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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의 3학년 1반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20 00:19
최근연재일 :
2016.07.30 01:13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3,360
추천수 :
9
글자수 :
136,854

작성
16.06.18 02:14
조회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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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소꿉친구 겸 절친 겸 영혼의 파트너. …우리 반 전체가.

DUMMY

어제만 해도 하루 종일 그렇게 날씨가 화창하더니만, 딸랑 하루 지나자마자 일기예보는 충청 전라 지역 중심으로 종일 비가 내릴 거라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기예보는 원래 틀리는 것이라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침 등굣길부터 팍팍 쏟아지는 빗줄기에 충주 시내 모든 학생들의 발걸음은 영 무겁기만 하다. 그러잖아도 가기 싫어 죽겠는 학교인데 정상수업 들어가는 첫 날이 비 쏟아지고 천둥번개 치고 강풍이 몰아치는 칙칙한 날씨라, 이래저래 마음 무거운 고3의 경우는 다른 학년들보다 더욱 등교 의욕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시간표부터가 정상이 아닌데 날씨까지 이러니 진짜 학교 가기 싫어지네.”


우박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큼지막한 우산 하나 들고 막아내면서, 장시연이 그렇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웨이브진 풍성한 흑발을 어깨너머로 깔끔히 넘기고, 흑진주처럼 영롱히 반짝이는 눈동자와 생동감이 넘치는 활기찬 눈매, 프라이드 높은 귀족 아가씨와도 같은 인상의 소녀이다.

지금은 날씨가 날씨다보니 곱슬기가 있는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뻗쳐 있고, 신발과 양말이 비에 젖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삼선슬리퍼를 맨발로 신고 있는 모습은 귀족 같은 기품과 외양을 심히 안 좋게 떨어뜨리고 있으며, 그 때문에 방금 나온 집이 진짜로 귀족들이나 살 것 같은 서양식 대저택이지만 귀한 집안의 영애라기보다는 그 귀한 집으로 알바하러 나온 학생 1같은 모양새다.


집이 그냥 잘사는 정도가 아니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 하나라는 어마어마한 배경을 가지고는 있으나,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5분 정도인 극히 가까운 거리이다 보니 아무리 재벌가의 영양이라 해도 그 짧은 거리를 차 타고 가기에는 좀 아니라 여기는 듯 하다. 덕분에 지금 교복치마 아래로는 비로 다 젖은 상태가 되었고.

학교에 빨리 갈 수 있는 저택 후문으로 나와 큰길가를 향해 나오자 시연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우산 펼쳐 쓰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학교에 향하고 있었다. 워낙 비가 세차게 내려 그런지 다른 학생들도 거의 절반 정도가 시연처럼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다.


“진짜 비 많이 내린다. 라면파티 오늘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우산을 무슨 샌드백처럼 퍽퍽 두들겨대는 강풍은 뚫고 나아가기도 힘이 들었다. 우산 뒤집어지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시연의 옆으로, 똑같이 교복치마 아래로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인 여학생이 자연스레 다가왔다. 귀찮아서 대충 틀어올린 당고머리와 훤칠하지만 왠지 굴곡이 없어 보이는 몸매, 김주예이다.


“그래, 이런 날에는 라면파티 안 하는 게 낫지. 어제는 그나마 마당 안에서 한 일이라 공간이 넉넉했지만 집안에서까지 그런다면 끔찍할 것 같거든.”


어제 바로 옆집 친구네 안마당에서 벌어졌던 라면파티를 떠올린 시연이 힘없이 웃어보였다. 한 반 전체인 서른다섯 명의 학생이 모인 자리라 더욱 떠들썩했고, 어울려 놀다 보니 기력이 다 빠질 정도로 활기찼던 왁자지껄함도.


“근데 이렇게 비 내리는 날에는 꼭 라면이 먹고 싶어지더라고.”

“어제 그렇게나 먹고도 또 먹고 싶니?”


시연은 이제 라면이 물린다는 표정이었지만 주예에게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인 모양이다.


“어제 먹은 라면은 어제 다 소화됐거든.”

