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의 3학년 1반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20 00:19
최근연재일 :
2016.07.30 01:13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3,361
추천수 :
9
글자수 :
136,854

작성
16.05.20 00:21
조회
255
추천
1
글자
10쪽

오늘부터 고3

DUMMY

“왜 벌써부터 인생을 다 포기한 표정들을 짓고 있냐, 너네.”


그래도 개학 첫 날이라고, 언제나의 체육복 대신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3학년 1반의 담임교사 권성철은 아침조회를 위해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한숨과 황당함이 섞인 그 한마디를 제일 먼저 꺼내 놓았다.

학교 시업식이 끝나고 배정된 반으로, 사실 배정이라고 해봤자 2학년 1반의 간판이 3학년 1반으로 바뀌고 교실만 위로 한 층 더 올라온 것에 불과하나, 그래도 새 학기 첫 날의 첫 등교부터 1반 학생 35명이 한꺼번에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교실 책상에 이마들을 가져다 박고 엎어져 있으니 담임으로서는 참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왜냐면요.”

“우리가.”

“고3이 됐기 때문입니다.”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남학생들의 기운 빠진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럿이 하는 대답인데 신기하게도 합이 딱딱 맞고 있다.


“찬란히 빛나야 할 10대의 추억이 탁하게 흐려지기만 하는 시기이죠.”

“영 좋지 못한 시간을 지나가게 됐어요.”

“그래요, 우리가 바로 그 고3입니다. 다시 말해 입시와 내신관리 지옥에 빠져들었다 이겁니다.”


이번에는 여학생들의 합이 딱딱 맞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게 지나고 나자 다시 남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다소 처절한 절규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고3이라니!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그 다음을 아주 자연스러운 타이밍으로 다른 남학생들이 또 말을 이어갔다.


“아······ 망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모든 게 끝이야······.”


삽시간에 암담해지는 학급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다시 기운 없이 책상 위에 풀썩 엎어졌다. 하는 행동이나 태도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로 빨랫줄에 널어다 말린 해파리마냥 흐느적대는 주제에 목소리는 뭔가 희한할 정도로 생기가 넘쳐흐른다.

우울해하는 얼굴들과 달리 학생들이 실제로는 아주 팔팔한 상태라는 건 교실 앞 칠판이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는 학생들이 오늘 아침에 등교해서 채워 넣은 온갖 낙서들로 그득한 판국이다.

흰색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분필이란 분필은 남김없이 활용해 “축! 고3!”이라던가, 또는 “인생의 막장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라던가, “창가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시오.” 따위의 문구들이 참 컬러풀하게도 써져 있었고, 칠판 구석에는 아예 무덤과 묘비를 그려놓고 그 앞에서, 누구의 솜씨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소녀 캐릭터 하나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머리 위의 말풍선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내 청춘은 어드메냐. 어허허야 허허야~”라고 되어 있었다.

담임 권성철은 한심해하는 눈으로 그 낙서들을 바라보다가, 여전히 책상에 이마 대고 엎드려 있는 ‘오늘부터 고3’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전부 기상.”


느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학생들이 하나씩 몸을 일으켜 세웠다. 총 서른다섯에 남학생 열여섯, 여학생 열아홉으로 여학생의 수가 좀 더 많은 학급이다. 시들고 풀죽고 기운 없어 보이는 몰골들이,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표준적인 모습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그 서른다섯이나 되는 학생들 모두의 눈빛에서 뭔가 아주 이질적인, 그래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그런 장난기 비슷한 것이 어려 있었다. 악동, 개구쟁이 또는 말괄량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어린아이 같은 그런 눈빛.


“그래도 개학이고 새학기니까 통과의례 한 번 하고 넘어가자. 각자 일어나 자기소개 한 번씩 해볼까?”


이 학급의 분위기가 이상한 건 학생뿐만이 아니다. 평범한 젊은 교사처럼 보이는 담임 권성철조차, 뭔가 학생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씩 웃은 것이다. 그는 교탁에서 출석부를 집어들고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순서는 내가 랜덤으로 부를 테니까, 지명된 사람은 일어나서 각자 자기소개,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이나 포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것.”


