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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의 3학년 1반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20 00:19
최근연재일 :
2016.07.30 01:13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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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6,854

작성
16.07.2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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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리고 여기까지 에필로그였습니다.

DUMMY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 보고 지내는 사이라 해도 늘 어색하고 서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는 건 어쩌다 가끔이지만 그렇게 만날 때마다 마치 어제에도 봤다가 헤어진 것처럼 항상 친숙한 사람.


언제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에서 만나도, 이런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꼭 한두 명 정도는 나오곤 한다. 그리고 신기한 건 이렇게 항상 어색한 사람, 항상 친숙한 사람들과는 웬만해선 그 관계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색한 사람들은 매일 만나 얘기를 해도 그다지 관계의 발전이 없고, 친숙한 사람들은 가끔 가다 한 번씩 만나도 서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둘 중 희소성이 더 강한 쪽을 따지면 역시 항상 친숙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어색한 사람들은 학교 다니다 보면, 또는 사회생활 하다보면 지겹도록 만나게 되는데, 친숙한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어울려 지내다 보면 친해질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의미에서의 친구를 뜻하는 게 아니다.

정말 친숙한 사람이란 처음 만났는데도 호감이 일고, 뭔가 느낌이 편안하고, 대하기가 어렵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킨다. 만나자마자 쉽게 친해져서 이후에도 자주 보게 되는 사람, 또는 가끔 만나더라도 변함없이 반가운 사람.

살다 보면 누구든 이런 사람을 한 명 정도는 만나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될 것이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 중에서도 가장 신뢰와 믿음을 주고, 서로 의지하고 받으면서 지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보통 베스트 프렌드, 절친 등의 표현으로 나타내곤 한다.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순간 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친구란, 사람의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존재 중 하나일 것이다. 언제 어느 때에 만나고 항상 친숙하고, 친구로서 지낸다면 인생의 축복 같은 존재가 되는 그런 친구의 존재.


······그럼 여기서부터의 해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서현이었다.

만날 때마다 친숙하기는 한데, 어울려 지내다 보면 생각 외로 자주 어색할 때가 있는 그런 친구들은 분류를 어떤 식으로 해야 구분 잘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야, 뭐하냐? 얼른 빵이랑 쿠키 안 내오고.”


야자시간 끝나고 분명히 교실에서 빵과 쿠키를 나눠먹었던 1반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이 서현의 집 앞으로 몰려와 있었다. 그리고는 농성하듯 둘러서서 서현을 향해 또 한 번 빵과 쿠키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 왜 한밤중에 남의 집까지 따라와서 이러는 거야?”


야자 끝나고 난 다음에는 반 이상의 학생들이 학원에 다녀왔다. 학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쉬고 있다가, 다른 친구들이 학원 끝날 때쯤 되자 다시 밖으로 나와 서현의 집 근처에서 서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학원에 갔다 인원들, 서현을 기다리고 있던 인원들, 다 합쳐서 34명이 된 학생들은 아이처럼 순수한 척 가식적인 웃음을 지은 채 서현을 압박했다.


“목사님이 빵이랑 과자 많이 남아있으니까 배고프면 언제든 와서 먹고 가라 하셨거든.”

“그리고 우린 배가 고파.”

“한창 먹을 나이인 열아홉이니까.”

“아까 교실에서 먹은 건 사실 밥 한 숟갈 수준밖에 안 되는 양이었지.”

입 모아 한마디씩 내뱉는 친구들을 잠시 한심한 듯 바라보고, 서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발 물러났다.

“먹을 거 얻어먹으려고 12시 넘은 이 시간에 우리 집까지 쫓아왔다는 거니. 집념들 장난 아니네.”


한 명도 예외 없이 따라와 교회 주차장에서 줄 맞춰 서 있는, 마치 상을 기대하고 꼬리 흔드는 것 같은 서른네 명 친구들의 모습이 기가 막힌 서현이었다.

이들 모두가 서현에게는 항상 친숙한 친구들이지만, 지금과 같은 엉뚱한 장난을 치고 그 사이에서 어울리다 보면 서현은 가끔 친구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무튼 다들 생각하는 게 이상한 쪽으로 기발한 녀석들이라 그런 걸지 몰랐다. 때로는 자신에게조차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서현이 먼저 교회로 들어가자 학생들도 모두 짐꾼을 자처하고 따라 들어왔다. 교회 주차장은 바로 옆의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었고, 교회 건물도 매우 커다란 편이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은 은근히 높아서 학생들은 전부 다 교회 안까지 따라오는 대신 물건 받기 편한 거리를 적당히 조절해 나란히 줄을 만들어 섰다.

