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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3,077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1.02.06 20:05
조회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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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벌레가 파먹은 구멍(1)

DUMMY

유논은 일행의 뒤쪽에서 핸드캐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바지만, 이전과는 비할 것도 없이 출력이 급상승했다.

고작 총알의 품질이 나아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내가 마법을 되찾았으니, 응당 지팡이에도 변화가 생겼겠지.’


이름 없는 지팡이는 유논의 마력에 영향을 받는 무기이므로, 공간마력을 사용하는 지금은 마정석의 마력으로 연명하던 과거의 그때와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흑색의 대마법사가 신의 금속을 통해 직접 제작한 차원문의 열쇠, 시공간을 조작하는 지팡이가 지닌 힘이라기에는 지금껏 보여준 모습들이 조금 초라하지 않았던가.


이름 없는 지팡이는 지금껏 제 위력을 발휘하기에는 동력이 충분치 않아 일종의 동면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유논이 흑색마나를 되찾고 나자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진정한 잠재력을 전부 개화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본모습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서 은근슬쩍 훔쳐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노아 프로스트였다.


이 자그마한 은빛 핸드캐논이 벌인 사태가 잊히지 않는지, 자꾸만 충격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유논은 딱 잘라 말했다.


“앞으로 방금처럼 큰 힘을 써서 도와주는 것은 힘들다. 기대하지 말도록.”

“아···그렇습니까. 하긴, 그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려면 기력이 많이 소모되었겠지요.”

“그래, 피곤해 죽겠군.”


말과 달리 표정이나 몸짓은 변함없었다. 피곤하기는커녕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지저의 왕자는 공손히 말했다.


“이미 충분히 도와주셨습니다. 여기서 무언가를 더 바라는 것은 양심 없는 일이지요. 남은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피곤하다는 유논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누구든 수백 홉 고블린들이 오염된 아우라를 뿜으며 달려오는 것을 단 방의 총격으로 무너뜨린다면 그 속에 신묘한 마법이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강력한 위력을 지닌 만큼 쉽게 펼칠 수도 없고, 사용한 뒤에는 지칠 수밖에 없는 제약이 걸린 대마법이라 멋대로 논리를 구성하기 시작할 것이다.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작금의 유논에게 있어서 이것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공격에 불과했다.

특별한 마법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서클을 소환하지도, 주문을 구성하지도 않았다. 흑색마나 한 톨 일으킨 적 없다.


방금은 총을 쏘았지만, 검을 휘둘러도 비슷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유논은 이제 그런 존재가 되었다.

실은 본래부터 그런 존재였다.


서클 나인의 대마법사.

심지어는 차원의 벽까지 뛰어넘은 존재.


범인들과는 궤를 달리한 초월적인 마법사.

비단 마법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행동만으로도 세상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그게 흑색의 마법사, 유논이었다.


지금은 그 원래의 격을 되찾고 회복해가는 절차를 겪고 있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좀 전의 은빛 해일과도 같은 사격은 그에게 별 것 없는 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러 피곤하다며 거짓말을 하며 도와주기 힘들다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힘을 발휘한다면 앞길을 전부 치우고 편안하게 여정을 즐길 수도 있겠지···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가 진정 마법을 사용한다면 몰려오는 지저 고블린 떼는 물론이고 길을 막고 있는 그레이트 데쓰웜까지 단숨에 멀리, 아주 멀리 보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힘을 남용했다가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아까는 노아 프로스트가 죽을 위기에 처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것일 뿐. 적극적으로 개입해 모든 일을 대신 해치웠다가는 시드가 전혀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지저 고블린들은 어린 소녀 마법사에게 숫자의 무서움을 알려주기에 좋은 적수였다.


습득 빠른 시드라면 저 집요한 지저 괴수들에게 쫓겨 다니는 경험만으로도 많은 깨달음과 성장을 얻을 수 있을 터.

함부로 나섰다가는 제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수도 카라얀으로 곧장 향하는 구멍-다리를 열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을 비축해두어야만 한다. 아주 자그마한 티끌에 불과한 일부분일지라도. 미래를 대비해서 아껴 두어야만 해.’


눈앞의 위기들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


진정한 고난은 옛 황도 카라얀에 있었다.


그의 공간감각으로도 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무너진 수도 속 무언가가 그리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의 너조차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을 강력한 적수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것과 대적하려면 새로운 대마법을 준비하지 않고서는 소용이 없을 것을 예지한다.


그리고 대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언제나 시간과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자그마한 오차나 컨디션 저하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결과가 뒤바뀔 수 있었다.

미리부터 예비해야만 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다.’


가벼운 마음을 품고 아무 곳에나 힘을 낭비하며 도착했다가는 크게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흑색마나와 공간마력을 집중시켜 놓아야 했다.


