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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잘 숨겨지지 않은 골방

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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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두김태은
작품등록일 :
2023.05.13 12:23
최근연재일 :
2023.10.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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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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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 에드몬드?

DUMMY

케인은 미소했다.

드루아교가 지금 이 자리에 없어도 상관없었다.


무려 셋 중에 드루아신에 대한 의식까지 치르려던 자가 있었다. 그러니 이들을 살려서 적당히 끌고 다니면 알아서 따라붙게 되어 있다.

그들을 성기사단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에 불과했다.


‘드루아교만 끌어내면 저 쓸모없는 것들은······.’


그때 케인의 상념을 싹둑 자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인! 자네 여기 있었군. 드디어 찾아냈어.”


이곳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

케인이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은빛 판금 갑옷의 한 남자가 사람들을 부드럽게 헤치며 다가왔다.


케인을 발견한 그 남자는 온몸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른 성기사가 나타나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케인은 그 성기사가 자신의 맞은편에 서자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에, 에드몬드?”


케인을 발견한 에드몬드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여신님이 보살피셔서 자네를 금방 찾아냈군. 무사해서 다행이네. 케인.”


케인은 매우 어색하게 웃었다.


“여긴 어떻게 온 거냐?”

“케인, 자네 혼자 악령을 다 잡았다면서? 사제님께서 말씀해주셨네!”


에드몬드가 흥분하여 케인의 어깨까지 툭툭 칠 정도면 악령 잡은 일이 꽤 커다란 일인 모양이다.

마왕도 에드몬드를 발견하고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크흐흐흐, 캡틴을 포함한 토벌조를 구성해서 잡을 악령을 술이나 몰래 먹던 성기사 혼자 잡았으니 화제가 될 만하지. 그 성기사의 정체가 온통 흑마법으로 절여진 마검이라는 거 알면 더 기절하려나? 기대되는군. 흐흐흐흐.


케인은 점점 표정관리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아, 운이 좋았지. 그래서 어떻게 온 거냐고?”

“그야 자네가 다했는데 우리 할 게 뭐가 있겠는가? 모두 악신교 잔당을 포획하려고 폐저택에 남고 나만 자네를 도우려고 급히 달려오는 길이라네.”


에드몬드의 말에 케인은 신음했다.


“그렇게 된 일이군.”

“다만 사제님이 이 도시라는 것만 알려주고 어느 술집인지는 알려주지 않으셔서 난감했는데.”

“난감했는데?”

“갑자기 어디론가 몰려가는 사람들이 보이더란 말이지. 게다가 그 방향 끝에는 아주 사악하고 어두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하고 말머리를 돌렸는데 이렇게 케인, 자네가 있지 않겠나?”


조금 전 흑마법을 길게 유지했던 것이 에드몬드에게 포착된 모양이다.

케인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부른 거네. 내가 부른 거였어. 망할.’


그 말을 들은 마왕이 미치듯이 웃기 시작했다.


―진짜 성기사로군. 너의 사악하고 어두운 기운을 감지하고 달려오다니. 크하하하, 근래 웃겼던 거 중에 가장 웃기구나. 크하하, 크하하하!

“닥······!”


하마터면 에드몬드 앞에서 험한 소리를 할 뻔한 케인은 간신히 입을 멈췄다.

그리고 세워 들고 있던 마검을 무심한 척 밀어버렸다.

터덩! 텅!


“어어? 왜 손이 미끄러지지?”

―으어억! 인정하는 거냐? 크하하, 크하하하!

‘이대로 버리고 갈까?’


케인과 마왕의 대화를 알 리 없는 에드몬드는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케인, 검까지 놓치는 거 보니 많이 지친 거 같은데 몸은 괜찮은가?”


마왕은 이제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크흐흐, 흐그극, 몸 괜찮냐고 묻잖나? 어서 대답해야지? 크흑, 크흐흑.


케인은 마검을 질겅질겅 밟으며 생각했다.


‘저 변태놈에 비하면 난 정말 좋은 마검이었지.’

“으음, 난 멀쩡해.”


대답과 함께 마검을 질겅질겅 밟는 케인을 보며 에드몬드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은 거 같군.”


이제 에드몬드는 천천히 지하 창고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그의 입이 벌어진다.


“으음, 굳이 자네에게 묻지 않아도 사악한 기운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겠네. 이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게 구석에 토템까지 세웠군. 케인, 자네의 공이 무척 크네. 자네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발견한 건가?”


케인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내가 자주 마시던 곳이었어.”

“아, 그곳이 이 술집이었군.”


복잡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에드몬드는 시선을 돌려서 의식에 쓰였을 제단을 들여다보았다.


