는 딱 한 마디만이 적혀있었다.


‘완성되었다.’


“완성되었다는군, 네 물건이.”


유논의 말에 지저도시 특산의 고기버섯 스프에 얼굴을 처박고 국물을 들이키던 시드가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와 진짜요? 빨리 받으러 가죠?!”

“먹던 거나 다 먹어라. 그리고 너.”


유논은 입가 주변에 수프 덩어리를 잔뜩 묻히고 있는 시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호히 말했다.


“천천히, 최소한의 예법은 지키면서 깨끗하게 먹어라.”

“치···이젠 먹는 것까지 뭐라고 해.”

“계속 그렇게 더럽게 먹다가는 지난번에 봤던 그 드워프 대장장이처럼 될 거다.”

“······!”


몇 달은 씻지 않은 것 같은 라이칸 프로스트의 추레한 몰골은 시드에게도 충격적이었던지, 유논의 경고에 말없이 고개를 주억이며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그 모습에 유논은 흡족해졌다.


‘그 못난 드워프 놈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 때도 있군.’


제자를 교육시키는 데 있어 반면교사의 교보재 삼기에 딱 좋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진짜 안 먹어요? 이거 완전 맛있는데. 버섯에서 거짓말 안치고 정말 고기 맛이 난다니까요? 심지어 웬만한 지상 괴수들 고기보다 훨씬 야들야들하고, 거기에 국물에는 매콤한 맛까지 섞여있고!”

“그래, 너나 실컷 먹어라.”


잔뜩 흥분해 횡설수설하는 시드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넘기며, 곁눈질로 여관 한쪽을 바라본다.


도대체 어느 새에 나타났는지 모를 여관주인이 소리도 소문도 없이 시드의 뒤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시드가 먹다 흘린 탁자의 얼룩을 치우기 위해 새하얀 행주를 들어 올린 채 다가간다.

그렇게 등 뒤에 도착했을 때.


“왁!!!”


시드가 돌연 몸을 휙 돌려 등 뒤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헤헤, 이젠 안 당하지롱! 놀랐죠? 솔직히 놀랐잖아, 드워프 아저씨!”


그러나 무뚝뚝한 여관 주인장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탁자를 치우고 다시 돌아갈 뿐이었다.

그 기계 같은 모습에 시드는 혀를 찼다.


“쳇, 재미없어.”


이번에도 주인장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시드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던 유논은, 흥미로워하는 기색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단순히 운으로 알아차렸다 보기에는 굉장히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지난 보름동안 주구장창 당하기만 하더니, 그 경험으로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져 여관주인의 접근을 눈치 챌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유논조차 꽤 놀라게 만들었던 저 가공할 은신술을 몇 번 당해본 것 정도로 간파해낼 줄이야.

과연 시드답다고 해야 할까, 대단한 성장속도였다.


마침 수프도 다 먹은 모양인지라, 부른 배를 두들기고 있는 녀석을 데리고 여관 바깥으로 나섰다.

이번에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옷깃을 꼭 붙잡는 시드를 지저의 수로까지 데리고 가 함께 곤돌라에 탑승한다.


“와, 이거 타면 시장까지 한 번에 갈 수도 있다고요? 나는 지난번에 걸어서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억울하다는 듯 투덜대는 시드. 유논은 의아해 물었다.


“수로를 따라 걸어가기만 해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텐데?”

“아니, 수로 따라가면 시장이 나오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아저씨야 지저도시 많이 와봤으니까 잘 알고 있다고 쳐도, 나는 완전 처음이라고요!”


그래서 지난번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느냐며 항의하는 시드의 목소리. 유논은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쩐지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 싶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다.


“지저도시에 처음 도착했던 날.”

“···?”

“노아가 우리에게 지저도시를 안내해주며 전부 설명했던 내용들이다. 시장은 수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구멍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며, 지저 탐사에 유용한 물건들이나 무구들은 전부 그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노아가 열심히 설명하던 것을 주위 풍경에 시선이 빼앗겨 제대로 듣지도 않은 것 같더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룬 셈이었다.


