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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오늘의 3학년 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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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20 00:19
최근연재일 :
2016.07.30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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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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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6,854

작성
16.05.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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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청소와 김말이의 상관관계

DUMMY

개학이자 새 학기의 첫 날이라 그런지 학교에서도 오늘 하루만큼은 갓 고3이 된 지옥문 통과 예정자들을 일찌감치 집으로 보내주었다. 비록 내일부터 정규수업과 야간자율학습, 학원 강의와 독서실 쳇바퀴라는 무시무시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일찍 끝나는 하루란 학생들에게 각별하기 마련이다.

점심 무렵쯤 되어 충주 중앙고 학생들이 하교를 시작했다. 3학년 1반의 학생들도 대부분 일찍 귀가했다. 빨리 끝난 날에는 빨리 집에 가서 놀아야 하니까.

고3. 물론 하루도 방심해서는 안 되고 1분 1초가 치열한 시기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또 대개는 머리로만 그렇게 이해하면서, 마음 및 행동으로는 스스로에게 규제를 풀고 있다. 대강 이런 심리들일 것이다.

공부? 당연히 해야지. 해야 된다는 거 알아.

앞으로의 인생이 판가름 나고, 삶의 형태가 뒤바뀔 수 있는 중요한 분기라는 거 누가 모른대? 다 알아, 안다고.

그러니까 내일부터. 오늘은 에너지 보충.

······같은 핑계를 대며 다들 흩어지고 있는 중이다. 행선지는 주로 PC방, 또는 시내 영화관, 아니면 친구네 집 등등 갈 곳 많아 바쁜 3학년 1반 일원들 중에서도 학교에 남은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바로 개학 첫 날부터 재수 없게 청소당번이 된 인원들이다.

청소라고 해도 먼지 조금 쓸고 대걸레로 바닥 몇 번 대강 밀어주기만 하면 바로 끝나는 간단한 일뿐이라, 많은 사람 필요 없이 남학생 셋, 여학생 둘만 남아 있다.

여학생들 중 하나는 아침 조회 때 담임 권성철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권지연.

숏 컷에 가까운 단발과 골이 난 듯 뚱해 보이는 표정에, 꽤 날씬하고 호리호리한 편이다. 그냥 보기에는 성격이 꽤 예민하고 까칠할 것 같고, 실제로 오빠인 권성철에 한해서만은 틀리지 않은 표현이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표정만 좀 그래 보일 뿐, 어디까지나 평범한 여학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야.”


생각 없는 빗자루질을 대충대충 쓸면서, 다섯 명의 청소당번 중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그 권지연이었다.


“집에서도 안 하는 청소를 왜 학교에선 해야 하는 걸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어?”


얘깃거리를 하나 꺼내봤지만 지연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들은 척 만 척 자기 할 일들에만 빠져있다. 아무런 호응이 없었지만 지연 또한 주위의 썰렁한 반응에는 개의치 않는 듯 세 마디 째를 꺼냈다.


“더군다나 우린 고3인데 말야. 고3들은 이런 거 빼줘도 되는 거 아냐?”

“자, 청소 끝! 정리하고 가방 메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자자!”


애초에 아무도 관심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네 명 중 그 누구도 지연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법 없이 빗자루와 대걸레를 정리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무시당한 셈이 된 지연이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사람이 얘기 하는데 그냥 씹고 넘어간다 이거냐.”


그러자 세 명의 남학생이 해맑은 웃음으로 받았다.


“야야, 그런 거 따질 시간 있으면 재빨리 끝내고 집에나 가자.”

“오늘 방과 후 교실 청소 레이드 다 끝났습니다. 보상은 아무 것도 없으니 돈 있는 사람은 가다가 분식집이라도 들러서 셀프로나마 챙겨가도록 하십시다.”

“우린 청소하느라 좀 늦었으니 더 늦게 가면 다른 애들이 컵볶이 다 쓸어갈 수도 있어요. 늦지 않게 빨리······. 야, 근데 이렇게 떠들다가 진짜 다 뺏기면 어떡하지?”


학교 근처 분식집 떡볶이 품절이 걱정돼 세 명의 남학생이 그 자리에서 튀어나가려는 모션을 취하자, 함께 남아 있던 다른 여학생이 별 걱정 다 한다는 듯이 말했다.


“떡볶이가 떨어지면 다른 걸 사먹으면 되지.”


세 남학생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말 듣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들 지갑 꺼내서 개봉.


“인간 남수민! 낼 수 있는 최대한도 천원 낸다!”

“인간이 그렇게 쪼잔해서 어디 써먹냐. 신은표, 천 원 한 장에 백 원 한 개!”

“이런 가소롭기 그지없는 애송이들을 봤나. 나 오현기, 남자답게 과감히 천 이백 원 투자한다.”


