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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섭 님의 서재입니다.

학폭 피해자는 축구 전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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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섭
작품등록일 :
2024.05.2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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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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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돌아온 개망나니(3)

DUMMY

내가 선호하는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다.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팀의 득점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을 맡은 포지션.


초등학교 때는 본래 공 제일 잘 차는 놈이 공격수, 못 차는 놈이 수비, 그보다 더 못 차는 놈이 골키퍼라는 암묵적인 룰 때문에 스트라이커를 했었다.


그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중학교 시절에도 스트라이커 자리를 소화했고, 고등학교와 프로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 안에 존재하는 ‘롤’이었다.


피지컬이 떨어지는 대신 속도와 위치선정이 기깔났던 중학교 때는 골 사냥꾼, 페널티 박스의 여우 일명, 포처 라는 롤을 주로 소화했다.


피지컬이 성장하며 자연스레 속도가 빨라지고, 라인 브레이킹에 도를 튼 고등학교 때는 카운터 어택을 장착한 스피드 스타가 되어 필드를 누볐다.


프로에 와서는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이 소화해야 하는 모든 것에 통달했다.


팀의 전술에 따라 타겟맨이 되기도 하고 처진 스트라이커로서 전방에서 볼을 홀딩하고 팀의 득점 기회를 창출하기도 했고, 펄스 나인이 되어 상대 수비를 낚는 미끼가 되기도 했다.


가끔 윙어로 출전하여 인버티드 윙어 롤을 수행하며 중앙 침투 이후 직접 득점하는 스코어러 역시 소화했고.


뭐.

긴말 필요 없이 나는 태생부터 스트라이커 할 팔자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학을 생각했을 때.

나는 단순히 그곳의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그 팀의 소속 선수가 되어 성장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귀화.’


나는 탈 조선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미 14년 넘게 한국 축구에 질려버린 나다.


내가 발롱도르 3위를 기록했을 때 일각에서는 내가 유럽인이었다면 분명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실제로 내가 선수이던 시절 내게 ‘귀화 제안’을 넣었던 나라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행선지 역시 그 많은 나라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반드시 나 같은 스트라이커가 하나쯤 필요할 테니까.


“갑자기 유학이라니···. 엄마는 너무 당황스러워, 아들.”


기쁨과 약간의 당황이 함께한 재회의 자리를 끝내고.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약 10년 만에 맛보는 어머니의 손맛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나는 부모님과 미래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흠. 바울이 너도 충분히 생각해본 거 맞지?”


아버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꽤 진중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듣는 아버지.

그리고 여전히 걱정스러운 어머니.


“아빠는 말이다. 지금 네 결정이 단순히 오늘 있었던 선배들과의 싸움 때문이 아니었으면 한단다.”

“네. 당연히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더 빨리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요. 그게 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흠···.”


아버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울아. 너 괜찮겠어? 다시 한번 생각해봐. 축구는 꼭 외국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할 수 있고···.”


그래.

그랬었지.

부모님 중 날 더 걱정하셨던 건 어머니였다.

광상 중학교 진학 역시 어머니의 입김이 꽤 크게 작용했었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겁 많던 열네 살의 지바울이 아니다.

그 곱절의 나이를 먹고 산전수전 다 겪어본 다 큰 어린애다.


“엄마.”

“응?”

“저요. 축구가 너무 좋아요. 그런데요. 단순히 축구가 좋아서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저는 이왕 마음먹고 시작한 거 세계에서 최고로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효도하고 싶고요.”


어머니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목소리.


“그래, 아들. 남자가 말이야, 이왕 시작할 거면 세계 최고를 목표로 두고 해야지. 멋진 생각이다. 아빠는 찬성이야.”


아버지의 얘기에 어머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과 말들.


나는 그날 저녁.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부모님의 대화를 들었다.


‘괜히 애한테 바람 넣지 말고 말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난 바울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단 그렇게 큰 꿈을 가진 게 너무 기특해. 꿈은 크게 가져야지. 그래야 깨져도 파편이 큰 법이니까.’


나에 대한 걱정과 믿음을 들었다.

그리고.


‘여보. 우리 지금도 빠듯해···. 근데 유학이라니···.’


