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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잘 숨겨지지 않은 골방

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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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김태은
작품등록일 :
2023.05.13 12:23
최근연재일 :
2023.10.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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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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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성기사인듯 아닌듯

DUMMY

소환진에서 막 나타난 존재는 역시 신의 격이 아니었다.

신의 발가락도 되지 못하는 흔한 악령들이었다.

케인이 가볍게 웃었다.


“저게 당신들이 말한 드루아 신인가?”


젊은 사제도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 그분의 힘은 저런 게 아닌······ 이, 이건······.”


거기에 그들의 수장이었던 중년 사제까지 눈앞에서 목숨을 잃자 남은 사제들과 교도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손발이 어지러운 가운데 노란 머리의 사제가 케인을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저놈부터 잡아라! 반항 시 목숨을 거둬도 좋다.”


그의 외침에 교도는 모두 케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놈은 절대 살려 보낼 수 없다!”

“성기사를 죽여라!”


마검을 이리저리 고쳐잡으며 시간을 때우던 케인은 모든 교도가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자 그들을 쓱 둘러보았다.


“그렇지. 이렇게 덤벼야 쓸어버리는 맛이 있지.”


케인은 마검을 휘두르려다가 마검 든 손을 늘어뜨렸다.


―크흐흐흐, 더! 더! 베어라! 되도록 천천히 베어서 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하란 말이다!


이런 소리를 내는 검은 별로 휘두르고 싶지 않았다.

마왕은 케인이 마검에서 대량으로 마력을 뽑아가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소리쳤다.


―뭐, 뭐 하려는 거냐? 어서, 어서 베라니까!

“그 소리 계속 들을 바에 잠깐 성기사 때려치우려고.”


케인은 다른 손도 뻗어서 조금 농도가 옅지만 대기의 마력도 휘휘 끌어당겼다.


어느덧 케인의 얼굴에는 모든 표정이 지워져 있었다. 차라리 바위가 더 생동감 있을까?

빠르게 마력을 배치하자마자 케인의 발끝에서부터 바닥이 거무튀튀한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가장 빠르게 케인에게 달려들었던 교도들이 첫 피해자가 되었다.

그들은 거무튀튀한 바닥을 밟자마자 밟은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그들은 발부터 시작하여 다리를 타고 몸이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미치듯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눈은 고통보다는 공포와 절망에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곧 숨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 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뒤늦게 덤벼오는 교도들에게 이 상황이 전달되는 속도보다 검은 바닥이 확산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 이게 뭐야? 으아악!”

“으아아아!”

“사, 살려주세······ 아아악!”


순식간에 석실은 비명과 애원과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그나마 가장 뒤에 있던 교도들이 몇 발짝 움직일 기회는 있었으나 그것이 끝이었다.

그대로 죽음의 검은 바닥이 그들을 덮쳤다.


“아아아악!”


석실이 정적에 잠기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온통 살 썩는 냄새로 진동하였으나 코 주변에 미리 작은 막을 쳐둔 케인은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왕은 기가 차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몹쓸 쇳덩이야, 이, 이게 뭔 짓이냐? 아아, 나의 핏덩이들이!


그러나 케인은 시선을 돌려서 공중에 떠 있는 세 명의 사제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사제라고 신성력을 쓴 모양이네.”


그들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케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것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중 케인을 잡으라고 소리쳤던 노란 머리의 사제가 입을 열었다.


“이건 성기사가 쓸 신성력이 아니다. 넌 누구냐?”


케인이 겸연쩍게 웃었다.


“하긴, 내 마법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줬네. 그게 뭘 의미할까?”

“마법이라고? 그럼 저 사악한 마법은······!”


무언가를 깨달은 노란 머리 사제의 눈이 커지는 순간 케인이 씨익 웃었다.


“여기 들어올 때 이미 한 놈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성심성의껏 덤벼.”


그때 석실 입구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소환자놈이여, 더럽게 찾기 힘들구나. 어찌 이리 꽁꽁 숨었는가?”


케인이 고개를 돌려보니 시트리가 석실 입구에 서 있었다.


“헐, 시트리, 넌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냐?”

“당연히 아직 계약 상태니 소환자놈의 연결을 이용한 거 아니겠나?”

“아니, 여기를 그냥 들어왔다고?”

“다 열려 있던데, 들어오지 못하는 놈이 등신이지.”


그때 케인이 반사적으로 떠올린 것은 포디나였으나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녀가 교를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를 할 리가 없었다.

