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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의 3학년 1반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20 00:19
최근연재일 :
2016.07.30 01:13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3,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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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수 :
136,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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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11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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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이상, 지금까지 프롤로그였습니다

DUMMY

학교를 나와 교문 옆 담장을 쭉 따라 걷다 보면 학교 강당을 지나게 되고, 그 끝자락의 골목길 건너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작은 사거리가 하나 나온다. 학생들이 학교 옆 사거리라 부르는 그곳에는 음식점 몇 군데와 할인마트가 하나, 그리고 자주 가는 분식집이 하나 있어서, 학교 끝나면 굳이 1반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여기에 잠깐 들렀다 가는 다른 반 다른 학년 학생들도 많이 있는 편이다. 물론 충주 중앙고 뿐 아니라 주위의 다른 학교 학생들도.

덕분에 이 동네의 할인마트는 하교 시간이 되면 들러서 아이스크림이나 간식거리 사가는 학생들 덕분에 북적일 때가 많다. 학교 바로 앞의 길을 건너면 편의점도 자리 잡고 있지만 집이 그쪽 방향인 학생들을 빼면 대개는 1플러스 1의 음료수 행사가 있을 때 또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컵라면이 필요할 때 이용되는 정도다.

집에 가는 길인 학생들의 선호도만 보면 할인마트가 편의점보다 더 높은 편에 속하기는 하나, 그럼에도 오늘 같은 날은 거의 없는 축에 속한다.

정말로 집에 가는 길이었던, 아니면 집에 들어가 쉬는 중이었던 한 학급 거의 전체의 학생들이 마트 한 군데에 몰려들어 분위기 요란한 상황은 말이다.

최초로 할인마트에 도착한 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청소를 하고 있던 남수민, 신은표, 오현기 세 명의 남학생이다. 3천 3백 원짜리 라면 봉지를 노리고 셋이 주머니 잔돈 탈탈 털어 기운 넘치게 도착했다.

그 다음으로 도착한 건 함께 청소를 했던 여학생들인 조은하와 권지연. 할인마트 옆 분식집에 가서 허기를 채우려 했으나 먹고 싶어 했던 김말이가 품절이고 컵볶이 하나씩으로는 피 끓는 여고생의 위장을 채우기에 역부족이었던지라, 하는 수 없이 뭔가 먹을 걸 더 사가기 위해 마트에 들른 참이었다.


“뭐야, 너희들은 왜 왔어?”


먼저 들어가서 라면 코너로 향하는 중이었던 남수민, 신은표, 오현기 세 남학생이 한 발 늦게 뒤따라온 은하와 지연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컵볶이 가지곤 부족하더라. 우리도 라면 좀 사갈까 하고.”


은하가 세 남학생에게 그렇게 대답을 했고, 옆에 있던 지연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곧바로 돌아보며 세 남학생이 자기들한테 했던 대사를 거의 그대로 내뱉었다.


“뭐야, 너희들도 온 거야?”


그런 지연의 한마디를 듣자, 새로이 마트에 도달한 도합 다섯 명의 남학생들은 오히려 자기네가 놀랐다는 표정들이 되었다. 그러는 너희들이야말로 여기는 왜 있냐는 식으로.


“우리 배고파서 라면 사러 온 건데.”

“6개 들이가 3천 3백 원이잖아.”


그러면서 들어온 다섯 명의 남학생은 조금 전 친구네 한 집에 몰려 비디오 게임을 같이 하고 있던 인원들이다. 안세진, 변정훈, 서호준, 방남연, 주동식의 5인방.


“우린 다섯 명이 나눠먹을 만 원 어치 사가서 반은 삶고 반은 뽀개 먹으려고.”


모아온 돈을 내보이며 안세진이 입을 연다. 그러자 먼저 왔던 세 명의 남학생, 그리고 두 번째로 왔던 두 명의 여학생이 아닌 또 새로운 목소리가 일행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우린 전부 다 끓여먹을 건데. 여섯 명이 두 개씩 열 두 개니까 6개 들이 두 봉지 사가서.”


시내 영화관까지 갔다가 상영시간도 안 맞고 돈도 부족해 우선 돌아가 배부터 채우기로 결정한 여학생들 무리이다. 김주예, 송미애, 명희라, 유성희, 나유미, 지선예의 여섯 명.

새로 합류한 여학생들을 보고 남학생들 중 남수민의 표정이 불안하게 변했다.