도토리 키 재기로 모인 잔돈 애지중지 쌓고 보니 3천 3백 원. 3백 원이란 애매한 홀수에 맨 처음으로 천 원을 낸 남학생 남수민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3백 원으로 사먹을 수 있는 거, 생각해보면 거의 없지 않아?”


170대 후반의 훤칠한 키, 그리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흔하디 흔한 표준적인 남자 고등학생이다. 다만 훤칠하다고는 하나 아담한 체구, 안경을 쓰고 있어 눈매가 렌즈에 가려지는 바람에 다소 소심해 보이고, 그 아담과 소심이 합쳐지고 나니 어째 폼이 나질 않는 모습이다.


“현대 사회에서 100원 단위는 이미 잉여가 된 지 오래란 말이다. 당연히 잔돈은 애물단지일 수밖에.”


천 원에 그 잉여 단위 하나를 보태서 낸 남학생, 신은표의 신음성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수민도 나름 키가 되는 편이지만 이쪽은 그런 수민보다 더 컸다. 180은 넘어 보이고 거기서 정확하게 수치를 표기해보자면 184쯤은 되는 것 같다.

체격 아담한 수민은 177이란 키를 가지고도 폼이 안 나 보이는데, 은표는 키도 더 큰데다 체격 또한 매우 마른 편이라 그냥 키만 징그럽게 큰 홀쭉이로 보였다.

허나, 비록 키 큰 멸치라 하더라도 스타일이 괜찮으면 커버라도 가능하련만 은표는 그것조차 되질 않고 있다. 눈을 다 가릴 정도로 부스스하고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 때문에 어딘가 좀 불쌍하고 초췌해보이기까지 할 지경이니까.


“우리의 단골인 분식집에서는 김말이 튀김이 하나에 3백 원씩이지.”


수민과 은표의 사이에 껴서, 분위기를 음산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마지막 남학생은 오현기. 평범한 커트머리에 평범해 보이는 얼굴, 평범해 보이는 키, 평범해 보이는 목소리, 모든 면에서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주목을 끌어보려는 말투나 행동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셋이 돈을 합치면 3천 3백인데, 이걸로 김말이를 전부 사면 11개가 돼. 셋이 나눠 먹으면 필연적으로 누구 하나가 덜 먹게 되겠지. 지금까지 19년간 쌓아온 우정에 금이 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 말이야.”


그러나 ‘모든 친구는 평등하다’라는 것이 삶의 신조인 1반 학생들의 착한 마음씨는 평범한 친구의 해결책이라곤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의견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1인당 튀김 세 개씩 나누면 9개씩, 그럼 두 개가 남는데······.”

“남은 두 개를 셋이서 공평하게 나눌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소리네.”


서로 심각한 눈빛을 주고받은 남수민과 신은표는 곧 책상 위에 노트 하나를 펼치고 계산에 들어갔다.


“튀김의 길이를 x, 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을 z, y, a라 가정하고, 각각의 양은 각자 낸 돈에 따라 다르다는 걸 전제로 계산을 해보자.”

“그럼 수민이 네가 백 원, 나는 이백 원, 현기가 삼백 원어치를 먹어야 한다는 소리네.”

“튀김 개수는 두 개니까 세 사람이 서로 불만 없이 균등하게 나눌 수 있도록 하자고.”


그 즉시 수학공식을 써내려가며 열심히 계산에 들어간 수민과 은표였고, 지켜보고 있던 현기도 계산에 합류했다. 김말이 튀김 두 개 나눠먹는 걸 왜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세 사람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 되는가 보다.

공식 만들고 대입하고 할 필요도 없이 조금만 유연하게 생각해 보면 금세 답이 나오는데도.


“야, 남수! 너 지금 은근슬쩍 z값 크게 놓지 않았어?”

“할 수 없잖아, x값이 두 개인데. x값을 제곱해서 계산해야 나머지 값들이 풀리지.”

“제곱해 계산한다면서 치사하게 y하고 a는 그대로 두고 z값만 허수로 부풀렸거든?”

“차라리 자기가 더 많이 먹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해라, 계산하면서 사기 치지 말고!”

“사기는 무슨 사기야. 누가 봐도 공정하게 계산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수민이 볼펜으로 툭툭 치고 있는 노트에는 뭐하러 저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황하고 복잡하며 괴상한 공식들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다.

이럴 필요가 없는데 이러고들 있는 걸 보면 튀김을 나눠먹는다는 건 그냥 허울뿐이고, 사실은 자기가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 공식 핑계 대며 쪼잔한 암투를 벌이고 있다고 봐야 맞는 말이 아닐까.