현실적인 걱정 역시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집안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철없는 14살의 중학생이 아니었다.



#



전국 추계 중등 축구대회.


대한축구협회(KFA)가 주최하는 전국 중등 축구대회 중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


현재 광상 중학교 역시 그곳에 참가 신청을 한 상태고, 곧 지역 예선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광상 중학교는 예선전 시작을 앞두고 이웃 학교와의 친선 경기를 가지게 됐다.


국가 대표팀으로 따지면 ‘평가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개판이네.’


경기장부터 개판이다.


인조 잔디를 기대한 내가 너무 큰 욕심을 가졌던 것일까.

감독이라는 인간들이 지도자의 기본이 안 되어있다.


아무리 중학생 간의 친선 경기라지만 흙바닥은 너무 하지 않나.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면.


도착하자마자 상대 팀 선수들이 운동장에 돌을 골라내고 있는 것을 보니 참···.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지금 이 경기도 분명 이전 삶에서 겪었던 일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듯, 하나하나 세세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정말 특별한 일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면.

즉. 이날의 경기는 내게 상당히 별일 없이 지나갔던 별 볼 일 없는 일상 중 하나였다는 뜻이다.

뭐.

그럴 만도 한가.

경기를 뛰었을 일은 절대 없었을 테니까.


‘물당이나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오늘은 왠지 내게 꽤 특별한 날이 될 것 같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말이다.


“저 녀석이에요?”

“저 녀석이 우리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내가 어제 줘팼던 선배들의 부모가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아니다.

오자마자 날보며 손가락질하는 걸 보니 어쩌면 꼭 경기관람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 딱히 터치가 들어오진 않았다.

이유는 정말 놀랍게도 내게 당한 장본인들이 부모들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아, 엄마···. 하지만.”

“하지 마! 쪽팔린다고!”

“아! 그만 좀 해!”


저거 중2병 중증 환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짓인데.

모르셨나 보네.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이 중2병 중증인지를.

후배에게 얻어터졌다고 부모가 와서 애들 보는 앞에서 난리를 피운다?


지금 나로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저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들에게는 그저 쪽팔리고 자존심 상하는 일일 뿐일 거다.


선배 부모들에게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넨 감독님이 이를 까득거리며 갈더니 천천히 내게로 걸어온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너 오늘 경기 뛸 준비 해라.”

“제가요?”


갑자기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나?

아니면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건가?

입에서 술 냄새가 폴폴 나는데.


“...후반에 들어갈 거다. 들어가서 제대로 못 하면 넌 오늘 복귀해서 나한테 뒤질 줄 알아.”


아.

그러니까 어차피 승패 관계없는 경기, 날 투입해서 개망신 주고 못 하면 합법적으로 털어버리겠다, 이건가?

그럼.


“잘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뭐?”

“못하면 뒤지는데, 잘하면요?”

“하···. 이 새끼 진짜···. 야, 너 옷 갈아입어. 전반전 들어가. 경기 다 뛰고도 그런 말 할 수 있나 한번 보자.”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는데.

잘됐네.

내가 이 학교에서 뛸 레벨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줘야겠다.



#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팀의 포메이션은 4-3-3.

나는 중앙 스트라이커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


툭!


후방으로 내려가는 볼을 따라 상대 선수들이 강하게 전진 압박을 시도했다.


그에 맞춰 나 역시 천천히 라인을 아래로 내렸다.


“야! 지바울! 넌 앞에 짱박혀 있어! 왜 내려오고 지랄이야!”


감독의 호통이 들려오지만 무시했다.


지금 최전방에 박히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관짝 안으로 들어가는 꼴이다.


지금 피지컬로는 후방에서 날아오는 패스를 제대로 받아서 지켜낼 재간이 없으니까.


라인을 내려서 직접 공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드리블이나 측면으로 열어주는 스루패스.

그게 아니라면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펄스 나인에 가깝게 뛰어야 했다.


지금 상태라면 적어도 이 운동장에서 나는 ‘메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앞으로 줘!”


허둥지둥 패스를 돌리는 수비진영을 향해 소리치는 순간, 볼이 중앙 미드필더에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게 패스를 찔러주는 중앙 미드필더.