에이, 하고 자그만 야유가 날아온다. 그런 걸 꼭 해야 하느냐는 항의성 목소리다. 담임인 성철은 이런 거 매년마다 한 번씩 하지 않았냐, 하듯 씩 웃고는 제일 첫 번째의 학생을 호명했다.


“랜덤 순서 첫 번째 선우하나. 일어나서 자기소개.”


지명된 선우하나란 여학생 대신 엉뚱한 다른 남학생이 귀찮아하며 대답했다.


“진짜 꼭 해야 해요? 어차피 다 동네친구라 알만큼 아는데.”

“맞아요 맞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사이인 걸로도 모자라 고등학교도 지금 벌써 3년째 같은 반이라고요. 우리 서른다섯 명 전부 다.”


남학생들 몇몇이 손을 들고 항의를 하자, 성철은 씩 웃는 얼굴 그대로 대답했다.


“난 이번이 담임 처음이라 좀 알아야겠거든.”


그 소리에 교탁 앞에 앉아 있던 여학생 하나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집에서는 학교 가기 귀찮다며 제일 늦게까지 잠만 잔 주제에.”

“그 입 다물라, 권지연. 학교에선 제대로 선생님 대접을 해줘야지?”


엄한 눈이 되어 바로 앞자리의 여학생을 쏘아 보는 담임 권성철. 그러나 그의 여동생이자 제자이기도 한 권지연은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다. “네, 알고 있어요. 위대하신 오라방이자 선생님이죠.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있으니 내가 어제 시켜놓은 치킨 몰래 훔쳐 먹은 거 빨리 물어내기나 해.”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씨가 같고 또 오라방이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권성철은 권지연의 오빠인 것이다.

가족이니까 권지연하고만 가까운 사이냐? 그것도 아니다. 3학년 1반 학생 모두는 자기네들의 담임을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 보통 아닌 인연을 두고 몇몇 학생들이 소곤거렸다.


“세상 살고 볼 일이다. 성철이 형이 우리 담임도 되고.”

“불과 6년 전만 해도 그냥 착한 동네 바보 형이었는데, 그치?”


그 소리를 들은 성철이 제자들을 지도하게 된 소감을 간단하게 평했다.


“난 너희들이 기저귀 차고 옹알이하던 시절부터 봐와 그런가, 고3 담임이 아니라 어린이집 선생님이 된 느낌이다.”

“그야 뭐 다 같은 동네에 사니까요.”

“특이하다면 아주 특이한 인연이죠.”


학생들을 대하는 성철의 태도도 한 학급의 담임이라 보기에는 태도가 가볍고, 그런 성철과 격의 없어 보일 정도로 편하게 어울리는 학생들 역시 교사를 대한다기 보다는 정말 친한 동네 형이라도 만난 것 같다.


“그런데요, 성철 오······ 선생님. 오늘 정상수업이에요?”


이번에는 여학생들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했다. 담임선생이 너무 익숙한 사람이라 호칭 실수가 좀 나올 뻔했지만 그런대로 교사 대접은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오늘은 오전만 하고 끝나.”


그리고 성철의 간단한 대답이 나오자 학생들 모두가 안도했다. 고3이니까 개학 첫 날부터 정상수업 들어가면 어쩌나 하고 모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오전 밖에 시간이 없고 내일부터는 정상수업으로 바빠지니까 필요한 건 오늘 다 미리 해두자. 반장이랑 부반장부터 정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하면 좋을까?”


학생들의 시선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여학생에게로 향했다. 자기소개 호명을 받았던 선우하나, 그리고 그 뒤에 앉은 또 다른 소녀이다.


“교회봉이랑 선우하나요.”

“교회봉이 반장, 하나가 부반장, 딱 맞아떨어지네요.”


만장일치에 가까운 추천이 쏟아져 나온다. 지명된 두 여학생도 딱히 거부를 하는 기색은 없어서, 성철은 그대로 학급일지에 두 여학생의 이름을 적어 넣고는 말했다.


