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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일 님의 서재입니다.

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드라마

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1,991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5.27 08:30
조회
436
추천
13
글자
17쪽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DUMMY

한때 대이변이 대구에서 발생했다.


“스타팅 블록에 발을 갖다 대고-”

“남자 100m 결승. 5레인에-”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


“이제 출발 준비합니다.”


-SET

탕-!!


“자, 출발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의 타이틀을 거머쥔 그 남자는 한국에서 개최된 그 대회에서 두 다리로 색다른 이변을 만들었다.


“어, 어?! 우사인 볼트 파울입니다!”

“아, 아!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트랙에 쏟은 시간이 아무리 많다 한들,

판단되기까진 10초는 고사하고 1초 채 걸리지 않을 때도 있다.


“파울입니다! 실격!”

“볼트가 실격이라뇨!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자신의 기록이 곧 세계 신기록인 남자.

자메이카, 우사인 볼트.


볼트는 스타트 신호가 울리지 않은 상태에서 레인을 박차고 나갔고, 동시에 저 자신이 먼저 실격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분함을 못 이겨 유니폼을 곧장 벗어던졌다.


수년 간의 피나는 훈련과 정처 없는 고뇌가 그의 상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한동안 안타까움과 분함을 감추지 못하며 방황하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볼트는 그렇게 트랙을 비워야 했다.


“아······. 이변입니다.”

“수많은 관중도 함께 탄식을 내뱉습니다.”

“부담이 많았던 걸까요.”


한순간의 실수로 제외된 볼트와 남겨진 7명의 주자.


맥이 빠진 채 진행된 남자 100m 결승에서는,

또 다른 자메이카 사나이가 9초92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데, 잊히지 않던 그 광경이.

내가 서 있는 이 트랙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 * *



타당!

타당!

연거푸 총성이 짧게 울린다.


설마란 생각은 역시로 바뀌었다.


단거리 달리기는 종국엔 ‘초를 다투는 싸움’이다.

다르게 말하면, 소수점 싸움.


소수 둘째 자리.

아니, 셋째 자리까지 치고받는다.

하여, 우린 0.001까지 소중하다.


그렇기에 조금의 기록 단축이라도 꾀할 수 있는 ‘부정 출발’은 더욱이 엄격하게 다뤄진다.


이에, 어디까지나 국제 육상경기연맹(IAAF)이 규정한 ‘출발 반응 속도’를 준수한다.


0.1초


인간이 귀를 통해 받아들인 청각신호가 뇌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0.08초.

뇌가 판단해 근육을 움직이는 것까지 감안하면 0.1초 이내로 줄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나온 이 결론은 ‘연맹이 정한’ 인간의 반응 속도 한계였다.


뭐 전생에 듣기론 영국 어느 연구팀이 소리 자극 반응시간을 0.085초까지 가능하다고도 본다던데,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억척스럽게도 ‘일관성’을 고수하는 연맹이 과연 그 결론을 받아들일진 의문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초월적인 러너이고 천하에서 가장 날랜 주자라 하더라도, 그 0.1초 안에 총성을 들어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뛰쳐나간다면-


실격 처리된다.

과정과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시작이 부적합했으니까.


울고불고 억울하고 안타까워도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다시 말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이올시다.


근데, 범인이 누굴까.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붉은 트랙에 보조 심판 둘이 튀어나와 질주를 중재했다.


“아! 부정 출발입니다!”


하나, 이상한 건 이건 교육감기 ‘학생’ 경기다. 그것도 초, 중등 꿈나무들을 대상으로 한 경기.


규모가 그리 크지도, 그다지 위대하지도 않다.


그 말은 즉.

방금 우리가 박차고 튀어 나갔던 저 스타팅 블록에는 국내 탑클래스 경기에나 있을 법한 최신식 감압 센서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뜻.


나 또한 전국대회 수준의 경기일 적에나 봤던 기기였으니까 말이다.


