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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일 님의 서재입니다.

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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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1,989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6.09 08:30
조회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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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8쪽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DUMMY

준비한 우비를 빠르게 갖춰 입은 백영호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깨에 빗물이 툭툭 떨어져도 열심히 만지작거렸다.


리스트업.


메모장에 예선전의 결과를 빠르게 내리 적었다.


결과라기보다, PD의 촉을 발휘하여 그놈의 ‘느낌’이 좋았던 선수들이었다.


당장에 그 선수의 이름과 달렸던 레인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차피 눈에 들어온 선수들은 모조리 준결승 티켓을 거머쥐었으니까.

곧 몇 분 뒤 준결승전에서 또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예선 조와 이름이나 특징만 대충 적었다.


-3, 빡빡이

-5, 키 큰 놈, 갈색 원숭이

-6, 안경잡이

-8, 대어

-11. 제주도


백영호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빗물이 그 화면에 톡톡 떨어져 볼록거울처럼 변해도 괜찮았다.


두툼한 가방에서 여남은 우의까지 나오는 걸 보니, 강승훈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부터 아주 이 짓을 하려고 예천에 온 게 확실해졌으니까.


만반의 준비를 한 모습이 되려 더 꼴보기가 싫었다.


“PD님!”


“음?!”


그제야 백영호가 고갤 돌렸다.


“하아니, 이거 어차피 못 쓸 거예요. 대어든 뭐든 간에.”


“뭔 소리냐, 그냥 소스만 따잔 건데.”


“생각을 해봐요, 이번 방영분은 8살 애가 아이큐가 204야, 다음 방영분은 또 수학 정석 푸는 7살 애야. 하다못해, 지난번엔 12살 애가 절대 음감 가지고 콩쿨 나가서 상 받아. 딱 봐도 모르겠어요?”


“뭔 소리야, 모르겠는데?”


“이건 뭐, 그냥 그럴듯한 그림도 안 나오잖아요. 아까 그 대어 뭐시기란 애가 11초대? 방금 제가 검색 조금만 해봐도 5년 전엔 보니깐 11초7이었던 애도 있었다는데, 11초88 그걸로 어떻게 땁니까? 뭔가 빡! 인상적이질 않잖아요, 지금. 적어도 신기록 하나는 깨줘야-”


“아, 아. 맞다, 맞다. 땡큐.”


백영호는 급히 메모를 수정했다.


-8, 대어 11.88


진절머리가 나버린 강승훈이었다.


“아냐, 아냐.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강승훈은 고개를 거세게 내저으며, 카메라를 홱 틀었다.


백영호는 그런 강승훈의 1인 시위에 가볍게 웃어넘겼다.


“회는, 안 먹어?”


“됐어요.”


“참돔인데?”


강승훈이 눈썹을 씰룩였다.


“뭐? 뭐라고요?”


“참돔이라고. 저녁에 포장 예약했어, 내가 잡은 숙소에서 같이 먹자.”


강승훈의 미간이 차츰 떨렸다.


“아니, 설마 그걸 기억해요?”


백영호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에, 강승훈은 인상을 찌푸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그렇게 어둑하지 않은데, 희멀건 구름마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차피 여기까지 끌려온 거······.


“하.”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백영호는 영재 탐사 소스를 얻으려고 저 지랄을 떨고 있다.

자고로 영재는, 어릴수록 화제성이 짙다.


이곳에서 어리다면, 초등학생.

초등부 기록만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기억하기로 오늘치 경기 일정표엔 초등부 경기는-

오후 4시까지다. 4시에 100m 결승이었다.


지금 시각은 2시.

두 시간만 이 개고생을 하면, 저녁에 참돔을 먹을 수 있다.


‘하오, 썅.’


솔직히 개이득이긴 하다.

집구석에서 컵라면이나 까먹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딱 오늘 경기까지에요, 내일 아침에 집 보내줘요.”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쏴아아아-


비가 내린다.

되려 하늘이 보이는 경기장이니, 억수같이 쏟아진다.


우비를 입은 관계자들, 우산을 치켜든 학부형들.

그리고 지붕이 있는 관중석까지.


하나, 트랙 위엔.

유니폼만 걸친 선수들이 여전히 뛰고 있다.


