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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29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1.24 22:00
조회
262
추천
5
글자
18쪽

벙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71화



다브너는 벙커 판매 회사 ‘서바이브’의 사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벙커를 관리하고 있는 남자다.


그 중 대부분은 직접 제작했으나, 때로는 개개인의 가문에서 만들어놓고 방치해둔 것들을 인수하기도 했으니.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벙커를 가지고 있다 자부할 수 있었다.


고객의 요구는 대부분 일률적이지 않다. 각자 원하는 것이 다르고, 우선하는 것이 다르니 당연한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다브너는 자신이 있었다. 세상 그 어떤 사람이 무슨 조건을 걸더라도 이를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실제로 유명 정치인, 연예인, 대부호들이 다브너를 찾는 것만 해도 그 능력을 입증한 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다브너는 지금, 아주 오랜만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반경 300km 정도는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고요?”

“네. 그게 최소 조건이에요.”


반경이 300km 정도면 어지간한 미국의 작은 주보다 큰 면적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 생물도, 건물도 그 어떤 것도 없어야 하다니 조건이 너무 까다롭지 않나.


심지어 저것도 ‘최소’라고 한다. 다른 조건들은 얼마나 까다롭길래!


원래였다면 귀찮다고 안 팔고 말았을 것이다. 조건 하나를 들으면 대충 견적이 나오는 법이다. 지금 고객으로 온 저 소년은 자신의 골머리를 썩히게 만들 것이 뻔했다. 어쩌면 이를 갈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비위를 맞추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년의 뒤로 미국의 상원 위원 소피아가 팔짱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 옆으로 유명한 군벌 중 하나인 오시리스 장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었겠지만, 소년은 둘 모두를 거느리고 있다.


권력과 무력을 모두 갖춘 상대에게 싫은 기색을 내비치는 건 자살행위와도 같다. 그 사실을 다브너는 매우 잘 알았기에 자신을 한껏 굽히며 소년의 말에 호응했다.


“있죠! 있습니다. 상혁님께서는 정말 잘 찾아오신 겁니다요. 하하하.”


다행히도 그 말에 소년의 낯이 조금 밝아졌다.


“아. 있어요? 다행이네요. 소피아가 추천을 하길래 어떤 곳인가 했더니. 역시나 만족스러워요.”


소피아는 소년을 향해 머리를 숙여 칭찬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 상원위원이, 한낱 꼬맹이에게!


소년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다브너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호기심을 찍어 눌렀다.


자신은 장사치다. 지금과 같은 경험이 없는 게 아니다. 이런 경우는 대가리를 박고 물건만 팔면 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크게 데일 수 있다.


저 봐라. 실제로 오시리스 장군이 뒤에서 형형한 눈빛을 보내고 있지 않나.


만약 조금이라도 신경을 거스른다면 당장이라도 손가락을 퉁길 것 같은 기세다. 그럼 자신이 공들여 쌓아올린 회사는 먼지더미가 되고 말겠지.


나름대로 일신의 안위를 지킬 무력은 갖췄다고 생각했었는데. X발.


우습게도 벙커 전문가가 도망갈 곳을 찾게 생겼다.


어떻게든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야 한다.


“저기요?”

“아! 네. 죄송합니다. 금방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길어지자 소년이 말을 건네 왔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는 빠르게 매물을 찾아야 했다.


다브너의 뇌 속에서 수천 개의 벙커가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몇 개의 벙커가 머릿속에 남았다. 그 중 가장 괜찮은 물건들을 우선적으로 추천하기로 했다.


“티베트 고원 한적한 곳에 가히 제일이라 불릴만한 벙커가 하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탄압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염원이 탄생시킨 마스터 피스이지요.”


티베트라고 하면 후진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고원에 있는 대피소만큼은 결이 다르다. 만일 다브너의 소유가 아니었으면 분명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정도니.


그곳에 잠시 몸을 의탁했던 고승의 말로는 충만한 신앙의 기운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최고의 시설에 영험함이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비단 위의 꽃이라. 다브너는 그 점을 특별히 상혁에게 어필했다.


“지금도 간간히 찾으시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시설도 정비가 되어 있고요. 분명 만족하실... 음. 마음에 안 드십니까?”


