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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일 님의 서재입니다.

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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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1,984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5.20 08:30
조회
455
추천
12
글자
16쪽

EP2. 떡잎부터 다르다.

DUMMY

“읏차!”


이홍섭은 방송 담당 선생과 함께 뒷정리를 도왔다.

웅크려 앰프 케이블을 엮던 중, 햇빛을 가리는 또 하나의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웠다.


“저기-”


이홍섭 곁에 다가온 학교 측 세 번째 인물은 아니었다.


첫 번째였던, 교감 전인범이었다.


전인범은 이젠 필요 없는 인사말 따위는 가볍게 건너뛰고 본론부터 직행했다.


“······그 아이입니까?”


“예, 예?”


“육상부 바람 뭐시기 걔 말입니다.”


빌드업 없이 다짜고짜 묻는 바람에, 찡그리듯 되물은 이홍섭이었지만 교감의 살짝 뜬 목소리에 짐작했다.


이미 전인범은 계주에서 이홍섭이 말했던 내용을 실감하고도 남았다.


‘떡잎부터 다른 아이’

‘새로운 바람’


그 모든 게 한 아이를 지칭하고 있단 사실까지 말이다.

원래 취지는 육상부의 씨가 메말랐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후, 확실히 종지부를 찍어버리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아이가 동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미친놈처럼 내달렸다.

그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재능이 있음을.

나름 운동에 가닥이 있었던 전인범은 그 짧은 질주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아이다.’ 라고.


“다르다, 달라······.”


심지어 지도자인 이홍섭도 ‘떡잎부터 다르다’고, 이 아이는 유망주가 확실하다며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아주 빠르더군요······. 기본기도 탄탄하고. 왜 그런 말을 한 지 알겠습니다. 무슨 중학생인 줄 알았어요.”


이홍섭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교감 선생님. 날카롭게 판정해 주신 덕분에 그 친구들이 우승한 겁니다.”


그 말에, 전인범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일순 이홍섭의 표정이 므흣하게 바뀌었다.


“흐흐흐.”


“무, 무슨 웃음입니까?”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는 이홍섭이었다. 아니, 이번엔 숨길 필요가 없었다.


“교감 선생님, 딱 2년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그새 올해에서 내년으로 늘었다.


“2년이? 아니 2년이요?”


교감이 말을 주워 담았다.


이홍섭은 개의치 않고 직진했다.


“예, 그놈의 상! 타 오겠습니다!”





EP2. 떡잎부터 다르다.





“아이구, 우리 승탁이 고운 피부에 딱지 앉겠네-”


“아, 좀! 만지지 말라고!”


“얘! 이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니까 이렇게 잘생기고 고운 거야!”


오승탁은 그게 중요치 않았다.


지금 눈앞의 소고기가 자글자글 육즙을 보존한 채 익는 중이다. 하지만 오승탁은 차마 고기를 향해 젓가락을 뻗을 수 없었다.


오승탁 엄마가 연신 옆에서 무어라 걱정 어린 말들을 퍼부어 댔지만, 어느 하나도 오승탁의 심중엔 담기지 않았다. 아니, 담으려야 담을 수 없었다.


묘했다.

처음으로 느껴 본 감정이라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서, 우선 입을 합 다물기로 했다.


뭐, 나름 기쁘긴 했다.

휘황찬란한 계주의 현장만 회상하면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말 그대로 이긴 건 맞으니까.


‘칫······!’


하나, 그 지분은 모조리 한길에게 있었다. 자신도 주전으로 달리긴 했지만 운동장에 얼굴을 처박으면서 패배의 위기를 자초한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정말 자신의 실책 하나 때문에 패배할 뻔했다.


그렇게 전학 초부터 ‘나 잘 달린다’라며 제 입으로 말해 놓고.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이미 옆 반까지 소문이 퍼진 한길과의 첫 번째 승부 때도 보란 듯이 발렸고, 이미지 쇄신을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두 번째 기회는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이 두 다리로 몸소 위기를 만들었다.


그게 이상하리만치 인정하기 싫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고기가 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였다.

당연히 오승탁 아빠는 골똘히 심연에 잠긴 오승탁의 의중을 알 리가 없었고.


그 모습을 한참을 바라본 오승탁 아빠가 깻잎과 상추를 동시에 오승탁에게 건넸다.


“왜 이렇게 먹질 못해? 자, 여기 쌈해서 먹어.”


