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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최근연재일 :
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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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7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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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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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석산의 색, 매화의 향 1

DUMMY

아선당은 다시 복구 작업에 들어갔는데, 나는 불안함을 잊기 위해 자재 옮기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는 한편 루아는 세존과 관아, 그리고 선후부에 연락을 넣어 후계자 항쟁의 내막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명확한 해답은 주지 않고 기다리라는 대답만 내놓았다.


일이 이렇게 되니 루아도 염이 형도 다들 세존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지모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용화전으로 보낸 갑급이 선후부장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지모수가 꺼낸 말이었다.


"···죽었다고요?"


"네. 그렇지만 세존이 용화전에 없는 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모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침착했다.


"아선당에서 사람을 나눠서 몇은 세존을 추적하고 나머지는 아선당을 수호하도록 하시죠."


나는 죽은 갑급의 이름이 궁금했지만, 전화기 너머가 꽤 시끄러워서 그것부터 물었다.


"그쪽에 뭔가 일이라도 생겼나요?"


"선후부가 작협에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뭐라고요?"


"아마 아선당에도 선후부가 찾아갈지도 모르니 서둘러 행동하세요."


선후부가 벌써 활동을 시작했다니.


큰일이 벌어졌다.


나는 곧장 전화를 끊고 이염을 불렀다.


"염이 형, 살수들을 풀어서 세존의 위치를 추적해 줄 수 있겠어? 나운을 찾았을 때처럼."


내 부탁에 이염이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걱정하지 마라. 이 형님이 너를 위해서 세존을 찾아줄 테니."


나는 루아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누군가는 세존을 찾으러 가야 하고, 내가 그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뜻을.


"또 혼자 떠나려는 거야?"


루아의 물음은 비수와도 같이 내 가슴에 꽂혔다.


"어···."


나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그 한마디 신음만을 내뱉었다.


"갖다 와."


루아가 내게 등 돌리며 한 말이었다.


"여긴 우리가 수호할게."


그녀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따윈 하지 마. 어서 가."


"···알겠어. 조심해야 해."


나는 아선당을 뒤로 하고 또 한 번 여정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낯선 차들이 아선당 부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


루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우뚝 서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기는 좀 힘들겠는데."


맨 앞에 세워진 차량에서 4명의 호걸이 내리는데,


그중 선두에 내가 아는 청년이 있었다.


선후부 매화조장 관윤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결의에 찬 인간의 얼굴.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이곳에서의 싸움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느꼈다.


"용건이 있어서 왔다네."


다가오는 그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침착했다.


그는 루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분명 다시 만날 땐 그라비아 모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빨리 재회하게 만드는 건가?"


말은 농이었지만, 표정은 정색했다.


선후부는 4개의 조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매화조는 그중 4조인데, 이름은 매화조라고 하나 조원 중에는 화산파 문하생 출신보다 그렇지 않은 무림인이 더 많아서 대체로 잡탕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관윤과 함께한 세 명의 호걸도 그랬다.


한 사람은 전기톱을 든 건장한 사내였고, 한 사람은 녹색 멜빵 티를 입은 뚱뚱한 사내였다.


"이쪽은 천단전동검天斷電動劍의 기혁, 이쪽은 사형공四形功의 천규···."


관윤이 동료들을 한 사람씩 소개해 주는데, 다들 근본을 알 수 없는 생김새였다.


"그리고 이쪽은.···"


그러나 마지막 한 사람은 달랐다.


붉은 옷깃이 달린 검은 도복을 입은 여성.


이는 나와 이열이 한날한시에 멸한 한라산 삼도문의 복식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젊은 여성은 석산검의 진림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홍소저紅小姐 진서영."


관윤이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가 죽인 삼도문주 진림의 여동생이지."


여동생.


그 단어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설마 여동생이 있었다니.'


그녀의 얼굴에서는 진림의 얼굴이 약간이지만 엿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


그녀의 옷과 마찬가지로 검은 바탕에 붉은 장식이 들어간 검집과 손잡이.


진림이 다루던 평범한 검과 명백히 달랐으니,


그 검 또한 나는 신경이 쓰였다.