“야, 이렇게 다 모이면 우리끼리 나눠먹을 라면이 남아나기는 하는 거야?”

“진열된 거 있는 대로 사보고, 부족하면 창고에서라도 꺼내 달라 해야지. 마침 또 여기 일곱 명이 더 들어왔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명희라가 슬쩍 입구를 비켜주자, 그 사이로 또 다시 일곱 명의 학생들이 나타났다. 복싱부에서 라면 두 개 부숴서 나눠먹다가 아무래도 양이 부족해 새로 사러 나온 일행이다. 김종인, 성현주, 성영수, 성광수, 한사랑, 박미하, 최대식의 일곱 명.

그들을 보자마자 대다수의 학생들이 놀리는 소리를 냈다.


“야, 김종인. 너 권투선수가 라면 같은 인스턴트 막 먹고 다녀도 되는 거야?”

“3학년 병아리반과 선생님들 오셨습니다. 줄 이쁘게 서서 기다려주세요.”

“지금 우리 전부 다 라면 사러 온 상황인데, 너네는 몇 개 살 거야?”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소리에 새로 들어온 일곱 명 중 한사랑과 박미하가 차례로 대답해 주었다.


“종인이가 그러는데에, 모든 것은 고3이란 이름으로 용서 받을 수 있대.”

“그래서 우리끼리 나눠 먹을 양으로 만 원어치 사들고 윤비네 집에 가서 맛나게 끓여먹을 생각인데, 기왕 먹을 거면 너희들도 집 넓은 윤비네 가서 같이 먹는 게 낫지 않겠어?”


미하가 말하는 속도는 여전히 기관총 같았지만 학생들이 알아듣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미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약간 탄성 비슷한 소리를 내며 또 여덟 명의 학생들이 마트에 들어서고 있었다.


“와, 너희들도 여기 다 모였어?”

“여기 모여 있는 게 설마 다 라면 사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집에서 연기 연습하다가 허기를 느끼고 라면이나마 푸짐하게 먹기 위해 마트로 들른 이재성, 구효신, 박승빈, 차수아, 고성진, 황예린, 김근호와 문혜나의 여덟 명이다.

전부 합쳐 서른한 명이나 되는 충주 중앙고 3학년 1반 학생들이 마트 한군데에 몰려서 우글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모두는 전부 다 라면을 사러 왔습니다.”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질 것 같으니 우선 확인을 해보겠어. 너희 여덟 명은 라면 얼마치?”


친구들의 질문을 받은 이재성이 자기들끼리 모아온 돈을 내밀어 보였다.


“우린 여덟 명이 나눠먹을 만 4천 원어치.”


자연스럽게 서로가 내민 돈을 걷으면서 학생들은 모두 계산에 들어갔다.


“중간정산 한 번 해봐. 그럼 우리 총 얼마치를 사야해?”


누군가가 한 말에 학생들 중 송미애가 가장 먼저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는 대답했다.


“라면 개수로 따지는 게 더 빨라. 6개 들이 열다섯 봉지가 필요하니까 합쳐 49,500원.”

“한 봉지 더 추가해서 16개로 계산 부탁해. 나랑 하나도 먹을 거니까.”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거기서 다시 두 명의 여학생이 추가되었다.

방에서 뒹굴거리다가 친구들 라면 사러 갔다는 소리에 자기들도 먹고 싶어 달려온 선우하나와 봉서현의 페어다.


“그럼 다 합쳐서 5만 2천 8백 원.”


계산을 빠르게 마친 송미애의 답이 나오자마자, 이제 최종적으로 서른 세 명이 된 학생들은 돈을 한데 모아 봉서현에게 건네주었다. 친구들의 돈을 전달 받은 봉서현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라면 열여섯 봉지. 신속하게 계산 마치고 윤비네 집에 가서 끓여먹는 거야.”

“윤비가 와도 된대?”


학생들의 조심스러운 질문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선우하나가 대답해주었다.


“주방 비워둘 테니까 와서 먹으래.”


그 말에 학생들 모두는 대답 없이 박수치는 시늉을 냈다. 진짜로 소리를 내면 마트 내의 손님들과 직원들에게 민폐가 될 테니까.

그래서 박수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모두 목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히 식료품 코너의 라면 진열대로 줄 맞춰 가서 사려고 하는 행사 상품을 확보하려 하는데······.


“얘들아, 문제가 생겼어. 라면 거의 다 팔리고 몇 개밖에 없는데?”