“아, 먹기 싫어. 그리고 나 쌈 싫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고기도 안 먹잖아, 지금.”


“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응?”


오승탁 아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내를 바라봤지만, 아내는 들리지 않는 한숨만 나직이 내쉬었다. 그 모습으로 대충이나마 오승탁의 기분을 헤아린 아빠였다.


“뭐야, 오늘 기분 좋은 날 아니었어? 여보, 운동회 이겼다며?”


오승탁 엄마는 급기야 억지 텐션으로 음성을 다시금 높이며 역할극을 이어 갔다. 안타깝게도 1인극이었다.


“에이~ 당연하지! 우리 승탁이가 있는 팀인데~ 당연히 이겼지! 당신 못 봐서 어떡해? 우리 승탁이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 모르지?”


“아니, 잘 달리는 거 누가 몰라. 근데 표정이 왜 저러냐고, 내 말은.”


“@#$%%!@#”


오승탁 엄마는 재빠르게 비언어적 표현을 해 댔지만, 애석하게도 남편에겐 늘 그것이 고대 상형문자보다 해독이 버거웠다.


그래서 그만 저도 모르게 돌직구를 날려 버렸다.


“오승탁, 너 주전이었잖아. 네가 말해 봐. 무슨 일 있었어?”


“에이~ 아무 일도 없었어, 우리 승탁이! 아주 잘 달렸어어!!”


항변을 넘어 이젠 발악에 가까운 엄마의 목소리였다.


오승탁은 묵묵히 점점 식어 가는 밥만 바라봤다. 표정만큼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입술을 뗐다.


하지만 그건 아빠가 애타게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다.


“나 안 먹을래.”


“인석아! 뭔 말을 해야 알지! 운동회도 이기고, 잘 달렸는데 뭐에 그렇게 꿍해서 그러냐고! 아빠 말 안 들려?”


급기야 오승탁이 아무 말 없이 식탁을 벗어나려 하자, 오승탁 엄마가 날래게 오승탁을 잡았다.


어떻게 이룩한 가정의 평화인데.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단 마음이었다.


“승탁아, 조금만 먹자 응?!”


“아, 안 먹는다고!”


“이 녀석이! 보자보자 하니까 말버릇부터 어디서 배워 먹은 거야!”


단란했던 저녁상에 어울리지 않는 파국이 내려앉았다.


소고기는 이미 불판에 가져다 댄 지 오래였고 이젠 잿빛 연기만 솔솔 풍긴다. 하나, 아무도 재빠르게 고기를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둘 모두 오승탁의 떨군 고개만 응시했다.


오승탁은 잠깐 사이 부르르 떨다 고갤 들었고.


분에 못 이긴 듯이 한껏 붉어진 얼굴로 맺힌 한을 토해 냈다.


“내가 잘해서 이긴 거 아니라고!”


“야!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


“아, 좀 그만 물으라고!”


“인석이, 이겼으면 됐지 뭘 그렇게 악을 쓰고 난리야!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이딴 소리나 들어야겠어, 아빠가?”


“아빤 내가 몇 번째 주자였는지나 알아? 관심이나 있긴 해? 맨날 빠르겠지 뭐 빠르겠지 뭐. 빠르면 단 줄 아냐고, 달리기가!”


“말을 하라고, 아빠가 묻잖아! 그래서!”


“됐어, 됐다고! 고기도 싫고, 다 싫어!”


타다닥-!!

쾅!


낮에 못 다한 달리기를 부엌부터 자기 방까지 해 버린 오승탁이었다.


순식간에 돌풍이 지나간 저녁 식탁엔 둘만 공허히 자리했다.


“고기는 개뿔, 자기가 사 달랬으면서-”



* * *



새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피었다.


“웬일이야, 자기가 먼저 산책을 다 하자고 그러고?”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


한승일은 아내, 이윤경의 안색을 살피기에 바빴다. 이미 한참 산책로를 따라 걸어왔지만, 평소보다 살짝 굳어진 아내의 표정이 계속 신경 쓰였다.


“아, 맞다. 여보 당신 언제 선배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


“응, 신기하더라구.”


“근데 그날 길이 코치도 보러 갔다고도- 잠깐! 그 사람이야 설마?”


이윤경은 대답하지 않았고 공허한 하늘에 고개만 치켜들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이 정도면 별의 수를 직접 셀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후 11시. 구름 한 점 없으니, 적어진 별의 개수가 더욱 명확히 보인다.