“악신교도가 다른 곳도 아닌 이 도시에서 의식까지 치르고 있었다니, 참혹하기 그지없군.”


이윽고 에드몬드의 시선은 케인이 투명막에 가둔 세 사람에게 이르렀다.


“저 사람들은······?”

“아, 저들은 말이지.”


케인은 일단 서두를 꺼내놓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에드몬드가 저들에게 관심을 거둘 것인가?

그러나 제대로 궁리해보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 짓을 하던 게 바로 저 악신의 개놈들입니다!”

“저놈들이 우리 아이들을······. 아아, 저주받을 놈들!”

“내가 이런 쳐죽일 놈들에게 술을 사마셨다니! 퉤엣!”

“꼭 잡아가서 처분해주세요! 성기사님들!”

“엄마, 저 성기사 아저씨 우릴 막 노려봐.”


케인은 마지막 말에 황급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억지로 웃느라 입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초조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도움 안 되는 것들, 이리되면 저놈들 꼼짝없이 성기사단으로 보내야 하잖아. 망할.’


갑자기 에드몬드가 나타나는 바람에 잘 되어가던 모든 것이 엉망으로 망가졌다.

세 놈을 성기사단에 넘기는 것 자체는 괜찮았다.

어차피 세 놈의 쓸모가 없어지면 적당한 핑계를 들어서 없앨 생각이었는데 성기사단이 대신해준다면 도리어 고마운 일이었다.


문제는 이곳과 성기사단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다는 점이다.

말을 타고 두어 시간 달리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아무리 계산해도 세 놈을 끌고 가는 중에 드루아교가 걸려들 여유가 너무 없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성기사단에 보내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러나 케인에게는 세 놈을 따로 빼낼 명분이 없었다.

악신교도를 상대하기에 성기사단보다 더 최적인 곳은 없었으니까.


‘으으, 내가 어떻게 저놈들을 잡았는데!’


그동안의 고생 하나하나가 장면이 되어 천천히 케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마왕의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너 진짜 저놈들을 성기사단에 넘길 생각은 아니겠지?


마왕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저들이 성기사단으로 넘어가면 이것저것 조사 받느라 금방 죽지 않을 것이 뻔했다.

아니, 죽더라도 절대 마검에 죽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변태 놈 같으니.’


케인도 신음하듯 말했다.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핑계거리 좀 만들어봐.”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될 거 가지고 뭘 고민하나? 내가 특별히 도와주도록 하지.

“이봐, 난 지금 성기사라고.”

―인간미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만 성기사잖나? 그게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이들을 먼저 꺼냈겠지. 부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왕이 인간미를 말하는 게 더 웃긴 거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쇳덩이는 더욱더 웃긴 거 아닌가?

‘저 마검, 에드몬드에게 던져줄까?’


마검이 예언서에 언급되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에드몬드는 세 사람을 가두고 있는 투명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인, 신성력이 언제 이렇게 발전한 건가? 베헬에서도 그렇고, 갑자기 강해져 버렸군.”

“뭐, 그렇게 됐다. 나도 왜 그리됐는진 모르겠어.”


케인의 성의 없는 대답을 에드몬드는 다르게 해석했다.


“역시 자네가 여신님께 기도 열심히 한 보답을 요즘 다 받는 거 같군.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네.”

“그, 그런가.”

“그러니까 저들을 데려갈 수 있게 신성력을 풀어주게.”


에드몬드는 이 말을 하려고 그토록 돌려서 말했나 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보내줘야 할 시간이다.

케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투명막을 풀었다.


그동안 에드몬드는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챙기고 있었다.

하긴, 아무거나 집어도 모두 증거일 테니 들고 갈 수 있는 몇 개만 가져가도 될 것이다.

그때 마을 사람 중 건장한 청년 두어 명이 나섰다.


“성기사님, 저놈들을 성기사단까지 데려가려면 손이 모자를 텐데 우리가 돕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에드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형제님들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케인은 세 사람이 한 명씩 끌려 나가는 것을 무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 방법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케인의 손바닥 안에는 어느덧 작은 나무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아까 리온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손에 넣은 것이다.

얼핏 새처럼 생긴 것 같은데 워낙 뭉툭하게 조각해놔서 무슨 새인지 알기는 어려웠다.


이것이 드루아교의 표식이라고 했던가?

미미하지만 안에서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인은 조각을 꽈악 쥐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마력이었지만, 종교적인 집념이 들어 있는 것이기에 다루려면 꽤 귀찮았다.


그래서 되도록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을 이용해야 할 때였다.