“맛있기는 했는데 난 이틀 연속으로 먹으라면 못해.”

“라면이 싫으면 다른 거 해먹어볼까? 파전, 아니면 김치전.”


꼭 먹어야겠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연이었으나 표정만 그럴 뿐이지, 주예가 말한 것을 듣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군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예를 도와 아주 자연스럽게 지원사격을 하는 것처럼, 이번엔 남학생 하나가 두 사람의 뒤에서 나타나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봐. 오징어랑 새우랑 파랑 굴을 썰어 넣고 밀가루랑 물 섞어서 걸쭉하게 반죽한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 촥 둘러서 데우면 거기다 반죽을 넣고 자글자글하게 부치는 거야. 기름 끓는 소리에 맞춰 노랗게 익어가는 테두리랑, 표면에 구멍이 송골송골 맺히면 한 번에 뒤집어서 반대쪽을 또 익히는 거지. 윤기 자르르 흐르는 먹음직한 그 표면을 가위로 잘라서 간장에 한 쪽 찍어 먹으면 그 맛에 비길 수 있는 거 없다? 그런 걸 진짜 안 먹고 싶어?”


키도 얼굴도 체격도 목소리도,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란 이미지를 이 이상 더 잘 나타낼 수가 없을 것 같은 남학생 중 하나인 오현기였다.

그래도 이쪽은 아예 맨발이라 털털하기 그지없는 두 여학생과 달리 운동화를 제대로 신고 있기는 했다. 이미 다 젖어버린 듯해서 문제지만.


“아침부터 속 니글거려 죽겠는데 뭔 부침개 타령이야.”


잔뜩 피곤하고 졸린 목소리로 말하며 또 다른 여학생이 나타났다. 주예나 시연과 비교하면 몹시 풍성한 몸매와 가슴을 지니고, 곱슬진 흑발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가 섹시하게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하지만 뭣 때문인지 매우 지친 듯한 모습인데, 세차게 비가 내리는 이 와중에도 한 손에 피자 한 조각을 들고 오물거리는 중이다.

“속 니글거린다면서 피자는 왜 먹어.”

“근데 피자봉, 니네 집 이쪽 방향 아니잖아. 왜 엉뚱한 데서 나타나고 그래?”


큰길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학교 교문과, 그 학교 뒤에 자리 잡은 커다란 교회를 가리키며 현기와 주예가 차례로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봉서현은 여전히 속이 안 좋단 표정일뿐 별 말이 없었고, 서현과 함께 등교 중이던 이윤비가 차분히 웃으며 말했다.


“서현 양은 어제 저희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서현을 비롯해 주예와 시연이 모두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맨발에 슬리퍼라는 똑같은 차림인데 비해, 윤비는 흐트러진 것 하나 없이 단정한 교복 차림이다. 길고 곧은 흑발과 비오는 날에도 흔들림 없는 그 몸동작이 사뿐사뿐하고 우아한, 그야말로 고귀한 아가씨와도 같은 자태였다.


“우리가 어제 라면파티 하고 저녁쯤에는 다 돌아갔는데, 피자봉은 혼자 남아 끝까지 민폐를 끼쳤다 이거군.”


현기의 지적에 서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먹던 피자를 계속 오물거렸다. 그리고 옆에서 주예가 하는 말에도 건성건성 대답했다.


“어제 라면 먹고 밤에는 피자 먹고 아침에 또 피자? 체중에 이자 붙는 소리가 들린다, 야.”

“괜찮아, 고3이니까 얼마 안 가 스트레스로 다 빠져.”


마침내 피자 한 조각을 다 먹어치운 서현은 손가락에 묻은 기름기까지 쪽 빨아먹었다.

“어차피 어제 먹다 남은 거 버리기 아까워서 들고 나온 거니까.”

“식은 음식은 위생을 생각해서라도 먹지 않는 것이······.”

“괜찮아, 괜찮아. 남기지 말고 다 먹는 게 우리 집 교육이라서.”


