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있었다.
여느 소녀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도 부모님의 축복 속에서 약간은 부끄럽고, 약간은 조심스러운 첫 울음으로 세상을 적시며 태어났다. 여느 소녀들이 그렇듯, 무궁무진한 꿈과 가슴 설레는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설계하며 첫 걸음마를 떼었다. 여느 소녀들이 그렇듯, 심장 한편을 가볍게 옥죄는 열렬한 애정과 초연의 인고를 견뎌내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의 행복한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여느 소녀들에게는 흔치 않을 친부모의 배신, 여느 소녀들에게는 흔치 않을 친구들의 멸시, 여느 소녀들에게는 흔치 않을 어긋난 욕정의 끔찍한 고통, 여느 소녀들에게는 흔치 않을 처참한 실연.
일곱 번.
일곱 번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은 후, 소녀는 자신을 죽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담갈색의 눈동자가 진홍색 핏빛으로 물들었을 때, 소녀는 결심했다. 넓고 넓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자신이 가져야 할 존재의 의미는 복수 뿐이라고. 그리고 소녀는 자신을 복수에 걸맞은 첨예한 칼날로 제련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꿈을 꾸며 성장했어야 할 육신은,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생기를 잃은 거대한 날붙이로 변화해버렸다.
소녀가 있었다.
여느 소녀들이 가지고 있던 청아한 웃음을 잃어버린.
복수에 물들어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가는 소녀가 있었다.
은유하.
소녀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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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제목은 작년 12월 30일 EasyReader님이 올려주신 추천글을 허락을 맡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문제가 될시 자진 수정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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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키보드를 잡습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오래도록 망설인 끝에 다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애당초 문피아에 처음으로 입성하여 두드리려 했던 글의 모티브를, 이 '은유하'라는 작품에 조심스럽게 녹여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호흡이 길 것 같습니다.
로맨스와도 거리가 멀 것만 같습니다.
남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갑니다.
복수심과 증오에 가득 찬 어린 유하가, 연우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성장해가는 내용이 주를 이루겠지만, 과연 제가 의도한 대로 제목의 의미가, 제가 완결한 본편인 '은유하 Remember'와 제대로 부합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그간 만나뵙지 못했던 기간에 제 나름대로 열심히 갈고 또 갈아본 어쭙잖은 글재주로 다시 한 번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또한, 소정의 목표를 만들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아 보겠습니다.
목표는 선작 수 500돌파입니다.
'로맨스'라는 문피아 내 장르적 유·불리 속에서 과연 이뤄낼 수 있는 목표인가 겁을 내보지만, 그래도 일단 칼을 빼었으니 이정도는 포부를 가져 보아야죠.
아직도 제 글을 선작 취소하지 않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기다려주신 분들께 이 글을 바치겠습니다.
관심어린 클릭 한 번, 그리고 취향에 맞으시다면 앞으로 저와 함께 달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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