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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C

슬기로운 해결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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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WGC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0
최근연재일 :
2022.04.13 10:05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42,522
추천수 :
1,933
글자수 :
1,494,302

작성
21.09.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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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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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제국이여, 불타올라라! - 앙그랏산 공방전 편 (19)

DUMMY

잠에 빠졌던 건가. 마지막에 누워있던 건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느낌만 본다면 마치 몸이 붕 뜨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지금 나는 무언가에 받쳐져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탁 트인 맑은 하늘이 가장 먼저 보인다. 분명 하늘은 검고 어두웠어야 할 터인데 지금은 밝은 햇빛이 내 주위를 감쌌다.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병사들이 들것에 실어 나를 옮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병사들은 제국군일 테고, 우리가 승리했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오, 영웅께서 일어났군 그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안드라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발터도 한몫 거들었다.


"그냥 영웅입니까? 전쟁 영웅이죠."


"안드라스...? 여긴 어떻게..."


"왜 왔겠나. 나는 안전만 보장된다면 전장에도 올 수 있다고. 지금 주변을 둘러봐. 악마는 어디 있지?"


안드라스의 말대로 주변은 허허벌판인 대신, 악마들은 없었으며 오로지 제국군들로 가득했다. 물론 땅바닥에는 붉게 물든 시신들이 가득했고, 제국군들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싸운 거야..."


"그냥 최대한 싸웠지. 어떻게든 버티다보면 끝이 날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반대편에서 메쉬가 걸어오며 말했다. 메쉬의 갑옷에도 피가 잔뜩 묻어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보였다.


"이제 그만 이야기 나누지 그래. 지금 상태를 보면 썩 좋아 보이지 않잖아."


"흐음, 우리야 뭐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다만 황태자는 그래 보이지 않더군. 아마 마주치게 된다면 너희는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아 죽어버릴지도. 으핫핫핫!"


안드라스는 호탕하게 웃고는 발터와 함께 옆길로 빠져나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메쉬를 바라봤다.


"그렇게 힘들 정도는 아닌데..."


"말끝마다 아주 힘들다고 표시를 하면서 뭐가 안 힘들다는 거야. 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야 딱히 상관없지만."


어느덧 부상병들이 모여 있는 천막 쪽에 다다르자 병사들은 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주변을 보니 다른 길드원들도 이곳에서 이미 쉬고 있었다.


베르헨은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는 살아남은 엘프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루이즈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트레빌은 등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날 보더니 헤벌레 웃어 보였고, 마리아는 뭘 웃냐며 트레빌의 등짝을 세게 때렸다. 그리고 트레빌은 순간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레벨은..."


레벨은 저 멀리서 데르모와 프리첼과 함께 웃으면서 떠들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고기가 놓여 있었고, 지금은 실컷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메쉬는 드럼통 하나를 들어 내 옆에 두더니 그 자리에 앉았다.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 덕분에 그저 평온한 생각만 들었다.


"악마놈들도 더럽게 세더라고. 검을 몇 번이고 휘둘러도 도저히 죽질 않더라."


"하핫.. 그래, 우리도 쉽지 않았어."


"그거 알아? 나도 처음에는 마법사 혐오가 왜 일어나는지 몰랐어. 그런데 내가 직접 겪고 보니까 알겠더군."


메쉬는 처음에 온화하게 말을 꺼내는가 싶더니 냉소적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됐다.


"파플라 그 놈을 죽일 수 있었던 게 몇 번인 줄 알아? 세 번? 네 번? 그 놈을 수도 없이 도륙을 낼 수 있었고, 그 녀석의 몸뚱이 따윈 아무것도 아녔어."


다시 그 때를 떠올려본다. 실제로 메쉬가 검을 여러 번 휘둘렀으나 파플라는 보호마법 덕분에 무사했다.


"그런데 그 마법이란 게... 그 빌어먹을 마법 하나가 끈질기게 목숨줄을 잡은 거야. 만약 마법이 없었더라면 진작 그 자식의 목을 베고 내 동생도 그런 일을 당하게 둘 순 없었겠지."


그녀는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그놈의 마법 때문에 놈은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 내 동생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어. 뭐,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그 때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 특히나 생각나는 건..."


그리고 뜸을 들이는 듯 말을 하지 않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망할 마법 따위만 없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내 동생도 지금쯤 옆에 있었을 텐데..."


아, 이제 알겠다. 나도 한때는 왜 이렇게 마법사 혐오가 발생하는 건지 납득하기 어려웠고, 그저 사회변혁이 일어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마법은 분명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마치 만능에 가깝게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평범함과 선을 긋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했다.