그렇기에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도와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신의 능력을 크게 이끌어내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다.

나머지는 노아 프로스트와 드워프들, 그리고 시드가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어야만 했다. 그 편이 여러모로 이로웠다.


‘그렇기에···이 정도만 돕는다.’


유논은 보지도 않고 등 뒤로 은빛 칼날을 휘둘렀다.


명백히 위력을 조절한 채 높이 솟구친 검격이 새카만 아우라를 뚫고 모가지를 털어낸다.

홉 고블린 한 마리가 땅거미와 함께 나가떨어졌다.


이내 주위의 다른 새카만 괴물들의 물결 사이로 파묻혀 사라진다.



그 속 유난히 눈에 띄는 샛노랗게 사악한 안광이 있었다.



주위의 다른 고블린보다 훨씬 두껍고 강렬한 석탄재의 영역을 두른 채, 섬뜩한 광석의 창을 내밀고 튀어나오는 검은 괴물.


‘홉 고블린 대장···그 일격을 맞고도 살아있었나!’


노아 프로스트는 놀라 이를 악물었다.


주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홉 고블린, 이 따위 부상으로는 자신을 가로막을 수 없다 주장하듯 거칠게 솟아오르는 거머리 같은 악의.

놈이 타고 다니는 땅거미도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은 듯 많은 다리를 매섭게 놀리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정선 이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군. 아닌 척 해도, 그 마법에 겁을 먹은 거다.’


혹시나 그 은빛 섬광에 다시 얻어맞지 않을까 두려워 몸을 사리고 있다.


지저의 왕자는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거다.’


유논이 벌어준 시간은 분명 값지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사히 귀환하는 데에 역부족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 떠오른 아이디어 한 가지.


괴물들이 유논의 마법을 경계해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계속 쓸 수 있는 척하며 놈들을 물러나게 하면 그만이다.


‘기껏해야 시간 벌기밖에 안 될 테고, 오래 사용할 수도 없을 테지만···밑져야 본전이다.’


노아 프로스트는 머릿속으로 물었다.


할 수 있는가?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가능.]


그리 확인하자마자 등 뒤로 솟구치는 땅거미의 다리를 칼로 갈라내며 손을 뻗는다.


외골격의 기계 손뼉 부분에서는 새하얀 마력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기계 정령의 힘을 빌려 조작한 빛의 색.



“────.”



어수선대는 소음과 함께 검은 재 뒤집어쓴 괴물들이 제자리에 멈췄다. 타고 있는 땅거미의 더듬이다리를 잡아당겨 어떻게 해서든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

뒤에서 덮쳐오던 괴물들의 물결이 앞쪽의 정체로 인해 밀려나며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통했다.’


도박수가 성공했다.


노아 프로스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팔을 다시금 내밀었다.


어둠이 밝으며 물러나려다 굴러 떨어지는 괴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손에서는 여전히 새하얀 빛이 전등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유논이 보여주었던 은빛 불빛과는 거리가 있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최대한 비슷한 계열의 밝은 광채를 겨누는 것만으로도 한 번 크게 데인 변종들에게 위압감을 심어주는 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오래 가진 못한다.’


이 기계적인 마력광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유논이 보였던 은빛 섬광처럼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마력도, 괴물들을 전부 휩쓸어 버리는 위력도 없었다.

그저 조악하게 흉내 내는 사기극에 불과할 뿐이다.


지저의 홉 고블린들은 바보가 아니다. 기껏해야 몇 초 뒤면 이게 허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터.

힐끗 위쪽을 돌아보니 본대가 인조 땅굴의 바깥으로 나서기에는 아직도 길이 많이 남아 있어 보였다.


팔이 무거웠다.

관절 부위가 떨어질 듯이 아프다.


하지만 결코 팔을 내릴 수 없었다.



“աթ վիդիթ ֆեուգիաթ?”

“պեռծիպիթ եուռիպիդիս!”



아무런 효과도 없이 그저 빛나는 팔만을 계속 내밀고 있으니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몇몇 용감한 지저 고블린들이 빛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놈들이 옆을 스치며 호흡기를 직격하는 석탄재와 유황의 냄새.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다른 한쪽 팔로 칼을 휘둘렀으나─



닿지 않았다.



카────앙!



노아 프로스트는 열기 뿜는 대도를 가볍게 막아낸 방사성의 광석 봉을 노려보았다.


또다시 그놈이었다. 홉 고블린 대장.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아릿하게 속이 끓는다. 몸이 속에서부터 문드러지는 느낌.

산 채로 오염된 마력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놈과 오래 붙어있을수록 이쪽만 손해를 본다.


[분석 중···23%]


머릿속에 울리는 정령의 무미건조한 알림.


이번에도 도움을 받기에는 그른 것 같았다.


