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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SSS급 전함에 의식이 실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완결

깁흔가람
그림/삽화
깁흔가람
작품등록일 :
2023.10.04 22:17
최근연재일 :
2024.04.06 20:00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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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8,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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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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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1. Reverse Dimension(9) <완>

DUMMY


끌어모은 힘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 안드로이드를 새로 만들 때, 내가 가진 힘을 버틸 수 있도록 특별한 처리를 열심히 해놓았겠지만, 이토록 모든 힘을 모은 적이 없었기에 과연 버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엄청난 힘이군."

"이 정도 힘 있으니까 여왕이 있을 곳으로 쳐들어왔지."


내 양 손에 엄청난 힘들이 모여들었다. 확장하는 힘들, 항성의 힘처럼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힘들은 오른손에 실었다.


축소하는 힘들, 블랙홀의 힘처럼 끌어들이는 힘을 왼손에 실었다. 생각없이 두 성격의 힘을 섞어서 썼더니 출력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성격으로 힘을 나누어 따로 운용을 해보았다.


"이건 어떻게 받아칠 건가?“


물론 이걸 운용하는 나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극적으로 확장하는 힘과 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양 손에 있는데 이것을 들고 버티는 것도 간신히 해야 했다.


그 이전에 어렵거나 까다로운 연산들이 있으면 죄다 베로니카에게 맡겼기 때문에 어려운게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전부 다 해내야 했다.


“크윽!”


이걸 쓰는 내가 이 정도인데, 이것을 받아쳐야 하는 로제는 더욱 곤란할 것이다. 특히나 빠르고 정교한 검격으로 나를 상대했기에 이런 무식한 힘을 막아낼 방도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그만.”


그때 저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됐습니다. 서로 공격을 거두어주세요.”


차분한 목소리의 여인, 조금 성장하긴 했지만 누가봐도 아리엘이 그곳에 서 있었다.


“여왕이시여! 아직 저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승패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이만 물러가주세요. 로제.”


로제가 물러가며 여전히 나에 대한 경계와 공격성을 풀지 않았지만, 나는 그건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아리엘이 눈 앞에 있었으니까.


“아리엘!”


나는 반갑게 달려가 아리엘을 맞았다. 하지만 아리엘은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여기까지 오셨군요.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여정은 어떠셨습니까?”

“뭐 나쁘진 않았어. 은하 두 개를 누비며 돌아다니기도 했고, 황제도 되어 보았고, 여러 종족의 지지도 받아봤지.”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이곳에 도달하셨군요.”

“내가 빙빙 돌아가는 것을 싫어해서 말야. 최대한 빠르게 왔지.”


아리엘, 그러니까 여왕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아 보였다. 나도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정체가 뭔지, 어쩌다 내게 왔고 또 그렇게 사라졌는지.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먼저 해두어야 할 말을 꺼냈다.


“그래도 잘 지냈지?”

“네, 잘 지냈습니다.”


나는 우리가 나눠야 할 수많은 말들을 모조리 함축한 말을 하나 꺼냈다.


“마지막이야?”

“네, 그렇게 되었네요.”


우주는 모호하다. 직접 바라보기 전까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치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모호함 가운데에서, 누군가의 바라봄을 통해 비로소 존재를 얻듯 우주 역시 모호하다.


그렇기에 이것을 확신시키고 구분지을 언어와 체계가 필요했다.


“일종의 종료 코드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저는 이 우주의 조정과 마지막을 위해 있으니까요.”


아리엘이 여왕이다. 그리고 여왕은 장차 모든 인류를 제거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미증유의 재난이라기보다는 어떤 프로그램의 안에서 모든 것을 소거하고 종료시키는 코드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긍정하는 아리엘의 대답을 듣고, 나는 차마 두려워서 꺼내지 못했던 말을 꺼내야했다.


“이 우주는 시뮬레이션인가?”


죽은 자가 데이터로 치환되어 처리되고, 나의 확장과 더불어 우주의 존재가 규명되며, 형이상학적 차원이 병치되어 있는 공간, 무엇보다 불가능하다 여긴 시간 여행이 가능했던 이유.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면 모든 것이 설명할 수 있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개념과 조금 다른 건가?”


