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내세울 점이라고는 문피아 가입일 밖에 없는 9년차 문피즌이자 글쟁이 지망생입니다. 그동안 댓글을 작성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글을 작성한 적은 없었는데, 첫 글이 이런 물건이 되어버려서 유감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하이텔 시리얼-무림동, 나우누리 S/F 게시판에서 판타지 소설, 무협 소설을 읽었고 언젠가는 저 자신도 그것을 쓰고 싶다고 꿈꿨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 끄적대다가 펜을 놓기 일쑤였지요.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쳤고 군대도 다녀왔고, 이제 대학도 1년 더 다니면 졸업입니다. 거짓말을 약간 보태서 말씀드리자면 군대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문피아에 들리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련과 사건을 겪고 사람을 만나면서, 저 자신이 어째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지요. 물론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든 여러분들께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문피아에서는 작가와 글,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이 중요하겠지요.
예전에 만화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거 읽지 마라. 머리 나빠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만화책을 읽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는 내다 버리는 분도 계셨겠지요. 문피즌 분들도 이러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만화책이라는 물건은 어떤 물건입니까? 청소년에게 유해한 타파대상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입맛에 맞는 신선한 매체일 뿐입니까? 아마도 여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하면 싸움나기 십상이겠지요. 온갖 주장과 예시가 오가는 통에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 아십니까? 부모님들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라. 책 좀 읽어라.” 하시겠지요. 우리나라 부모님들 중에서 아이가 읽을 책을 사주는 데 돈을 아까워하는 분 안 계십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부모님께서는 동화, 위인전기, 과학백과사전 많이도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소설책도 사주셨습니다. 소설이요? 정말 옛날에는 이런 것 읽으면 혼났습니다. “읽어라, 읽어라” 하는 소설이 문학은커녕 불쏘시개 취급받는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이라서 실감이 안 될 뿐입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만화책이라는 물건은 어떤 물건입니까? 그리고 통칭 ‘장르소설’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어떤 물건입니까?
세상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오늘날 여기저기에서 쉴 세 없이 떠들어대고 응용되는 심리학이 학문으로써 본격적으로 연구된 지가 불과 10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소설이요? 끊임없이 정진하는 작가가 글을 쓰고, 양식 있는 독자가 글을 읽고, 제책기술이 발달해서 현실적으로 누구나 책을 접할 수 있게 되기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소설이 소설로써 인정받기까지 과연 어느 정도의 시일과 역사가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화는요? 노래는요? 이것들은 어떤 물건입니까? 배우와 가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지요?
이것을 어느 개인이 단번에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쌓이고 쌓여서 이룩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작가가 자기 글을 소홀히 대하고, 독자가 아무 글이나 아무렇게나 읽고, 그것을 예의바르게 지적하는 사람이 무뢰한으로 몰린다면 언제까지고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 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저는 여태 습작만 하고 있을 뿐 정말로 제대로 되었다 자신할 수 있는 글은 아직 쓰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로서 인정받는 나이대가 어느 정도인가 고려하면 아직 초조해하기는 이르다는 생각도 하지만, 역시 조바심이 납니다. 습작을 하면 형편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남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들겨 맞지요. 한숨 푹 쉬고 다시 펜을 잡습니다. 정말 천재들은 20살 무렵부터 명작을 쏟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다른 세상 얘기입니다. 계속 열심히 쓸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꼴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허울 좋은 이상을 꿈꾸지는 않을 겁니다. 당장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그것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즐겁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나쁘겠습니까. 나쁘다면 돈 된다며 무슨 글이든 닥치는 대로 출판하고 보는 저질 출판사와, 허술한 태도로 글을 쓰면서도 희희낙락하는 저질 작가, 그리고 그런 저질 소설이 계속 출판될 수 있는 기반을 알게 모르게 만들어주는 저질 독자가 나쁘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사람은 자신이 저질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저질’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분노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질이라도 노력해서 양질로 바꾸면 됩니다. 세상 천지에 날 때부터 잘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습니다. 아니면 설마, 지금 ‘판타지, 무협’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통되고 있는 소설들 대다수가 질적으로 훌륭한 작품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이대로라면, 장르소설은 앞으로도 그냥 장르소설입니다. 언제까지고 그냥 장르소설입니다. 한두 사람이 용을 써봤자 소용없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물으셔도, 저는 딱히 대답해드릴 말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글쟁이 지망생이니까 꽁무니에 붙은 지망생이라는 말을 떼어내기 위해 정진할 것이고, 그 다음부터도 계속 그렇게 글을 쓸 겁니다.
그동안 문피아에서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논쟁이 발생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습니다. 작가가 자기 글을 성심성의껏 대하고 있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논쟁이 몇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되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그러한 작가를 독자들이 과연 언제까지 용인할지 의문이 듭니다. 요즘 독자들 입맛이 제법 까다롭거든요. 도태되고 싶지 않으면 작가 스스로 노력해야겠지요. 그리고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당연히 진통이 수반될 겁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정진하는 작가에 더불어 비로소 양식 있는 독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겠지요. 그리고 이 둘의 사이에 계신 분들의 노고 또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문피아가 문우(文友)들에게 건필(健筆)을,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곳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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