도리어 함정을 파는 게 더 그녀다운 일이다.


‘설마 시트리까지 함정으로 넣으려고?’


케인은 피식 웃었다.


‘맘대로 하라고 하라지.’


포디나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자신 있었다.

그때 시트리는 석실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검은 바닥을 보고 기겁했다.


“소환자놈이여, 뭔 짓을 한 건가?”


그러다가 검은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시커먼 뼛조각들을 보고 혀를 찼다.


“허어, 악마가 이거 보고 ‘형님’ 하겠군.”

“성기사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마침 여기 당신 몫은 남았는데 어때?”


케인의 말에 시트리는 두 날개를 펼쳐서 천천히 날아오기 시작했다.


세 명의 사제는 다가오는 시트리의 모습을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오래된 경전에서나 묘사되던 악마의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충격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으아아악!”


결국 사제 한 명이 집중력을 잃고 검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는 곧 다른 교도처럼 뼛조각만 남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트리는 케인 옆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남은 두 사제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에잉, 인간에다가 사제잖아? 맛없는 것만 조합해놨군. 거절한다.”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들은 이제 쓸모없겠군.”


그때 노란 머리 사제가 부르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런 악마를! 네놈은 성기사가 아니라 사악한 흑마법사로구나. 어찌 신성한 신전에서 이런 참담한 짓을 하느냐? 신께서 네놈을 그냥 내버려 둘 성싶으냐?”

“지금도 내버려 두고 있잖아. 심지어 신전이 박살 나고 있는데 말이지.”

“이익!”

“신이라도 소환할 줄 알았는데 신의 발가락도 소환 못 해서 저 꼴이라니.”


케인의 눈길이 닿은 곳은 소환진 위에 떠다니는 악령들이었다. 저것들은 당연히 검은 바닥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제의 목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데 대화를 더 이어가기에는 무리였던 탓이다.

케인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대신 저건 내가 잘 써볼게. 고생들 했다.”


그 말을 끝으로 케인은 두 사제에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어차피 그들에게 느껴지는 신성력으로는 입구까지 나가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케인은 내버려 두면 자멸할 것이 뻔한 그들에게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케인은 고개를 돌려 아이들이 누워 있던 제단을 바라보았다.

백색의 의상을 입은 한 아이가 일어나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깨어나 있었을까?

어차피 그들에게 씌운 마법막에는 바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하는 기능도 추가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그저 사람이 돌아다니는 희미한 윤곽과 색감만 보일 뿐이다.


아이가 케인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석실의 모든 교도가 검은 로브인데 비하여 케인은 은빛 갑옷인 이유일 것이다.

케인은 속으로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불편해도 참아. 네가 모두 알면 죽어야 하니까.’


마법막은 케인이 풀어주지 않는 이상 안에서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아이들 쪽은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케인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시트리가 바닥으로 내려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환자놈이여, 도시를 뒤지고 뒤져도 영 시원찮은 악령들만 있지 않겠나? 그나마 상태 괜찮아 보이는 애들로 가져왔으니 확인해보게.”


시트리는 양손에 악령 하나씩 쥐고 케인에게 내밀어 보였다.

일렁이는 악령의 모습을 바라보던 케인의 입이 열렸다.


“버려.”

“망할 소환자놈이여, 방금 뭐라 하였는가?”

“저기 더 좋은 게 소환됐거든. 버려.”


케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조금 전까지 사제들이 열심히 의식을 올리던 소환진이었다.

신의 힘과 관련이 없어서 그렇지, 그 위에 소환된 것은 꽤 고급 악령들이었다.

그것들은 흐물흐물한 형체로 여전히 소환진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케인의 말에 시트리는 울컥했다.

온 도시를 뒤지는 노고도 노고였지만, 더 어려웠던 점은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놈들을 잡는 것이었다.


“내가 이것들 잡는다고 무슨 짓까지 했는지 아나?”

“중간중간 악령 몇 개 먹어 치운 게 전부 아닌가?”


시트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럼 이것도 내가 먹어야겠군.”


말을 마치자마자 시트리는 손에 쥐고 있던 악령을 으적으적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때 케인이 마검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대강 휘젓자 허공에 떠있던 시트리의 거대한 몸이 보이지 않는 힘에 쭉 끌려 갔다.


시트리의 표범 입이 떠억 벌어졌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적응되지 않았다.


‘마력이 아주 썩어나는구나. 부러운 놈.’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어떻게 저런 마력 제어력까지 지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끌려가던 시트리의 거대한 몸이 어느 지점에서 덜컥 멈추었다.