앞장 서 나가던 여학생 김주예의 당혹스런 한마디가 들려오자 모두들 걸음이 멈췄다. 주예가 전해준 것처럼, 행사 상품으로 내놓은 라면이 거의 다 팔리고 몇 봉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들 모두가 나눠 먹을 라면의 개수는 6개 들이 라면이 16봉지로 96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인데, 진열대에 남아있는 건 딱 다섯 봉지 밖에 되지 않았다.


“아, 이거 마지막에 와서 난감한 일이 번지네.”

“신은 우리를 저버렸는가······.”

“동네 슈퍼에 라면 사러 왔는데 라면이 없다니······.”


우울한 공기가 퍼진다. 그러나 이때, 반 내에서는 거의 구세주나 해결사 취급을 받는 김종인이 선우하나와 봉서현에게 다가가 무언가 몇 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그 두 사람은 마트 직원에게 다가가 또 무슨 말을 건넸고, 마트 직원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서현과 하나는 친구들 쪽을 돌아보았다.


“창고에서 네 박스 꺼내주신대.”

“그럼 딱 열여섯 봉지 된다고 하시네.”


종인이 먼저 직원들에게 창고에 있는 물건 꺼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냈고, 소현과 하나는 대표자로서 그것을 마트에 전달해 흔쾌한 대답을 얻어낸 것이다. 덕분에 헛걸음을 하지 않은 셈이 된 서른세 명의 학생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렬로 나란히 줄 맞춰 서서 창고와 계산대까지 이어지는 길다란 줄을 만들었다.

이윽고 창고에서 직원이 꺼내준 라면 한 박스가 줄 맨 끝의 선우하나에게 전달되었다. 그것을 바로 옆의 남학생 이재성에게 넘겨주며 선우하나가 가만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흥얼거리는 소리에 가까웠지만 그런 하나의 노랫소리를 듣자마자 재성 역시 씩 웃는 얼굴로 노래 한마디를 이었다.


“마트에서 박스 배달.”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그리고 재성에게 박스를 넘겨받은 김주예가 또 한마디를 이었다. 김주예 다음은 성현주, 성현주 다음은 성영수, 성영수 다음은 성광수, 그 다음은 은표, 다음은 또 미애, 이런 식으로 일렬 쭉 늘어선 학생들은 라면 박스를 서로에게 넘겨주며 어느새 흥겨운 합창을 시작하고 있었다. 반주 없이 즉석에서 동요 가사를 바꿔 부르는데, 정말 신통하게도 서른세 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호흡이 어긋남 없이 착착 들어맞고 있었다.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마트에서 박스 배달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계산대에 라면박스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계산할 돈 한데모아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끝났으면 얼른 가자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노래 하나 끝내고 나니 라면 네 박스가 계산대에 고이 모셔져 있다. 줄 맨 앞에서 대기 중이던 봉서현이 마지막 네 박스째를 올려놓고, 친구들과 함께 모은 돈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자 역시 앞줄에서 기다리던 남학생 네 명이 각자 박스를 하나씩 나눠들었다.

무서워 보일 정도의 단결력이었다. 그렇지만 학생들 여럿이 노래를 부르며 라면박스 나르는 모습이 꽤나 훈훈하고 귀여워 보였는지, 마트 안의 손님들은 쟤네들 좀 보라는 듯 학생들을 가리키며 웃음 짓고 있었다.


“윤비네 집에 가자. 시연이랑 지금 같이 있다는데, 걔들도 먹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서현이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은 이미 이동준비를 갖춰놓은 상태다. 그 중 남학생들 몇 명은 스마트폰 꺼내서 차례대로 하나씩 뭔가 음성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억세고 강인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어쩐지 생활 속에서 자주 들어본 듯한 그런 영어 대사들이 차례로 이어지고 있었다. Standin' by! Let's move! Go go go! Outstanding!

그리고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줄줄이 마트 밖으로 몰려나온 서른세 명의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거리 길을 건너 골목 안쪽의 주택 단지로 들어갔다.

얼마 가지도 않아, 작은 단독주택이나 소형 빌라들이 늘어서 있는 평범한 동네 골목길 그 중간에, 주위의 소박한 풍경과 매우 동떨어져 보이는 한 거대한 저택들의 대문 앞에서 멈춰서게 되었다.