"관윤."


나는 우선 관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세존이 뇌단법의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후계자 항쟁을 일으켰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뭐라?"


"증거도 있습니다."


나는 서류 다발을 관윤에게 건네주었다.


"뇌단법의 새로운 초식인 11식 사왕의 연구를 예전에 작협에서 도왔었는데, 연구의 경과를 기록해 놓은 데이터입니다."


관윤은 서류를 빠르게 넘겨보았다.


"그래서."


"네?"


"그래서 결론이 뭐지? 세존을 당장 체포해서 조사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그것보다는 세존과 만나고 싶습니다."


"세존께서는 편찮으시다."


"관아에 연락을 넣었을 때도 같은 소리를 하더군요."


"사실이니까."


관윤이 쌀쌀맞게 대꾸했다.


나는 지모수가 전화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세존의 사저를 조사하다가 갑급 한 사람이 선후부장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작협에서 사저를 조사했을 때는 세존이 사저에 없었다고 하던데요."


"계셨다. 그 작명사가 못 찾았을 뿐이지."


"···."


"작협에게 전해 들은 모양인데, 거기서 진실은 쏙 빼놓고 알려준 모양이군."


"진실이라고요?"


"사저에 잠입한 건 공음작사 파현이라는 갑급 작명사였다."


'파현···!'


내가 죽인 음후의 사부였다던 그 작명사.


'그녀가 용화전에서 살해당했다는 그 갑급이었구나!'


"파현은 허락도 없이 주거침입을 한 것도 모자라서 전방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격을 행했다. 이는 테러나 다름없는 행위지.


선후부장이 파현을 제압한 것은 정당방위였다."


관윤이 눈을 번뜩였다.


"이유가 뭐든 간에, 너희는 너무 성급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세존을 찾기 위해 사저에 잠입한다는 건 비상식적인 행위야."


관윤은 구무림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날카로운 투로 말했다.


그때 그는 휴가 중이었고, 지금은 일하는 중이다.


그는 공무원이니까, 세존을 두둔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작협에서 왜 그렇게까지 성급한 행동을 했어야만 했는지 알고 있다.


사왕의 완성을 위해 후계자 항쟁을 일으킨 것과는 달리 증거가 하나도 없는 낭설에 지나지 않지만,


작협에서는 그 낭설을 진실로 믿고 막기 위해서 갑급 한 사람을 희생시켰다.


파현의 희생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낭설에 불과한 그것을 주저 없이 입 밖으로 뱉었다.


"완성된 사왕을 이용해서, 세존이 대성불을 일으키려 할지도 모릅니다."


"대성불? 그건 또 뭔가?"


"전 인류의 성불입니다."


"전 인류의 성불?"


관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말이 대성불이지, 대학살이 될지도 모릅니다."


"세존이 왜 대학살을 일으키지?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지었다가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고, 세존이 왜 자기가 만든 신무림을 자기가 무너뜨리는 짓을 하느냔 말이야."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저는 가능성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요."


"타국의 어느 수뇌가 갑자기 미쳐서 핵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무슨 차이가 있지?"


"···."


"이월, 순진한 것은 용서할 수 있네. 하지만 순진함 때문에 테러 조직에 가담하여 관아를 전복하려 드는 건 용서할 수 없지.


안 그래도 후계자 항쟁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항쟁과는 관계도 없는 애먼 인간들의 말만 믿고 똑같은 일을 반복할 생각인가?


확증도 없는 알량한 정의심으로 테러범들과 똑같은 곳까지 떨어질 생각인가?"


"관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정말로 세존이 그런 모략을 꾸미고 있는지, 세존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발 정신 차리게. 다짜고짜 그런 소리를 해 봤자 세존이 만나줄 리가 없잖은가."


"이 녀석 개인이 연락하는 것도 아니야."


루아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아선당에서 공문이고 연락이고 죄다 보내는 중이야. 그런데 관아도 선후부도 전부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 그냥 소통의 의지 자체가 없어."


"아선당주, 장차 신무림을 현명하게 이끌고 나가야 할 그대마저 작협에게 속아 넘어간 건가?"


