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최근 책을 읽을수록 평범한 주인공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합니다. 물론 무협/판타지를 불문하고 소설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그러한 것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전형적인 정의롭거나 사악한 혹은 냉혹한 그런 일반 사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을 볼 때면, 요새는 더 이상 공감이 가지 않아 책을 그냥 덮게됩니다.
제가 장르소설에 손을 댄 10년동안을 보면, 다른 독자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주인공들의 상(像)이 몇차례 변해왔습니다. 초기에는 영웅문이나 데로드앤데블랑 같은 정의로운 전형적인 기사 혹은 무인의 모습이, 그 후에는 만선문의 후예나 무한의 진인같은 선인도 악인도 아닌 어중간한 주인공의 모습이, 최근에는 이기적인 성격의, 어떻게 표현하자면 악하다고 할 수 있는 극단적의 주인공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특히나 최근의 주인공들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쾌감)를 제공하죠. 같은 상황이라면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선택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짜릿한 자극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초기에는 이러한 자극이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변화라는 건 항상 신선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자극을 찾다보니 점점 그 이상의 자극을 주는 책을 찾기 어려워 졌습니다. 계속해서 전작들의 주인공보다 좀 더 강하고, 살 떨리고, 자극적인 책을 찾는 것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약 중독자가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위해 복용량을 늘리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저의 두뇌가 너무나 강한 자극에 적응해버려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더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해 둔해져버린- 촌부님의 화공도담이나, 오래되었지만 조진행님의 천사지인 같은 책은 가끔씩 달아오른 제 뇌를 식혀주는 단비와도 같습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만, 요지는 소설의 주인공이 필수적으로 거대한 힘이나 학식을 갖지 않더라도, 그리고 위세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더라도, 또한 항상 중요한 세상의 일이 엮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소설을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거나, 혹은 야심에 불타 정복 혹은 파괴하려는 그러한 주인공이 아니라,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저희 일반인들처럼 희노애락 속에 사는 평범한 주인공을 보고싶다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런 주인공은 어떨까요?
가까운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어쩔 수 없이 힘을 드러내곤 하는 힘을 숨긴 은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복수는 생각할 수도 없는 주인공말입니다. 혹은 남의 눈에 드러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는 중간 정도의 삶을 살며 주변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주인공도 좋겠지요.
원래 이것이 세상사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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