결국 보다 못한 여학생 하나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세 개씩 나눠먹으면 현기가 3백 원을 더 낸 셈이니까 두 개 중 남은 하나는 현기가 먹고, 나머지 하나를 3분의 1크기로 잘라서 수민이한테 주면 되잖아.”


권지연과 나머지 세 한심이들이 전형적인 10대 학생다운 모습이라면, 이번 여학생은 그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어른스러워 보인다. 약간 부정적인 면으로.

분명 어른스럽게 보이기는 하는데, 그게 외모적으로 성숙해 그런 거라기보다는 어쩐지 고생을 많이 해 삭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3학년 1반 괴짜들 중 한 명인 조은하. 외모만 놓고 보면 가장 맏언니답다.


“튀김 나누기가 까다로우면 그냥 주먹밥 하나씩 사도 괜찮지 않냐? 분식집에서 참치 주먹밥도 팔잖아, 하나에 천 원씩.”


노트 붙잡고 아옹다옹하던 것이 수그러든다. 그리고 의견이 바뀌어 주먹밥도 괜찮네, 괜찮지 않아? 아냐 매우 괜찮아, 차례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은하가 다시 남학생 셋을 향해 말했다.


“만약 잔돈까지 남김없이 활용하고 싶다면, 우리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지. 학교 옆 마트에서 5개에 플러스 원 들어간 6개들이 라면 한 묶음이 딱 3천 3백원이라고.”


세 남학생의 눈빛이 반짝였다. 말들은 안 하고 있지만 아마 셋 다 생각하는 건 똑같을 것이다. 김말이 11개는 셋이 나누기가 좀 까다롭지만 라면 6개는 한 사람당 두 개 씩으로 딱 맞게 나눌 수 있다고.

돈을 더 낸 사람이 더 많이 먹는다는 규칙은 라면 건더기 대신 국물을 덜 따라 먹는 걸로 해결을 본 게 틀림없다.

이에 남수민과 신은표와 오현기는, 제각기 가진 돈을 앞으로 내밀고 비장한 목소리를 내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마지막에 목소리 합쳐 합창한 다음 노트 챙겨들고 청소도구 대충 짱박아 둔 채, 세 남학생은 불 켜진 방 안의 바퀴벌레처럼 잽싼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세 남학생만으로도 떠들썩하던 교실이 그들의 퇴장으로 조용해지자, 침묵하고 있던 권지연이 은하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쟤들한테 씹히고 나니까 괜히 기분 상해져서 하는 말인데.”

“뭔데?”

“고3한테 학교 남아서 청소하라고 시키는 거 어떻게 생각해? 1분 1초가 아까운 몸들한테 말야.”


은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생각을 해보다가,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해보였다.


“분식집 갈래? 나 천이백 원 있으니까 둘이 김말이 두 개씩.”

“······그래.”


아무도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거구나. 그런 결론을 얻은 지연은 왠지 모를 허무함, 그리고 굴욕감을 느끼며 은하가 가자는 대로 학교 근처의 분식집으로 따라갔다.

은하가 가진 돈 천이백 원에서 지출된 비용은 컵볶이 두 개씩 천 원.

은하와 지연이 하나씩 나눠먹고 2백 원이 남았다.

김말이는 품절이었고.


작가의말

1반 학생들의 단결력은 오늘도 매우 쓰잘데 없는 곳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냥 9백원씩 내서 김말이 세 개씩 사먹으라고(...)

...아, 그러고 보니 품절이었군요(...;)
라면이라도 무사히 사먹을 수 있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5 모듈라
    작성일
    16.05.22 22:19
    No. 1

    저럴거면 김말이 지분은 왜 계산했나요ㅋ어차피 안먹을텐데ㅋㅋㅋ그나저나 앞으로도 잘부탁드려요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유모세
    작성일
    16.05.22 22:28
    No. 2

    결국 라면 먹을 거면서 쓸데없이 김말이 계산으로 재능을 낭비하는 1반 아이들... 뻘짓 능력은 여전한 모양입니다. 이런 아이들이지만 글쓴이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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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소꿉친구 겸 절친 겸 영혼의 파트너. …우리 반 전체가. +2 16.06.18 151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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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상, 지금까지 프롤로그였습니다 +4 16.06.11 152 1 20쪽
7 그리고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16.06.10 154 1 16쪽
6 모든 것은 고3이란 이름으로 용서 받을 수 있다 16.06.04 200 1 17쪽
5 집에 찬밥 있을 때 라면국물을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죄악이기 때문에 16.06.03 184 1 20쪽
4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를 단 자연스런 폭식 준비. +2 16.05.28 185 1 16쪽
3 …같은 쓸데없는 고민은 사람을 허기지게 만들고 16.05.27 140 1 16쪽
» 교실 청소와 김말이의 상관관계 +2 16.05.21 249 2 12쪽
1 오늘부터 고3 16.05.20 25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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