비록 나로서는 마법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이곳은 마법사와 동떨어진 사람들이 훨씬 많고, 이런 불평등에 불만을 갖는 사람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후우, 미안. 이런 이야기를 꺼낼 사람이 너밖에 없었거든. 비록 지금의 너는 말 나누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지만 약간의 어리광이라 생각하고 이해해줘."


"그래,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나눠서 좋네... 그런데 굳이 지금 이야기를 꺼낸 이유라도 있어...?"


"아, 응. 내 부대는 이제 제국을 떠날 거거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메쉬를 쳐다봤다. 메쉬는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우린 맨-앳-암즈야. 계약기간동안 그 나라를 위해 싸우는 직업군인들이라고. 제국과의 계약도 끝났으니 새로운 왕국으로 떠나보려고 해.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국에 있기 싫어서인 것도 있고."


문득 파플라가 다시 떠올랐다. 메쉬는 제국을 위해서, 동생을 위해서 온갖 전투에 참여했지만 그 끝은 너무나도 씁쓸했다.


"뭐, 모두가 날 따르는 건 아니더라. 군터와 롤드는 제국에 남겠다고 했어. 롤드는 뭐 그렇다 치는데 군터가 그런 건 의외지만 말이야. 하지만 남겠다는 녀석을 굳이 말리고 싶진 않으니까."


메쉬는 내심 아쉬운 듯 말했다. 군터 역시 그녀의 든든한 아군이었고, 동료였기 때문에 그만큼 신임이 가는 거겠지.


"너희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모험을 떠나잖아? 아마 추후에 다시 만날 일이 생길 수도 있겠는걸?"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아아, 여기들 있었군!"


메쉬의 뒤에서 하인리히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하인리히는 곧 떠날 메쉬를 전혀 눈여겨보지 않으며 내게 다가와 말을 이었다.


"여기들 보게, 제군들! 이 영웅들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네! 모두들 술잔을 준비하게. 연설은 하고 떠나야 있어 보이지 않겠어?"


"잠깐 좀 쉬게 냅두..."


"어차피 너희들은 곧 제국을 떠날 처지 아닌가? 그 전에 확실하게 마무리 짓고 싶은 일들을 해결해두는 게 좋겠지, 안 그래?"


하인리히는 메쉬의 말을 끊으며 말했고 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태자가 신호하자 치유 마법사가 다가와 곧장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는 몰라도 적어도 기력은 확실하게 회복할 수 있을 거야. 자, 어서 일어나자고."


하인리히는 치료가 끝나자마자 날 일으켜 세웠다. 뒤를 둘러보니 다른 길드원들도 마찬가지로 병사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고 있었다.


길드원들은 모두 모여 병사들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무너진 성벽과 함께 높게 솟아있는 마왕성이 있었다.


"자아, 너희들이 워낙 힘들어해서 연설을 못했거든. 눈을 뜨기까지 한참을 기다리느라 지치는 줄 알았다고."


"연설은 그냥 너 혼자 해도 상관없지 않아?"


뒤에서 함께 걸어온 마리아가 불만이라는 듯 말했다. 그녀는 지금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잘 쉬고 있다가 붙잡힌 셈이라 불만이 많아보였다.


"무슨 소리! 지휘관으로서 영웅을 두고 어찌 홀로 서라는 말인가."


사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하인리히가 그렇게 썩 좋은 지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없어도 될 병사들의 피해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우리가 성벽을 타고 오르는 사이, 제국군은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 오르자 꽤나 많은 제국군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긴장이 된다. 나와 마찬가지로 루이즈와 라카반도 제법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자아, 모두들! 술잔을 높이 들어라! 우리는 수십여 년을 거친 기나긴 전쟁의 마무리를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보라! 이 영웅들이 마왕을 무찔렀고 제국은 마침내 승리를 쥘 수 있게 되었다!"


환호성이 주변을 완전히 집어삼킨다. 모든 제국군이 손을 높게 들며 우리를 향해 환호하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다.


"앞으로 우리는 축제의 날을 거치고 근심걱정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기쁨을 나누고 또 나누어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제국의 위대함이 전 대륙에 뻗어가는 순간이도다! 해결사 길드에게 건배를! 제국에게 건배를! 지즈타그에게 건배를!!"


황태자가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모두가 다시 환호하며 잔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대체 저 술은 어디서 난 건지는 몰라도 모두가 우릴 위해 건배하니 기분이 묘했다.


