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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잘 숨겨지지 않은 골방

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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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김태은
작품등록일 :
2023.05.13 12:23
최근연재일 :
2023.10.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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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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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DUMMY

케인이 건조하게 말했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난 성기사 케인이다.”

“케인? 이름도 잘 어울리네.”


포디나의 중얼거림은 마왕에게 조금 의외였던 모양이다. 비로소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오호, 저 용사 환생은 쇳덩이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보다 우호적이군.


케인이 피식 웃으며 낮게 말했다.


“칼잡이들은 기본적으로 명검이라면 안 가리고 우호적이라는 거 모르나?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그래? 그럼 지금 이 검을 한 번 보여주는 게 어떠냐? 매우 증오하는 영혼이 들어 있는 명검에는 어떻게 반응하나 보고 싶군.


기대에 가득 찬 마왕의 목소리를 들으니 케인은 생기려던 궁금증마저 싹 사라졌다.

케인은 무시하고 포디나에게 한 발 내디뎠다.


“자, 바라던 대로 이름도 밝혔으니 이제부턴 대화를 해보지. 아까 리온은 구하려던 거 아니었어? 왜 죽인 거냐?”


대략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포디나에게 제대로 들을 필요가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예쁜 얼굴 속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리온을 죽이던 모습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포디나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케인을 올려보며 대답했다.


“원래는 구하려던 거 맞아요. 급히 달려갔을 땐 이미 성기사단 도착 직전이었고, 그를 구하기에는 당신처럼 무서운 실력자가 있으니 불가능했죠. 그때 날 막은 거, 당신이잖아요. 케인.”

“그래서 죽였다?”

“그대로 성기사단에 보내기엔 알고 있는 게 너무 많았으니까요. 리온,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 잘 생겼었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저도 내켜서 한 건 아니라고요.”


듣던 마왕이 기가 찬 모양이다.


―맙소사, 밝히는 거까지 비슷해. 이쯤 되면 모습은 달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군. 크흐흐흐.


반면 케인은 포디나가 숨김없이 말하자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솔직해서 좋군. 대화가 쉬워지겠는데?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그때 포디나의 적안에 경악을 넘어선 공포가 가득했다.


“어, 으어, 으아아!”


그녀의 시선은 케인을 넘어선 그 뒤에 있었다.

케인도 그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번에는 케인도 고개를 꺾어서 상대를 올려 보아야 했다.

그러나 거대한 존재를 보는 케인의 눈빛은 짜증으로 가득 찼다.


“시트리, 거기서 갑자기 나타나면 어쩌자는 거냐?”


시트리의 표범 얼굴에서 날카롭게 빛나던 두 눈동자에 의문이 깃들었다.


“소환자여, 니가 소환해 놓고 왜 새삼 놀라는 척인가?”


케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거, 쿵짝이 맞아야 뭔 일을 같이하든가 하지.”


시트리는 아까 야금야금 모으던 마력으로 다시 소환해 버린 놈이다.

아무래도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자력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소환물 쪽이 더 편했다.


‘이게 한 번 해보니 묘하게 중독된단 말이지.’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헤어졌던 시트리의 기분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시트리는 시트리대로 억울한 모양이다.


“물 떠오라기에 멀리까지 가서 떠왔을 뿐인데 남의 다리 긁는 소리라니.”


케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됐고, 네가 방금 벌인 일에 책임이나 져.”

“책임? 무슨 책임 말인가?”


케인은 손을 뻗어서 포디나가 앉아있던 곳을 가리켰다.


“저어기에.”


시트리가 그곳을 바라보니 포디나가 급하게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어?”


케인이 느물대며 말했다.


“너 때문에 놀라서 튀잖아.”

“나 때문이라고?”

“뭐해? 냉큼 잡아 와야지.”


시트리는 잠시 두 눈을 끔벅거렸다.

분명히 케인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이에 케인의 적이 도망치는 상황이다.


‘어째서 그게 내 탓이지?’


그러고 보니 여자가 자신을 보고 기겁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쨌든 내 탓일지도.’


정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적이 도망치고 있다. 일단 다시 잡아 온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당장 잡아 오지.”


시트리가 두 날개를 펼쳤다.

그때 케인은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급하게 말했다.


“아참, 시트리! 잡아서 데려오기만 해! 절대 죽여선 안 돼!”

“······그러지.”


저 묘한 망설임의 공백은 무어란 말인가.

케인은 전율했다.

따로 말하지 않았다면 저 무식한 놈은 죽은 포디나를 데려왔을 느낌이다. 그게 더 빠르고 간단하니까.


시트리는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던 마왕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맞지? 일부러 놓아준 거. 쇳덩이가 인간 몸으로 있으니까 몰랐던 인성까지 다 나오는군. 크흐흐. 아주 바람직해.