점차 속도를 줄이는 옆 레인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하······, 뭐야?”

“아, 씨-”


함께 박차고 튀어 나갔던 아이들의 얼굴이 일순 찡그려진다.


“아, 느낌 좋았는데.”


나 또한 아쉽고 의아하긴 마찬가지.


그럼,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직 학년 최고 기록이 11초대도 나오지 않는 이 아이들의 출발 반응 속도가 0.1초 내로 감지됐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네. 주자들이 다시 대기석으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더구나 결승이기에 꼼꼼히 살필 이유는 충분히 있죠.”


부정 출발을 알렸던 연이은 총성 두 발의 메아리만이 경기장을 옅게 메웠다.


“그런데 대충 육안으론 누군지 모르겠네요.”

“그렇죠, 몇 번 레인일까요······.”


범인이 누굴까.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자리를 지키며 고대한 결승전이었기에 다들 귀를 바짝 당긴 채 심판의 판정을 기다렸다.


일순 이곳 경기장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돌변했다.


마피아!

이건, 마피아 게임이다.


재차 스타팅 블록 뒤에 대기하면서 시민들이 숨을 고른다.


겨우 잠재웠던 불안과 긴장을 다스리려 무릎과 종아리를 툭툭 터는 시민들도 있는가 하면,


“하······.”


서로 아는 것도 아닌 사이니, 뭐라 말은 못 하고 옆만 쳐다보며 무언의 눈초리를 쏘아붙이는 시민도 있다.


난 스타팅 블록으로 돌아가면서 1번 레인, 오승탁 쪽을 바라봤다. 혹여, 이 녀석이 저 스스로 스타트가 강점이라 여기고 그걸 최대한 살리려다가 실수한 게 아닐까 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너야?


-뒤질래?


어, 제대로 빡친 눈을 보니 얜 아닌 것 같다.

오승탁이 아무리 못 배워 쳐 먹어도 눈만큼은 진실한 녀석이었으니까.


운동회에서 넘어질 적에도,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죄책감은 진짜였다.


그리고 유독 분노를 내비친 6레인, 시민 박서준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웅성이는 관중들의 소음 속에서 꽤나 잘 들렸다.


“아, 어떤 븅신이야.”


시민 박서준은 짙은 한숨으로 불쾌함을 토했다.


그리고.

마피아 색출은 시간문제였다.


“네?! 저요?”


‘하, 참나.’


새끼가 시민인 척을 하고 있어, 마피아 주제에.


마피아 박서준이 천연덕스럽게 계속 의문문을 내뱉는다.


“아, 아니라고요! 저 아니에요!”

“박서준 선수, 실격입니다. 대기석으로 돌아가세요.”


신성한 트랙의 근엄한 중재자, 심판의 말을 개똥으로 아는 건지 박서준은 더욱 격하게 항의했다.


해외 축구를 많이 봤는지 두 팔로 ‘뭥미?’라는 액션을 자꾸만 취하며 6레인을 지켰고, 급기야 덩치 큰 어른 하나와 저 마피아의 코치로 보이는 인간이 다독이면서 어르고 달랬다.


“아니라고요! 아 진짜아아!”


마피아 새끼.

망자는 말이 없는 법이거늘.


멀어져 가는 박서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다른 레인의 시민들이 숨을 다시 골랐다.


자기가 아님에 감사하고, 자신도 저 꼴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생각을 되뇌며 스타팅 블록에 발을 댔다.


일순 들이닥친 묘연한 소용돌이는 6레인을 공석으로 만들었고, 결승전은 다시 속행됐다.


시민들은 마피아 게임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또 인지했다.



* * *



“그래, 길아 탁아. 가자······ 가 보자고.”


띠링-

이홍섭은 엄지손가락으로 녹화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결승을 핸드폰 카메라로 담고 있었다.