다브너는 탁월한 장사치다. 상혁의 미간이 구겨진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산은 조금. 만약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꺼내기가 쉽지 않을 거 아녜요.”

“티베트 고원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그리고. 저 종교 싫어해요.”


예상대로 소년은 겁나게 까탈스러운 손님이었다.


대피소에 방문하려고 돈을 싸들고 오는 수도승들이 몇인데 왜 유별나게 저러는 걸까. 혹시 신한테 뺨이라도 맞았나?


머릿속으로 별 생각이 들었지만 다브너는 티를 내지 않고 다음 장소를 추천했다.


“지중해 바다 속에 있는 해저 벙커입니다. 지상에서 핵이 터지고,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안전한 곳이죠.”


그러나 이번에도 돌아오는 건 거절이었다.


“바다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손을 쓰기가 어렵잖아요. 물이 새기라도 하면 갇혀 죽기 쉽고.”

“...네? 땅 밑에 있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

“땅이랑 바다는 다르죠.”

“맞습니다. 그렇죠. 제가 틀렸습니다.”


아마 상혁이 옛날 사람이었다면 노아의 방주도 위험하다며 안탔을지도 모른다.


산은 왜 무너지고, 해저 벙커는 왜 물이 샌다는 말인가. 그럴 일이 어디 있다고.


이쯤 되면 그냥 딴지를 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는 손님을 믿었다.


아니. 저 군벌 때문에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지 않는다면 머리에 새로운 바람구멍이 하나 생길 테니.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찰나, 하나의 가능성과 마주했다. 이건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브너의 열정에 불이 붙었다. 그는 최대한 소년의 요구사항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고 그에 걸맞는 답변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다브너는 그제야 관점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소년은 벙커와 주변 환경이 다 아작난다는 가정 하에 물건을 보는 중이다.


도대체 무엇에 쫓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주변에 변수가 아무것도 없기를 바란다.


‘벙커 = 안전’이라고 생각하던 다브너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년이 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저 눈빛일 뿐인데 꿰뚫릴 것만 같다. 직감적으로 남은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브너는 자신이 있었다. 고객의 니즈를 거의 다 파악했으니 이번에는 정답을 맞출 수 있으리라.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금방 찾아내겠습니다.”


그는 한 뭉텅이의 서류를 꺼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소년이 찾는 벙커가 귀퉁이에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옛날 양식의 벙커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소년의 마음에 들 확률이 높다.


성능이라고는 한적하다. 튼튼하다. 단 두 가지가 끝이니.


주변에 몇 가구가 있던 걸로 기억은 하지만 충분히 돈으로 처리할 수 있는 범주였다.


“저 이곳은 어떠십니까? 말씀하신 조건을 모두 충족합니다만.”

“음...”


다브너는 두 손을 모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상혁의 검토를 기다렸다. 대기업의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영락없이 선생님께 검사를 받는 학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다행히 세 번째 거절은 없었다.


“괜찮네요. 직접 봐야할 것 같지만 제가 찾던 조건에 부합합니다.”

“후. 감사합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고작 벙커 하나 판매할 뿐인데 한 달 동안 흘릴 땀을 다 흘린 기분이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소년을 벙커로 모셨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뇨. 감사는 제가 해야죠. 벙커 잘 쓸게요.”

“넵.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다브너와 상혁은 웃으며 헤어졌다.


중간에는 블랙 컨슈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답답했지만 겪고 나니 상인으로써 큰 성장을 한 느낌이다.


그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그를 강하게 만들 뿐이니까.


나름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날 밤 소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능에서 비롯된 감정일까?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소년은 누가 봐도 호감을 가질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떠올리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미국 상원의원의 철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눈을 딱 감고 전화를 받았다.


“상혁 고객님? 어쩐 일이시죠?”

“벙커를 구매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다브너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벌써 잠에 들 시간인가? 꿈을 꾸고 있나?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과거와 똑같은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그가 정신을 부여잡고 물었다.


“또 하나 구매하시는 거세요?”

“아뇨. 새로 구매하려는 거에요.”


둘 다 비슷한 뜻이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또 구매한다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한 번 더 산다는 의미이고.