케인은 시트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소환물이 소환물다워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좀 길들이는 거지. 인성까지는 너무 갔네.”


마왕은 케인보다 조금 먼 곳까지 느끼는 모양이다.


―확실히 솜씨는 좋군. 벌써 따라잡은 건가?

“마계에서 온 소환물인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케인은 시선을 들어서 빛 덩어리 너머의 어둠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빛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여전히 칠흑처럼 검었다.

그때 칠흑 속 어딘가에서 포디나의 비명이 아득하게 울렸다.


“꺄아아악!”


그것은 그물처럼 퍼지면서 처절한 음색으로 케인의 귓가를 때렸다.

케인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저놈, 설마 내 말 무시하고 죽인 건가?”

―크흐흐, 그런 거라면 내가 저놈 인정한다.

“그런 거라면······.”


케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시트리의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지더니 시트리가 발톱으로 잡고 있던 포디나를 케인 앞에 툭 던져 놓았다.


포디나의 몸은 저항 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피비린내가 여과 없이 콧속으로 파고들자 케인은 고개를 번쩍 들고 시트리를 노려보았다.


“뭐야?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잖아.”


시트리는 코웃음을 쳤다.


“잘 보고 말하게. 소환자 놈이여.”


케인이 내려보자 포디나의 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살아있으면 살아있다고 말하라고!”

“어, 으어······!”


그러나 포디나는 대답할 정신도 없는 듯했다.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며 케인을 향하여 몸을 움직였다.

케인은 피식 웃었다.


“시트리, 그래도 능력 나쁘지 않네.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까지 겁먹은 거냐? 적인데도 나한테 오는 거 보라고.”


시트리는 뒤통수를 긁었다.


“그냥 처음부터 겁먹던데. 그래서 쉬웠지.”


케인은 그제야 인간이 악마를 직접 보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이라면 악마나 내뿜는 마기에 극도의 공포로 몸이 굳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포디나는 그 공포 속에서 도망을 쳤으니 도리어 대단한 것일까?

마왕은 이 상황이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다.


―크하하하, 용사가 악마를 보고 눈물 콧물 다 빼고 있구나! 돈 주고도 못 하는 구경이구나! 크하하, 크하하하!

“뭐, 그거도 맞네.”

―저 여자도 나중에 용사였던 기억이 돌아올 거 같나?

“글쎄.”

―크흐흐, 돌아오면 이거 다 기억했다가 똑똑히 알려줘야지. 흐흐, 생각만 해도 매우 기분이 좋아지는군.


케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건 이 여자가 살아남을 때 이야기지.”

―그게 무슨 소리냐?

“죽어가거든.”


케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낮춰서 포디나의 몸을 살폈다.

피가 흘러나오는 곳을 추적하니 왼쪽 어깨가 시트리의 발톱에 깊게 찢겨 있었다. 이대로 두면 생명이 위독하다.

케인이 버럭 소리쳤다.


“시트리,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냐?”


시트리가 눈을 끔벅이며 대답했다.


“죽이지 않았으니 난 지킬 거 다 지킨 거 아닌가.”

“그걸 말이라고! 당장 소멸되고 싶지 않으면 원래대로 고쳐놔.”

“젠장, 아예 모셔 오라고 하지.”


케인의 말을 어길 수 없던 시트리는 계속 투덜거리며 포디나에게 다가갔다.

시트리가 포디나를 치료하려고 손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괴, 괴물, 저, 저, 저리······ 가. 가라고!”


포디나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필사적으로 비틀고 있었다. 그러자 피가 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트리는 케인에게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난 안 되겠군. 환자가 거부하는데 어쩔 수 없지. 잘해 보게. 소환자 놈이여.”


말을 마치자마자 시트리는 곧바로 스르륵 사라졌다. 케인은 시트리가 떠올렸던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고 가볍게 웃었다.


“여기서 튄다고? 역시 덩치만 크고 머리는 모자란 건가?”


돌아오지 않으면 계약위반인데 튀다니.

그 정도로 하기 싫은 일이었던 듯하다.

어쨌든 놈은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것도 꽤 빠른 시일 내에.


마법으로 부른 빛덩어리를 이동시켜서 포디나를 비쳐보니 출혈이 너무 심했다. 더 지체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망할 시트리놈, 치유 쪽은 진짜 내키지 않는데.”


생각 같아서는 당장 시트리를 재소환하여 포디나에게 던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투덜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케인은 급히 포디나의 어깨 부위의 옷을 조금 더 찢어서 상처가 완전히 드러나도록 했다.

한 손을 뻗으니 주변 대기의 마력이 빠르게 한 가닥씩 빨려왔다.