수십 년 전, 트랙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보다 별이 확연히 적다.


어쩌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트랙의 별들 같았다.


비상하기도 전에 내려온 이들이 그 찬란한 빛을 마음껏 발하지도 못한 별들 같아 이윤경은 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야, 세상 참 좁다! 길이 코치가 당신 선배일 줄이야!”


“그러게······. 코치실 문 여니까 그 양반이 앉아서 노래 부르고 있더라. 그 사람도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더라고.”


“그래도 다행이네, 예전에 그 사람 어디 많이 아팠다며, 선수 생활도 관둘 정도로?”


“건강은 해 보이는데, 그렇게 날아오를 것 같던 그 선배도 지금은 창고 같은 코치실에서 의자나 젖히고 앉아 있으니······.”


그 말에, 아내가 무엇을 에둘러 말하는지 한승일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한승일은 다시금 되찾은 아내의 기색이 반가워 조심스레 아내의 어깨에 손만 올렸다.


“또 길이 걱정돼서 그래?”


“······.”


“어떻게 보면 그것도 병이야.”


“뭐?! 당신 지금-!”


“길이 문제라고 했잖아, 어차피 쟤 우리가 말려도 계속 달려. 어차피 당장에는 안 끝날 문제잖아. 당신도 빤히 알 텐데 뭐 하러 이렇게 속앓이 하냔 얘기지.”


이윤경이 이마를 무겁게 짚었다.


“내가 왜 운동 관뒀는지 당신은 알 거 아냐.”


“알지.”


한승일은 아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길이 코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그 선택이 패배자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거면 그건 당신 아집이고 오지랖이야. 왜 길이마저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애당초 당신이 그랬어서? 그래서 당신은 노력을 안 했나? 비교도 못할 만큼 열심이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길이도 그걸 경험해야 해. 그 무대가 트랙이 되었든 아니면 딴 곳이 되었든 간에.”


이윤경은 뭐라 대답은 못하고, 한숨만 재차 삼켰다.


자신도 잘 알았다.

그저 길을 먼저 걸어 봤을 뿐인 사람이 오지랖처럼 ‘된다, 안 된다’를 재단하는 것만큼 알량한 고집도 없다는 걸.


하나, 그 트랙을 뛰겠다는 인물이 옆집 아들도 아니고 자기 아들이라 생각하니 잠을 청할 적마다 더욱 속이 답답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할 만큼 했다가 자기가 안 되면 그만둘 거야, 미리부터 그러지 말자고!”


“······그래, 말이야 쉽지 늘.”


한승일은 뭔가 부부간의 대화에서 이렇게 자신이 주도권을 잡은 게 언제였나 싶어 속으로 흐뭇해했다.


그렇게 집 방향으로 산책로를 꺾을 때쯤.


불현듯 착신음이 울렸다.


이윤경의 핸드폰이었다.


혹여, 한길이 집에서 엄마 아빠 어디 갔냐고 묻는 걸까 싶어 황급히 화면을 확인했지만 아리송했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기 때문이다.


“에? 이 시간에 누구지?”


“받지 마, 받지 마! 여보, 느낌이 안 좋아.”


그때 이윤경은 남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늘 기가 막힌 촉 하나로 지금껏 ‘세이프티 존’을 유지한 남편이었으니까.


하나, 이윤경은 이미 받은 뒤였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인 만큼, 수화기 너머에선 지금껏 접해본 적 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 아! 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호호홍.”


“누구시죠?”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승탁이 엄마예요.”



* * *



이홍섭은 거침없었다.

생각한 바를 바로 실천했다.

그리고 그 실천 방향을 따라 줄 이는 오승탁과 나뿐이었다.


운동회 이후.

우린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뛰었다.


그렇게 꼬박 2주 뒤.

우리 둘은 체육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이홍섭은 그런 우리 둘에게 같은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줬다.


-교육감기 초‧중학교 학년별 육상경기 대회


대강 올 것이 왔다.


“저번에 같이 얘기해 보니 둘 다 목표도 같고, 기회는 많아.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그렇지. 그만큼 부단해야 돼, 말 안 해도 알지?”


“네.”


“그래도 지금 다행인 건 나이가 깡패야. 어떠한 경험이든 쌓으면 쌓을수록 좋을 거다.”


이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가 맛본 육상, 아니 더 넘어서 예체능의 길은 요약하자면 ‘될놈될’이었으니까.


