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르블랑 님의 서재입니다.

역대급 무역천재가 사업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10.16 10:21
최근연재일 :
2023.12.18 19:02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73,513
추천수 :
2,170
글자수 :
417,030

작성
23.11.13 12:25
조회
1,194
추천
36
글자
12쪽

30화 과거가 이어주는 인연

DUMMY

수돗물에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 들어온 차진구의 모습.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가 처음 빙의하던 때의 모습은 아니다.


환골탈태는 아니라고 해도 많이 세련된 모습.

볼살이 붙고 피부는 훨씬 더 매끈해졌다.

역시 외모도 돈을 들이는 만큼 나아지는 법.


사모가 처음 데려갔던 미용실에 이제 VIP 고객이다.

같은 건물의 위층 피부과에서 피부 테스트를,

피부관리샵을 통해 잘 맞는다는 화장품을 추천받았고 이젠 가끔 들러 관리도 받는다.


키높이 구두를 신고 보면 그래도 이제 최소 173 정도는 되어 보인다.

게다가 몸에 걸친 고급스러운 옷.


얼마 전 직접 B/L을 전해주겠다고 회사를 찾아왔던 배광식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를 보던 녀석의 표정과 눈빛.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차진구가 되었다는 것을...



그동안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끔찍이도 아끼던 3대 독자인 아들.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항상 눈앞에 둬야 안심하던 할머니와 부모님.

그렇게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나는 항상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다.


좋게 말하자면 천성이 독립적이었고 새로운 것을 찾는 여행을 좋아했다고 하자.

반대로 말한다면,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다녔던 철부지.


그래도 적당히 믿어주셨던지, 혼자 유학도 떠났고,

일 년이 지난 2017년 12월 말.

잠시 귀국하고 2~3일 지난 후였다.


식구들이 모여 해물찜을 먹고 있을 때 문득 엄마가 말을 꺼냈었다.

싱가포르 여행 중에 해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식당에서 벌어진 일.


7시 정각에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5분 전인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에 왔으니, 이제 아무 때라도 그 일이 시작될 것.


기대감과 함께 약간의 초조함이 나의 등줄기를 타고 오를 무렵.


밖의 홀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경쾌하기보다는 섬세하고 아련하게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

식사를 돕기 위한 편곡일 듯.


천천히 발을 옮겨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아름답게 장식되어 높은 천장까지 닿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그 옆에 잘 꾸며져 있던 중앙 무대.

화장실로 들어올 때만 해도 흰 천이 깔려있고 한쪽 끝에 피아노 한 대만 놓여 있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오보에와 트럼펫 연주자까지 무대 위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앉아 연주 중이다.


그런 그들을 확인하고 슬며시 무대 정면의 창가에 앉아 있는 부모님 테이블로 향했다.


엄마가 말했던 대로, 부모님과 무대 사이의 테이블에 있는 일행 중에 흰 블라우스에 오렌지색 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이 눈에 띈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곧 벌어질 일에 대한 바람 때문인지...


라이브로 공연하는 연주자들을 바라보고 있던 부모님 테이블에 다다랐다.

소소한 일에도 감동한 듯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린 엄마의 얼굴.

예전과 똑같다.


“안녕하세요. 두식이 부모님.”


내 말에 두 분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올려다본다.


“....누구?”

“저, 차진굽니다. 신황도에서 옆집 살던...”

“...차진구?”


왕방울 만해진 부모님의 눈.


“정말 완전히 변했다-아. 전혀 못 알아보겠네?”

“대학 졸업했다는 얘기 듣긴 했는데 아주 잘 풀렸나보구나. 잘 됐다.”


그 말과 함께 아빠가 창문가 의자로 바꿔 앉으셨다.


“어떻게 여기서 만나게 되네? 잠깐 앉아라.”

“정말 반갑다. 진구야.”

“감사합니다.”


아빠의 옆자리에 앉는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엄마가 바라본다.


“어렸을 때 고생 많았는데 이제 그 보상 받나 보다. 완전히 다른 사람 됐네?”

“그래,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뭍으로 올라온 후에 신황도 소식을 많이 듣지를 못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물어보시는 아빠.


“예, 모두 건강하십니다.”


언뜻언뜻 돌아보는 나의 시야에 드디어 나타났다.

조심성 없어 그 문제를 일으킬 너튜버가.

고급스러운 카메라 장비를 손에 쥐고.


오랜만에 타국에서 만난 부모님에겐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나의 온 신경은 이제 그 너튜버에 가 있다.


우리 앞 테이블 근처에서 알짱거리며 무대 전체를 라이브 방송 화면에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던 한국 너튜버.

주변 사람들의 불편함과 눈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좌우 앞뒤로 자신이 원하는 각이 나오는 것만이 그의 목표.


말끔한 턱시도를 입고 문가에서 고객들의 입장을 도와주던 사내.