서현의 대답은 쾌활했지만, 유독 혼자만 잔뜩 피곤해하는 표정이어서 모두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윤비네 집 안마당에서 벌어진 어제의 라면파티는 저녁이 될 무렵에 끝이 났고, 3학년 1반 서른다섯 명은 마무리와 뒷정리도 일사불란하게 마쳐놓았다. 그릇을 모으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반짝반짝 윤이 날 때까지 설거지를 한 다음, 찾아왔을 때처럼 질서정연하게 줄 맞춰서 그 대저택을 나왔으니 말이다.


“서현 양은 그 후 어두워졌을 때 다시 찾아왔지요.”


그리고 그 다음 벌어진 일은 윤비의 점잖은 설명으로 알 수 있었다.


“함께 야식을 들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으나 제가 깜박 잠이 들은 동안 서현 양은 새벽까지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새벽 3시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7시였지.”


크게 하품을 하는 서현에게 시연이 조금 못마땅해 하는 눈길을 보냈다.


“윤비 잠 못 자게 방해한 건 아니겠지, 미스봉?”

“그냥 웹툰 몇 개 정주행만 했어. 앞으론 그런 거 볼 시간도 거의 안 날 것 같아서.”


오늘부터 정상수업과 야자에 학원까지 뛰어야 하는 빡센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까지 웹툰이나 보다가 나왔다는 대답을 듣자 시연의 얼굴에 한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어렸다.


“시작부터 너무 나태한 태도를 보이네, 미스봉.”

“혹시 어렸을 때 생각 안 나냐? 초등학교 3학년 때쯤에 소풍 갔다가 교회봉 혼자 뻘짓 해가지고 우리끼리 다 같이 모여 맹세한 거.”


흐느적거리는 서현의 모습을 보고 뭔가가 생각난 오현기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뭔가를 바로 떠올린 김주예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교회봉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끼리 했던 말은 기억난다. 우리는 앞으로 교회봉처럼만 되지 말자고 했었지.”

“야, 이 의욕 안 나는 등굣길에 왜 허락도 없이 남의 흑역사를 자꾸 들추려고 그래.”


서현의 항의를 들은 시연이 현기와 주예를 편들며 똑같이 웃어보였다.


“이게 바로 소꿉친구의 장점이자 단점을 드러내는 일면이니까. 장점, 서로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친하기 때문에, 단점, 그래서 서로의 흑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 그래. 그러니까 이 비오는 날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서 서로의 흑역사 공개 배틀이라도 한 번 뛰어보자 이거지?”


험악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서현이었지만 얼마 안 가 도로 힘없이 늘어지게 되었다. 왜 그러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배를 쓱쓱 문지르면서 서현은 울적하게 대답했다.


“배고프다······.”

“그렇게 먹어놓고 또?”

“식신봉 다 됐네. 언제부터 밥순이 캐릭터였냐, 너?”


주예와 현기가 진심으로 놀랐지만 서현은 거기에 대꾸해줄 겨를도 없는 것처럼, 방금 피자 한 조각을 먹었는데도 고동소리 힘차게 울려대는 배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문지르기 바빴다. 그런 서현을 정말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한 번 바라본 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시연이 문자를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하는 수 없지. 반 애들한테 도움을 청해볼까.”


서현만큼은 아니지만 시연도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나온 터라, 사실 배가 좀 출출하던 참이었다. 재벌집 아가씨임에도, 아니 오히려 재벌집 아가씨라 평범한 학생들보다 더 피곤한 일과를 소화하고 있는 시연은 중학교 때부터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판이라 항상 아침 입맛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항상 빵, 또는 수프 같은 간단한 식만 들고 나오느라 금세 허기가 지곤 한다. 서현이 지금 옆에서 칭얼대는 소리에 아침 공복을 오랜만에 실감하게 된 시연이었다.


“주문 끝났어, 미스봉. 학교로 가서 준비해볼까.”

“먹을 거 주문이라도 한 거야? 가서 뭘 준비한다는 건데?”