새로 구매한다는 말은 없던 것을 이번에 구매한다는 의미였으므로.


그러니 현재 박상혁은 벙커를 구매한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기존의 벙커를 날려먹었다는 소리가 된다.


구형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한 벙커다. 어지간한 재난을 다 피해갈 수 있는 아이템인데 그걸 사용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그의 머릿속에서 수 십 가지 경우의 수들이 맴돌았다. 그러나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기존의 벙커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 구매한 이상 어떻게 사용하던 고객님의 마음이시지만 저희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잠시 정적이 흐르고 상혁이 대답했다.


“내구성 테스트를 하다가 망가졌습니다. 조금 더 탄탄한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다브너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판매 전에 건물 상태를 확인 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혹시 어떤 방법으로 하셨는지요?”

“... 미사일. 벙커 버스터요.”

“A...”


할 말이 없었다. 설마 벙커 내구성을 살피겠다고 미사일을 때려 박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어떤 사람이 개인 미사일을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가지고 있어도 그렇지. 미사일 같은 대량 살상 병기가 고작 ‘테스트’ 용이라고?


뭐 소비에트 연방이랑 한 판 뜨기라도 하려는 걸까. 도대체 어떤 존재와 대적하고 있길래.


뇌가 잠시 활동을 멈추고 멍해졌다. 어이가 머리 뚜껑을 따고 나와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상혁은 그가 정신을 다독일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더 튼튼한 녀석이 필요합니다.”

“... 주문 제작을 해드리는 건 어떠십니까?”

“시간이 얼마 없어서요. 빨리 구매하면 좋을 거 같아요. 가능하면 오늘 내로.”

“... 찾아보겠습니다.”


간신히 대답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오늘 잠에 들기는 그른 것 같다.


“흐어어. X발...”


의뢰를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냥 째끼고 내일 할까?’


한 건은 거래를 마쳤으니 도의적인 책임은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배 째라 마인드로 버텨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는 것이다. 돈을 얼마나 준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이제 이 지긋지긋한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게다가 고용인께서도 ‘가능하면’ 오늘 구해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불가능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맥주나 까려고 냉장고에 가려는 순간 문자가 띠링 울렸다.


상혁 – 빠르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타이밍이 공교롭다. 다브너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안 해~ 오늘은 나쵸에 맥주 마실 거야~”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나쵸 봉지를 까는 순간. 다시 한 번 띠링 알람이 울렸다.


기분을 조금 잡쳤기에 욕설을 내뱉었다.


“아~ X발. 더럽게 보채네.”


그는 술잔을 들이킨 후 나쵸를 입가에 털어넣었다. 그래도 고객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투덜거리며 문자를 확인했다.


상혁 – 개인적으로 안주는 나쵸보다는 프렌치 프라이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추신 : 좋은 벙커 기대할게요. ^^.


쨍그랑.


들고 있던 술잔이 손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조각 하나가 발등에 박혔지만 이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빠르게 집을 둘러보았다. 감시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없다. 당연하지. 그의 집인데 그가 모르는 도청 장치가 왜 있단 말인가.


그래도 불안을 쉽사리 가라앉힐 수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게 아니고서야 그의 안주를 맞출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이 말도 듣고 있습니까? 내 행동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거에요?”


소리를 크게 내지르고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상혁 – 설마요. * 추신 : 저는 벙커가 빨리 구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설마는 개뿔! 다 보고 있잖아아아아악!!!”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현 상황은 이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다. 남은 방법은 단 한 가지. 나쵸를 집어 치우고 개쩌는 벙커를 찾는 것.


“아니. 이걸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존재다. 기분이 나쁘다고 그를 죽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이 행동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다브너는 억지로 정신을 일깨우고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벙커를 처음부터 끝까지 뒤지면 뭐라도 하나 걸리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벙커의 개수가 수천 개가 넘는지라 한 번 읽는 것만 해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꾸벅 꾸벅 고개를 떨어트렸는데 그럴 때마다 핸드폰의 알림이 그를 깨웠다.


누군가 그의 머릿채를 잡고 강제로 들어올리는 것만 같다.