어제 나한테 얻어터지고 코피가 나서 표정이 저 모양인가 보다.


타닷!


날아오는 공을 향해 접근하며 가볍게 발끝을 가져다 댔다.


14살이 된 이후의 첫 터치.

감각은 살아 있었다.


타닷!


가볍게 볼을 발아래 붙잡아 두는 척하며 나는 곧장 오른발 바깥 축으로 공을 쭉쭉 밀며 몸을 돌려세웠다.


내 뒤로 따라붙던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나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상대가 타이밍을 뺏겼다.

그 모습에 곧장 속도를 높였다.


타닷!


흙바닥을 차고 공을 몰고 달렸다.


자석처럼 발끝에 와서 들러붙는 공.

드리블이 굉장히 맛있다.


앞을 가로막는 수비.


스텝 오버를 시전했다.


공 위로 재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며 속도를 줄이자, 상대 수비가 자세를 낮췄다. 급작스러운 이동에 대응하기 위해 무게 중심을 낮춘 것이다.

하지만.


‘스텝 오버는···.’


상대를 제쳐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찰나의 순간.

내가 필요한 타이밍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는 것일 뿐.


타닷!


스텝 오버를 시도하다 오른발 바깥 축으로 공을 툭 치며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따라오는 상대 수비의 발.

난 이미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왼발로 빠르게 다시 볼을 접으며 방향을 바꾸자, 흙바닥의 미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 수비가 주욱 미끄러진다.

그리고.


“야야! 여기로 줘! 여기!”


다급한 목소리에 힐끗 고개를 들어 전방을 확인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머릿속에 새겨진 아군과 적군의 위치.


어려졌다고 시야가 줄어들진 않는다.

시야도 감각의 영역이니까.

오히려 어려져서 그런지 더 또렷하게 잘 보이는 기분이다.


툭!


왼발 바깥 축으로 공을 툭 밀어놓은 나는 그대로 오른 다리를 뒤로 꼬며 발끝으로 공을 툭 찍어 찼다.


가벼운 라보나킥.


14살의 어린 몸은 상당한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고, 라보나킥에서 유연함이란 곧 정확도를 의미했다.


퉁!


날아간 공이 상대 수비의 키를 넘기며 그 뒤로 돌아 뛰는 우리 팀 윙어를 향해 날아간다.


공을 건네주자마자 나는 곧장 페널티 박스로 쇄도했다.

그때.


뻥!


‘아! 저게 무슨 개똥 크로스야?’


내 패스를 받은 뒤 고개를 처박고 달리던 윙어가 날린 크로스가 길게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정말 의미 없는 크로스다.


겨우 속도를 붙여놨더니 다시 속도를 죽이는.


그래. 내가 뭘 바랄까.

그냥 내가 해야지.


“헤이-! 공 내놔!!”


페널티 박스로 쇄도하던 나는 마크맨의 움직임을 재빠르게 따돌리며 다시 페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돌아 나왔다.


그리고 내 목소리에 반응한 좌측 윙어가 빠르게 페널티 박스로 치고 들어가더니 몸을 한껏 꺾으며 페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강한 컷백 크로스를 날려 보냈다.


크로스가 오는 순간, 이미 정해뒀다.


어디로 어떻게 차야 골이 들어갈지.


뻥!


인스텝에 얹힌 강력한 슛팅 한방이 골대 좌측 상단을 쑤셨다.


“우와···!”


화들짝 놀라며 날 바라보는 상대 수비수.

그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린 후, 나는 곧장 우리 감독이 있는 벤치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2014년 현재.

세계 축구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슈퍼스타의 세레모니를 따라 했다.

어쩌면 내 미래의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그 선수의 세레모니를.


‘우리 감독님이 메시 팬이었지, 아마?’


힘차게 달려가서 자리에서 훌쩍 뛰어오른 뒤, 두 팔을 교차했다가 아래로 떨친다.

그리고 골반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아주 자신 있는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를 발사한다.


“siuuuuu-!!!!”


감독님이 뒷목을 잡으신다.

내 선취골이 꽤 감명 깊으셨나 보다.







작가의말

내일은 시간 대를 나눠 두 편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주인공은 여전히 인성이 터졌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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