"애초에 아버지가 사왕이라는 초식을 개발한 것도 이상하잖아. 왜 그런 걸 갑자기 개발하려고 한 건데? 어디 쓸 데가 있으니까 개발한 거 아니야?"


"···."


"모든 게 의문투성이야. 그러니까 진실을 알고 싶다는 거야."


"진실···."


내가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그것만 알면 지금부터 흐를 모든 피를 막을 수 있습니다."


"···."


관윤은 심기가 몹시 안 좋아 보였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읊조렸다.


"···그 피는 누구의 피지?"


"우리 모두의 피지요."


내 말에 관윤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서서히 뽑아 들었다.


"틀렸다."


그가 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감히 선후부 앞에서 고집을 못 꺾고 자기주장만 펼치는 폭도들의 피뿐이지."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 또한 기를 끌어올렸다.


"우리 모두의 피라고요."


관윤의 두 눈이 번뜩이고, 은빛의 칼날이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범람.


바람에 범람을 실어 관윤의 검을 튕겨내고, 곧이어 그의 몸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궤도로 휘둘렀다.


관윤은 검이 튕겨 날 때의 충격에 몸을 실어 뒤로 빠졌고, 그 덕에 옷만 다소 찢겼다.


우리는 잠시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양 진영 모두 팽팽한 긴장 상태에 빠졌다.


당장 수십 명의 인간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가 이 일대를 피의 강으로 만들 분위기.


하나, 불필요한 희생은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관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는데,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만 나와서 싸우기로 하지."


내가 생각한 제안을 관윤이 먼저 입 밖으로 내놓았다.


"큰 희생은 내고 싶지 않으니 말이지."


"···."


냉철한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관윤이었지만, 예전에 그에게서 보았던 인간적인 다정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일이니까, 명령받은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거 좋네요. 저도 마침 같은 생각을···."


"친한 척하지 마라."


관윤의 검에서 자줏빛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둘은 반드시 싸워야 하니까."


그 기운은 관윤이 구무림에서 보여주었던 분홍색 기운과는 명백히 달랐다.


"패천논검 때 내지 못했던 결착을 오늘 내야 하니까."


그때보다 훨씬 강하고 농후했으며, 마치 석양과 저녁 하늘이 뒤섞인 듯한 오묘한 색이었다.


'저 기운은···.'


이천에게서 들었다.


화산파에는 오직 장문인에게만 배움이 허락된 내공심법이 있다고.


자하신공紫霞神功,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면, 관윤은 지금 자하신공을 발휘하는 상태다.


"이월."


관윤이 말했다.


"내가 왜 다른 매화검수들, 선배들을 제치고 세존을 지근거리에서 보호하는 위치까지 올라온 줄 아나?


내가 화산파 장문인에게 간택 받은 장문제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장문제자인 줄 아나?


내가···


현 화산파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관윤이 자줏빛으로 불타오르는 검을 치켜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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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천수살법 이천 4 23.10.05 24 1 11쪽
108 일대제자 23.10.04 26 2 13쪽
107 집으로 23.10.03 29 2 12쪽
106 석산의 색, 매화의 향 3 23.10.02 27 1 14쪽
105 석산의 색, 매화의 향 2 23.09.29 32 1 13쪽
» 석산의 색, 매화의 향 1 23.09.28 28 1 12쪽
103 대일여래大日如來 23.09.27 43 2 15쪽
102 재회와 결집 23.09.26 27 1 14쪽
101 작명사 협회 2 23.09.25 25 1 16쪽
100 작명사 협회 1 +1 23.09.22 50 2 14쪽
99 항쟁의 내막 2 23.09.21 31 2 14쪽
98 항쟁의 내막 1 23.09.20 36 2 13쪽
97 천마신공 파비야 2 +1 23.09.19 36 2 15쪽
96 천마신공 파비야 1 +1 23.09.18 34 2 13쪽
95 발도문 5 23.09.15 33 1 12쪽
94 발도문 4 23.09.14 29 1 11쪽
93 발도문 3 23.09.12 35 1 12쪽
92 발도문 2 23.09.11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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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심즉발도공 유영 1 +1 23.09.06 40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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