결국 자업자득이었기에 시드는 멋쩍어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노아 그 아저씨는 정체가 도대체 뭐예요? 드워프가 아닌데도 지저도시에서 엄청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던데요. 그 기계 옷도 처음에는 지저도시에서는 다들 입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한동안 지내다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드워프들과는 생김새가 크게 다르면서도 드워프 마도공학의 역작인 위정령을 소유한 자. 기계 외골격을 입은 그 지저도시 수문장의 모습은 뇌리에 꽤나 인상 깊이 박혀있었다.


한때 안내인 역할을 했던 자이기도 하고, 함께 변종 미어캣 무리에 맞서 싸우기도 했던지라 정체가 궁금해진 모양.


유논은 언제나처럼 곧바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런 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봐라. 아마 오늘 만날 수 있을 거다.”

“아, 진짜요? 그때 그 가게로 온대요?”

“아마도.”

“와. 노아 아저씨도 그 대장장이 아저씨랑 아는 사이인가 보다.”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무려 부자지간이었다.


“휴, 그나저나 다행이다.”

“뭐가 말이냐?”

“드워프 대장장이 아저씨, 엄청 의심스러웠거든요. 스승님이 알아본 사람이니까 분명 확실할 텐데, 아무래도 겉모습이 너무 믿음직스럽지가 못해서. 이 냄새 나는 사람이 드워프라고? 싶은 생각만 몇 번은 한 거 같은데.”


유논은 쿡쿡 웃었다.

시드에게는 라이칸 프로스트를 소개하며 지저의 왕이니, 드워프 최고의 야장이 하는 미사여구를 따로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네 무구를 만들어줄 드워프 대장장이라고만 설명했을 뿐이다.


라이칸 프로스트 또한 자화자찬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기에 시드와 대화 나누는 동안 스스로의 지위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기에 시드가 저런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저도시의 지배자가 냄새 나고 의심스러운 드워프 취급을 받는다니.


“어라? 왜 웃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대화할 때도 완전 이상한 것들만 잔뜩 물어봤단 말이에요. 암만 생각해도 무구 만드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질문들이었어.”


시드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니 정말로 엉뚱한 질문들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뭐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니?’, ‘잠자는 건 좋아하니? 기억나는 꿈이 있니?’, ‘바깥세상에서 살다왔다면 하늘을 자주 보았겠구나. 네가 본 하늘을 나한테 말로 묘사해 주겠니?’ 따위의 질문들.


얼핏 듣기에도 무구 제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논은 라이칸 프로스트가 자기 일에 관해 얼마나 철저한 드워프인지 알았다. 그가 영감을 얻기 위해 저러한 질문들을 했다면, 그것들 전부가 결국 필요한 절차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걱정했는데, 노아 아저씨처럼 유능한 안내인도 아는 가게였다니 다행이네. 진짜 실력 있는 대장장이였나 봐요.”

“뭐, 그런 셈이지···.”


유논은 그리 말하며 쭉쭉 나아가는 곤돌라의 앞자리, 노를 밀고 있는 뱃사공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평소 아무런 관련 없는 이의 인상착의까지 공간감각으로 기억해두는 편은 아닌지라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그때 그 뱃사공이군.’


자꾸만 뒤를 흘낏거리는 통에 모자로 감춘 얼굴을 확인해보니 판박이였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인근 수로를 돌아다니는 모양. 이번에도 유논이 그의 곤돌라 위에 올라탄 것이다.


덕분에 이번에도 평소보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운이 좋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지난번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배를 몰아야 하니 운이 나쁘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유논은 식은땀 줄줄 흘리는 뱃사공을 향해 검지를 입술에다 대 보였다.


“쉿.”


조용히 입 다물고, 배만 잘 몰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압박.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과연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유논은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노 젓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재잘거리는 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아해하며 올려다보는 제자와 함께 야광으로 빛나는 지저의 수로를 건넜다.


어둡기에 더욱 빛나는 것들이 반짝이는 풍경, 소인들이 거니는 암벽 구조물들을 지나친다.

손에 쥐일 것만 같은 작은 세상의 겉면을 눈에 새긴다.


지저도시에서의 마지막 관광이 그렇게 저물었다.




* * *




“허허, 어서 오게나.”


다시 들어섰을 때, 점포는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확장 공사라도 한 것인지 이전에 비해 배는 넓어져 있는 공간.

