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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잘 숨겨지지 않은 골방

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시두김태은
작품등록일 :
2023.05.13 12:23
최근연재일 :
2023.10.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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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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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의 다른 면모

DUMMY

리온의 술집에서도, 베헬에서도 아이가 없어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본단이라고 하는 이곳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딱 그놈들다운 짓이다.


그때 제단에서 내려와서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케인의 눈에 들어왔다.


“성기사 아저씨, 여기 너무 무서워요. 여긴 어디예요?”

“엄마 보고 싶어요.”


성기사의 은빛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바로 친근감을 표했다.

케인은 깊게 감명받았다.


‘남의 눈에 보여지는 것이 이토록 다르구나. 무려 저 꼬마들까지······.’


그때 금발의 큰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저, 아까 다 봤어요. 성기사 아저씨가 우리 구하려고 나쁜 놈들에게 잡히는 거요.”


그게 마법막 안에서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것을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들으니 케인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금발 아이는 케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이어서 말했다.


“계속 기억날 거 같아요.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성기사 아저씨.”


진심을 담은 아이의 마음은 케인의 가슴 깊은 곳으로 여과 없이 스며든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심장 한구석에서 뜨거울 정도로 요동쳤다.

케인은 처음 겪는 감각에 당황해 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온몸을 흔드는 낯선 감정의 물결에 케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불편하다.

겨우 입술을 비집고 나온 것은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굳이 감사는······.”

“헤헤, 저도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해맑게 웃고 있는 다른 아이였다. 너무 어려서 금발 아이가 말한 의미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또 다른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기사 아저씨, 저기 자고 있는 고양이 탈 쓴 사람도 성기사예요?”


그제야 케인의 고개가 시트리에게 돌아갔다.

시트리놈, 그새 다 먹고 잠든 모양이다. 날개까지 접고 저렇게 쓰러져 있으니 꼭 고양이 탈을 뒤집어쓴 만취자 같았다.

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속에 가득했던 낯선 것들을 뱉어내 버렸다.


“그냥 노숙자니까 무시하고 나 따라와. 다들 집에 가야지.”


케인이 먼저 성큼성큼 걸어서 석실을 나섰다.

아이들도 집이라는 말에 시트리에 대한 모든 관심을 거두고 급히 케인의 뒤를 따라서 나갔다.


“집에 간다!”

“얼른 엄마가 끓여준 수프 먹고 싶어요.”


케인이 막 석실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밖에 벌어져 있는 피와 시체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이것을 발견한다면 데리고 나가는 데 무척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케인은 재빨리 아이들 머리를 가볍게 짚으면서 눈에 환각 마법을 걸었다.


“어? 여기 돌멩이가 많다.”

“흙도 있어. 하여간 어른들이 더 지저분해.”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케인은 문득 처리할 일이 떠올라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절대 들어오지 말고.”


말을 마치자마자 케인은 다시 성큼성큼 석실 안으로 돌어가서 시트리 앞에 섰다.

코까지 골고 있는 시트리의 모습을 잠시 지켜본 케인이 마검을 들어서 시트리의 엉덩이를 쿡 찔렀다.


“크허어어엉!”


꿀잠을 자다가 끔찍한 봉변을 당한 시트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봉변을 당한 것은 마검도 마찬가지였다.


―이 끔찍한 감각은 무어냐? 우웩!


케인은 그대로 무시하고 시트리에게 말했다.


“깊게 안 찔렀으니 엄살은 거기까지 하고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따라 나와. 애들 앞이니까 모습은 알아서 바꾸고.”


시트리는 엉덩이를 미치듯이 문지르며 버럭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인가? 아무리 소환자라고 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네!”

“내가 말한 계약은 이번 일 마무리까지 해주는 거였다. 계약 불이행 증표 달리기 싫으면 제대로 해.”

“아니, 악마도 살다보면 잠깐 쉬고 싶을 때가 있는······ 아아, 생각하다 보니 충분히 다 쉬었군. 아주 개운해.”


케인은 배실배실 웃는 시트리를 흘끗 보며 말을 이었다.


“저 불쌍한 아이들을 부모한테 데려다줘야 할 거 아냐? 그거까지만 해.”


생각보다 간단한 일에 시트리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좋네. 그럼 딱 거기까지.”

“그거 다하면 계약종료해줄 테니 굳이 나 찾아올 필요 없어.”

“그렇게까지 확언하니 더 따지지 않겠네.”

“그래야지.”


케인은 대강 대답하고 석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트리는 어딘지 홀로 서 있는 케인이 외로워 보였다. 그리하여 문득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럼 이제 소환자는 무얼 하려는가?”

“여기 좀 더 조사해보려고. 얼른 나가 봐. 애들 기다리잖아.”


