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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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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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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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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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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발도문 3

DUMMY

또 인질이 잡혀 버린 상황.


물론 이는 당황스러운 사태였다.


그런데 잠시 내가 굳은 틈을 타서,


"쳐라!"


중년 살수가 지시를 내리고, 다른 살수들이 령보로 일제히 내게 접근해 왔다.


2식 진·쇄강으로 몸을 강화하여 지켰지만, 살수들은 그대로 검을 휘두르지 않고 내 몸에 대기만 했다.


"!"


이는 놀랍게도 진·쇄강의 파훼법이었다.


진·쇄강은 대부분의 공격을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지만, 그 대신 사용 도중에 추풍인을 사용하지 못하는 걸 넘어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어렵다.


행동을 취하려면 진·쇄강을 풀어야 하지만, 그러는 순간 상대가 내 몸에 대고 있던 검에 힘을 주면 베이고 말 것이다.


'아까 한번 펼친 걸 보고 그새 파훼법을 고안한 건가. 역시 보통 놈들은 아니군.'


그렇다고 해서 풀지 않는다면 방금 붙잡힌 승객이 살수에게 살해당할 것이다.


진퇴양난의 상황.


"나운! 승객을···!"


급한 대로 나운이라도 보내려는데,


"끄어억!"


인질을 잡았던 살수가 갑자기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뒤에 덩치 큰 승객 하나가 주먹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 들어 보였다.


의협심 있는 승객이 살수를 잡아준 것이다.


"휴우, 다행이네요."


나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 몸에 검을 갖다 대고 있는 살수들을 떨쳐낼 차례였다.


"나운, 이놈들 좀 털어내 봐."


"예이."


나운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챙을 잡고 모자를 고쳐 썼다.


그는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바닥에 쿵 하고 놓았다.


"반시半弑 시동."


가방은 앞뒤로 열리며 'ㅗ'와 같은 형태가 되었고, 두 개의 개방된 공간에서 각각 다른 모습의 인형들이 튀어나왔다.


"반시·암. 반시·수."


둘 다 신장이 1미터 정도에 전신이 철제 골격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각각 남성과 여성의 체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반시·수. 전부 죽여."


나운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남성의 체형을 가진 철제 인형이 두 손에 넓적한 대검을 쥐고서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튀어 나갔다.


그리고 내가 진·쇄강을 풀 때까지 기다리던 살수들을 하나둘 썰어 죽였다.


"후퇴!"


살수들이 급히 내게서 떨어지는데, 그와 동시에 진·쇄강을 풀며 뒷걸음질로 땅을 밟았다.


5식 진·교지.


내공이 실린 발걸음에 바닥이 갈라지고, 복잡하고 불규칙한 모양으로 솟아올랐다.


살수들을 지반의 벽들 사이에 얼기설기 가두고, 그 틈에 범람을 날려 그들을 하나둘 베어서 쓰러뜨렸다.


살수들은 모두 젊었다.


유영은 젊은 살수 중엔 영힐에게 영향받은 이들이 많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 살수들은 속도가 빠른 쾌검을 지향하고 있을 터이나,


···검이 빠르기 이전에 움직이는 속도가 느렸다.


그들이 죽어가는 동안 어떤 얼굴을 했든 간에, 나는 냉철함을 유지했다.


"발도문이여, 다른 초식들의 대책은 아직 없는 모양이구나."


"이월!!"


젊은 살수 하나가 분개하여 내게 검을 휘두르는데, 반시·수가 날아와 그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살수라는 작자들이 자제심마저 잃어버리고 말이죠."


나운이 여유롭게 웃었다.


승객들을 위해 평화를 약속해야 할 이 자리서, 주제도 모르고 검을 들고 설치는 살수들은 나와 나운에게 철저히 사냥당했다.


"놈!"


한 살수가 나운의 본체를 노리고 덤벼들었는데,


통하지 않았다.


5자루의 칼날이,


반시·암의 손가락에서부터 솟아난 5개의 손톱이 그의 검을 막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성인 남성 이상의 근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반시·암은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그 살수를 거꾸로 찢어 죽였다.


"우, 움직이지 말라고! 이월!!"


살수 하나가 또 승객들에게 달려가는데,


"하아앗!"


어느 승객이 낚싯대 같은 걸 휘두르자, 쇠공이 달린 찌가 날아가 살수의 머리를 후려쳤다.


