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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잘 숨겨지지 않은 골방

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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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김태은
작품등록일 :
2023.05.13 12:23
최근연재일 :
2023.10.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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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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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악령으로 가득히 (수정완료)

DUMMY

악령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서 그런지, 검법 없이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명중이었다.


퍼억!

꺄아아악!

퍼억!

꺄아아아악!


‘무척 편하군.’


그런데 케인은 어딘가 허전했다.

분명 적에 둘러싸인 채 신나게 검을 휘두르는 이 상황은 오래전부터 꿈꾸던 완벽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케인은 곧 허전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나 인간이지.’


인간이 되는 바람에 피를 갈구하는 마검 본능이 사라졌다는 것은 전에 알았다. 그런데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것을 홀랑 잊는 것이 문제였다.

도중에 이렇게 깨닫고 나면 허전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건 재미없는데.’


케인은 악령이 달려들자 다시 마검을 휘둘렀다.


퍼억!

꺄아아악!


속에서 끓어오르는 피의 충동도 없었고 직접 닿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악령이 하나씩 베어져 나갈 때마다 마검에서 느껴져 오는 묵직한 감각은 기분 좋았다.


‘그럼 지금 마검인 마왕놈은?’


지금 자신과 정반대 입장일 마왕.

무시무시한 살육의 충동을 강제로 주입받으며 직접 몸으로 적을 들이받는 상황.

물론 은근히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 많은 악령을 베다 보니 살짝 신경 쓰였다.


퍼억! 퍼억!

꺄아아악!


이번에는 두 마리를 동시에 베었다.

그때 마왕에게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흐, 크흐흐흐, 이거 뭐냐? 크흐흐흐! 너무 좋은데! 더! 더 베어! 더 베라고! 크흐흐흐!

‘좋다고? 변태냐?’


케인은 자신이 떠올린 것을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은 마왕이 아니라 마검으로 태어났어야 했어.”


케인의 말에 마왕이 발끈했다.


―감히 마왕한테 무슨 헛소리냐?

“아니, 계속 벨 테니까 지금처럼 해달라고.”

―잘 생각했다.


그때 케인이 악령 하나를 베어 넘기며 한탄했다.


“으아,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는데 악령놈들 냄새 너무 하네.”

―그럴 테지. 마검인 게 좋을 때가 있군. 크흐흐.


케인은 이제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웬만한 것은 적응했다고 여겼는데 악령들이 바짝 들이대면서 나는 악취는 참을 수 없었다.


마법으로 막을 충동을 가장 먼저 느꼈지만, 지금 자신은 성기사로서 이곳에 서 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케인은 바로 검으로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연습했던 대로.’


케인은 잠시 숨을 멈추고 냄새를 들이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 검법을 첫 번째 동작부터 쉬지 않고 순서대로 펼치기 시작했다.

제국 검법이 펼쳐지자 이제껏 멋대로 휘두른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국 검법은 공격과 방어를 겸하는 기초적인 검법이다.


케인이 세 번째 동작을 할 때 조금은 움직일 만한 공간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동작에 이르자 악취에서 벗어나 숨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트였다.

케인은 급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공간 안으로 들어오려는 악령들을 향해 여섯 번째 동작을 펼쳤다.


퍽! 퍽! 퍽!

끼야아악!


여지없이 세 마리가 한꺼번에 케인의 마검을 맞고 소멸했다.

케인이 일곱 번째 동작을 펼칠 때였다.


갑자기 마검이 묵직하게 느껴졌으나 깊이 생각할 틈은 없었다.

날아드는 악령들을 향해 케인이 빠르게 마검을 휘둘렀다.


쾅! 콰쾅! 쾅!

돌연 마검에 악령이 닿는 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화끈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폭발하는 굉음이 귀를 통하여 뇌를 직접 흔들었다.


너무 생생하다 못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으나 다행히 약간 몸이 흔들리는 정도로 끝났다.

이제 마검 전체에는 마력이 터질 듯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짓을 할 존재는 딱 하나였다.


“당신, 무슨 짓이야?”


마왕이 낄낄 웃었다.


―오, 그걸 견디네. 나름 도운 건데 좀 거칠었나?


케인은 화가 솟았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나? 성기사답게 검법으로 승부하고 있잖아.”

―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 뭔 고집이냐? 요즘 날 매우 즐겁게 해줘서 상 주는 거니 너무 괘념치 말도록.

“그걸 말이라고!”


케인은 전투 중에 마검을 패대기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었다.

물론 마검도 능력만 되면 따로 마법을 따로 쓸 수 있기는 하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마검이 따로 사용하는 마법이 주인의 마력과 파장이 맞지 않으면 바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였다. 바로 지금처럼.