시트리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우린 여기서 작별이군. 소환자놈이여, 함께 해서 더러웠고 제발 또 소환하지 말게.”


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서 붉은 머리의 중년여인으로 변한 시트리가 석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잘 어울리는군.”


케인이 다시금 비어버린 석실을 둘러보았다.


“흐음, 역시 음침해.”


밖에서 시트리가 아이들을 달래서 떠난 후 이곳은 적막이 깔렸다.

이제 케인은 제단 아래에 있던 철 상자를 꺼내서 열어보고 있었다.


‘분명 체인 꺼내는 걸 봤는데.’


그런데 상자 안에 존재하는 틀을 보면 영락없이 검 모양이었다.


‘성검이 저 모양이었던가?’


케인은 성검의 실루엣이었을 그것을 쏘아보며 기억 속의 성검을 떠올렸다.

얼핏 비슷한 듯도 한데 확신은 가지 않았다.


“당신 생각은 어때? 성검 맞는 거 같아?”


마왕은 그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자신보다 성검을 똑바로 바라볼 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과연 마왕은 어떻게 답할까?


―몹쓸 쇳덩이에게 해줄 답은 없다.


딱딱한 마왕의 목소리에 케인은 잠시 말이 막혔다.


“당신······ 설마 삐친 건가?”

―삐치긴 누가 삐쳤다고 그러나? 그저 혼자 다 쓸어버리고 재미 본 어느 쇳덩이가 부러울 뿐.

“아, 삐친 거 맞네.”

―어허, 아니라니까!


마왕의 말에 케인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나도 마검해봐서 아는데, 피를 볼 때의 기분? 무척 잘 알지.”

―그걸 잘 아는 놈이······!

“잘 알아서 하는 말인데, 당신 너무 지나쳐.”


케인의 말에 마왕이 발끈했다.


―무어라?

“앞으로 변태 소리 나올 때마다 검 안 쓸 거니까 알아서 자제해라.”


케인의 요구에 마왕은 점점 더 기가 찼다.


―성기사가 검 안 쓰고 아까처럼 암흑마법 쓰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당신만 자제하면 해결될 일이지.”

―점점 방자하군. 확 예언서 마법 써버리겠다.

“말똥에 처박히고 싶다면 얼마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매력적인 협박이었다.

이번에도 마왕의 말은 끊어졌다. 너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모양이다.


케인은 묵묵히 철 상자를 챙겨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마왕이 대답해주지 않아도 상자에서 오는 느낌이 너무 분명했기에 일단 챙기고 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반쯤 외워버린 예언서 해당 구절을 떠올렸다.


<A가문은 그곳에서 종말에 관련된 흔적을 얻음>


“훗, 역시 예언서는 용하군.”


마검과 성검이 반드시 끼어 있어야 하는 종말, 그렇기에 성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물건이 예언서에서 말하던 흔적이 확실하다.


케인은 시선을 조금 들어서 지금은 보이지 않는 먼곳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원래 이것을 취했어야 하는 또 다른 A가문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다.


옆모습만 보았을 뿐인 형 아게르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과연 아게르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순간 케인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그 말에 마왕도 케인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챈 모양이다.


―미친놈, 드루아교가 싹 전멸했는데 싸움이 성립될 거라고 보나?

“전멸했다고 누가 그래?”


케인은 즉시 단상 뒤쪽을 뒤져서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검은 로브를 주워 입었다.

후드까지 뒤집어 쓰니 조금 전 이곳에 존재하던 악신교도처럼 보였다.

안에 갑옷까지 그대로 입은 상태다 보니 여전히 덩치는 커보였다.


처음 등장할 때 그대로의 모습.

마왕은 굳은 듯 침묵했다가 그 순간이 지나가자 미치듯이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크하하, 크하하하!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이러니까 네놈에게 화가 나도 포기할 수 없지. 자, 어서 피의 살육을 벌여보아라! 크하하하!

“벌써 내 경고를 잊다니 유감이군.”


그때 케인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하나가 아니라 꽤 많은 인원이다.


‘드디어 오는 건가?’


깊은 지하인 이곳까지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케인은 하품을 하며 석실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기척은 주변만 빙빙 돌 뿐 여전히 이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시트리는 여기까지 쭉 뚫려 있어서 그냥 들어왔다고 했는데?’


혹시 악마만 발견할 수 있고 인간은 발견할 수 없는 종류였던가?

직접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케인은 어슬렁거리며 적을 석실을 나섰다.

마왕도 키득거리며 웃었다.


―네놈이 이렇게 친절할 줄은 몰랐구나. 마중까지 가주다니! 크흐흐흐.

“기다리기 귀찮아서.”