라이칸 프로스트는 널찍한 복도 끝의 돌로 된 옥좌에 앉은 채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아가는 길에는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고, 좌우로 호위병들이 줄 맞춰 서 있다.


드워프 군주로서의 체면에 맞는 깔끔하면서 화려한 옷차림과 면도까지 끝낸 정결한 모습.

전쟁군주다운 거친 느낌과 지도자의 지성이 함께 느껴지는 그 모습에 유논은 혀를 찼다.


‘이제 와서 저런 되도 않게 꾸미는 짓을 하는 걸 보니···자기도 그 모양 그 꼴로 시드를 만날 때 부끄럽기는 했나 보지?’


시드만큼 얼굴에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아이도 드물다.

그녀를 대면했을 때 보았던 대놓고 더럽고 냄새 난다 여기는 표정에 상처라도 입었던 것인지, 위엄 넘치는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러게 진즉에 조금이라도 치우며 살았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을.


“껄껄, 자세한 것은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여전히 인자한 드워프 왕의 모습을 연기하며 이쪽으로 오라 손짓하는 그 모습에 영문을 몰라 하는 시드를 이끌고 따라간다.


꽤나 넓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라이칸 프로스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짓도 못할 일이군.”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염병할. 빨리 자리를 물려주든지 해야지. 이 짓을 수십 년째 해오고 있는데 여전히 지랄맞아. 암만 생각해도 예전이 더 좋았어.”


늙은이다운 소리를 일삼고 있는 멋들어진 미중년.


유논은 지난번 보았던 꾀죄죄한 대장장이의 몰골과, 저 명인의 풍모가 가득 느껴지는 드워프의 모습을 도저히 동일인이라 여기지 못하는 듯한 시드에게 말해주었다.


“저 사람이 네 무구를 맡겼던 바로 그 대장장이이자 지저도시 최고의 야장, 정치가, 전사 기타 등등을 맡고 있는 지저의 왕 라이칸 프로스트다.”

“어허, 왕이 아니래도.”

“······엑?”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 눈만 껌뻑거리는 시드를 내버려두고, 드워프 왕에게 다가선다.


“이게 그 물건인가?”


황량한 방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진열대가 있었다.


그 위에 놓여 있는 것은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연갈색 가죽 상의와 하의 세트.


재킷과 코트의 중간 형태쯤 되어 보이는 상의와 가죽 바지.

평범해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구의 기준에서이지 미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도 장인의 손길이 닿았음이 느껴지는 이음새와 곳곳의 문양들.


만져보지 않고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부드러우면서도 매끄러운 감촉이 상상되는, 극한까지 무두질한 가죽의 겉면.


톡 건드리자 살아있는 것처럼 나풀대는 한 쌍의 옷가지들.


그 속에는 미약하지만 영성靈性이 깃들어 있었다.


유논은 첫눈에 직감했다.


‘손수 걸작을 만들어 달랬더니···무슨 천 년에 한 번 등장할 법한, 괴물 같은 전설의 무구를 제작해 놨군. 이 정도를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미적으로 아름다운 게 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구로서의 측면은 그보다도 월등했다.


과연 장인 종족 드워프 최고의 야장의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세월 동안 더욱 발전한 것 같았다.


유논은 손길만으로 제 주인이 아님을 직감한 듯 거칠게 구부러지는 상하의를 시드에게 휙 던진 후 흑색마나로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이내 직육면체로 된 공간이 뚝딱 만들어진다.


“엥? 아저씨?”

“탈의실이다. 거기서 다 갈아입으면 나와라.”


그러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라이칸 프로스트에게 묻는다.


“···도대체 뭘 만든 거지?”

“하하, 좀 놀랐나? 천하의 흑색의 마법사가 내가 만든 방어구 때문에 놀라는 일도 다 있고, 이거 영광이구만.”

“잡설은 그만두고, 본론만.”


차가운 반응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그게 말이지. 솔직히 나도 이렇게 잘 뽑힐 줄은 몰랐다. 거짓말하는 줄로만 알았던 네 어여쁜 제자 녀석을 만나고 난 뒤 영감이 폭풍처럼 몰아치기에 뭔가 대단한 물건이 나오겠다 싶긴 했지만···내 역량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게 만들어지더군.”

