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이스 님의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바로 밑에 있는 글입니다.
언제나 제 댓글은 자꾸만 길어져서 결국 그냥 새 글을 써버리게 되었습니다.
흔한 회귀물이든 욕망분출 물이든 게임 판타지든 이고깽 차원물이든 얼마든지 철학적 성찰을 주제로 전달할 수 있죠. 위의 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4가지를 따로 때내든 하나로 합치든 아니면, 야설 하렘식 막장 초성체 글로 전개한다 해도 당연히 인간에 대한 성찰 담은 주제를 얼마든지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습니다. 작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죠.
1. 주인공은 가족이 모두 반역죄로 처형당해 멸족한 귀족 가문의 둘째다.
-> 인식의 문제입니다. 진실의 확인 여부에 대해 주제의식을 탐구해나가면 됩니다. 주인공의 인식 여부에 따라 인물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테니까요. 진짜 가족들이 반역을 일으켰고 못된 짓을 많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반면 억울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명확하게 인지하느냐에 대한 확신 문제입니다. 가족들은 진짜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주인공은 그걸 누명이라 인지한다면요? 세상 전체와 주인공 혼자의 인식 차이로 엄청난 갈등이 일어나겠죠?
즉, 무엇을 진리라고 할지에 대해 다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걸 조금 더 발전시키면 인식론의 문제에 이르겠죠.
2. 주인공은 그들을 반역죄로 몬 특정 귀족(혹은 국가)에 크나큰 반감을 품고 그걸 전복시키거나 처치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 왜 가족이 당한 것에 대해 한 인간이 반감을 품느냐 또한 훌륭한 문제입니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를 탐구해나가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한 인간 개체의 유기체를 나 자신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얼마든지 품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래로 내려가봅시다. 인간 개체는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진 집합체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미토콘드리아도 원래 외부에서 침입한 박테리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위로 올라가볼까요? 우리는 인간 개체가 모인 하나의 무리-가족, 친구집단, 국가-를 하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옛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자기 개체의 이득을 쉽게 포기하기도 했잖아요? 한국인의 경우 외국인에 대해, 지구인의 경우 외계인에 대해, 인간의 경우 동물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외집단을 만들려하고 타자화시키며 나와 다른 것이라고 믿고 싶어합니다. 충분히 고민해볼 거리겠죠.
3. 우연적으로, 혹은 치밀하게 기반을 만든다(개인적인 힘이건, 조력자의 힘이건).
-> 기반을 만들면서 타인을 이용한다는 것도 그렇죠. 인식의 문제와 나와 너의 경계 문제에서 확답을 내렸다 하더라도 이제는 관계의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치밀하게 짜여진 인간관계의 거미줄에서 각 개체들의 성욕과 명예욕 등이 어떤 방식에서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주제의식을 전달할 수 있겠죠.
4. 복수에 성공한다.
-> 복수에 대한 것.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이며 그렇게 결정한 '나'가 타자들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하기로 마음먹었을 경우 복수에 대한 표현은 이미 그 방향성이 결정되어 있을 겁니다.
예컨데, 세계를 인식하는 건 나만이 옳고 나는 오로지 우리 민족까지이며 타자와의 관계는 나의 권력이 우선되어 내가 주인이고 타인이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마쳤다고 합시다.
이런 아둔한 상황에서조차 복수란 것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타자가 마치 나를 노예처럼 부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관계를 역전시켜 스스로가 주인의 위치에 올라서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복수를 이룬 순간 노예 시절 가졌던 모든 자신의 신념과 세계 인식틀이 붕괴되는 걸 경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계가 변하면서 예전에 신념을 생성시킨 기반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대체 역사 소설을 예를 들어 봅시다. 현대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를 보고 분노한 한 한국인이 조선시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현대 문물을 전수한 다음 일본을 점령하고 그들을 식민지로 삼는다고 합시다. 그 이후에도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일본이 우리에게 한 것이랑 똑같은 짓을 저지르겠죠? 물론 소설이라서 일본인들이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일본인들이 일제 점령 당시 한국인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고 역사 교과서(소설)에 쓰는 거랑 뭐가 다른지 알기 힘들어지죠.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이 싫어했던 예전 주인의 신념과 세계 인식틀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죠. 발견 못한다고 하면 그거대로 좋은 블랙코메디가 될 것이고요. 굉장히 재미난 주제의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인기있고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고민들은 넣지 않는 게 상책 아닐까요?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요즘 누가 글까지 읽어줘가며 고민하고 싶어합니까. 사실 여기 독자분들 중엔 셀프 고통받으시려는 분들이 은근히 있긴 하지만, 장르 시장의 절대 다수는 욕망분출물을 봄으로 인해 힐링 아닌 힐링을 당하고 싶어할 뿐일 겁니다. 아니면 도서관 가지 뭐하러 책방 가서 판타지를 읽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도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저런 게 들어가는 순간 글쓰기 난이도도 급증하며 글 전개에 있어서 쓸대 없는 사족이 엄청나게 들어가야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괜한 주제의식보단 클리셰 자체가 함축하는 뻔한 주제의식을 선택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독자가 매의 눈으로 찾아낸다면, 모든 양판물들의 구조 자체는 이미 엄청난 주제들을 담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주로 한국의 현실에 대한 블랙코메디이긴 하지만요. 그런 것들은 새로운 주제 의식 탐구 없이도 손바닥만 뒤집어도 충분히 캐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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