악령만 폭발한 게 아니라 자신이 마검에 담아두었던 마력까지 함께 폭발해 버렸다.

그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하, 이걸 이렇게 뒤통수치네. 그건 또 무슨 마법이야?”

―예언서 뒷부분에 있던 마법을 처음 써본 건데, 그렇게 짜릿한가?


예언서 뭐라고?

그러나 지금은 거기에 대해서 더 논할 시간이 없었다.


“어쨌든 그 마법 쓰지 마.”

―방금 효과 끝내주는 거 봤잖아. 굳이 왜?

“충돌하잖아!”

―충돌이라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력끼리 충돌했는데도 마왕은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그때 거슬리는 악령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성기사.제법.이구나.그럼.이거도.받아보아라.”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악령이 검은 늑대의 형태로 나타났다. 스무 마리쯤?

충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마왕놈에게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마검은 사용할 수 없다.


성기사 역할은 여기서 끝인가?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다 죽을 테니.

케인이 무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너 죽고 나 살자.”


즉시 케인은 마검으로 손가락을 그었다.

케인은 손가락에 송골송골 맺히는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베었는데 더럽게 아프네.”


케인은 그 손가락으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무언가를 간단하게 휘갈겨 썼다.

간이 마법진이 완성되자 케인은 바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법진 전체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케인의 긴 은발이 바람에 정신없이 날리기 시작했다. 온통 암흑 기운을 품고 있는 칠흑색 바람이다.


갑자기 암흑 기운이 폭발적으로 불어나자 거슬리는 목소리의 악령이 당황했다.


“이.이.기운은.넌,성기산데.어.어째서?”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소환자가 당신인가? 환장하겠네.”


케인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 앞에 서 있는 시트리를 올려 보았다.

시트리의 표범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꽤 썩어 있었다.

케인은 검은 늑대의 악령들이 시트리를 보고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시간 없어서 간략하게 재소환할 수 있는 당신이 필요했어. 대신 이번엔 사냥이니까 얼굴 펴.”

“이번에도 설거지였으면 계약이고 뭐고 당신 목을 꺾었을지도 모르겠군. 좋아, 뭘 사냥하면 되지?”


거슬리는 목소리의 악령이 시트리를 보고 기겁했다.


“어.어째서.성기사가.악마를.그것도.저.악마는!”


목소리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트리가 최상급 악마는 아니었지만, 꽤 상위권에 드는 악마였다.

그것을 성기사가 소환해냈으니 그런 아이러니가 또 없었다.

케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시트리, 저 멍청한 악령 빼고 전부 사냥하면 된다.”


케인의 대답에 시트리는 다시 몸을 돌려서 허공의 누군가를 쏘아보았다.


“아는 녀석이군. 저놈은 왜?”

“알아볼 게 있어서.”

“나머지는 다 먹어도 되지?”

“맘대로 해.”

“오랜만의 포식이겠군.”


그때 마왕이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 뭐냐? 시트리 아냐? 갑자기 악마라니, 성기사 놀이하는 거 아니었나?

“지금은 악령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빨리 해결하려고.”

―오호, 너한테 그런 게 있었던가?

“사용하지 못하는 마검을 처리할 거다.”

―까칠한 녀석. 쯧.


그때 시트리는 쏜살같이 몸을 날려서 늑대 악령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트리는 야성적으로 싸웠다.


어느새 뾰족하게 튀어나온 손톱과 발톱은 날카롭게 갈아놓은 칼날 같았다.

그것을 사납게 휘두르는 대로 늑대 악령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몸이 찢겨나갔다.

조각난 악령을 물어뜯는 시트리의 눈빛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쩝쩝거리며 악령 먹는 소리는 상당히 거북하게 들린다.


반면 거슬리는 목소리의 악령은 위기를 느꼈는지, 유리창을 깰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변했다.


“다.죽.어.라!”


갑자기 마력의 흐름이 크게 울렁거리더니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무수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얼핏 아이의 실루엣과 흡사했다.


시트리가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혼자였기에 모든 그림자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케인에게 너울거리며 오는 몇몇 검은 아이의 그림자는 막을 수 없었다.


케인은 심기가 불편했다.

당장 마검을 사용할 수 없어서 시트리를 소환한 것인데 이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시트리, 일 제대로 안 하지?”


케인은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마법을 일으키려는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잠깐, 마검을 쓸 수 없는 게 아니지.’


케인은 즉시 아무 마력도 넣지 않은 마검을 휘둘렀다.

마검의 자체 마력으로도 저것들을 벨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는 더한 마력을 쓰는 놈도 하나 들어 있다.


콰쾅!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표를 낼······ 만한 놈이긴 하다.

마검에 닿자마자 요란하게 폭발해 버리는 그림자들을 보며 케인은 큭큭 웃었다.


