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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안 님의 서재입니다.

배후성 300,000명으로 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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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션안
그림/삽화
션안
작품등록일 :
2024.05.09 21:28
최근연재일 :
2024.05.16 21:2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41
추천수 :
1
글자수 :
70,056

작성
24.05.10 08:10
조회
18
추천
0
글자
13쪽

죽었다 살아나보니

DUMMY

매화검성(梅花劍聖).


화산파(華山派)의 정상에 위치한 검객을 의미하는 이름.


무협지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다면,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저 이름이, 얼마나 강한 이를 칭하고 있는지.


그렇기에 무협지 또한 꽤나 깊게 읽어봤었던 나 역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젠장, 젠장...!"



혈귀는 광분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른 기세였다.


여유 담긴 살의가 아닌... 공포에 휩싸인 모습.


내가 고른 배후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건가.



덜그럭-



내 몸이 절로 알아서 비상용 도끼를 다시금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한없이 차갑게 시린 눈으로 혈귀를 바라보았다.


저 놈, 원래 저렇게 느린 놈이었나.


어째 목이 딱 베어내기 좋게 생겼네.



"죽어라...!"



혈귀의 양손가락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손톱 끝에서 거칠게 그려진 곡선들이 허공을 가르며 내게 오고 있었다.


왤까, 저것마저 느려보인다.


느려보이는걸로 모자라... 하찮아 보이기까지.



촤아아아아악-



보이지 않은 실에 묶인 것처럼, 몸이 알아서 자세를 잡았다.


바닥을 발로 쓸어내며 뒤로 뻗은 내 자세는, 꼭 검을 내지르기 전의 자세 같았다.


지금 이건... 뭐랄까.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내 몸에 녹아들고 있는 기분.


점차 정신이 또 희미해져갔다.



"후우우우..."



그렇게 점점 멀어져가는 시야 속에서.


내 안의 누군가가 역동적으로 내 몸을 비틀며, 비상용 도끼를 검처럼 삼아 휘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후우우우우우웅-



'하늘에서 떨어진 한 줌의 잎 하나가 땅에 스며드니.'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수놓는 날들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척박한 땅에서도 매화를 피어내리라.'




[천하매화참(天瑕梅花斬)]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도끼 끝에서 연분홍빛 매화가 찬란히 휘날리며, 허공에 커다란 곡선이 새겨졌다.


이게 글로만 읽어보던 그 매화검법(梅花劍法)인가.



"커어어어억...!"



매끄럽게 그려진 검격에 휩쓸린 혈귀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삽시간으로 보였다.


그가 살벌하게 날렸던 피 묻은 참격들 역시 맥도 못추리고 소멸되어버리며.


혈귀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비겁한... 더럽고 추잡한 새ㄲ-"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혈귀는 끝내 말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검격에 실려 반대편까지 그대로 날라간 혈귀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으니.


그렇게 손쉽게 사람들을 죽이고,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혈귀는 허무하게 숨통이 끊어졌다.


물론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덜그럭-



손에 들려있던 소방용 도끼가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은 연필 하나도 들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허어억... 허억..."



혈귀를 처리하자마자 힘이 빠르게 빠져나가는게 절로 느껴졌다.


젠장, 또 정신이 날아가려는건가.



"이현 씨...!"



그래도... 사람 하나는 살렸으니깐...


...후회는 없나.



풀썩-



.

.

.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닿는게 느껴진다.


아무런 고통도, 감촉도 없는 땅에 몸이 늘어져 있는게 보인다.


이제야 진짜로 죽은건가.


하긴,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데 살 수 있을리가 없지.


그래도 마지막엔 원하던대로 한 방 먹인건 속시원하다.


............


...근데 내가 어떻게 했던거지?



찰팍-



철근이라도 어깨에 얹은 것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얕은 물이 밟히는 투명한 바닥은, 대체 뭘로 이루어진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대체 뭐하는 곳..."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놓을 뻔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30만의 배후성들이 잠들어있습니다.]


[그들을 섣불리 깨우지 마십시오.]



압도적인 크기의 거석상들.


전부 하나같이 각기 다른 모습의 거석상들이었다.


움직이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돌조각품에 불과한 것들이었으나.


그 크기와 기품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혈귀보다 수천배는 컸다.


심지어 하나하나가 집채만한 거석상들은 저 멀리 뒤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수백개는 거뜬히 넘고도 남아보임에도, 저 끝에 있는 거석상들은 어찌나 큰지 수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슨..."