그 저택들은 정말로 거대했다. 하나는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드넓은 앞마당을 지닌 한옥풍 대저택, 하나는 3층 높이를 지닌 서양식 대저택, 외관은 서로 다르지만 엄청나게 커다란 집이라는 것만큼은 바로 알 수 있는 그 저택들이 서로 나란히 옆에 서있는 길 앞으로 서른세 명 학생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중 한옥풍 저택의 대문 앞에서 멈춰선 봉서현이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학생들 모두가 장난기 섞인 한마디를 외친다.


““““이리 오너라~.””””


말 끝나기 무섭게 대문이 열리며, 마치 조선시대 양반 같은 복장을 한 청년 두 사람이 나와 공손히 학생들을 맞이했다.


“아가씨들께서 기다리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리고 학생들 또한 공손히 또는 친근하게, 청년들에게 인사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형들 오랜만, 오빠들 잘 지냈어요? 아, 어쩐지 둘 다 살 좀 찐 것 같아! 얼굴도 좀 탔고! 갓을 쓰고 있는데도 얼굴이 탈 만큼 일 막 시키고 그러는 거예요? 아, 우리 윤비 안 되겠네, 친구로서 때찌 좀 해줘야지!

저택 고용인 두 사람에게 인사를 마치고 들어가니 정말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안마당이 드러났다. 그 마당 한가운데에서 다른 고용인들이 식탁과 야외용 조리대를 준비하는 것을 지시 중인 전통 한복 차림의 여학생 하나와, 그 옆에서 고압적인 자세로 팔짱을 끼고 있는 다른 여학생 하나가 서른세 명 학생들을 반겨주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벗님들. 연회 준비가 조금 후면 끝날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남들 다 교복인데 혼자서만 한복 차림이고, 같은 나이인데도 마치 사극에서나 볼 듯한 하오체와 예의범절을 보이는 여학생이다. 기품 있고 지체 높은 이 집안의 귀한 여식답게, 공손하고 사뿐사뿐한 몸놀림과 어투가 그야말로 양반, 선비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외모 또한 예의 바른 태도만큼이나 고왔다. 정돈하여 길게 땋은 머리와 분처럼 하얀 얼굴 위로 드러나는 고귀함은 실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미모를 발하고 있다.

충주 중앙고 3학년 1반, 출석번호 26번 이윤비.

보는 바와 같이 정말로 선비 집안의 아가씨이다.


“정말 작정하고 왔구나. 그런 걸 박스채로 들고 온 걸 보니 말야.”


그런 윤비의 옆에서 약간 못마땅한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이쪽의 여학생은, 윤비와 느낌이 180도 달랐다.

고귀해 보이는 분위기까지는 같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정말이지 완전히 상반되어, 생동감이 느껴지는 활기찬 눈매와 인상에 거침없는 몸놀림은 한껏 높은 그 프라이드를 눈빛과 행동만으로도 넘치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당차고, 또 씩씩하다. 미모 역시 윤비와 비교해 전혀 뒤떨어지지가 않는다. 윤비가 보이는 바 그대로 기품 있는 선비 집안의 아가씨라면, 이쪽은 세상에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서양의 긍지 높은 귀족과도 같은 느낌이다.

충주 중앙고 3학년 1반, 출석번호 28번 장시연.

윤비와 더불어 집이 크고 넓은 덕에 항상 지금과 같은 반 친구들의 방문 공세가 좋으면서도 고민인, 집은 재벌인데 속내는 알고 보면 평범한 데가 있는 복잡한 소녀이다.


“배고플 때 먹는 라면은 진리니까.”

“말아먹는 찬밥도 빼놓을 수가 없지.”

“그래서 오늘 우리가 어쩌다 보니 라면으로 다 뭉치게 됐어.”


가져온 라면박스를 마당에 내려놓으며 3학년 1반 학생들은 모두 싱글벙글 웃어보였다.


““““그러므로 윤비 낭자, 시연 아가씨. 오늘 한 끼 신세 좀 지겠사옵니다.””””


다 같이 허리 90도로 숙이며 정중한 인사. 윤비가 황망히 답례하는 동안 시연은 새침하게 고개 돌리고 애써 쓴소리를 한 번 내보았다.


“이런다고 달라질 건 없거든. 너희 서른세 명은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민폐잖아. 얼마나 시끄럽고 난잡한지, 이미 우리 모두 유치원 시절부터 깨달은 게 있을 텐데?”

“그러면서 눈은 왜 라면박스 끊임없이 힐끗거리고 있냐.”