케인은 슬그머니 대기에서 마력을 한 가닥씩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


이제 날이 완전히 저물어서 하늘은 새까만 장막을 친 듯한 밤이 되었다. 간간이 별이 박혀 있어서 마치 검은 장막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인다.

케인은 앞에서 에드몬드와 나란히 말을 타고 있었지만, 속은 하늘처럼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에드몬드가 성기사단에 신호로 지원을 요청해서 지금은 이미 성기사 대여섯 명이 함께 하는 중이었다.

케인이 타고 있는 말도 이들이 가져온 것이다.

길을 보니 이제 성기사단까지는 반 시간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드루아교 놈들, 생각보다 굼뜬 놈들이었나?’


케인은 손바닥을 움직여서 쥐고 있던 새 조각의 감촉을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얼얼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조각에 펼쳐 놓은 마법은 잘 발동 중이었다.


조각 안에 들어 있던 미약한 마력을 증폭시키는 마법이었다. 물론 그 주변에 다른 마력을 섞어서 성기사들이 사악한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했다.

마력에 민감한 성기사는 긴가민가할 수 있겠지만, 악신교도인 리온이 함께 이동 중이니 그의 기운으로 착각할 확률이 높았다.


‘정작 그놈과는 관련 없지만 말이지.’


케인은 리온을 심문할 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마법을 다루는 자라면 마력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녀석에게 느껴지는 마력은 마력이라고 봐주기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즉 철문에 걸려 있던 마법과 방음 마법은 딴 놈이 걸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리온은 기억해두던 약속어로 철문을 열고 닫았으리라.

케인은 슬쩍 고개를 돌려서 뒤에 실려오고 있는 리온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내가 좀 심했나?’


뒤에 따라오고 있는 팔크와 에밀리는 엉망이 된 모습이었지만,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억울하다고 울부짖었지만, 이제는 체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었다.

케인은 그들 주변으로 이상한 마력이 흐르는지 찬찬히 살폈다.


‘이상 있어야 하는데 이상이 없군.’


마왕은 마왕 대로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지루하고 재미없군. 어서 볼거리가 나타나야 하는데 왜 이리 굼뗘?

“그만 징징대라. 나도 기다리잖아.”


나직하게 말했는데도 옆에서 달리는 에드몬드에게 얼핏 들린 모양이다.


“케인, 기다리는 것이라도 있는가?”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221123 漫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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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는 마검이 불편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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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 12시 5분 23.05.20 64 0 -
51 드루아 신의 힘을 느껴라 23.10.23 9 0 11쪽
50 성기사의 다른 면모 23.08.11 19 0 12쪽
49 성기사인듯 아닌듯 23.08.10 17 1 12쪽
48 소환 의식의 끝 23.08.09 21 1 12쪽
47 역사 덮어쓰기 23.08.08 24 1 12쪽
46 침입 23.08.07 28 1 12쪽
45 혼돈의 시간 속에서 23.08.04 29 1 12쪽
44 성기사의 소환물 23.08.03 38 1 12쪽
43 왜? 나한텐 돈 주지 말래? 23.08.02 31 1 12쪽
42 가진 돈 내놔 23.08.01 32 1 12쪽
41 이놈도 변태일지도 23.07.31 35 1 12쪽
40 용사도 칼잡이 중 하나였을 뿐 23.07.28 39 0 12쪽
39 검은 후드의 정체 23.07.27 37 0 12쪽
38 어디든 가보아라 23.07.26 37 0 12쪽
» 에, 에드몬드? 23.07.25 44 0 12쪽
36 보고 있나, 드루아교? 23.07.24 43 0 12쪽
35 대어를 낚을 미끼 23.07.21 47 0 12쪽
34 원한다면 더 맞아야지 23.07.20 47 0 13쪽
33 술병의 경험 23.07.19 48 0 12쪽
32 나혼자 술집 23.07.18 53 0 12쪽
31 낡은 저택의 비밀 23.07.03 60 0 12쪽
30 모두 불편한 전투 (수정전 보셨던 분들 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23.06.17 67 0 12쪽
29 악령으로 가득히 (수정완료) 23.06.16 69 0 12쪽
28 마검이 타락하면 성기사가 된다 (수정완료) 23.06.15 73 0 12쪽
27 와인이 기가 막혀 (수정완료) 23.06.14 76 0 12쪽
26 베헬 백작가 (수정완료) 23.06.13 79 0 12쪽
25 성기사, 꽤 좋은 직업일지도 (수정완료) 23.06.12 86 0 12쪽
24 신성력 쓰임새 23.06.10 88 0 12쪽
23 출전 전에 23.06.09 9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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