내리는 비는 그저 그들이 흘리는 땀을 씻겨 내려주게 할 뿐이었다.


“정말 아무도 제지를 안 하네?”


이런 악천후 속에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는 선수들을 보고서 오승탁 엄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눈썹이 뒤틀린 채로 말을 뱉었다.


“코, 코치님! 비 오잖아요, 비!”


“예, 저도 보고 있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네요.”


이홍섭은 묵묵히 트랙만 응시했다.


“아니, 그럼 경기 중단해야 하는 거 아녜요? 가뜩이나 실외 경기인데, 애들이라도 다치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머님.”


“애들 안 다칠 걸 어떻게 확신해요?!”


점차 오승탁 엄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확신하는 게 아니라, 경기가 중단되지 않을 걸 확신합니다.”


“그, 그걸 말이라고?!”


아마 그럴 거다.

단순하게 축구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각축을 벌이며 몸싸움이 판을 치는 그런 구기 종목에서도 경기 시작 전에 폭우가 쏟아지지 않은 이상, 경기 중이라면 대개 경기를 지속한다.


아무렴 이렇게 단숨에 끝나는 단거리 종목은 오죽하겠나.

어차피 3일 내내 우천 소식이 가득하다면, 그냥 오늘 달리게 하면 그만인 것을.


유독 한 레인에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은 조건과 상황일 테니까 말이다.


“아니, 우리 승탁이 뛰다가 넘어지면 어떡해요?!”


오승탁 엄마는 그제야 왜 얘길 꺼내는지 털어놨다.


하지만.

‘넘어진다’는 워딩에, 오승탁의 눈이 또 한껏 커졌다.

그리고 매섭게 엄마를 향해 노려봤다.


“그 말, 쓰지 마.”


“아니, 엄마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다칠까 봐 걱정하면 왜 운동해?!”


이홍섭은 그 말이 과연 오승탁 저 입에서 나왔는지 귀를 의심하다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트랙을 가리켰다.


“허허, 승탁이 요놈 아주 사나이가 다 됐네, 그새! 그리고 어머님, 중요한 건 트랙입니다. 뛰는 애들은 몸소 느끼겠지만······ 미세하게 트랙이 말을 잘 듣질 않을 거예요. 마찰이 훈련했던 것보다 잘 안 먹히니까.”


“그, 그러다 만에 하나 넘어지면요??”


그새 잊고 오승탁의 금기어를 건드린 모친이었다.


이미 오승탁은 지난날 운동회서부터 그걸 극복하고도 남았는데, 정작 극복하지 못한 건 오승탁 엄마였다.

당연히 답답해 미칠 노릇인 오승탁이였고.


“아씨! 안 넘어진다고! 한 번만 더 넘어진다고 해봐!”


“······넘어지면 그냥 뭐 꼴찌하는 거죠, 이런저런거 생각하면서 달리면 못 달립니다, 어머님. 다시 이야기를 잇자면, 트랙이 죽어서 기록이 좀 차이가 날 수도 있어요. 그게 득인지 실인지는 달리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겁니다. 이래서 실내 체육관에서만 달리던 애들이 변수에 약하단 소리도 나오는 거예요.”


“하으응······.”


오승탁 엄마는 얼굴만 푹 숙였다.

그러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다시 오승탁을 흘깃 쳐다봤다.


“하긴, 그래! 우리 승탁이가 얼마나 잘 달리는데, 그치?!”


그렇게라도 의지하고픈 모양이었다.


그때.

질주하던 일반부 남자 한 명이 미끄덩- 넘어졌다.


철푸덕-

그 찰나에, 두 명이 그 선수를 피해서 달렸다.


“······.”


우린 말없이 그 선수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오승탁 엄마가 흠칫한다.


하나, 넘어진 선수는 다시 일어나 부리나케 내달렸다.


오승탁 엄마는 고개를 대차게 내저었다.


“그래! 저렇게 다시 일어나면 그게 멋있는 거지, 안 그래?!”


철푸덕-


애석하게도.

넘어지면서 그만 다리 힘이 전부 풀려버렸는지, 그 선수는 다시 고꾸라지고 말았다.


“······.”


오승탁 엄마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후론, 입술을 떼지 않았다.



