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나름 중세 유럽 미시사 덕후라서.
중세 사람들이 목욕을 했냐 안 했느냐는 문제는 가끔 인터넷에서 떡밥이 되곤 하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긴 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서양중세사 책만 뽑아봐도 대충 한 수십권 나오는데(...) 마르크 블로크의 저서 같이 학술적인 문서들보다 미시사 쪽을 탐구하면 일단 곳곳에서 목욕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화장실의 문화사라던가,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같은 책들요. 물론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하진 못하지만 나름 읽을 만합니다. 사실 이런 쪽으로 논문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교양서들이나 이런 영역을 잘 건드리거든요. 여튼 고대 로마인들은 공공목욕탕을 즐겼다던가 바이킹들이 특정 요일마다 목욕을 했다든가 하는 까마득한 이야기 말고 중세 쪽 기록이나 소설에 대해 몇 가지를 썰 풀자면,
<시식시종>에서는 “난 원래 한 달에 한 번 손을 씻을까 말까 했는데 이젠 영주 새퀴 때문에 하루에 두 번 손을 씻는다”는 대목이 있었죠.
<중세 산책>에는 한 기사와 처녀 이야기가 나오는데, 숲 속에서 몸을 씻고 있던 처녀와 그 기사가 마주치는 이야기입니다. 낄낄. 둘 다 놀라지만, 여자가 등을 태연히 등을 닦아 달라 말하고는 기사가 다 닦아주자 옷 입게 그만 가달라고 했던가. 뭐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군요. 그게 12세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책이나 좀 더 봐야지 원.
또 어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는데...한 귀족 여성이 잘생긴 수도사를 보고 마음을 뺏겨 언젠가 한번은 그에게 접근했는데, 고행을 목적으로 한 번도 씻지 않아서 엄청난 냄새가 나더라던가. 어떤 성녀는 평생 씻지 않은 걸로 유명하더군요. 이 일화에 따르면, 당시에 안 씻는 건 당연하다기보다는 고행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흠.
순례, 요양, 치료 등의 목적으로 온천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도 굉장히 흔합니다. <젊음의 샘> 같은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
또 어떤 책이었더라. 로베르 들로르의 <서양 중세의 삶과 생활>? 나중에 다시 확인해봐야 할 거 같은데. 귀족과 도시민들은 12세기 이후 씻는 데 맛들여서(...) 농노/하층민들과 구분 짓는 기준 중 하나가 악취였다고들 그러죠. 그때는 도시민과 농민들이 서로에게 ‘적개심’까지 가졌다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좀 이해하기 힘들죠.
중세에도 공중목욕탕이 유명하긴 한데. 매춘에 매독으로 철퇴 맞고 죄다 폐업 크리. 아까 말한 <중세 산책>에서는 어떤 기사가 목욕탕집 딸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거 못마땅해 한 기사 아버지가 부하를 시켜서 여자를 호수에 익사시켜버렸죠. 이에 졸라 빡친 아들내미가 아버지 원수에게 달려가 ‘선봉’에 서서는 전쟁 일보직전까지 간 초 개막장 스토리...결말요? 황제가 나서서 부자를 화해시킨 다음에 기사는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아뜸. 에라이.
몇 가지 기록들만 보면 일단 씻기는 씻었어요. 특히 12세기 이후로는 뭐 꽤 씻은 것 같습니다. 이슬람 기록 쪽에 보면 “유럽 새퀴들은 프랑크 왕궁 사람들도 1년에 2번 씻는다”던가 “왕의 악취가 대단하더라”던가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일단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거 8세기의 기록입니다. 8세기, 12세기 15세기를 동급으로 놓을 순 없잖아요.
+ 지금 기준으로 봐서는 좀 심각했다는 거지. 사실 일본과 영미권이 당대 기준으로 좀 편집증적으로 씻었던 거였죠. 평민들은 개울에서나 씻는 게 보통이었고, 도시쯤 되면 부유한 ‘시민’들이라면 모를까 씻는 건 근대까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목욕은 상수도 시설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거든요. 물값은 공짜가 아닙니당.ㅋ
중구난방으로 지껄였는데 일단 요약하자면
1. 시대마다 다름.ㅋ 중세를 언제로 기준을 잡느냐가 문제거든요! 서로마 멸망부터라면 서기 476년, 중세의 끝을 르네상스 이전으로 잡아도 15세기가 됩니다. 자그마치 천년. 으잌.
2. 나라마다 다름.ㅋ
3. 지역마다 다름.ㅋ
4. 사람마다 다름.ㅋ
5. 십자군과 12세기 이후로는 귀족들도 씻긴 씻음.
대충 이렇습니다.
일단 상세한 기록들은 나중에-_- 집에 가면 책들 다 꺼내놓고 출처 명시까지 해놓은 다음 정리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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