서현은 교회 2층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크기가 상당한 이 교회 건물은 3층까지 있고, 1층은 주 예배실, 지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예배실, 2층에는 사무실과 준비실, 다과실 등이 갖춰져 있다. 3층은 주거 단지로 서현의 가족이 사용 중이다.

2층 준비실의 창고에서 빵과 쿠키가 담긴 박스들을 꺼냈다. 각각 12개나 되는 이 박스들은 교회 신도인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수능대비 기도회를 열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사온 간식이다. 먹다가 목 메이지 말라고 친절하게 두유까지 같이 준비해서.


“우리끼리 다 축내기에는 미안하니까, 우리 먹을 만큼만 가져간 다음 나머지는 다른 반 애들한테도 나눠주자.”


워낙 많은 양이라 서현 혼자 다 먹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사실 원래부터 혼자 다 먹을 생각도 없었던 서현이다. 아까 교실에서 그랬던 건 그냥 장난치느라 악역을 자처했을 뿐이고.


“다른 반 애들한테까지 돌아가려면 수량이 부족할지도 모르는데.”


짐 나르러 온 학생들 중 남수민이 무심코 한 대답에 서현은 다시 악당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왜 나만 못 먹었냐는 불평을 사전에 막기 위한 방법으로 선착순이란 제도가 있지.”


서현은 그러면서 1반 단톡방에 메시지를 하나 띄웠다. 다른 반 애들한테 우리 집 앞에서 빵이랑 두유랑 쿠키 선착순으로 나눠주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빨리 나오라고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근처 동네 사는 녀석들은 다 나오겠군.”


수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른 반의 아는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반 아는 친구들, 이라고 하면 느낌이 뭔가 삭막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충주 중앙고의 3학년들은 1반부터 7반까지 있고, 200여 명 정도 되는 3학년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근처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다. 말하자면 다른 반 학생들 역시 1반 학생들과는 같은 동네 친구이고, 반은 다르지만 서로 자주 같이 어울려 놀면 놀았지 서먹하거나 무덤덤하거나 한 사이는 아닌 것이다.

덕분에 서현과 수민,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준비실에서 빵, 쿠키, 두유를 가지고 교회 밖에 나갔을 때엔 지축이 울리는 발소리들과 함께 교회 근처의 길이란 길, 골목이란 골목에서 충주 중앙고 학생들 수백 명이 눈에 불을 켠 채 달려오는 장관을 목격하게 되었다.


“선착순이라고 규칙 알려줬으니까 먼저 온 순서대로 미리 번호표 나눠줘.”


준비실로 들어간 김에 아예 어린이들 행사에 쓰이는 번호표까지 한 세트 가져온 서현이었고, 1반 학생들은 잽싸게 자기 몫의 번호표부터 하나씩 챙겼다. 그리고 친구들이 가져온 박스들을 모두 바닥에 늘어놓고 포장을 뜯어 배급 준비에 들어갔다.

빵, 쿠키, 그리고 두유. 각각 12박스씩 36박스.

이 역시 12라는 숫자 때문에 뭔가 양이 적어 보이지만, 포장 뜯고 밤하늘 아래에 펼쳐진 그 실체는 전혀 달랐다. 단순하게 빵 한 박스, 쿠키 한 박스가 아니라, 그 1박스의 분량이 공장이나 공사장 같은 곳의 한바 식당 기준으로 잡은 업소용 물품이었다. 흔히 벌크과자, 인간사료 등으로 부르는 무시무시한 분량과 부피를 자랑하는 빵과 과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각각 12박스씩이었다. 박스 하나에 담긴 빵 또는 과자의 개수는 정확히 백 개씩. 박스는 12개이니 12박스로 계산하면 천 이백 개, 빵과 과자를 합치면 2천 4백 개다.

수민의 걱정과는 달리 충주 중앙고 3학년들 전원이 몰려와도 오히려 수량이 한참 남았다.


“200명을 먹이고도 1천 광주리가 남을 것만 같다······.”