누군가의 뚱한 대답이 들려왔고, 시연은 불쾌한 표정이 되어 친구들의 무리를 쏘아보았다.


“나를 아주 불쾌하게 만드는 대답이 흘러나왔어.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는데? 이건 마치 내가 이런 저속한 먹을거리에 혹하는 걸로 보인······.”

“군자는 상 앞에서 말을 늘이지 않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여러 벗들이 함께 하기 위해 가져왔으니 낯을 봐서라도 여기서는 조용히 어울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윤비가 점잖은 미소로 말하자, 시연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지금 자신의 언행이 결코 라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듯 말했다.


“뭐, 좋아. 윤비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라면 같은 서민식도 한 번쯤은 괜찮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냥 딱 보기에도 라면 먹고 싶어서 기대가 가득하다는 게 다 드러난다. 이에 선우하나가 짓궂은 미소와 함께 또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한 아가씨 하루는 마실 왔다 친구를 만나서~”


그리고 학생들은 양 옆으로 갈라서서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몰려서서 어깨동무를 했다. 정말이지 신속하고 정확한 행동으로.


“한참을 즐겁게 얘기하다 라면을 보았네~”


하나가 Vive la Compagnie의 멜로디로 노래 한 소절을 끝낸 것에 맞춰 학생들 모두가 또 합창을 시작했다.


““““맛 좋은 라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얼큰한 라면이오~ 라면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윤비가 먼저 입을 가리고 웃었고, 조리대와 테이블을 준비 중인 저택의 고용인들도 소리 없이 큭큭거렸다. 시연 혼자만 그런 거 아니라고 항변하듯 도도하게 서있지만, 이미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친구들 몰려서 사이좋게 라면을 끓이네~.”


다시 선우하나의 선창과 함께 2절이 들어간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지는 모두의 합창.


““““계란을 풀어서 집어넣고 밥까지 말으니~ 맛 좋은 라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얼큰한 라면이오~ 라면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식욕을 자극하는 은근한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리듬, 그리고 모두의 능청스런 웃음과 표정을 더 견디지 못하겠는지 시연은 허세를 집어넣고 결국 고함을 버럭하게 되었다.


“아, 정말! 알았어, 끓여줘! 나도 먹고 싶었다, 그래!”


허세가 들킨 것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친구들에게 진 것 같은 느낌이라 분함, 빨리 먹고 싶다는 기대 하나씩 섞어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표정이 된 시연을 보고 학생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친구들에게 당부하듯, 봉서현이 모두의 앞에 나서서 주의를 주었다.


“먹을 만큼 먹고, 설거지랑 뒷정리는 우리가 하기. 그래야 인간의 도리라 할 수 있지.”


마치 누나 또는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쾌활하게 대답한 학생들 모두는 윤비와 시연이 고용인들을 시켜 준비해놓은 조리대로 가 각자 먹을 라면을 준비했다.

학생들 총합 서른다섯 명, 끓여먹을 라면 아흔여섯 개.

앞으로 남은 1년의 기간을 생각할 때 오늘 하루의 이 라면파티는, 그들에게 있어 험난한 고3 생활의 프롤로그쯤이 되지 않을까.

충주 중앙고 3학년 1반 학생들 서른다섯 명은 그렇게 다 같이 모여 라면 끓여 먹는 일로 고3이 된 첫날을 자축하고 또 위로했다.


작가의말

지금까지의 8편이 사실은 모두 프롤로그였습니다(...)
아이들이 많으니 역시 초반 분량이 많아졌군요^^;
그래도 오랜만에 단결력 발휘하기 시작한 1반 아이들 모습을 그리고 나니 왠지 기분은 상쾌해진 느낌이네요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82 하늘마루
    작성일
    16.06.11 13:56
    No. 1

    순간 착각해서 에필로그인줄 ㅎㅎ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유모세
    작성일
    16.06.11 18:19
    No. 2

    8화에 달하는 분량이 모두 프롤로그였습니다. 매우 길었죠(...) 압박감을 이겨내신 댓글에 감사드립니다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내천
    작성일
    16.06.14 10:55
    No. 3

    이번에피소드는 정말 무시무시한단결력들을 봣내요 재밋게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유모세
    작성일
    16.06.14 22:15
    No. 4

    이 아이들의 가장 큰 특기인 단결력... 호흡 착착 맞는 친구들끼리라 더 무서워보이기도 하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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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실 청소와 김말이의 상관관계 +2 16.05.21 24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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