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 글을 읽다 떠올라서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개연성이라는 말보다는 소설적 진실이라는 말을 더 좋아 합니다. 그러니 제가 쓰고 싶은 개연성이란 즉, 제가 담아내고 싶은 소설적 진실입니다
2.
전 소설적 진실이, 환경과 대상의 환유 또는 대유 관계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호랑이의 겉모습과 습성은 호랑이가 살아가는 환경 전체를 함축 하고 있습니다. 호랑이의 이빨은 그가 섭취하는 먹이들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고 그의 줄무늬는 햇살이 아롱아롱 내리는 숲을 얘기하고 하고 있습니다.
혹은 은하수를여향하는히치하이커에 나왔던 이야기처럼, 치즈케이크 하나가 우주 전체를 함축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치즈케이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걸 구성하는 분자들을 만들어낸 우주의 역사를 증명하고, 그런 걸 만들어낼 지성체의 존재를 암시하고, 그 지성체의 크기와 음식의 섭취 방식, 어쩌면 문화적인 특질까지도 내포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환경과 대상 사이에 환유/대유 관계가 성립합니다. 하나의 대상은 필연적으로 그 대상을 만들어낸 환경을 함축하고 또는 그 환경이 그 대상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했다... 라고 말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환경과 대상의 관계가 깨어지면, 아무래도 어색함을 느끼게 됩니다. 숲에서 살던 보통의 호랑이가 동물원에 넘어와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면...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죠. 혹은 원시인들이 치즈케이크를 먹거나요. 이런 이상한 사실들이 새로운 관계를 드러내주지 않는 이상, 개연성이 깨졌다. 라는 평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적 대상이 소설적 환경과 조응하는 이 시적인 관계가 바로 개연성이고, 소설적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인물의 성격, 행동, 말이 그를 둘러싼 환경을 환기시킬 때, 독자들은 진실을 느끼게 됩니다. 설령 그 이야기가 모조리 허구라고 해도요.
3.
소설적 진실이 없어도 그 소설은 재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다 오래 기억에 남거나 감동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개연성이 필수는 아니지만,
나의 글이 반짝하고 잊혀지기 보다는 꾸준히 오래 읽히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늘 두고 기억하고싶어지는 그런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면,
역시 개연성, 또는 소설적 진실을 담는 작업은 피해갈 수 없는 난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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