‘어떻게든 저놈을 떨쳐내고, 합류한다.’


힐끗 위를 쳐다보니 역시나 최정예 드워프 전사들을 모아 놓은 결과물답게, 마력광을 피해 올라온 지저 고블린들을 상대로도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짧은 시간 내에 무너질 염려는 없어 보인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본인의 안위였다.


고블린 대장에게 패한다면,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키기기기긱-



대지를 긁으며 내려찍는 변종 땅거미의 털 수북한 다리들.

그 끄트머리는 강철조차 단번에 관통할 수 있는 파괴력을 담고 있다. 외골격을 입고 있다 한들 한 번 맞으면 곧바로 빈사 상태에 이를 것이다.


재빠르게 피해야 하지만, 광석 봉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흡입력 탓에 칼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결국 묘기하듯 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덕분에 땅거미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공중은 지상보다 위험하다.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공격들에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칼을 밀쳐내며 위로 찔러오는 광석의 날카로운 첨봉尖峯.


노아 프로스트는 다급히 두 팔을 모아 막아냈다.


일순 증기를 뿜어내고 근력을 집중시켜 일점에 쏟아낸다.



콰드드드드득─



드워프 왕의 손길이 닿은 걸작 외골격답게 양쪽 팔을 겹치니 어떻게든 막아낼 만큼의 방어력은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팔에서 감각이 흐릿하다.’


통증조차 막연히 느껴지는 신체 조직의 괴사. 방금 그 충돌만으로 그의 팔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이 꺼졌다.



광석 봉에 닿으면서 손바닥과 연결된 기관이 고장 났는지, 마력광이 완전히 어두침침하게 변해 버렸다.


껄끄럽던 백색광이 사라지자 지저 고블린들이 다시금 속도를 되찾아 역류하듯 달려들었다.

그 수백 가지 질량들이 휩쓸고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으깨질 것만 같다.


이리저리 치이며 너덜너덜해지던 때.


다시금 귓가가 울렸다.


[분석 중···35%]


이걸 구태여 알려줬다는 건, 놈이 아직 근처에 있다는 소리다.


다급히 땅을 구르자 방금 전까지 기대고 있던 벽면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광석 봉을 꽂는 것만으로 저만한 파급을 일으킨 것.


거기서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연이어 내리꽂히는 암녹색 날카로운 광석.


도저히 힘이 실리지 않는 팔로 기울어진 대도를 들어 막았다.



끼─기기기기긱···.



점점 몸이 무너져간다. 무릎이 내려가고, 팔은 덜덜 떨렸다.

비릿한 웃음 짓는 그 사악한 눈과 마주치고,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던 때.


이번에는 금빛이 물결쳤다.

유논의 은빛 섬광처럼 주위를 잡아채는, 시야가 느려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마법 특유의 색채.


세상을 밝게 물들이며 나아간 금빛 마력원.

언뜻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는 그 모습에 괴물들의 대장도 움찔했다.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유논의 총격에 꽤나 큰 피해를 입은 놈이었고, 비슷한 광채를 보며 본능적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노아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감기Wind]


시간가속의 마법이 온몸을 감싼다.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은 열기와 함께 부유감이 느껴졌다.


세상이 느려진 것 같은 착각이, 동시에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빨라진 것 같은 감각이 뇌를 지배했다.


본래 시드와 유논 같은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은 받아들이기 힘든 강화마법이지만, 노아 프로스트는 일반인의 범주를 어느 정도 뛰어넘었다.


드워프의 옹골찬 맷집과 거인증으로 인한 장대한 골격까지 더해져 탄생한 탁월한 신체능력.

거기다 마력을 받아들이는 외골격과 선천적으로 마력에 가까운 존재인 기계 정령까지 지니고 있다.


기초적인 시간마법을 받아들이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 자체는 갖춰져 있는 것이다.


혼자서 달라진 시간의 바퀴 위를 달려, 순식간에 검은 괴물들의 사이를 헤치고 빠져나온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 끝까지 따라붙는 추격자도 있었다.


‘또···!’


또다시 그 홉 고블린 대장이다.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찰거머리마냥 지독했다.



“մել ին պոսթեա ֆուիսսեթ─────!”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시커먼 아우라를 펄펄 뿜어내며, 펄쩍 뛰어오른 땅거미의 머리통을 밟고 날아올랐다.

괴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쫓고 있었다.


너를 내 먹잇감으로 정했노라고, 반드시 네 살점을 뜯겠다고 선언하듯 타오르는 샛노란 안광.


“······!”


마침내 척 뻗은 더러운 손톱이 외골격의 발바닥을 잡아채려던 찰나.



다시금 황금색 마력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듯 그 신비로운 색채에도 반응하지 않고 지저의 왕자를 잡아채려 움직이는 대장 고블린.