아리엘은 여왕의 모습으로, 나와 함께 처음 만났던 어린 모습으로 동시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강수호님은 지금 어떤 기계장치나 누군가의 실험에 의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상상하시겠지요.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보다 더 고차원적인 존재에 비롯된 우주이며, 그렇기에 강수호님이 가진 지구시절의 개념으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겪은 모든 것은 다 허상이었나.”


사실 어느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 아우둠라를 만나 그 확신은 더 강해져 있었다. 다만 예측되는 진실을 외면하고 다시 돌아갔다가 더 넓은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그대로 밀어붙여서 진실을 확인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각오를 했음에도, 내 우주의 여정들, 전함에 실려 깨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체험하고 느껴온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신기루 같다고 여겨지니 굉장히 허망했다.


하지만 아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강수호님에게는 그 순간들이 전부 허상이었나요?”


내게는 아니었다. 매 순간이 내게 현실이었고, 내 동료들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었다. 비록 같은 시간을 영원히 공유할 수 없더라도 그 인연만큼은 결코 허투루 여길 것들이 아니었다.


“내게는 모두가 소중했어.”

“그럼 이 곳은 실재하는 곳입니다.”


아리엘의 말에 의하면 이 우주는 분명 실존하는 우주는 아니다.


하지만 실재하는 우주이다.


“분명 이 우주의 사실은 미메시스, 모방의 우주입니다. 하지만 강수호님에게 이 우주의 진실은 시물라크르, 현실을 넘어선 우주입니다.”


언제나 아리엘은 나를 이끌어줬다. 작게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내 존재를 지탱해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한 동료들이 많은데.”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후 영역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 그렇구나. 결국 다시 다 만나겠구나. 나와 좋았던 인연들뿐만 아니라 악연으로 엮였던 이들까지도.


아리엘과 내 앞에 작은 모니터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주변으로 동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고했소. 어찌되었듯 우주의 끝에 함께 도달했군.”


케레시스가 나타났다. 나와 맨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함께 해온 동료였다.


“여기가 어딥니까? 선주, 마지막이라고요?”


호세가 나타났다. 케레시스와 함께 전함의 초창기 시절을 함께 해왔으며 여러 기술적 도움을 받아왔다.


“이게 우주의 마지막입니까?”


세실리아였다. 아무래도 나타나는 순서는 만났던 순서와는 상관 없는 모양이다.


“오랜만이네요 선주.”


힐데도 나타났다. 그 외에도 리사, 루이 첸, 할슈타인 공작, 르네 등등 온갖 사람들이 나타났다.


악연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서로 미워하지도, 그렇다고 용서한다는 말도 나누지 않았다. 다만 세상의 마지막에 도달하여 곧 종말을 맞이할 동변상련의 처지 정도의 연대감은 느낄 수 있었다.


“오오, 황제시여, 우리가 드디어 죽을 날을 함께 하는군요.”


발두스 은하 제국의 사람들과도 만났다. 발타사르 의원을 비롯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제국 경영을 위해 함께했던 대신들과 주요 직위의 사람들도 나타났다.


“황제로써 얼마 즐기지도 못하시고 일만 하다 끝난 것 같은데, 뭐 인생이라는 게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하드리아누스, 내 안드로이드이자 마지막엔 독립한 개체로 인정받은 황제가 유쾌하게 지금 상황을 요약했다.


“서로 대립만 하다, 이제 새로운 동료로 활약을 좀 해보나 했는데 이렇게 되었군요.”


레니에르, 신테스 은하의 인간 영웅이자 세 종족 연합의 지도자였다. 아마 이 우주의 끝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우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겠지. 그녀를 비롯하여 신테스 은하의 부관들, 각 종족의 지도자들도 나타났다.


다양한 은하를 만나 더 많은 종족들과 교류를 나눌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만났던 이들과의 시간은 소중했다.


“이제 우주의 마지막이로군.”