“아침 허기를 면할 만한 수단을 사용하자고 해봤어. 반의 모두한테.”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시연에게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학교 교실로 들어왔을 때도 시연이 말한 준비, 에 어울리는 광경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나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시연은 함께 등교한 네 명의 친구 윤비, 서현, 주예, 현기에게 바로 지시부터 내렸다.


“책상을 나눠서 반은 벽으로 밀고, 나머지 반은 길게 이어 붙여서 테이블 형태로 만들어둬.”

“갑자기 왜?”

“만들어 먹을 게 조금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시연은 엄격한 눈빛을 지어보였다.


“최대한 빨리 흔적도 남기지 말고,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 상황정리 끝내서 시침 뚝 떼고 넘어가야 돼.”

“뭘 할 건지나 좀 알려주고 그런 대사를 쳐봐라. 교실에서 뭘 어쩌려는 거야?”


답답해하는 현기의 질문이 날아오자 시연은 답변해주려는 듯하다가, 마침 교실로 다른 친구들이 들어오자 우선 뒤를 돌아보라는 손짓을 했다.

3학년 1반 학생들이 속속들이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먼저 온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시킨 것도 아닌데 책상들을 벽으로 붙이고 테이블처럼 길게 이어붙이면서 공간을 만들더니 가방 안에서 각자 반찬용기나 하니면 알루미늄 호일 뭉치들을 꺼내 이어 붙인 책상 위에 늘어놓기 시작한다.


“야, 너네 그냥 보고 있지만 말고 와서 같이 좀 도와.”


아직 7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1반에는 전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등교해 벌써부터 북적거렸다. 무엇 때문에 다들 이렇게나 빨리 온 걸까. 분명 시연이 아까 보냈으리라 생각되는 문자 때문인 듯 하지만······.


“뭘 하려는 건데?”


아침 일찍 등교한 친구들의 기묘한 짓거리가 신경이 쓰였기에,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온 서현과 윤비, 주예, 현기 네 명의 학생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돕기 위해 다가가 보았다.


“주먹밥 만들 건데.”

“시연이가 교실에서 주먹밥 만들어 먹자고 하더라.”

“찬밥이랑 주먹밥으로 쓸만한 속 재료 준비해서 오라고 하길래 그대로 따랐지.”


금세 떠들썩한 분위기가 퍼지면서, 학생들은 책상으로 만든 테이블 위에 각자가 가져온 재료들을 꺼내놓았다. 모아놓으니 밥솥 하나 분량으로 쌓인 밥과, 속재료로 쓸 참치, 마요네즈, 소시지, 계란프라이, 베이컨, 미니돈가스, 고추장, 케첩 등등. 집에서 조리를 해왔는지 불이 필요한 재료들은 빈틈없이 미리 익혀두기까지 했다.


“갑자기 문자 보내서 급하게 챙기느라 양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우리끼리 하나씩 만들어먹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아.”


가방에서 위생장갑 한 박스를 꺼내들고, 장갑 한 켤레씩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차수아가 말했다.


“집에 있는 그릇 몇 개 가져와봤어. 재료들 구분해 담을 게 필요하니까.”

“손 닦을 물티슈도 같이.”


반찬용 그릇들과 물티슈 한 팩을 나란히 꺼내드는 이재성, 그리고 김종인의 옆에서는 선우하나가 미리 기름을 빼낸 참치 한 캔을 그릇에 털어 넣고 마요네즈로 버무리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조용히 흥얼대면서.


“비 내리는 호남선~.”


그런 하나의 옆에서 비엔나소시지를 하나씩 가위로 자르고 있던 오현기가 노래를 같이 따라 불렀다.


“남행열차에~.”


그리고 현기의 옆에서 미니돈가스에 케첩으로 별 모양을 그리고 있던 성현주가 따라서 합창.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호적상 누나인 현주의 옆에서 베이컨을 주먹밥 하나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자르는 중인 성영수, 성광수 쌍둥이 형제 또한 합류하면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그렇게 노래 한 곡이 시작되자 흥겨움을 공유하게 된 1반 학생들 전체가 아예 각자 자기 작업을 하면서 한꺼번에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음 소절은 아예 남학생들끼리의 떼창이 이어진다.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으쌰~ 으쌰!! 으쌰~ 으쌰!!””””


