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으로 말할 때 문단 바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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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화법이 필요한 이유
대단히 극적인 장면을 제시하면서 내가 묘사 내용을 두 개의 단락 안에 가두라고 요구하며, 대화체는 나오면 안 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간접화법으로 처리하라고 앞에서 조건을 달았던 까닭은 대화체 단락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개념(idea)이나 행위(action)만이 담겨야 이상적이듯, 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상황만을 담기가 보통이다. 그래서 상황이 끝나면 줄을 바꾸고 새로운 단락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화체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말을 주고 받을 때, 그러니까 말하는 주체가 달라질 때마다 단락의 길이를 고려하지 않고 줄을 바꾸는 것이 원칙이다. 영화에서 대화를 주고 받을 때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장면 전환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더구나 우리말에서는 따옴표 안에 담긴 말의 내용과 그 말의 주체도 행갈이를 하여 따로 새로운 단락을 만든다. 이렇게 말이다.
“내가요?”
갑분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단 한 마디의 말이 두 개의 단락이 되어, 창녀촌에서 어머니와 딸이 만나는 장면을 묘사할 지면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영어의 경우는 달라서, 말의 내용과 말하는 주체가 하나의 단락에 함께 들어가는 원칙이 확고하다. 이렇게 말이다.
“Yes,” Juliet said, “I love you.”
이 문장에서 보면 두 개의 쉼표로 세 토막의 글이 연결되어 단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마침표는 마지막에 하나만 찍었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 소설식으로 번역하면 세 개의 문장에 세 개의 단락으로 바뀐다.
이렇게 말이다.
“그래요.”
줄리엣이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우리말의 대화체 구문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여 모든 작품에서 서양식으로 단락을 끊고 잇는다. 내가 그렇게 적은 또 다른 이유는 번역지침서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 예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네가 그랬니?”
배용준이 말했다.
“그래.”
영애가 말했다.
용준은 영애를 노려보았다.
“한심하구나.”
“뭐가 한심해?”
용준이 다시 노려보았다.
“밥이나 먹자.”
영애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이 김선생님 생일이지?”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밥을 먹으러 갔다.
여기에서 “밥이나 먹자.”는 말은 누가 했을까? 만일 영어식으로 이렇게 써놓으면, 그런 혼란은 생겨나지 않는다.
“뭐가 한심해?” 용준이 다시 노려보았다. “밥이나 먹자.”
영애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이 김선생님 생일이지?”
하지만 우리말 대화는 이렇게 오고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뭐가 한심해?” 용준이 다시 노려보았다.
“밥이나 먹자.” 영애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이 김선생님 생일이지?”
그런가 하면 “밥이나 먹자.”고 영애가 말한 다음 “그런데 오늘이 김선생님 생일이지?”라는 질문은 용준이 했는지도 모른다.
예문에서처럼 대화가 시작되는 경우 화자의 신분 확인은 한 번씩만 하고, 뒤에서는 번거로워서 ‘누가 말했다’라고 일일이 밝히지를 않기가 보통이며, 그래서 이런 난처한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작가가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논리적 글쓰기의 흔한 한 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 안정효 저, 글쓰기 만보, 모멘토 출판사, p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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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 선생의 작법서에 나온 내용 중 발췌입니다. 본문은 안정효 선생의 주장이며, 제 개인적인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참고하시라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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