보다 못한 그가 그 너튜버를 말리려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모두 다 엄마가 말한 그대로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긴 했으나 이제 모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 머릿속은 엄마의 입을 통해 들었던, 곧 벌어질 장면의 몇 배속 재생과 빨리 되감기가 반복적으로 진행 중.


슬며시 앞으로 빼놓은 두 다리.

힘이 적당히 들어가 아무 때라도 앞으로 돌진할 태세가 되어있다.


그리고 드디어 그때가 왔다.



“익스큐즈 미.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객님.”


엄숙한 말투로 제재하는 사내를 보고 조심성 없이 벌떡 몸을 일으킨 너튜버.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다가오는 사내를 피해 몸을 ‘휙’ 돌렸다.


그의 손에 쥐어있던 삼발이가 샴페인 병과 잔이 들린 트레이를 들고 옆을 지나던 웨이터의 팔꿈치를 가격한다.

중심을 잃고 바닥에 미끄러지던 너튜버가 본능적으로 옆 테이블의 모서리를 잡았다.

그의 손에 잡혀 하릴없이 당겨진 테이블 보.

위에 올려있던 음식을 바닥에 쏟아내며 기우뚱하는 테이블.

흰 블라우스와 오렌지색 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의자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마치 날아오르듯 몸을 날렸다.


오른손으로는 뒤로 넘어오는 의자를 받히고 왼손은 그녀를 향해 날아 들어오는 샴페인 병을 쳐냈다.


유리가 박살 나는 듯 날카로운 소리와 우당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내 귀를 채운다.


“글쎄,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흰 블라우스에 오렌지색 스커트를 입고 있던 여자가 싱가포르에서 잘나가는 회사 사장 와이프였다지 뭐냐. 그런 사모님이 바닥에 나뒹구는데, 하필 또 샴페인이 쏟아져 내려서 하얀 옷이 노리끼리하고 불그스름해져서 엉망이 됐지. 게다가, 팔이 부러진 건지, 골절됐는지 옆에 남편이 일으키려고 팔을 잡는데 비명을 지르더라니까...”


바닥에 자빠져 누워있는 나의 귓전에 예전에 엄마가 하던 말이 들려왔다.


성공한 걸까?

주변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무너지는 집의 기둥이라도 받치듯 온 힘을 다해 잡고 있던 묵직한 의자가 가벼워졌다.

하지만 오른쪽 팔에 문제가 생겼다. 움직이려니 팔과 어깨에 통증이 느껴진다.


“진구야! 괜찮니?”


내 왼손을 잡고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


“엄마. 팔이....”

“어디? 어느 쪽이?”


나도 몰래 나온 엄마라는 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엄마.


“차 과장! 괜찮은가?”


달려온 사장의 놀란 표정도 시야에 들어왔다.


“괜...괜찮습니다. 그냥 오른쪽 팔하고 어깨가 조금... 그런데 그 여성분은...?”


“아 유 오케이?”


긴 생머리에 똥그란 눈을 한 여성이 나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성.

그녀의 흰 블라우스가 내 눈에 들어왔다.


“땡 갓 요어 오케이.”


언뜻,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그녀의 입꼬리에 미소가 번졌다.


“홀 돈. 메딕 이즈 온 더 웨이”


탈골된 내 어깨뼈.

불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흰 블라우스 여성의 팔이 골절되는 대신 내 오른쪽 어깨가 탈골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성공했다.

작은 인연의 매듭을 묶는 것에는...



* * *





병원으로 이송되어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했다.

다행히 경미한 정도라 수술은 필요 없으나 역시 몇 주간의 치료는 필요하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녀 남편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기업인 글로벌커넥트(GlobalConnect)의 CEO였다.

대학을 졸업하는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기업 10위 안에 든다는 유망한 기업.


바로 그 기업 CEO의 아내가 내 덕분에 고통스럽고 수치스럽다고 느낄만한 상황을 모면하게 된 것.

그런 그녀가 자상하게도 내게 싱가포르에 머무르면서 치료받도록 권했다.

그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일절 자신이 책임지겠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


여튼, 그렇게 호의를 표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고마웠다.


치료비로 쓰라고 몇 푼 던져주며 사라지는, 좀 뻔뻔한 상류 클라스도 많은 것이 현실 아닌가.

하지만 그녀와 남편은 병원까지 따라와 치료 경과를 지켜보았고, 나의 퇴원을 막았으며 다음 날 아침에도 다시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란 영화에서 보여주듯, 호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터.

하지만 그녀의 가족은 의외로 부유한 티를 내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부류 속에 있었다.


뭐, ‘평범’이란 말이 사실 나와 같은 사람의 기준인 그 ‘평볌’은 절대 아니겠지만 말이다.




정해진 일정대로 귀국했다.


산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상황.

나보다 더 급한 마음이었을 사장.