다듬은 재료를 재빨리 여학생들에게 넘겨주자, 이번에는 여학생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깜박 깜박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으쌰~ 으쌰!! 으쌰~ 으쌰!!””””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먹을 주먹밥을 둥글게 뭉치면서 이번엔 학생들 모두가 합창.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으쌰~ 으쌰!! 으쌰~ 으쌰!!””””


밖에는 비가 내리고, 교실에서는 아침식사 대용의 주먹밥을 집에서 직접 재료 가져와 만들어 먹는 학생들, 그리고 한 반이 전부 등교한 건 아직 1반뿐이라 상대적으로 고요한 학교 건물 안에서 학생들의 합창이 신나게 울려 퍼진다.


““““비 내리는 호남선~ 마지막 열차~.””””

““““기적 소리~ 슬피 우는데~.”””

““““으쌰~ 으쌰!! 으쌰~ 으쌰!!””””


내친 김에 2절까지 들어간다. 목소리, 박자, 리듬 호흡 착착 맞는 것도 모자라 역시 제각기 하는 일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둥글게 뭉친 주먹밥을 안에 들어간 재료별로 구분해 그릇에 놓고, 밥풀 하나 재료 한 점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역시 조금의 빗나감도 없다. 그 와중에도 서른다섯 명 학생들의 신들린 듯한 합창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 사랑도 흐르네~.””””

““““으쌰~ 으쌰!! 으쌰~ 으쌰!!””””

““““깜박 깜박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으쌰~ 으쌰!! 으쌰~ 으쌰!!””””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2절이 끝나고 나니 주먹밥들이 얼추 수량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남은 재료가 더 많았기에 아직 다 만들려면 노래 한 곡 부를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해서, 남행열차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선우하나가 또 한 번 생각나는 옛날 노래 하나를 더 부르기 시작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운을 띄워주자 학생들은 다시 알아서들 합창을 시작한다.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으쌰~ 으쌰!! 으쌰~ 으쌰!!””””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으쌰~ 으쌰!! 으쌰~ 으쌰!!””””


아침부터 들려오는 흥겨운 노랫소리에, 이제는 다른 반 학생들이 쟤들 뭘 잘못 먹었나 싶어 1반을 교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시끄럽다는 항의가 나올 법도 한데, 오히려 1반 학생들이 너무도 신이 나 보이는데다 교실에서 뭔가 먹을 걸 만들고 있기까지 하자 항의는커녕, 자기네들도 원래 1반인 것처럼 은근슬쩍 끼어들어 같이 합창들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으쌰~ 으쌰!! 으쌰~ 으쌰!!””””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으쌰~ 으쌰!! 으쌰~ 으쌰!!””””


영혼의 궁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 듯한 1반 학생들의 호흡이다. 그 중 배가 고픈 봉서현은 어느새 자기 혼자만 합창에서 슬쩍 빠져서, 시연이 만들어 가져다준 참치 마요네즈 주먹밥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소꿉친구 효과란 걸까.”

“뭘 하든 팀웍이 딱딱 들어맞는 것, 그것도 소꿉친구의 특징 하나가 아닐까.”


소꿉친구, 라고 하기에 서른다섯 명은 너무나도 많은 수이다. 시연이 그 점을 떠올리자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지 힘빠진 미소를 짓는 동안, 윤비가 자기 주먹밥을 들고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만큼 또 절친하기에 매일 매일 이런 즐거운 일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고3 정상수업이 정식으로 시작되는 날, 아침부터 교실에서 주먹밥 만들어 먹기 & 합창 노래방이라는 비범한 장난들을 치는 것도 친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말은 하고 있으나······.

어느새 다른 반의 학생들까지 1반에 놀러와 같이 주먹밥 만들고 나눠먹고 노래 부르고 하는 장관까지 이루어진 지경이다. 영혼 레벨로 궁합이 잘 맞는다 해도, 이쯤 되면 장난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얌마! 너희들 아침부터 시끄럽게 누가 그렇게 몰려서 노래 부르래? 그리고 교실에서 주먹밥을 왜 만들고 있어, 주먹밥을? 빨리 안 치워?!”