그러나 오히려 잡힌 것은 놈이었다.



[되감기Rewind]



금빛 실선들이 놈의 전신을 옥죄고 잡아당긴다. 괴물이 향유하는 시간의 흐름을 뒤로 늦춘다.

가속된 노아 프로스트와는 점점 거리의 격차가 벌어졌다. 아무리 온몸을 휘저어도 밀랍처럼 굳은 주위 공기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뚝.


마침내는 공중으로 솟아오른 추진력까지 다한 끝에, 느려진 세상의 기류를 타고 추락했다.



“────────────!”



절규 혹은 분노에 가득 찬 포효가 인조 땅굴 전체를 부르르 떨리게 만들며 울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잠시, 괴물들조차 떨쳐내지 못할 침묵만이 감돈다.



“···도와줘서, 고맙, 다.”



끈질긴 적수를 떨쳐내고 마침내 일행 곁으로 돌아온 노아 프로스트가 금색의 마법사 시드에게 헐떡대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뭐···아저씨 말 듣고 가볍게 도와준 것뿐이야.”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내심 뿌듯해하는 시드.


돌아온 노아 프로스트, 부상 입은 작전대장을 가운데에 둔 뒤 일행은 다시금 땅굴을 달렸다.


뒤따라오는 홉 고블린 라이더들의 기세는 여전히 대단했지만, 놈들을 이끌던 대장이 떨어져 버린 탓에 조직력이 이전만 못했다.


이만하면 원정대의 저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밀어낼 수 있는 수준.

노아 프로스트가 목숨을 걸고 벌어낸 시간, 그리고 위급한 순간마다 적절하게 원조하는 시드와 유논의 마법 덕에 어떻게든 인조 땅굴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데다가 잔뜩 지친 채였지만, 중요한 점은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다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문제는 지저 고블린들의 추격대가 여전히 턱 끝까지 쫓아오고 있으며, 땅굴을 벗어났다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


아드득.


노아는 이를 갈았다.


암흑과 먼지 사이로 아득하게 높고 까마득하게 내려가는 암벽이 보였다.

그 깎아지르는 벼랑 사이로 설치해둔 밧줄이 아슬아슬하게 대롱대고 있었다. 그들이 거쳐 온 길이었다. 다시금 지나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드워프 한 명이 중얼거렸다.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법도 했다.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점잖은 반응이라 할 만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지저의 드넓은 절벽 허리를 끼고 이어진 샛길. 너무나도 좁고, 너무나도 위태롭다.


저 위로 냅다 달리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고블린들을 피해 도망치기에 저보다 부적합한 도주로도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뒤의 굴에서 괴물들이 몰려오는 소음이 들려온다. 한시가 바쁜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야 할 낭떠러지를 내려갈 틈이 없었다.


오히려 함부로 발걸음을 딛었다가는 떨어질까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후퇴할 길마저 괴물들에게 막힌 최악의 조건에 놓이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무작정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진퇴양난의 상황.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때.


유논이 대뜸 입을 열었다.



“땅굴을 폭파시키지.”

“······!”

"그러면 괴물들이 빠져나오지 못할 거다."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작가의말

최근에 고전 홍콩영화들이 갑자기 끌리더군요.

그래서 쿵푸허슬, 서유쌍기 같은 영화들을 보고 있습니다. 재밌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2 노약자
    작성일
    21.02.06 21:25
    No. 1

    근데 고블린은 왜 저기있는건지 궁금해 지는군욤 헤헷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6 생각.
    작성일
    21.02.07 20:19
    No. 2

    아마 추후에 설명이 될 듯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라파군
    작성일
    21.02.07 03:39
    No. 3

    유논의 피폐도가 심각한게 황도에서도 문제가 되겠지만...으음 갖고있던 대지의 마석과 불의 마석을 좀 더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6 생각.
    작성일
    21.02.07 20:15
    No. 4

    대지의 눈물은 개미여왕이 냠냠했습니다! 불의 심장은 유논이 아직 가지고 있고요. 언젠간 써먹을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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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지룡地龍의 소굴로(4) +12 21.02.03 799 41 16쪽
148 지룡地龍의 소굴로(3) +14 21.02.02 762 40 13쪽
147 지룡地龍의 소굴로(2) +8 21.02.01 778 39 14쪽
146 지룡地龍의 소굴로(1) +12 21.01.31 763 40 17쪽
145 시장바닥의 대왕들(7) +11 21.01.29 751 44 13쪽
144 시장바닥의 대왕들(6) +11 21.01.28 721 44 15쪽
143 시장바닥의 대왕들(5) +11 21.01.27 723 44 13쪽
142 시장바닥의 대왕들(4) +11 21.01.26 732 38 15쪽
141 시장바닥의 대왕들(3) +10 21.01.25 758 4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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