신이 개체를 만들 적에 재능 스푼을 가득 들이부었다면 되는 거다.

이, 예체능의 영역은 센스가 재능과 철저히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니까.

그리고 부모의 빵빵한 지원도 부차적으로 받쳐 주면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이 대회는-”


따지고 보면, 앞으로 참가할 육상경기는 쌔고 쌨다.


이름값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오승탁과 나 같은 어린이들을 다방면으로 육성시켜서 궁극적으로 스포츠 인구수를 늘리려는 육상경기연맹 주최 대회는 수도 없이 많다.


개중 2회차인 내 인생에 주어진 이 대회는 한국 체육고등학교와 연합으로 주최하는 교육청 대회.

‘한국 체육고등학교’라는 내 마지막 학벌이 떡하니 적혀 있어 거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송치석 그 인간이 다시금 스멀스멀 떠올랐으나, 그건 나중에 볼 일이고.


“어? 거의 한 달 뒤네요?”

“그래, 그동안 몸 관리하고 준비해 보자고.”


그때, 오승탁이 돌연 물음을 던졌다.


“······계주는 없죠?”


이젠 요 녀석이 어떤 생각으로 말을 던진 건지 헷갈렸다. 운동회 이후엔 내게 마음을 좀 열었나 싶었는데, 말투가 영 아니었다. 뭔가 왠지 모를 치기가 묻어 있었다.


“요놈 또 이러네, 어차피 이번엔 우린 부원 수가 적어서 계주도 못 나가. 나가고 싶으면, 애들 좀 모아 봐봐, 너희가.”


“아뇨,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요.”


오승탁이 대번에 딱 잘라 말한다.


이홍섭도 딱히 오승탁의 변덕에 에너지를 쏟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참나, 그래. 어쨌건 그래서 너넨 100m만 나갈 거야.”


“원래 80m 아니에요?”


오승탁이 저도 뭘 좀 안다는 듯 등을 뒤로 젖히며 묻는다.


“그건 승탁이 네가 초3 때나 그런 거고, 웬만한 대회들은 이제 4학년도 백이야. 꽤 참가 인원수가 많을 거다. 이번 해에 연맹에 등록하려는 애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


그럼, 완벽한 개인전이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가지고. 한길, 오승탁.”


이홍섭이 검지로 코를 긁어 대며 우리 이름을 똑똑히 호명했다.


“그래도 이제 둘이 좀 친해진 거 아녔냐? 저번에 운동회 때 보니깐, 승탁이 네가 한길이 부둥켜안더니만? 내가 잘못 본 건가?”


“잘못 보셨는데요?”


입술이 침 하나 묻히지 않고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 근데 고갤 돌려 오승탁을 바라보니, 녀석은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난 가늘게 눈을 흘겼다.


‘어휴, 초딩이냐?’


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

영락없는 초딩이 맞으니까.


아직 배움의 그릇이 한참 바닥을 보일 나이긴 하다.

그래, 저래야 애지.


그래도 혹여나 정말 천운으로라도 성격이 바뀐 줄 알고 설렜는데, 그것도 그저 망상일 따름이었다.


전생엔 눈빛만 마주쳐도 득달같이 드잡이질을 하던 우리였다.

하나, 이번 생엔 단 두 달 만에 함께 무언가를 이뤄 봤고, 지우고 싶은 과거겠지만 그 순간은 부둥켜안을 만큼 감정선이 이어졌었다.


근데 제길.

뭔가 몽글한 감정이 피어오른 건 나뿐이었나보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오승탁이 내게 와락 안겼던 그날 이후로는 그래도 뭔가가 다를 줄만 알았는데, 그것도 나만의 아련한 착각이었다.


“어쨌거나 이젠 훈련이 좀 다를 거야. 체력 훈련보다는 자세 위주로 갈 거다. 그렇다고 체력 훈련을 생략하란 소린 아냐. 그건 너네 알아서 채워서 해. 그것까지 내가 다 해 주려면 시간이 없어.”


이홍섭이 고글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네.”

“예!”


그때의 우린.

다가올 미래를 깊이 생각지 않고, 그렇게 호기롭게 대답했었다.


하긴, 이홍섭 호의 항해 일정을 구체적으로 발설하지 않은 이홍섭의 잘못도 있긴 했다. 만 10세인 애들은 어른이 말하면 그저 그렇다고만 여기고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여리고 깨끗한 우리 입술에서,

걸쭉한 육두문자가 나오기까진 불과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여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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