자기 선수에 대한 애정은 두말할 나위 없었고, 다음 대회를 준비할 때 한길과 오승탁의 주파를 영상으로 담아 복기하는 용도로 쓸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안주가 될 것 같았다.

홀로 맥주를 기울이며 자신의 선수가 둘이나 뛰는, 이 영상을 돌려보고 있으면 술이 참 잘 넘어갈 터였다.


이홍섭의 입가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자, 가즈아!!”


이내 연이은 총성마저 영상에 담겼다.

그랬는데. 부정 출발이라니?


“뭐, 뭣이!!”


이홍섭 뿐만 아니라 난간에 기대어 보던 이들도 다 같은 반응이었다.


처음 그 총성을 들은 사람들은 저게 뭐냐는 듯 물음표를 던졌지만, 일찍이 트랙경기를 잘 아는 이들은 또 반응이 달랐다.


“오, 누군데? 누구야!”

“부정 출발이네······.”


코치들은 제발 자기 선수가 아니길 바랐고, 가족들은 당연히 제 아이가 아니길 기도했다.


동시에 자기 선수에게 부정 출발에 관련한 상식이나 규정을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이홍섭이 무겁게 이마를 탁- 쳤다.


‘아······.’


8명 중의 2명이 이홍섭 선수다.


25%.

당첨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 자신이 갑상선암에 당첨되었던 것보다 훨씬. 그렇기에 눈만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여긴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영상이 중간쯤 끊겼지만, 그때까진 한길이 선두로 달리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거나 스타팅 라인을 한 뼘쯤 넘어서 출발해 선두가 아니었을까 하는 우려와 불안이 이홍섭을 덮쳐 왔다.


그런 가운데 중계진과 관계자들의 진행이 이어졌다.


“아, 이렇게 1위 유망주 6레인, 박서준이 실격됩니다······. 방금 녹화 영상을 보니, 스타팅 블록에서 눈에 띄게 먼저 발을 뗐네요. 그리고 심지어 몸도 앞으로 더 나왔습니다.”

“확인됐네요, 화면엔 박서준 선수가 귀엽게 항의하는 모습입니다, 하하.”

“그래요, 아쉬울 순 있어요. 하지만 부정 출발은 엄연한 실격 사유입니다.”


“하하, 막내가 성격이 좀 있네요. 자꾸만 아니라고 버팁니다.”

“그만큼 이 무대가 소중하단 뜻이겠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먼저 뛰어 버린 걸.”

“다 경험이 될 거예요, 기회는 많으니까요.”


그렇게 이홍섭의 눈가와 입가엔 다시 자잘한 주름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 젠장. 십년감수했네.”


그리고 진정한 마지막을 고하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 * *



“다시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탕-!!


파바바박!!


“남자, 4학년 초등부 결승!!”

“출발합니다!”


“1레인, 오승탁! 빠르게 치고 나옵니다!”

“모두 비슷합니다!!”


다시 첫 단추부터 정확하게.


이 무대를 시작으로 난 정식으로 트랙에 들어온 거다.

절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다.


“5레인의 배아성 계속 밀어붙입니다!”

“여, 역시! 나옵니다!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레인의 한길! 엄청난 가속입니다!!”


이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하란 신의 계시나 다름없다.


“막 중간을 돌파합니다!”


“한길! 하안길! 계속 치고 나옵니다!”

“거리가 점점 벌어집니다!!”

“이야아!!”


이번 생은 더욱 독하게.

오롯이 이 트랙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음은 없다.


“4레인, 4레인! 한기이이일!”

“한기이일!”


이 두 다리로 세상을 뒤집자.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두 팔을 뒤로 젖히며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오우! 한길이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한길 선수가 약 30m부터 질주하더니 가속에 가속을 더했습니다!”

“어디서 저런 선수가 튀어나왔나요!”

“마지막까지 속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길 선수가 너무 빨랐던 걸까요, 계속 더 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끝나 버린 경기지만, 내 다리는 멈추질 못했다.