“그럼 반장 봉서현, 부반장 선우하나로 간다?”

“예~.”


어차피 반장, 부반장이라고 해봐야 요즘은 딱히 하는 일도 없다. 고3이 되면 그런 건 그냥 이름뿐인 명예직이라, 거의 강제로 지정되다시피 한 봉서현과 선우하나도 불만은 없는 듯 했다.

학생들의 맹숭맹숭한 대답이 있고 나자, 성철은 다음의 한마디로 간단했던 아침 조회를 끝내버렸다.


“자, 그럼 여기서 끝낼 테니 모두 알아서 다음 시간까지 자습하고 있어. 단 떠들지만 말 것.”


그리고는 본인이 제일 먼저 스마트폰 꺼내 들고 딴 짓을 시작했다. 교육상 좋은 행동이라 볼 수는 없는 장면이지만, 새 학기 첫 날 첫 시간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담임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도 주섬주섬 자습 준비를 갖췄다. 성실하게 책과 문제집 을 꺼내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대개는 자기네 담임과 똑같이 휴대폰 들고 딴 짓이다. 그 와중에 자기소개는 언제 그런 걸 할 예정이었는지도 모르게 묻혀버렸다.

선생이나 학생이나 모두 참 나태하고 게으르고 뭔가 하나 빠져 보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처음 시작하는 고등학교 3학년임에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로에 대해 어떤 느긋함과 익숙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 학급 안의 서른다섯 명 학생 모두는 서로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꿉친구 사이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고, 누구보다도 친숙하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절친한 사이들이다. 학기 초의 형식적인 자기소개 따위는 그들에게 있어 이미 필요 없는 단계인 것이다.

이곳이 바로 충주 중앙고 3학년 1반.

오늘부터 고3이 된 악동들의 집합장소이다.


작가의말

3학년 1반 아이들의 일상 이야기가 이제 시작됐습니다.
이 4차원 아이들이 평소에 뭐하고 노는지 이제 가면서 모든 것들이 다 밝혀지게 되겠군요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오늘의 3학년 1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연재 중단에 대한 공지입니다 +2 16.07.30 88 0 2쪽
20 분리수거로 발견한 것 +2 16.07.29 156 0 14쪽
19 고대의 유물과 3학년 1반 - 프롤로그 +2 16.07.23 140 0 13쪽
18 그리고 여기까지 에필로그였습니다. +2 16.07.22 135 0 12쪽
17 이번 주 연재를 잠시 뒤로 미루겠습니다 +1 16.07.15 143 0 1쪽
16 진실이란 원래 밝혀지고 나면 허무한 것 +2 16.07.09 156 0 22쪽
15 간식 앞에 흔들리는 우정 +2 16.07.08 105 0 18쪽
14 오늘, 간식을 위해 친구를 속였다 +2 16.07.02 121 0 13쪽
13 고3은 왜 캐릭터로서 인기가 없는가 +2 16.07.01 164 0 16쪽
12 여자 고교생의 오후 +3 16.06.25 147 0 13쪽
11 남자 고교생의 오전 +2 16.06.24 158 0 12쪽
10 소꿉친구 겸 절친 겸 영혼의 파트너. …우리 반 전체가. +2 16.06.18 151 0 22쪽
9 소꿉친구가 있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2 16.06.17 180 0 14쪽
8 이상, 지금까지 프롤로그였습니다 +4 16.06.11 152 1 20쪽
7 그리고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16.06.10 154 1 16쪽
6 모든 것은 고3이란 이름으로 용서 받을 수 있다 16.06.04 199 1 17쪽
5 집에 찬밥 있을 때 라면국물을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죄악이기 때문에 16.06.03 184 1 20쪽
4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를 단 자연스런 폭식 준비. +2 16.05.28 185 1 16쪽
3 …같은 쓸데없는 고민은 사람을 허기지게 만들고 16.05.27 140 1 16쪽
2 교실 청소와 김말이의 상관관계 +2 16.05.21 248 2 12쪽
» 오늘부터 고3 16.05.20 256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