* * *



[네, 아직도 경기장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남초부 100m 준결승 경기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꿈나무 선수들이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몸을 풀고 있는 모습들인데요, 선수들도 내리는 비를 감안하고 뛰어야 할 겁니다.]


내리는 비도 비지만.

이홍섭 말대로 문제는 트랙이다.


중장거리 선수들에게도 득보다 실인 상황이겠지만, 가뜩이나 분초를 다투는 단거리에겐 더욱이 그렇다.


“흐음.”


다시 쳐다본 트랙은,

더는 화사한 붉은색이 아닌 빗물을 머금은 진한 빨간색.


부분부분 물이 고인 부분은, 탄성이 죽는다.


미세하게 죽은 탄성은, 예민한 선수들에겐 땅을 디딜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1조 대기.”


준결승 1조 선수들이 스타팅 블록에 제각각 섰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트랙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개중엔 도재철도 있었다.


[모두 기다리셨습니다, 이번은 초등부 준결승입니다. 총 세 조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어린 선수들이 애꿎게 부상을 입는 그런 상황만 오지 않았으면 하네요.]

[저 또한 이런 비바람도 뚫고 멋지게 피니시 라인까지 주파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3조, 5레인이었다.

오승탁은 2조, 4레인.


그치지 않는 빗줄기를 맞아가며 다리를 풀었다.


이미 달리면서 젖을 것을, 굳이 임시 천막 아래서 몸을 피해봤자다.


그렇게 스타팅 블록에 발을 대는 1조를 보며, 나 또한 숨을 들이켰다.


근데-

트랙 저 끝에 점처럼 보이는 사람 둘은 뭐지?


“음? 오승탁 저기 보여?”


“말 시키지 마, 호흡법 해야 해.”


“아니, 저기에 카메라 말이야.”


“방송국이겠지, 새끼야!”


“······.”


방송국, 기자?

카메라맨?


보통은 피니시 라인에 맞춰서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아님 지금처럼 스타팅 라인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그 둘은 유독.


그런 기자 무리와는 동떨어진 채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마치 사파리에서 맹수들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처럼 말이다.


숨죽이고 트랙 쪽을 겨냥하고 있었다.



* * *



“난 참 병신인 것 같아, 참돔에 또 넘어가고.”


“싫으면 가 지금이라도.”


“진정 사람입니까?! 여기 예천이라고요!”


“뭐 KTX 끊어줄게, 그럼.”


강승훈은 눈에 흐르는 게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러다 가까스로 현실을 인정하니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차가운 이성은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참돔이에요, 약속 지켜요.”


“아무렴.”


“아, 근데 이 각도로 찍으면 역동적이진 않을 거 같은데.”


“어차피 유튜브에 이번 경기 검색하면 다 나와, 우리 꺼는 다른 용도야, 몇 번을 말하냐,”


“도움 되는 방향을 추천해도, 어휴-”


“야 뛴다, 조용해.”


탕-!!

1조가 무섭게 스타트를 터뜨렸다.


이상하리만치 도재철은 예선전 때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비추지 않았다.


정말이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침만 꿀꺽 삼키다 냅다 튀어 나갔다.


파바바박-!!


[빠르게 치고 나오는 6레인의 도재철!]

[매섭게 돌파하고 있습니다!]


타다다다닥-!!


[이런 악천후 속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도재철, 도재철!! 월등합니다아아아!!]


도재철을 그렇게-


그 두 점처럼 보였던 사람들한테까지 매섭게 달려가다, 30m 정도를 뛰고서야 질주를 멈췄다.


그리고 그 30m 주로 안에는 가엾은 강승훈이 있었다.


“어, 어······! 아잇, 부딪힐 뻔했네!”


“이야, 예선 5조 키 큰 놈 합격.”


“아니, 피디님! 저 부딪힐 뻔했어요!”


하나, 백영호는 다음 방영분의 주인공을 찾기에 바빴다.

강승훈의 그런 투정 따윈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다음이 2조지? 안경잡이랑 제주도, 갈색 원숭이다. 잘 잡고 있어 봐.”


“어디 가요!”


“길거리 캐스팅!”


백영호는 그렇게 질주를 멈추고서 돌아서는 ‘키 큰 놈’을 잡아 세웠다.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빗소리를 뚫을 정도로 우렁차게 외쳤다.