날개짓까지 멈추고 편하게 이끌림을 받던 시트리는 갑자기 그 힘이 사라지자 그대로 중력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하마터면 불길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뻔한 시트리는 간신히 날개를 움직여서 다시 허공에 몸을 띄웠다.

당연히 험한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소환자라고 해도 이게 무슨······.”

“전부 당신이 먹어도 좋아.”


소환진 바로 앞에 들이밀어진 시트리의 눈앞에는 고급 악령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시트리의 표범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고맙게 먹겠네.”


소환진에는 아직 악령이 반 이상 남아 있었다.

시트리가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지는 동안 케인은 잠시 시선을 사제들이 있던 공간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뼛조각 몇 개가 더 늘어났을 뿐.


케인은 무감정한 눈빛으로 그것을 스치듯 바라본 후 곧 아이들이 있는 제단 쪽으로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케인이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칠흑처럼 새까맣던 바닥에 조금씩 빛이 생기기 시작했다.


케인이 제단에 도착할 때쯤 바닥은 완전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느새 케인의 갑옷도 흉물스럽게 묻어 있던 핏자국이 사라지고 원래의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윽고 케인이 제단에 손을 뻗자 그것을 감싸고 있던 투명 마법막이 사라지고 안에 있던 세 아이가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냈다.


아까는 한 아이만 깨어나 있었는데 지금은 세 아이가 모두 제단 위에 앉아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마법막이 걷히고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자 아이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괜찮으니까 내려와.”


케인의 목소리에 세 쌍의 눈동자가 케인을 훑었다.


“어어? 성기사다?”

“맞아! 성기사 옷이야! 우와!”

“우릴 구하러 오신 분이죠?”


마지막에 말한 금발 여자아이는 아이들 중 가장 큰 아이였다. 열 살쯤 되었을까? 아까 가장 먼저 깨어나 있던 아이였다.


반면 케인은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에 잠시 우뚝 서 있었다.

제물이 될 뻔한 아이들이었다. 즉 드루아교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기에 이 상황에서 격리했을 뿐이다.


그런데 드루아교의 적인 성기사에게 호의를 가지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아무 아이나 잡아서 제단에 올린 건가?’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230213 漫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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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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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 12시 5분 23.05.20 64 0 -
51 드루아 신의 힘을 느껴라 23.10.23 10 0 11쪽
50 성기사의 다른 면모 23.08.11 20 0 12쪽
» 성기사인듯 아닌듯 23.08.10 18 1 12쪽
48 소환 의식의 끝 23.08.09 21 1 12쪽
47 역사 덮어쓰기 23.08.08 24 1 12쪽
46 침입 23.08.07 28 1 12쪽
45 혼돈의 시간 속에서 23.08.04 29 1 12쪽
44 성기사의 소환물 23.08.03 38 1 12쪽
43 왜? 나한텐 돈 주지 말래? 23.08.02 31 1 12쪽
42 가진 돈 내놔 23.08.01 32 1 12쪽
41 이놈도 변태일지도 23.07.31 35 1 12쪽
40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23.07.28 40 0 12쪽
39 검은 후드의 정체 23.07.27 37 0 12쪽
38 어디든 가보아라 23.07.26 37 0 12쪽
37 에, 에드몬드? 23.07.25 45 0 12쪽
36 보고 있나, 드루아교? 23.07.24 43 0 12쪽
35 대어를 낚을 미끼 23.07.21 47 0 12쪽
34 원한다면 더 맞아야지 23.07.20 47 0 13쪽
33 술병의 경험 23.07.19 48 0 12쪽
32 나혼자 술집 23.07.18 53 0 12쪽
31 낡은 저택의 비밀 23.07.03 60 0 12쪽
30 모두 불편한 전투 (수정전 보셨던 분들 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23.06.17 67 0 12쪽
29 악령으로 가득히 (수정완료) 23.06.16 70 0 12쪽
28 마검이 타락하면 성기사가 된다 (수정완료) 23.06.15 73 0 12쪽
27 와인이 기가 막혀 (수정완료) 23.06.14 76 0 12쪽
26 베헬 백작가 (수정완료) 23.06.13 79 0 12쪽
25 성기사, 꽤 좋은 직업일지도 (수정완료) 23.06.12 86 0 12쪽
24 신성력 쓰임새 23.06.10 88 0 12쪽
23 출전 전에 23.06.09 9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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