아니나다를까 학생주임의 호통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그러나 학생들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까르르 웃으면서 선생님에게까지 교실에서 만든 주먹밥을 권하고 있다.


“아침에 밥을 못 먹고 와서 한 번 만들어 봤어요.”

“선생님도 와서 드세요. 심플하게 만든 것치고는 맛있거든요.”


학생들 모두가 웃으면서 빨리 오시라고 권유까지 해대자 제아무리 학생주임이라 해도 버틸 수가 없었는지, 계면쩍어하면서도 참치 마요네즈 주먹밥을 얻어먹었다. 맛있네, 하는 짧은 감탄 뒤로 좋게 타이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1교시 시작하기 전에는 깨끗하게 다 치워야 한다.”

““““네~!!””””

“밑에서 교무 회의 중이니까 노래는 자제하고.”

““““네~!!””””


강아지처럼 순진무구한 대답들을 하는 학생들을 조금 떨떠름한대로 바라보고, 주임 선생님이 내려가자 학생들은 합창 대신 각자의 휴대폰에 담아놓은 노래들을 한 곡씩 돌아가면서 띄우고 듣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평화롭고 훈훈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서현이 윤비, 시연을 돌아보았다.


“이쯤 되면 우리는 소꿉친구 겸 절친 겸 영혼의 파트너 레벨이다, 그치?”


그리 재미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교실 분위기 자체가 떠들썩해 그런지, 윤비도 시연도 부정은 못하고 즐거워하는 미소와 함께 주먹밥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기행을 시작한 1반 아이들입니다...

뭔가 애들 사고방식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네요.

교실에서 주먹밥 만들어먹기... 허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1 내천
    작성일
    16.06.18 10:14
    No. 1

    언제나 상상이상의 아이들.. 수능시즌이 기대가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유모세
    작성일
    16.06.18 11:14
    No. 2

    수능시즌 되면 아무리 이 아이들이라도 좀 얌전해질 수 있으려나요^^; 지금까지 노는 걸 보면 이 아이들이 쥐죽은 듯 가만 있는 게 잘 상상이 안 되지만은...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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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리고 여기까지 에필로그였습니다. +2 16.07.22 135 0 12쪽
17 이번 주 연재를 잠시 뒤로 미루겠습니다 +1 16.07.15 143 0 1쪽
16 진실이란 원래 밝혀지고 나면 허무한 것 +2 16.07.09 156 0 22쪽
15 간식 앞에 흔들리는 우정 +2 16.07.08 105 0 18쪽
14 오늘, 간식을 위해 친구를 속였다 +2 16.07.02 121 0 13쪽
13 고3은 왜 캐릭터로서 인기가 없는가 +2 16.07.01 164 0 16쪽
12 여자 고교생의 오후 +3 16.06.25 147 0 13쪽
11 남자 고교생의 오전 +2 16.06.24 158 0 12쪽
» 소꿉친구 겸 절친 겸 영혼의 파트너. …우리 반 전체가. +2 16.06.18 151 0 22쪽
9 소꿉친구가 있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2 16.06.17 180 0 14쪽
8 이상, 지금까지 프롤로그였습니다 +4 16.06.11 152 1 20쪽
7 그리고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16.06.10 154 1 16쪽
6 모든 것은 고3이란 이름으로 용서 받을 수 있다 16.06.04 199 1 17쪽
5 집에 찬밥 있을 때 라면국물을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죄악이기 때문에 16.06.03 184 1 20쪽
4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를 단 자연스런 폭식 준비. +2 16.05.28 185 1 16쪽
3 …같은 쓸데없는 고민은 사람을 허기지게 만들고 16.05.27 140 1 16쪽
2 교실 청소와 김말이의 상관관계 +2 16.05.21 248 2 12쪽
1 오늘부터 고3 16.05.20 25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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