나와 나운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의협심 있는 승객들, 그리고 경비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살수들에게 맞섰다.


다대다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서울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발도문 입장에서는 예상외의 상황과 맞닥뜨려 당황스러운 상황.


그들은 작전 따윈 잊고 오합지졸처럼 싸웠고, 단숨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갔다.


그렇게 발도문 살수들의 주검이 20구 정도 쌓였다. 실력이 미숙한 젊은 살수들뿐이었다.


'이가살수문과 쌍벽을 이룬다는 천안의 발도문이 고작 이 정도 실력일 리는 없지.'


내 진·쇄강을 파훼한 작자가 저 주검들 사이에 섞여 있을 리는 만무했다.


지금까지 덤빈 살수들은 살수의 최고 등급인 흑골은커녕 그 아래인 주골에도 못 미치는 황골 수준의 실력이었다.


그들은 단지 내 무공을 파악하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고, 조황현이나 영힐 같은 흑골 급의 고수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대기 중일 게 뻔했다.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미끼로 쓰인 젊은 문하생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이런···."


살수들을 지휘하던 중년 살수가 혀를 찼다.


"이월을 잡을 사람이··· 정녕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아마 저 양반이 조황현의 뒤를 이은 2대 발도문주일 터였다.


"물러날 수밖에 없겠군."


그가 손을 들자, 살수들이 모두 뒤로 물러나며 몸을 피했다.


발도문주 역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저 또한 거짓이었다.


발도문과 맞서 싸울 무림인들이 많았기에 일시적으로 물러난 것뿐, 얼마 안 가 또 기습해올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도와준 덕에 일시적으로나마 그들을 몰아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우리가 살수들을 몰아냈다!"


시민과 경비들은 저들끼리 부둥켜안고 승리를 기뻐하며 춤췄다.


그들의 열광은 내 몸과 마음도 달아오르게 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타인을 위해 힘을 써주는 자들.


유영이나 문암 같은 이기적인 작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렇게 선량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저, 저기!"


한 청년이 내게 다가왔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그의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숨기지 않고 기꺼이 대답했다.


"무림사대지존의 일각, 풍존 이월입니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소수든 다수든 간에, 내가 지켜주어야 한다고.


그들의 선량함이 결코 의미 없는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수희의 부탁대로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나 자신이 이천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나운, 어서 나가자."


"옙."


그렇기에 이곳에서 서둘러 떠나야 했다.


앞으로도 길이 복잡한 곳과 대중교통은 피해야 한다. 발도문 살수들이 이용할 만한 패를 만들어 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빠져나가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옥상으로만 다니는 게 주변 관찰이 쉬웠다.


"한남동 북동쪽에 매봉이라는 언덕이 있는데, 거기 나선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나운이 먼 곳을 내다보며 말했다.


"도보로 가면 1시간 반 정도 걸리겠네요."


"아무런 적과도 맞닥뜨리지 않았을 때, 말이겠지."


"그렇죠."


"서두르자."


나와 나운은 경공술로 옥상들을 건너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근처에서 살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발도문의 령보는 굉장히 뛰어난 보법이라서 작정하고 사용한다면 근처에 오기 전까지는 기척을 알아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으앗!"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살수 하나가 눈 깜빡할 새에 나운에게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나운을 수호하는 반시·암이 먼저 알아채고 반격하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나운은 허리를 베였고, 살수는 반격당하기 전에 유령처럼 점멸하며 사라졌다.


서울역에서 만났던 살수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은밀함과 정확도. 최소 주골 급이다.


그러는 사이에 살수 둘이 령보로 다가와 또 나운에게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목을 한 번에 베는 궤도로 범람을 날리는데, 마치 진짜 유령이라도 되는 듯 두 사람은 범람을 그대로 통과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대기 중이던 반시·수가 두 자루 검을 휘둘러 나운의 반대편을 쳤다.


분명 그곳은 텅 빈 곳이었는데, 갑자기 방금 보았던 살수 두 명이 나타나서는 용을 쓰며 반시·수의 대검을 막아내었다.


즉 이전에 살수들이 다가오던 방향은 가짜였고 반시·수가 쳐낸 방향이 진짜였다.


살수들은 대검의 위력에 체중을 맡겨, 뒤로 튕겨 나가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환술인가.'


암살에 필요한 장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인위적으로라도 만든다.