그 마력에 치유의 의지를 담아서 포디나의 상처에 갖다 대자 마력은 무서운 속도로 상처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격한 마력이 움직이자 가느다란 바람이 생기며 케인의 은발이 가볍고 부드럽게 날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진짜 성기사면 좋겠군.’


성기사의 신성력이라면 기도 한번으로 끝날 것을 암흑 마법으로 치유 마법을 쓰려고 하니 무식할 정도로 많은 마력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퍼부어도 치유력은 신성력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이 새삼 우울했다.


결국 조금 지나자 케인은 다른 손에 마검을 꽉 쥐어야 했다.

마검의 마력까지 끌어쓰자 마왕이 낄낄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 재미있군. 여기 있으니 마력에 찌든 쇳덩이가 성기사 치유력 흉내 내는 걸 구경하고 말이지. 크흐흐흐.


이제는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마왕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아낌없이 마력을 퍼붓자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던 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에 띌 정도로 멎어 들었다.


‘고비는 넘겼군.’


마력에 여유를 둘 수 있게 되자 케인은 슬그머니 다른 마법을 중첩하여 마력에 따스한 빛을 입히기 시작했다.

얼핏 신성력처럼 보이는 빛을 확인하자 케인은 흐뭇하게 미소했다.


‘역시 성기사 갑옷에는 신성력이 잘 어울리지.’


포디나도 지혈이 되고 고통도 줄어들자 조금씩 눈빛에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저어, 정말 공들여서 치료하시네요. 적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걸 보니 역시 성기사님이에요. 저, 감동해도 되나요?”


그녀는 고통으로 혼미한 가운데에서도 케인이 심혈을 기울여서 자신을 치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기사의 치유력치고 결과가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 정성을 보아서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돌아온 케인의 대답은 차디찼다.


“그럴 필요는 없어. 당신이 알려줘야 할 게 아직 남아서 살려준 거니까.”


포디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 숨만 붙여두는 거였나요? 난 또 성기사님 신앙심이 별로여서 이렇게 치료하신 줄 알았네요.”


케인은 속으로 울컥했다.


‘암흑 마법으로 이 정도 치료한 게 어딘데! 저 용사 새낄 다시 암흑 마법으로 잠재워?’


물론 입 밖으로 말할 수 없었기에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마왕은 포디나의 말에 벌써 기절할 듯이 웃어젖히고 있었다.


―크하하, 크하하핫! 으하하하하! 들었느냐? 성기사 신앙심이 별로여서 치유력이 그따위라 하는구나. 크하하핫.


잘 어울리는데 저 검, 용사한테 줘 버릴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221227 漫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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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드루아 신의 힘을 느껴라 23.10.23 9 0 11쪽
50 성기사의 다른 면모 23.08.11 19 0 12쪽
49 성기사인듯 아닌듯 23.08.10 17 1 12쪽
48 소환 의식의 끝 23.08.09 21 1 12쪽
47 역사 덮어쓰기 23.08.08 24 1 12쪽
46 침입 23.08.07 28 1 12쪽
45 혼돈의 시간 속에서 23.08.04 29 1 12쪽
44 성기사의 소환물 23.08.03 38 1 12쪽
43 왜? 나한텐 돈 주지 말래? 23.08.02 31 1 12쪽
42 가진 돈 내놔 23.08.01 32 1 12쪽
41 이놈도 변태일지도 23.07.31 35 1 12쪽
»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23.07.28 39 0 12쪽
39 검은 후드의 정체 23.07.27 37 0 12쪽
38 어디든 가보아라 23.07.26 37 0 12쪽
37 에, 에드몬드? 23.07.25 43 0 12쪽
36 보고 있나, 드루아교? 23.07.24 43 0 12쪽
35 대어를 낚을 미끼 23.07.21 47 0 12쪽
34 원한다면 더 맞아야지 23.07.20 47 0 13쪽
33 술병의 경험 23.07.19 48 0 12쪽
32 나혼자 술집 23.07.18 53 0 12쪽
31 낡은 저택의 비밀 23.07.03 60 0 12쪽
30 모두 불편한 전투 (수정전 보셨던 분들 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23.06.17 67 0 12쪽
29 악령으로 가득히 (수정완료) 23.06.16 69 0 12쪽
28 마검이 타락하면 성기사가 된다 (수정완료) 23.06.15 73 0 12쪽
27 와인이 기가 막혀 (수정완료) 23.06.14 76 0 12쪽
26 베헬 백작가 (수정완료) 23.06.13 79 0 12쪽
25 성기사, 꽤 좋은 직업일지도 (수정완료) 23.06.12 86 0 12쪽
24 신성력 쓰임새 23.06.10 88 0 12쪽
23 출전 전에 23.06.09 9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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