“얘야, 얘!”


“······저요?”


“어, 그래, 너너.”


“예예, 뭔데요.”


하지만 이미 도재철은 전광판에 시선이 꽂힌 채, 백영호의 말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리는 빗물에 눈썹만 비비며, 인상을 팍 찌푸리고서 전광판만 치켜봤다.


하지만 그런 도재철의 무관심에 굴하지 않고, 백영호는 말을 재차 이어나갔다.


“혹시 너 그, 그 성제초 맞지?!”


“아, 예 근데요.”


“그럼, 너 여기 어머니도 같이 오셨니?! 얘기 좀 드릴-”


“아씨-”


그때.

팟-

전광판에 결과가 떴다.


-1위, 6레인, 도재철 12.19

-2위, 4레인, 배명진 12.42

-3위, 7레인, 이혁우 12.48

······


백영호 역시 전광판의 결과를 확인했다.

자신의 메모장에 적힌 ‘키 큰 놈’의 기록을 확인하고서, 더욱 콧김을 내뿜었다.


그리고 다시 준결승 1조 1등의 주인공, 도재철을 내려다봤다.


‘오호, 좋아.’


확실히 키도 훤칠하고, 마스크도 괜찮다.

실력도 저 정도면은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스토리를 적당히 입히고, 학교생활과 코치 인터뷰 클립을 적당히 교차시키고, 제목은 오글거리지만 ‘트랙 그리고 꿈’ 이런 장식으로 어떻게든 살릴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기록도 확인한 백영호가 친히 축하해주었다.


“이야!! 재철이구나, 이름이! 축하한다! 그래서 어머님은 혹시-”


하나, 백영호의 기대와 달리 도재철 입에서 나온 말은-


“아씨, 엄마 없어요. 그만 물어요, 좀.”


“······.”


그래서 도재철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백영호는 착잡하게 돌아서서 메모장을 수정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백영호의 주눅 든 어깨를 보아, 강승훈은 포섭에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크크큭, 가뜩이나 비도 오는데 그렇게 잡아 세우면 누가 좋아해요?”


“야, 조용해. 아직 많이 남았어.”


“아, 2조네. 벌써.”


탕-!!

파바바박!!


[남초부 100m 2조! 출발합니다!!]

[시작부터 4레인이 치고 나옵니다! 스타트가 좋아요!]


역시, 오승탁은 진화한 게 맞았다.


지금이 눈밭이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녀석은 달리는 폼부터가 달랐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약점을 완벽히 극복한 상태.


강하게 터뜨린 스타트의 기세를 그대로 가속 구간까지 이어갔다.


[오승탁! 오승탁!! 빗줄기를 뚫고!!]

[3레인과 비등해집니다아아!!]


피니시.


[오승탁!! 오승탁 선수인가요!]

[비슷하게 들어왔습니다, 3레인, 전남의 구영진 선수의 기록과 함께 보시겠습니다!]


강승훈은 이제 노련하게 카메라를 대각으로 잡아다가, 아이들이 피니시 라인에 걸치는 순간까지 여유롭게 담아냈다.


백영호는 또 그 주변을 서성였다.


오승탁과 구영진 주변을 맴돌다, 전광판의 결과를 보고 재빠르게 하나를 택했다.

메모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색 원숭이였다.


전광판의 결과는, 12초25.


아까 전의 도재철보단 못한 기록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물을 던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스, 승탁아! 네가 승탁이니?!”


“······?”


백영호는 빗소리와 장내에 울려 퍼지는 중계진의 함성에 들리지 않았을까 하고, 더욱 크게 외쳤다.


“오승탁 선수!!”


“아, 왜요!!”


“······.”


백영호는 요즘 애들이 왜 이렇게 거칠어졌나하고 잠깐 주춤했다. 하나, 말을 이어나갔다.


“결승 축하한다! 혹시 너는 엄마가 있니?!”


몇 분 전, 도재철의 임팩트가 세서일까.

말이 그만 헛나온 백영호였다.


그리고 참혹하게도,

그 말만큼은 제대로 들은 오승탁이었다.