[ <매화검성>이 당신을 부릅니다.]



그 순간, 푸른 색 창이 이번엔 다른 문구를 띄운 채 앞에 나타났다.


날 부르고 있다고?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무슨-



쿠우우우우우우웅!



"허어어억..."



창이 사라지자마자 드리운 그림자에, 나는 절로 주저앉고 말았다.


어느새 다른 거석상들을 밀쳐내고, 앞에는 도복차림의 거석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로된 몸에서 눈만 유일하게 푸르게 빛나는 상태로.



[SSS급 배후성 <매화검성>]



푸른 창이 쐐기를 박아주는 듯, 거석상을 가르키는 문구를 띄웠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호라는 또 다른 세상에서... 천하를 호령했던 인물 중 한명이니.


현실에 나타난다고 한다면 감히 내가 눈 마주칠 수도 없는 자라는걸, 나는 알고 있으니깐.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격의 배후성입니다.]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격이라는게 뭔 소리지?


아직 내가 직접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급이... 아니라는건가?



[ <매화검성>이 당신의 몸이 형편없다고 합니다.]



갑자기 정곡을 찌르네.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이 양반아.



[<매화검성>이 자신이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손가락 한뼘 정도의 힘 뿐이었다고 합니다.]



푸른창이 열심히 말을 전달하고 있었으나,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파악했다.


아마 워낙에 내 몸이 쓰레기라서 본인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거겠지.


뭐, 그렇다해도 혈귀 정도는 가뿐하게 처리할 정도였지만.



[<매화검성>이 당신을 주시하며 지켜보겠다고 합니다.]



이야, 무려 화산파의 주인이 나를 지켜봐주겠다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매화검성>이 지켜보는건 자신만이 아닐거라고 경고합니다.]



경고한다고?


저건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몸뚱아리를 어떻게든 키워놓으라는 말이다."


"......?!"



그 순간, 울림 있는 목소리가 귀에 파고들어오자.


나는 그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지금... 저거 말한거 맞지?



"그렇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네 놈의 뒤를 받쳐줄리는 없으니 말이다."



[시스템에 위반되는 행위가 검출되었습니다.]



"그러니 죽을 각오로 살아남아라."



[<매화검성> 이용 시간이 강제종료되었습니다.]


[공간이 이동됩니다.]



저럴거면 진즉에 말하던가.


왜 하필 질문이 산더미처럼 올라오는 순간에 가버리는지.



"잠깐...!"



사라져가는 거석상들을 향해 애처롭게 손만 뻗어보았다.


허나 어째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듯한 푸른 눈빛만 남긴 채.


매화검성은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온통 새하얗던 세상이 다시금 회색빛으로 물들어갔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쿨럭..."



텁텁한 공기가 코를 뚫고 들어오며 나를 깨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허공에 손을 뻗고 있는 상태였다.


그 거지같은 지하철 역에, 피투성이가 되어 홀로 남겨진 채.


"쿨럭, 쿨럭!"


먼지와 피가 뒤섞인 기침이 연신 뱉어져나왔다.


몸 곳곳이 아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젠장, 살아있는거 맞는거지?



덜그럭-



그때, 천천히 움직이던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그 빌어먹을 비상용 도끼.


그걸 보자마자 내가 뭘 했었는지 샅샅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혈귀. 검처럼 휘두른 도끼.


그리고... 매화검성.


그게 전부 다 조금의 환상도 섞이지 않은 현실인게 느껴졌다.


정신병에 걸렸다 해도 이렇게 생동감 있진 않을테니.



"끄으으..."



혈귀를 무찔렀던 그 기세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별 볼일없는 몸뚱아리로 돌아와있을뿐.



우뚝-



잠깐, 몸뚱아리?


나는 미친놈처럼 이미 너덜너덜한 옷을 더 뜯어헤쳐내었다.


어깨, 무릎, 복부.


옷이 뜯겨져 나갔던 부분들만 자세하게 확인해보았다.


핏자국만 남아있을뿐, 흉터하나 없이 멀쩡했다.


마지막으로 두 손을 확인해봤다.


그 역시 잘린 자국이 조금도 보이지 않게 말끔했다.



"뭐야 이거..."



이건 축복이라고 해야할까, 저주라고 해야할까.


이 개같이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나는 살아남고 말았다.


상처 하나 없이 아주 멀쩡하게.



'죽을 각오로 살아남아라.'



나한테 그렇게 말했었지.