“시트리, 이건 셈에 안 들어가는 거다.”


검은 그림자는 계속 달려들었다.


쾅! 콰쾅! 쾅!

조금 적응되니 폭발은 참을 만한데 마왕의 낄낄대는 소리는 여전히 거슬렸다.


―크하하, 좋아! 이 감촉! 아주 좋아!

‘미친놈.’


물론 케인 입장에서는 마력 소모도 없고 마검만 휘두르면 되니 무척 편했다.

문득 그는 검을 대강 휘두르다가 입고 있는 은빛 갑옷에 눈이 멎었다.

그래도 기왕 휘두르는 김에 제국 검법이면 더 좋을 듯하다.


쾅! 콰쾅! 쾅!

―크히히, 좋아, 좋아!


물론 알아주는 자는 전혀 없었지만, 케인은 제국 검법 한 동작, 한 동작에 신중을 기했다.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계속했다.


그때 저쪽에서 전투와 식사를 동시에 하던 시트리가 소리쳤다.


“소환자여, 마력 좀 빼가겠다.”


케인은 순간 모아두었던 마력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픽 웃었다.


“알뜰살뜰하게 퍼가는군.”


어차피 지금은 마력 쓸 일이 없으니 부담은 없다.

그저 눈앞의 그림자만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그림자 대신 다른 것이 나타났다.

매우 많이 익숙한 뒷모습.


“어?”


시트리의 형체를 하고 있으나 시트리보다 작은 몸집.

작은 시트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검은 아이의 그림자들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방금 자신의 마력을 뽑아서 만든 것이 이것인가 보다.


“오, 시트리, 제법이네.”


작은 시트리가 말을 못 하는지 대답은 저쪽에서 들려왔다.


“내가 다 먹는다고 했으니 다 먹을 거다.”

“나야 좋지. 수고해.”


케인은 마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누가 대신 싸워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검이었을 때는 소환 마법을 익히기만 하고 써본 적 없어서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편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케인은 마검을 내려보았다.

마왕의 마력과 충돌했을 때는 짜증의 극치였지만, 막상 마왕이 주도적으로 나서주니 꽤 쓸 만했다. 어쩌면 더욱 마검 사용하는 것이 쉬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케인은 아예 마검을 검집에 꽂아두고 팔짱까지 낀 채 시트리의 전투 겸 식사를 관망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드디어 정리가 끝나가네요.

편수 정리도 하다 보니 이번 편이 공모전 때 연재했던 마지막 분량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새 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출발!







220710 漫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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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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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 12시 5분 23.05.20 64 0 -
51 드루아 신의 힘을 느껴라 23.10.23 10 0 11쪽
50 성기사의 다른 면모 23.08.11 20 0 12쪽
49 성기사인듯 아닌듯 23.08.10 17 1 12쪽
48 소환 의식의 끝 23.08.09 21 1 12쪽
47 역사 덮어쓰기 23.08.08 24 1 12쪽
46 침입 23.08.07 28 1 12쪽
45 혼돈의 시간 속에서 23.08.04 29 1 12쪽
44 성기사의 소환물 23.08.03 38 1 12쪽
43 왜? 나한텐 돈 주지 말래? 23.08.02 31 1 12쪽
42 가진 돈 내놔 23.08.01 32 1 12쪽
41 이놈도 변태일지도 23.07.31 35 1 12쪽
40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23.07.28 40 0 12쪽
39 검은 후드의 정체 23.07.27 37 0 12쪽
38 어디든 가보아라 23.07.26 37 0 12쪽
37 에, 에드몬드? 23.07.25 45 0 12쪽
36 보고 있나, 드루아교? 23.07.24 43 0 12쪽
35 대어를 낚을 미끼 23.07.21 47 0 12쪽
34 원한다면 더 맞아야지 23.07.20 47 0 13쪽
33 술병의 경험 23.07.19 48 0 12쪽
32 나혼자 술집 23.07.18 53 0 12쪽
31 낡은 저택의 비밀 23.07.03 60 0 12쪽
30 모두 불편한 전투 (수정전 보셨던 분들 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23.06.17 67 0 12쪽
» 악령으로 가득히 (수정완료) 23.06.16 70 0 12쪽
28 마검이 타락하면 성기사가 된다 (수정완료) 23.06.15 73 0 12쪽
27 와인이 기가 막혀 (수정완료) 23.06.14 76 0 12쪽
26 베헬 백작가 (수정완료) 23.06.13 79 0 12쪽
25 성기사, 꽤 좋은 직업일지도 (수정완료) 23.06.12 86 0 12쪽
24 신성력 쓰임새 23.06.10 88 0 12쪽
23 출전 전에 23.06.09 9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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