계속해서 달렸다.


타닷! 타닷! 타닷!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열망했고, 또 원했는지 다시 깨달았다. 이 트랙 하나하나가 얼마나 내게 소중했던 건지.


그렇게 400m 경기장을 반 바퀴나 더 돌고 나서야 전광판을 향해 뒤돌았다.


“하, 하······.”


-1위, 4레인 한 길 12초33.

-2위, 7레인 김영국 12초94.

-3위, 1레인 오승탁 13초39.

-4위, 3레인 신우진 13초45.

······


‘어?’


“한길 선수, 눈물을 흘리는 모습입니다.”

“너무 감격스러운 걸까요, 장합니다!”


차갑지 않은 눈물 한줄기가 또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무렇게나 닦은 채 돌아본 관중석 쪽에서 이홍섭이 냉큼 달려오고 있었다.


“고생했다, 한길아!”

“히히.”


그대로 이홍섭의 거친 품에 안겼다.


또다시 비행기를 휙 태워 주는 이홍섭이었고.


꽤 시간이 더 흘러야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6학년 결승 1위의 기록은 12초38이었다. 중등부 결승과는 턱없이 부족한 기록이었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난 두 다리의 힘으로 내 이름 두 자를 알렸으니까.


‘한길이 왔다.’


그리고 명심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아,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전체 2위를 기록한 김영국은······.


윤태식 코치 선수였고, 또 그 말은 즉.

교감, 전인범이 김선응에게서 기어코 1위 탈환을 해냈단 뜻이었다.



* * *



체감 상 2주 정도가 지나서야 나와 오승탁은 학교 강당 단상에 올랐다.


이미 대회 당일, 우리 둘은 금은동 3단 단상에 올라 금빛 메달을 목에 걸며 간이 시상을 마쳤었다.

하지만 학교가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리는 만무했다.


“자자! 고학년은 뒷줄 2열로 제대로 서 주시길 바랍니다.”


“이게 대체 몇 명이야, 교내 방송으로 해도 되는 걸, 굳이.”


인원수가 많아 전체 운동회는 그렇게 힘들다고 고사하던, 자칭 명문인 우리 학교는 1교시 아침 조회 때 아이들을 수용소마냥 강당에 욱여넣었다.


수요 없는 교장의 길고 긴 훈화 말씀이 학대하듯 우리 귀에 꽂혔고, 기다림 끝에 각종 대회 수상 부문 차례가 되었다. 전교생이 빼곡히 자리한 이 강당에서 우리 이름이 차례로 호명됐다.


“마지막으로! 지난 교육감기 학년별 육상경기 대회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단상에 나오길 바랍니다, 4학년 2반 한! 길! 그리고 오승탁!”


“그리고 그중 한 길 어린이는 대회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박수우우!”


애당초 대회 이름은 관심 없고, 그저 ‘전체 1위’라는 타이틀에 아이들 몇몇이 동요한다.


“오오······.”

“쟤 6학년보다 빠르다던 걔지?”

“아, 맹지한 발라 버린 애?”


그때.


“이거거둰!!”


다수의 잡음을 한 아이가 우레와 같은 소음으로 끊어 냈다. 용제였다.


연이어 아직까지 마음속에 두고 있던 회한 짙은 말을 모두가 들으란 듯 쏟아 냈다.


“저렇게 전체 1등 하는 애가 운동회 때 이긴 게 당연하지! 알겄냐, 이 청팀 나부랭이들아아!!”


아주 작정한 모양이다.


“믿고 있었다고!!”


호동이도 덩달아 미쳐 날뛴다. 이미 3주는 꼬박 흘러간 학년 체육대회 얘길 다시금 들먹이니 백팀이었던 아이들이 다시 메시아의 기적을 외쳤다. 각 반마다 뿌리 내린 내 신도들이 담임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목소리를 높였다.


“우어어! 이젠 우리가 보는 앞에서 달리십쇼!!”

