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하며 마음에 품은 정의 역시 실천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꿈도 희망도 다 제가 쌓은 바벨탑이란 걸 직시하고 나니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됐다. 나를 사랑할 수 없으니 남도 사랑할 수 없게 됐다. 하나부터 열까지 공허의 증거일 뿐. 이건 결코 무마시킬 수 없는 부정의 확신이다.
'시험 보기 전날, 여자 친구랑 헤어진 그날, 수치심을 감출 수 없었던 그날, 사람들한테 학대당했던 그날. 운석이라도 떨어져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았을 텐데. 핵전쟁이라도 터졌으면 좋았을 텐데.'
꿈꿨던 이상(理想). 궁극적인 희망. 자기 지질함을 감추기 위한 마지막 수단. 지질한 나를 위해서, 추한 나를 위해서, 호감 따윈 살 수 없는 나를 위해서. 세상은 멸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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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그렇게 동경하던 영웅들도 똥 싸고, 오줌 싸고, 코 후비고, 섹스하고. 추할 땐 추하고, 또 허황된 가치를 쫓아 살았습니다.
영웅이라고 영웅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신격화된 인간이었을 뿐.
우리나라 정치에서 주요했던 인물들도, 심지어 명성황후나 정조 같은 사람들도.
결코 시원시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괴로웠습니다.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나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 소설 등장인물도 마찬가집니다. 아니,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보다 훨씬 못한 인간들입니다.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신념에 차있지도 않습니다.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신에게 선택받지도 못했습니다. 다들 좀 모자랍니다. 어딘가 결핍돼 있습니다.
승자 독식세계에 환멸을 느낀 인간 실격자이자 인생에서의 패배자, 이성경.
신념만 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지질이, 이진효.
지나친 만용으로 자기 인생을 망치는 인물, 윤태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남자'에서 찾으려 하는 윤효주, 은지민.
겉멋에만 찌든 인물 민혜광, 김태수, 오환신.
너무도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인물, 이유진.
이 사소하고 유치한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뭐 때문에 살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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