그것이 발도문에서 가르치는, 상식을 찌르는 발도의 기본 이념이었다.


"제기랄, 저 녀석들 다 나만 노리잖아?"


나운이 허리를 잡고 신음했다.


"괜찮나?"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나운이 망토 안쪽을 보여주었다. 작은 인형들 몇이 망가져 있었는데 몸은 무사했다.


"얘네들이 막아줬거든요."


"다행이군."


나와 나운은 길을 서둘렀다.


그러는 동안 나운은 살수들의 습격을 더 받았는데, 환술을 이용한 신묘하기 짝이 없는 기습들뿐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에 나운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숨도 가빠졌다.


"아무래도 만만한 저를 먼저 죽이는 걸로 노선을 바꾼 것 같아요. 아니면 배신자에 대한 숙청일 수도···."


나운을 먼저 죽이려는 속셈도 있겠지만, 내 전력을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을 터였다. 내가 뇌단법의 다른 진식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선당의 첫 호법인 나운과 싸운 이래로 사용한 진식들은 모두 발도문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초식은 1식 진 뇌단, 3식 진 극병, 6식 진 비람, 7식 진 통천, 이렇게 4개뿐이다. 이 초식들은 되도록 아끼는 게 좋겠다.


"아직 죽기 싫어."


나운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기 싫어서 풍존에게 붙은 건데, 여기서 죽으면 진짜 개죽음이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죄송해요. 근데 농담 아니고 저 진짜 무서워서 정신 나갈 것 같아요."


일단 그를 살려서 받아주었으니, 나도 바로 그를 죽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살수는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다.


살수 다섯이 령보와 함께 나타났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많은 머릿수. 나운을 완전히 끝장낼 심산인 듯했다.


"으아아!!"


나운도 겁에 질려서 소리를 지르는데, 이에 내가 선택한 것은,


9식 진·월공.


공포의 기를 사방으로 뿌려서 살수들을 붙잡는 수였다.


같은 수를 여러 번 쓰면 당연히 좋지 않다.


따라서 나운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최대한 많은 살수가 한꺼번에 덤비는 때를 기다렸다.


또한, 지금까지의 습격들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생명이 없어서 그런지, 나운의 인형들에게는 환술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으로···


나운과 살수들은 모조리 움직임을 멈추었지만, 나운의 반시 인형들만은 진·월공 속에서도 멀쩡히 활동했고,


공포라는 이름의 덫에 걸린 살수들을 무참히 썰어 죽였다.


"으거어어···."


진·월공을 풀자 나운은 해괴한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이, 이, 이거 지, 지, 진짜 적응 아, 안 되네요···. 하, 하하하···."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주골 급 살수들과의 싸움을 시작한 지 약 40분.


우리는 어느 거대한 건물 터를 지나쳤다.


전쟁기념관이었는데, 평화의 광장이라는 거대한 터가 앞마당에 나 있었다.


'···그래.'


지금처럼 도망치면서 싸울 바에는 차라리 저런 데서 자리 잡고 싸우는 게 나아 보였다.


사람도 거의 없고, 결전을 벌이기에는 딱 좋았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풍존? 어디로 가시나요?"


"이놈들 다 정리해 놓고 간다."


평화 따위는 없을 평화의 광장으로.


작가의말

내일 벌초 약속이 잡혀서 다음 화인 발도문 4는 9월 14일 목요일에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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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천수살법 이천 4 23.10.05 24 1 11쪽
108 일대제자 23.10.04 26 2 13쪽
107 집으로 23.10.03 2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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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석산의 색, 매화의 향 2 23.09.29 32 1 13쪽
104 석산의 색, 매화의 향 1 23.09.28 2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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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재회와 결집 23.09.26 27 1 14쪽
101 작명사 협회 2 23.09.25 25 1 16쪽
100 작명사 협회 1 +1 23.09.22 50 2 14쪽
99 항쟁의 내막 2 23.09.21 31 2 14쪽
98 항쟁의 내막 1 23.09.20 36 2 13쪽
97 천마신공 파비야 2 +1 23.09.19 36 2 15쪽
96 천마신공 파비야 1 +1 23.09.18 34 2 13쪽
95 발도문 5 23.09.15 33 1 12쪽
94 발도문 4 23.09.14 29 1 11쪽
» 발도문 3 23.09.12 35 1 12쪽
92 발도문 2 23.09.11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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