그럼 결국 죽지 못해 산건가.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배후성'



그때, 문득 뇌리를 스친 기억이 나를 한번 더 일깨워주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능력이 있다는걸.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는 것 같았다.


그저 소설에서만 보던 것들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기분.


그건 없던 벅차오름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우선,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에서 거의 단골 대사라 할 수 있을만큼 나왔던..


그렇다고 현실에서 막상 하려니, 굉장히 바보같아 보이는 말부터 뱉어보았다.



"사... 상태창?"



쪽팔릴정도로 고요했다.


보통 이렇게 하면 뭐가 막 나오던데, 역시 현실은 현실인건가.



"음... 상태보기...? 불러내기...?"



말할 수록 스스로 망상병 환자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수치심을 꾹 참고 그렇게 5분간 더 씨름을 해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한껏 부풀어오르던 마음은 금세 바람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휴, 썅..."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분명 능력을 얻은건 확실하고, 푸른창 같은 것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러낼 수 없다는건... 한 가지 경우 밖에 없겠지.


상태창이 '도구'가 아니라는 것.


한 마디로 내 마음대로 불러내서 맘편히 열람할 수 있는게 아닌, '시스템'에 가깝다는거겠지.


게임을 하다보면 특정 상황에 저절로 문구를 띄우는, 그런 안내창에 비슷한 개념이라는거다.


그렇다면... 그 특정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는건데.


또 죽기 직전까지 몸을 이리저리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젠장, 한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은데..."



나는 머리만 벅벅 긁으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어냈다.



"그 '배후성' 인지 뭔지..."



파아아아앗!



정말 거짓말처럼, 무슨 수를 써도 나오지 않던 푸른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창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뱉어본 말이었는데, 이게 될줄이야.


근데... 이건 또 뭔 소리지?



[ <배후성>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쿨타임: 11h 57m 29s]



능력이랍시고 준게 맘대로 쓰지도 못한다니.


팔자도 이런 개팔자가 따로없지.


나는 깊은 한숨만 뱉으며 푸른 창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창이 흥미를 잃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건지 또 다른 문구를 띄웠다.



===============

[각성 퀘스트]


악(惡)을 처단하십시오.


보상: 능력 제한 일부 해제


퀘스트 실패 패널티: 능력 강제 회수


제한시간: 없음

===============



창이 처음으로 떴을때와 비슷한 형태였다.


허나 이번엔 색깔이 달랐고, 내용 역시 다른 부분이 많았다.



"악(惡)을 처단하라고...?"



무슨 퀘스트 설명이 이렇게 두루뭉실해.


하다못해 고블린을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악을 처단하라니.


설마 그 혈귀 같은 놈들을 또 처리하라는 얘기인가?


그건 능력 없이는 두 번 다시 못 덤비겠건만.



쿠구구구구구구...



일단 나가야할 것 같다.


천장이 아슬아슬해 보이는게, 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방에서 올라오는 이 피비린내가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주위에 널부러진 머리없는 시체들을 애써 무시한 채, 지하철 역을 빠져나왔다.



"그러고 보니, 희연 씨..."



죽은건 아니겠지.


저 시체들 중에 그녀의 옷이 보이진 않았으니깐.


아마 나도 죽은줄만 알고 먼저 여길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딱히 섭섭하진 않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테니.



후두두둑-



나는 머리위로 쏟아지는 조그마한 파편들을 피하며, 회색빛이 감도는 계단을 올라갔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조차 제대로 구별할 수가 없었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게... 밖은 대체 무슨 상황일지.



"콜록..."



나는 출구에 쌓여있는 잔해들을 치우며, 드디어 세상 밖으로 발을 딛었다.


이상하게도 공기가 여전히 탁하고 회색 연기가 보인다. 주변에 불이라도 났나?


잠깐, 하늘색이 왜 저런...



싸아아아아아아아...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세상이 분명 어떤 형태로든 개판이 나있을거라고.


허나 이정도로 가관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미친..."



콰아아아아아앙!



쿠구구구구구구-



분명 하루전까지만 해도 푸르렀던 세상은.



적색 빛 하늘 아래 멀쩡한 건물 하나 없는 지옥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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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건 내 몸이라고 24.05.12 6 0 15쪽
5 잭 더 리퍼 24.05.11 12 0 13쪽
4 적어도 사람이라면 24.05.10 14 0 15쪽
» 죽었다 살아나보니 24.05.10 19 0 13쪽
2 <배후성> 24.05.09 21 0 12쪽
1 멸망한 ~에서 살아남기 24.05.09 3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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