“···기능이나 대략적인 제작 방식이라도 설명해봐라.”


자칫하다간 방어구의 성능에 도리어 시드가 짓눌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간을 좁히며 하는 유논의 말에 라이칸 프로스트는 신이 나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여러 가지 잡다한 기능들이 있지. 더군다나 이번 경우에는 착용자가 마력 사용자 아닌가. 마력까지 응용할 수 있어 여러모로 작업이 다양화되었어.

각종 지역에 사는 다양한 괴수들의 가죽을 섞고 합성해 관련된 마력 패턴을 넣어서, 모든 기후에 맞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방독, 방사능 차폐 역할까지 완벽하게 행할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마력을 제공하는 이상 결코 낡거나 더러워지지 않고, 기척 차단 마법을 수시로 끄고 킬 수 있으며, 경량화되고 인체 관절만큼이나 유연해 옷을 입어도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수 있지. 오히려 입기 전보다 훨씬 몸이 가벼워 질 거다.”


그 밖에도 지저의 비행 괴수들 날개를 섞어 코트의 어깨와 하의 발목 부분을 합성해 완전한 비행은 아닐지라도 체공 효과를 낼 수 있다, 신체 강화도 이전의 수십 배는 적게 드는 마력을 통해 행할 수 있을 거다, 마력 저장고 역할 또한 가능하다···.


갖가지 주절대는 설명들을 듣던 유논은 인내심에 한계가 와 말을 툭 끊었다. 저런 잡스러운 기능들은 척 봐도 저 옷의 진짜배기 성능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주요한 기능은 무엇이지.”

“아, 그래. 그걸 말해야지.”


말을 끊은 것을 무례하게 여길 법도 한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신이 나 떠든다.


“내 모토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겠지? 간단하고 강하게. 그 말대로, 내가 만든 모든 무구들은 간단하지만 강력한 법칙을 한 가지씩 지니고 있지. 저 상하의 세트도 마찬가지야.”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저 가죽옷은 무슨 일이 있어도 뚫리지 않는다. 그게 법칙이야. 그 한 가지만을 위해서 보름 동안 모든 여력을 쏟아 부었어. 지저의 가장 단단한 육신을 지녔다는 고대 괴수의 가죽을 입수해 무려 일주일간 용암에 수백 번을 끓였다 빼냈다 무두질했다가···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했지.”


그 밖에도 적에게는 단단하고 거칠게, 아군에게는 부드럽고 엷게 변하는 동식물들의 기름을 수도 없이 바르고 또 말리고를 반복한 결과.


“착용자가 인식한 공격도, 인식하지 않은 공격도.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취약한 부위들로 향하는 공격도 전부 막아낸다. 사실상 저 옷을 입고 있다면 물리적으로 외상을 입을 일은 전무하다고 봐도 될 걸.”


그리고는 약간 고민하며 덧붙이는 말.


“아마 핵폭발이 또 한 번 일어난다 할지라도, 저 옷만 입으면 폭격지에서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적어도 물리적인 면으로는 그럴 거야. 아마도. 확실하진 않지. 실험해 볼 수도 없을 노릇이니.”


드르륵-


마침 옷을 다 입었는지, 유논이 만들어둔 흑색 탈의실의 문이 열렸다.


이윽고 드러난 시드의 모습.

가죽 코트와 가죽 바지가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 쭈뼛쭈뼛하며 걸어 나오자 검은 머리칼이 옷자락과 함께 휘날린다.


“그, 그런데 이거 조금 큰 거, 아닌가요?”

“그건 네가 성장기임을 감안한 거다. 내가 볼 때는 키가 아직도 몇 센티는 더 클 것 같던데, 나중에 옷이 작아지지 않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어색하게 말 거는 시드에게 잔뜩 들떠 대답하는 라이칸 프로스트의 모습.


“그렇단 말이지···.”


유논은 고민 끝에 허공에서 무언가를 집었다.


은빛 칼날을 들어 시드의 몸을 가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하얀 실선이 소녀의 몸을 지나쳤다.


“······!”


작가의말

시드의 압도적인 재능과 템빨에 점점 두려워지는군요. 저 녀석이 성장하면 과연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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