먼저 귀국하겠다고 하루 이틀 더 묵고 오라고 사장은 말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공항까지 따라온 글로벌커넥트 사장과 그의 아내.

밝게 웃으며 또다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게다가, 우리 회사 사장과 인사를 나누며 서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분야도 찾아보자는 제안까지.


사실, 눈도장은 찍었고 한번 은혜는 받았으니 기회가 되면 되갚아 주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전부였건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하다 싶게 호의를 베푸니 그것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한두 달 안에 한국으로 놀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그들은 돌아섰다.


그런 와중에 사라진 한국 너튜버.

종적을 감추고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또 인연이 그렇게 닿았구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장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우리 차 과장이 정말 복덩어리다.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 도움 되는 일만 생기게 해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장님’이라거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라고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고생했다.

어깨까지 골절당하면서 딴에는 바꿔 보려고 노력했던 상황.


원래, 내가 바란 것은 그들의 후하고 관대한 대접이 아니었다.

당연히 내 어깨가 골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저, 그 정도라면 유명 너튜버일 텐데 혹시라도 대화가 통한다면, 경원실업과 인터넷에서 사라진 WorldMaster Global 이라는 회사를 찾아내는데 어떻게든 도움이 돼줄까 싶었다.

차진구로서 발이 넓지 않은 나는 바로 그것을 바랬던 거다.


그런데 사과 한마디는커녕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말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렇게 사장과 외국으로의 첫 마케팅이자 여행은 끝이 났다.



* * *




“눈에 띄지는 않았겠지?”


사내가 테이블 위로 내미는 작은 봉투를 집어 들면서 어창목이 입을 열었다.


“눈치채지 못하게 따라다니면서 녹음 다 했습니다. 호텔뿐 아니라 식당 역시 알려주신 그 스케줄 대로 미리 세팅해놓고 도청 다 해 놓은 겁니다.”

“오케이. 잘했다.”

“그런데,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시는지...”

“너한테야 쓸 일이 없어 보이겠지만 나에겐 그 하나하나가 나중에 다 쓸데가 있어.”

“알겠습니다.”


사내가 나간 후,

어창목이 봉투에서 칩을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어창목.

서랍에서 작은 기기를 꺼내 칩을 기기 앞면의 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역대급 무역천재가 사업을 잘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2 42화 일석이조 +2 23.11.25 910 31 13쪽
41 41화 또 다른 인연 +4 23.11.24 955 31 13쪽
40 40화 미끼를 물어라 +3 23.11.23 949 31 15쪽
39 39화 뜻밖의 투자자 +3 23.11.22 971 31 12쪽
38 38화 상승기류를 타다 +5 23.11.21 1,009 34 13쪽
37 37화 거짓 정보로 덮은 위기 +5 23.11.20 1,015 37 13쪽
36 36화 철도 숨을 쉰다. +3 23.11.19 1,063 33 12쪽
35 35화 곽 이사의 거래 +3 23.11.18 1,057 34 11쪽
34 34화 한 걸음 더 +4 23.11.17 1,064 34 13쪽
33 33화 구름사이를 비추는 달빛 +7 23.11.16 1,117 37 13쪽
32 32화 또 다른 소식 +4 23.11.15 1,146 38 14쪽
31 31화 반격의 서막 +7 23.11.14 1,173 40 15쪽
» 30화 과거가 이어주는 인연 +2 23.11.13 1,195 36 12쪽
29 29화 우연한 만남 +2 23.11.12 1,190 35 13쪽
28 28화 씻을 수 없는 상처 +4 23.11.11 1,238 36 12쪽
27 27화 일출과 일몰 +3 23.11.10 1,271 40 14쪽
26 26화 또 다른 악연 +5 23.11.09 1,285 36 14쪽
25 25화 불운과 행운 +5 23.11.08 1,329 35 15쪽
24 24화 악연의 시작 +2 23.11.07 1,359 42 14쪽
23 23화 덩굴나무 이파리 +3 23.11.06 1,388 36 14쪽
22 22화 오해로 풀리는 실마리 +4 23.11.05 1,401 33 13쪽
21 21화 밝혀지는 비밀 +2 23.11.04 1,437 32 13쪽
20 20화 낙엽을 긁어모을 갈퀴를 만들다. +4 23.11.03 1,414 38 13쪽
19 19화 시작의 끝 +3 23.11.02 1,387 35 15쪽
18 18화 검을 뽑는 기사 +5 23.11.01 1,430 39 14쪽
17 17화 어두운 물속으로 손을 뻗다 +3 23.10.31 1,385 38 16쪽
16 16화 호주 양모업체의 비밀 +3 23.10.30 1,400 43 16쪽
15 15화 수출 서류속에 숨겨진 진실 +6 23.10.29 1,404 39 12쪽
14 14화 베일속의 사모님 +2 23.10.28 1,479 38 13쪽
13 13화 상승기류를 타다. +4 23.10.27 1,425 45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