어마어마하게 몰려든 충주 중앙고 3학년 학생들, 그리고 그 3학년들이 언니 또는 오빠, 누나나 형인 2학년, 1학년 학생들까지 소문 듣고 달려오면서, 그 널따란 서현의 집 교회 주차장은 얼마 안 가 빵과 쿠키와 두유를 나눠먹는 충주 중앙고 전교생들로 인해 북적거리게 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될 줄은 몰랐던 서현의 멍한 중얼거림이 있는 동안, 그렇게 몰려든 충주 중앙고 학생들은 정말 예의 바르게도 떠드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채 조용히 먹을 것만 얻어먹었다. 교회 주위로 빌라와 아파트, 다세대 주택 등이 몰려 있으니 동네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알아서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더더욱 기특한 건, 학생들은 자기가 먹은 빵과 쿠키의 포장 비닐까지 곱게 접어 박스에 담음으로서 길가에 쓰레기가 버려지는 일도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1반도 그렇지만, 충주 중앙고 학생들 자체가 뭔가 희한하게 단결력이 뛰어난 듯 보이는 광경이었다.


“흔한 고교생들의 미친 단결력으로 사진 찍어 올리면 인터넷에서 추천 얼마나 받을까.”


어느새 같은 학교 학생들의, 시키지 않았는데도 질서 정연한 기적 같은 광경을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저장 중인 서현이 멀거니 중얼거렸다.


“사진보다는 동영상이 현장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겠지.”


태연한 얼굴로 정말 동영상을 촬영하는 남수민의 대답이 있었다.


“왠지 추천보다 악플이 먼저 달릴 것 같은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뻘짓이나 한다고.”


전혀 진지하지 않은 목소리로 빵을 오물거리는 장시연을 보자 서현은 다시 한심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널 보니까 왠지 내가 그 말을 하고 싶어졌어.”

“그건 어째서일까, 미스봉?”

“빵과 과자와 두유 하나에 벌떡 일어나 길 건너 우리 집까지 얻어먹으러 온 부잣집 아가씨의 사고방식을 갑자기 이해할 수가 없게 됐거든.”


시연이 그 말을 듣고 피식거리는 동안, 또 다른 부잣집 아가씨인 윤비가 언제나의 점잖은 말투로 조용히 웃어 보였다.


“핑계입니다.”

“핑계?”

“부모님께서 밤 9시 이후로는 되도록 야식을 멀리 하라 하셨기에 집에서는 먹을 수가 없지만, 밖으로 나오면 벗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입에 댈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윤비 역시 쿠키를 한 입 맛있게 베어 물었다. 듣고 나니 서현도 부잣집 아가씨 두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하긴 우리 엄마도 밤에 야식 먹으면 살찐다고 잔소리 자주 하는 편이지. 부모님 잔소리 피해 몰래 먹는 야식 맛이 정말 꿀이라는 건 부자나 서민이나 같은 의견인 모양이다.


챙겨온 간식들의 수도 엄청났지만 학생들의 수도 엄청났고, 그 식욕은 더 무서웠기에 오래잖아 간식들은 동이 날 조짐을 보였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 갔다 오고 하느라 잔뜩 지쳤을 터인 학생들이지만 오늘 밤은 그 피로를 잠시나마 잊은 듯 했다. 소리는 없지만 활기찬 모습들로 간식을 먹고, 정리까지 다 해놓은 질서 있는 훈훈함에 서현은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런 하루가 있고, 그때마다 같이 어울려주는 오래된 친구들이라, 볼 때마다 친숙한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일을 벌일 때마다 좋든 나쁘든 이런 상상도 못할 행동들을 보여주니, 낯선 일을 하는데서 오는 어색함이 겹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론이 났다. 친숙하고 어색하고, 그런 건 이 친구들에게서 따질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겪어봐서 알 듯이, 내일은 내일의 일로 어울리고 함께 할 친구들이니까. 이 정도면 뭐, 19년 소꿉친구들에 대한 파악은 다 된 거라고 봐도 맞지 않을까.


작가의말

날이 많이 덥습니다... 매일매일 피로에 지쳐 사는 것 같네요ㅠ
모두 더위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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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집에 찬밥 있을 때 라면국물을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죄악이기 때문에 16.06.03 184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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