“이, 이-”


하나, 오승탁은 차마 어른에게 걸쭉한 욕을 뱉을 순 없었다.


“아니, 아니 내 말은!!”


그렇게, 백영호는 키큰놈에 이어, 갈색 원숭이까지 놓치고 말았다.


빗속에 고갤 떨군 채, 다시 트랙을 향해 돌아보니 강승훈은 이제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내심 꼬시다, 라는 표정으로 흡족하게 끄덕인다.


“예예, 길거리 캐스팅에 열일하시는 피디님. 다음은 누가 있나요~?!”


백영호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빡빡이랑 대어······.”


“어이쿠, 적어도 빡빡이는 웃는 인상이 좋던데 한 번 가보셔요~.”


[자, 남초부 100m 마지막 준결승 3조의 경기입니다!!]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트랙엔 웅덩이가 조금씩 보이긴 합니다. 바람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선수들 기록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3조 대기하고 있습니다, 선수진들을 소개합니다!]


그 중계와 함께.


강승훈은 카메라에 눈을 가져다 댔고.


백영호는 이젠 가늘게 뜬 눈으로 스타팅 라인을 지켜볼 뿐이었다.



* * *



“이거이거 이번 대회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겠네요.”

“요새 꿈나무 대회가 난리라고 하던데, 정말인가 봅니다.”


대기하고 있는 3조를 바라보며, 트랙경기 코치석이 수군거린다.


준결승도 이젠 끝을 달려가고 있는 상황.


어지간히, 추려질 대로 추려진 선수들이다.


그만큼 코치들의 눈길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문득 한 코치가 눈을 번뜩이며 안경을 들어 올렸다.


“아니, 그나저나-”


그 코치의 시선을 따라 다른 코치들도 쫓아가니 그쪽엔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의 윤태식이 보였다. 매번 트랙경기 코치석엔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키며, 시덥지 않은 얘길 일삼은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관중석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성제초도 이젠 옛날인가······ 올라서는 애가 고작 하나네, 이젠.”


“하긴 그렇죠, 다른 학교야 준결승이든 결승이든 하나라도 올라간다면 난리겠지만, 요즘 들어 성제초 부쩍 좀 그렇죠?”


“윤태식, 저 양반도 정신 좀 차려야 해. 자기가 선수 키울 생각을 먼저 해야지, 무슨 발품 팔 듯이 모으기나 하고 말이야.”


그때 다른 코치가 놀라면서 말했다.


“아, 아! 그 거기 성제초, 도재철, 그 애도 마찬가지죠?!”


“예······, 그 학교 이번에 대회 출전도 안 한 거 압니까? 경기 모성초. 모성초엔 도재철 걔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하긴, 솔직히 다 성제초 간판 보고 겨우 가는 거지, 윤태식을 보고 가진 않죠.”


그 소식을 어깨너머로나마 들었던 코치들은 조심스레 고갤 주억였다.


“근데 저번에 듣기로, 원래는 도재철이 아니라 다른 녀석 하나를 엄청 꼬드겼다는데.”


“도재철이 지금 준결승 기록 1위 아닙니까? 걔 말고 먼저 연락한 선수가 있었다고요?”


“그 왜 저기 3조에 있잖습니까, 쟤.”


친히 일어서서 가리킨 손가락 끝엔.

빗물에 머리를 넘기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이 하나 보였다.


“4레인이요?! 저 빡빡이?”


“아뇨, 걔도 걔지만 그 옆에 더 키 큰 애, 5레인.”


“아, 아······! 11초88!”


“얘, 쟤 한길요. 지금 쟤가 가장 핫합니다. 아마 이곳에 있는 코치들은 지금 다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이미 자기네 출전 선수가 없는 다른 코치들은 모두 5레인만 집중해서 바라봤다.


“3조 대기.”


그 소년이 묵묵히 스타팅 블록에 가지런히 발을 댔다.


“한 번 봅시다, 여기 자리도 좋은데.”


“오오, 제가 예선은 못 봤지만, 준결승이라도 한 번 봐-”


탕-!!

파바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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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5 432 10 13쪽
20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4 422 11 15쪽
19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3 431 10 12쪽
18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2 464 13 16쪽
17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21 462 10 15쪽
16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20 456 12 16쪽
15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19 487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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