“위대하신 한길느님!!”

“여기, 여길 봐 주십쇼!!”


삽시간 퍼진 파동은 겹겹이 파도가 되어 아수라장이 됐다.


“봐봐! 청팀은 인제 그만 패배를 인정해라!! 교감쌤 없었어도 너넨 졌- 꾸엑!”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추스르다 결국 만악의 근원을 제거하기로 결단한 담임, 김서현이었다.


결국 김서현은 그런 용제와 호동이를 더는 컨트롤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신속하게 강당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의 충신들이 처절하게 끌려 나간다.


그런 와중, 교감이 재차 호명했다.


“한길, 한길 어린이. 앞으로 나오세요.”


올라선 단상에는 교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나와 오승탁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옆에 부푼 미소 짓고 있는 교감은 덤이었고. 둘 모두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우리의 상장과 부상(副賞)을 들고 있다.


용제와 내가 복도에서 몇 번이고 인사해도 눈길 한번 따뜻하게 내어 주지 않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그 작고 주름진 두 눈에 날 담으려고 한다.


듣기로 육상부 해체를 신속히 진행했던 두 어른이 내 상장에 나보다 더 기뻐한다.


“어이구, 우리 친구가 씩씩하네~ 1등하니까 기분 좋지?”

“······네.”


“우리 오승탁 학생도 고생이 많았어요~? 3위도 잘한 거예요~”

“압니다.”

“······.”


“한길, 위 어린이는-”


솰라솰라솰라.


“이에 상장을 주어-”


그리고 단상 아래엔 팔짱을 낀 채 머쓱해 하는 이홍섭이 보였다. 상장을 수여 받는 그 순간에도 나와 이홍섭은 서로를 줄곧 바라봤다.


이홍섭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고글은 벗은 채로 서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박수를 들으며, 상장을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오승탁 차례.


“-오승탁, 내용은 같습니다. 축하해요~”


일순 오승탁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저도 다 읽어 주세요.”


“흐음, 응?”


그러고선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3등도 하기 개빡센 거였으니까 상장에 적힌 글씨 다 읽어 주세요, 저도.”


11살짜리 오승탁의 절제되면서도 흉포한 기세에 교장이 잠깐 주춤한다.


교장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당연히 아이들과 선생들은 단상 위 둘의 대화가 들릴 리가 없겠지만, 바로 옆의 나로서는 오승탁의 이런 모습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아, 아······. 그래그래, 동메달도 얼마나 잘한 건데, 그치?”


그렇게 교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 상장에 적힌 글귀를 쭉 내리읽었다.


그제야 오승탁도 자기 고생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받았다는 듯 턱을 치켜들고 상장을 건네받았다.


“자, 한길 어린이, 오승탁 어린이 앞을 보세요.”


찰칵-

억지로 내 시선을 돌려 명예로운 사진 두어 장을 찍은 뒤에야 단상을 떠나는 것이 허락됐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단상을 내려갈 때 결심했다.


이홍섭은 당시 나와 함께 있던 유일한 어른이었고, 그래서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단상 아래가 아닌 위라고.


이 단상 위에 있을 사람은 오승탁과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셋이어야 했다고.


그래서 그날,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 * *



저녁, 집.


엄마가 의아해 하며 말했다.


“아들? 상장은 어딨어?”


“으응?”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영점
    작성일
    24.06.12 11:21
    No. 1

    선작 후 잘 보고 있습니다만
    화자의 시점에 따른 상황 설명의 반복이 마치 영화 혹은 드라마의 바뀐 카메라의 시선을 편집없이 보는 느낌입니다. 즉 같은 장면을 카메라만 바꾸고 보는 느낌.
    육상이라는 비인기 스포츠가 이야기 중심이라면 말 그대로 비인기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는 건 어떨까 싶네요.
    그냥 개인적 의견였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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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24.05.28 453 14 12쪽
»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1 24.05.27 437 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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