"정말이지... 이런 나날을 꿈꿔왔다고. 모든 병사들이 나를 위해... 이렇게 모인 이 순간을..."


하인리히는 눈앞의 광경을 두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우리는 연설이 끝나고 천천히 성벽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뭐, 이제 수도에 들러서 의뢰 마무리를 짓고 다른 곳으로 여행 갈 생각이에요."


"여행이라... 여행도 좋지만 제국에 오래 머물러도 괜찮네만. 우리가 저택도 주고 돈도 주도록 하지."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흰 한곳에 정착해서 사는 길드원이 아녜요. 정처 없이 떠돌며 의뢰를 해결하는 해결사 길드니까요."


제국은 아마도 몇 년간 평화에 물들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나긴 전쟁이 끝났는데 전국이 매일 축제를 즐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곳에 의뢰가 있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 대륙 곳곳에 존재할 테니까.


"흐음... 그거 참으로 안타까운데."


하인리히는 우리를 둘러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더 말하려던 찰나, 병사가 급하게 다가와 헉헉거리며 크게 외쳤다.


"황태자님!"


"무슨 일인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다니."


하인리히는 나무라듯 말했지만 병사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그는 전서구에게 받은 편지를 하인리히에게 건네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그 말이 들리자 순간 정적이 돈다. 옆에 있던 길드원들도 순간 장난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볼 정도였다.


"그게 사실인가?"


병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인리히는 편지를 천천히 읽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누가 함께 한 거지?"


"율리우스 황자님이십니다."


"허, 그런가. 알았네. 이만 돌아가 보게. 황자 아니랄까봐 그래도 할 건 다 하는군 그래."


병사는 고개를 깊게 숙이고는 다시 성 바깥으로 나갔다. 하인리히는 편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영웅들이 황제의 장례식과 즉위식을 함께 해준다면 그만한 위용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겠지... 그래, 어쨌든 제군들. 모두 나를 따라오게. 수도성으로 빠르게 이동하자고."


하인리히는 제국군을 중심으로 우리를 거의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이동하려고 했다. 애초에 우리도 수도성으로 가려고 했을 터인데 굳이 이런 식으로 가야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하인리히는 제국군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려던 찰나,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뒤돌아 우릴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전에 찰부르그 성에도 한 번 들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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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2부: 눈을 뜨다 (2) 21.10.12 98 7 12쪽
133 2부: 눈을 뜨다 (1) 21.10.11 109 6 12쪽
132 2부 Prologue: 주마등 21.10.08 101 6 2쪽
131 Epilogue: 즐거운 식사 시간 (2) 21.10.05 102 7 13쪽
130 Epilogue: 즐거운 식사 시간 (1) 21.10.04 104 6 13쪽
129 집으로 돌아가는 길 (5) 21.10.01 106 7 12쪽
128 집으로 돌아가는 길 (4) 21.09.30 105 7 12쪽
127 집으로 돌아가는 길 (3) 21.09.29 104 7 13쪽
126 집으로 돌아가는 길 (2) 21.09.28 104 6 13쪽
125 집으로 돌아가는 길 (1) 21.09.27 115 7 13쪽
124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11) 21.09.24 101 5 13쪽
123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10) 21.09.23 103 7 13쪽
122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9) 21.09.22 100 7 12쪽
121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8) 21.09.21 99 7 12쪽
120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7) 21.09.20 103 7 14쪽
119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6) 21.09.17 104 5 12쪽
118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5) 21.09.16 109 7 12쪽
117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4) 21.09.15 105 7 12쪽
116 Intermission: 첫 만남 21.09.14 106 7 9쪽
115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3) 21.09.14 105 7 12쪽
114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2) 21.09.13 144 7 12쪽
113 하늘과 모래 사이에서 (1) 21.09.10 110 7 13쪽
112 Intermission: 치즈의 하루 (2) 21.09.09 102 7 9쪽
111 Intermission: 치즈의 하루 (1) 21.09.09 104 7 9쪽
110 제국이여, 불타올라라! - 앙그랏산 공방전 편 (20) 21.09.08 106 6 12쪽
» 제국이여, 불타올라라! - 앙그랏산 공방전 편 (19) 21.09.07 106 7 12쪽
108 제국이여, 불타올라라! - 앙그랏산 공방전 편 (18) 21.09.06 104 7 13쪽
107 제국이여, 불타올라라! - 앙그랏산 공방전 편 (17) 21.09.03 109 7 12쪽
106 제국이여, 불타올라라! - 앙그랏산 공방전 편 (16) 21.09.02 106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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