천천히 복도를 걷던 케인은 드디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케인은 직감했다.

놈들은 계단 주변에 모여 있다.


‘거의 다 찾았으면서 헤매고 있다니, 조금 더 기다려볼까?’


이미 오래 기다렸다.

좀이 쑤시다 못하여 온몸이 뒤틀릴 정도였다.


케인은 즉시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로브차림에 각반은 안 어울린다고 하여 포디나가 찾아 신겨준 가죽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편하고 품질도 좋군.’


위에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벅차올랐다.


‘아게르, 그놈도 있을까?’


가장 바라는 것이었지만, 케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 중에 아게르에게서 느껴지던 기척은 없었으니까.

이윽고 좁았던 계단 통로가 끝나고 케인이 위층에 발을 디뎠다.


“음?”


케인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낸 소리였다.

이십 명에서 삼십 명 정도 될까?

일제히 케인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성기사가 아니었다.

케인과 똑같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다.


“헉?”


이번에는 시커먼 로브에 후드를 눌러 쓴 케인을 보고 그들이 놀라는 소리였다.

서로 똑같은 차림을 한 사람들끼리 서로 놀라는 모습.

케인은 내색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로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직 남아 있는 악신교가 또 있었나?’


그중 등이 살짝 굽은 노인이 한 발 나서며 케인에게 예를 취했다.


“베헬 지역에서 사역을 다하고 돌아오는 중입니다. 아래에 의식이 있는 듯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습을 뵈니 무사히 마치신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무척 깍듯한 자세에 되레 케인이 당황했다.

아무 로브나 주워 입었는데 그게 마침 매우 높은 자의 로브였던 것일까?


아무래도 아까 단 위에서 의식을 주관하던 사제의 다른 로브였나 보다.

케인이 보기에는 똑같은 검은 로브인데 무엇을 보고 판별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내색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 궁금하면 내려오지 그랬나?”


노인이 황망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어이쿠! 안 하던 농담을 다하십니다. 저희 같은 것들이 어찌 아래를 넘보겠습니까?”


노인의 말을 듣자 케인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케인과 그 사제는 체형도, 목소리도 달랐으나 사람이 달라진 것도 모르는 것을 보니 그 사제를 먼발치에서나 보던 자들이 분명했다.


즉 이들은 악신교 중에서도 신전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는 조무래기였다.

비로소 조금 마음이 놓인다.


케인은 입가를 조금씩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겠는가?”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비보가 있습니다.
비축분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ㅠㅠ
이후부터는 라이브로 해야 하는데 연재주기가 다소 불규칙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230225 漫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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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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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드루아 신의 힘을 느껴라 23.10.23 10 0 11쪽
» 성기사의 다른 면모 23.08.11 20 0 12쪽
49 성기사인듯 아닌듯 23.08.10 17 1 12쪽
48 소환 의식의 끝 23.08.09 21 1 12쪽
47 역사 덮어쓰기 23.08.08 24 1 12쪽
46 침입 23.08.07 28 1 12쪽
45 혼돈의 시간 속에서 23.08.04 29 1 12쪽
44 성기사의 소환물 23.08.03 38 1 12쪽
43 왜? 나한텐 돈 주지 말래? 23.08.02 31 1 12쪽
42 가진 돈 내놔 23.08.01 32 1 12쪽
41 이놈도 변태일지도 23.07.31 35 1 12쪽
40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23.07.28 40 0 12쪽
39 검은 후드의 정체 23.07.27 37 0 12쪽
38 어디든 가보아라 23.07.26 37 0 12쪽
37 에, 에드몬드? 23.07.25 45 0 12쪽
36 보고 있나, 드루아교? 23.07.24 43 0 12쪽
35 대어를 낚을 미끼 23.07.21 47 0 12쪽
34 원한다면 더 맞아야지 23.07.20 47 0 13쪽
33 술병의 경험 23.07.19 48 0 12쪽
32 나혼자 술집 23.07.18 53 0 12쪽
31 낡은 저택의 비밀 23.07.03 60 0 12쪽
30 모두 불편한 전투 (수정전 보셨던 분들 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23.06.17 67 0 12쪽
29 악령으로 가득히 (수정완료) 23.06.16 69 0 12쪽
28 마검이 타락하면 성기사가 된다 (수정완료) 23.06.15 73 0 12쪽
27 와인이 기가 막혀 (수정완료) 23.06.14 76 0 12쪽
26 베헬 백작가 (수정완료) 23.06.13 79 0 12쪽
25 성기사, 꽤 좋은 직업일지도 (수정완료) 23.06.12 86 0 12쪽
24 신성력 쓰임새 23.06.10 88 0 12쪽
23 출전 전에 23.06.09 9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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