사후 영역을 지키고 있던 거인 유미르와 그 쌍둥이 아우둠라가 나타났다. 막무가내로 쳐들어가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는데 친절하게 도와주던 착한 거인이었다. 물론 아우둠라와는 딱히 좋은 기억은 없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행동은 정당했다.


“이거, 아주 거물이 되었구만? 애송이.”


이제 만나볼 사람은 다 만나본 것 같은데, 맨 마지막에 루테가 나타났다. 제국 사략해적이자 초창기 내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그녀였다.


“이제 황제라고? 게다가 은하 두 개 분량의? 하이고 별 꼴을 다 보겠네. 내가 일찍 죽기 잘했지.”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어쩌면 영원히 이 순간에 머물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제 이 이야기의 끝을 지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빛나는 작은 모니터에 코드를 적었다.


‘빛이 있으라.’


주변을 둘러본다. 이 우주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 나를 바라보며 나를 지지해주고 있다. 좋은 인연도 그렇지 않은 인연도 있었지만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다.


나는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빛이 생겼다.’


***


어느 응급실, 심장 마비로 실려온 사람이 눈을 뜬다.


평범하게 초, 중, 고등학교와 군대 대학을 나와, 남들처럼 취업을 준비하던 남자였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심장 마비를 겪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강수호씨! 정신이 듭니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병원의 천장과 응급구조사들 응급실 간호사와 의사들이었다.


서서히 들어오는 주변의 시야 가운데 늦게나마 스스로 자각을 할 수 있었다.


‘살았구나.’


그렇게 고비를 넘긴 강수호는 몇 가지 검사와 추가 이상의 확인을 위해 병원에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어딘가 먼 곳을 여행이라도 하고 온 듯 그의 표정은 초탈해 있었으며 젊은 평범한 한국 남성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주변의 분주한 응급실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거대한 도시 하나를 담을 법한 거대한 전함이 하늘이 떠 있었다.


(끝)


작가의말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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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21. Reverse Dimension(7) 24.04.04 154 5 12쪽
179 21. Reverse Dimension(6) 24.04.03 164 4 11쪽
178 21. Reverse Dimension(5) 24.04.02 160 5 11쪽
177 21. Reverse Dimension(4) 24.04.01 164 6 13쪽
176 21. Reverse Dimension(3) 24.03.30 164 6 9쪽
175 21. Reverse Dimension(2) 24.03.29 165 4 12쪽
174 21. Reverse Dimension(1) 24.03.28 168 4 11쪽
173 20. 살레노미아 회전(16) 24.03.27 176 4 11쪽
172 20. 살레노미아 회전(15) 24.03.26 157 4 11쪽
171 20. 살레노미아 회전(14) 24.03.25 174 5 12쪽
170 20. 살레노미아 회전(13) 24.03.24 170 4 12쪽
169 20. 살레노미아 회전(12) 24.03.23 173 4 11쪽
168 20. 살레노미아 회전(11) 24.03.22 180 4 12쪽
167 20. 살레노미아 회전(10) 24.03.21 177 6 12쪽
166 20. 살레노미아 회전(9) 24.03.20 184 5 13쪽
165 20. 살레노미아 회전(8) 24.03.19 196 6 12쪽
164 20. 살레노미아 회전(7) 24.03.18 184 4 12쪽
163 20. 살레노미아 회전(6) 24.03.16 191 5 12쪽
162 20. 살레노미아 회전(5) 24.03.15 195 5 13쪽
161 20. 살레노미아 회전(4) 24.03.14 193 5 12쪽
160 20. 살레노미아 회전(3) 24.03.13 196 5 11쪽
159 20. 살레노미아 회전(2) 24.03.12 202 6 13쪽
158 20. 살레노미아 회전(1) 24.03.11 226 4 12쪽
157 19. 신테스 은하(14) 24.03.09 220 6 11쪽
156 19. 신테스 은하(13) 24.03.08 208 5 11쪽
155 19. 신테스 은하(12) 24.03.07 226 4 12쪽
154 19. 신테스 은하(11) 24.03.06 21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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