다브너는 지치다 못해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일이 끝나면 저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까요?”


답장은 곧바로 도착했다.


상혁 – 물론이죠. 그런데 또 부서지면 다시 연락을 드릴지도 몰라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차올랐다. 어느새 피곤함은 싹 날아가 흔적을 감춘 뒤였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또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안 된다. 머릿속에는 그 생각 뿐이었다.


결국 다브너가 수면을 허락받은 건 다음날 새벽 5시였다.


전임자가 옛날에 한 괴짜에게 구매한,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던 벙커를 기어코 찾아내 넘긴 것이다.


상혁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음. 추가로 보수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좋은 밤 되세요?”


다브너는 곧바로 앞으로 꼬꾸라지며 말했다.


“아침이야 X발...”


문득 지금 욕하는 것도 상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려움을 느낄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일단은 잘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면 문 앞에 소금을 뿌리리라.


“반드으시. 뿌우리고오 만드아. 씨부알.”


그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 * *


보수 공사에는 많은 시간이 소비되지 않았다. 미리 재료를 다 준비해 두었기 때문.


덕분에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벙커의 공사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물, 식량, 상비용 약, 여가를 보내실만한 놀이거리 모두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고생했어요. 그럼 이제 슬슬 이동하죠.”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크리스티나가 내 팔을 붙잡았다.


“전하. 역시 저도 같이 들어가는 것이...”

“안 된다고 식사시간 내내 이야기 했죠?”

“그래도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 몸을 좀먹을 테니까요! 그러니 제가 전하를 보필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은근슬쩍 스킨십의 횟수를 늘려왔다. 나름대로 내 멘탈을 케어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한 듯하다.


솔직히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그래서였다. 벙커에 혼자 들어가겠다고 한 것은. 같이 있다가는 정말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기에.


위기 상황이라는 핑계로 책임지지도 못할 상황을 만드는 건 바라지 않는다. 차라리 외롭고 고독한 것이 낫지.


지금도 승윤이는 죽음에게 휘둘리고 있다. 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여 매달리는 크리스티나를 가볍게 밀어내고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크리스티나는 회사 관리하고 있어야죠.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려고.”

“그런 게 아니옵고...!”

“고생하는 거 알고 있어요. 이번 일 끝나면 보너스 기대해요. 어지간해서는 원하는 걸 하나 챙겨 줄 테니까.”


그녀는 ‘원하는 것’이라는 단어에 무장해제되었다.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확인하는 것도 훗날의 즐거움 중 하나이리라.


그래. 모든 즐거움은 나중으로 미뤄두자. 미래에 대한 기대는 오늘 내가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니.


나는 기지개를 한 번 핀 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벙커 속으로 들어갔다.


현재 진척률은 74%. 승윤이가 운명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는 단 26%만을 남겨두고 있다.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퍼센테이지 또한 일정한 속도로 올라갔다.


CC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외부의 환경 또한 빠르게 변해갔다.


원래는 평범한 해안가 바위섬이었던 경치에 점차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람이 원을 그리며 뭉쳐 거대한 바람이 되었고, 이제는 비 대신 벼락이 벙커를 향해 떨어진다.


땅이 흔들리며 벙커를 집어 삼키려 하며 균열 군데, 군데에서는 시뻘건 용암이 혀를 내밀었다.


훗날 ‘신의 분노’라고 불리는 장소 속에서 나는 차분하게 진척률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도, 선호작도, 댓글도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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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악마들의 처리 22.12.06 245 4 21쪽
179 악마를 포박하다 22.12.03 258 5 18쪽
178 불균형의 화신 22.12.02 278 5 20쪽
177 그 다음 22.12.01 268 5 21쪽
176 승리, 그리고 귀환 2 22.12.01 263 5 15쪽
175 승리, 그리고 귀환 1 22.11.30 269 5 14쪽
174 다다르다 22.11.29 260 7 21쪽
173 100% 22.11.26 257 5 18쪽
172 블러핑 22.11.25 257 5 20쪽
» 벙커 22.11.24 263 5 18쪽
170 차 비 22.11.23 250 5 19쪽
169 또 다른 비밀조직을 만나다 22.11.22 267 4 21쪽
168 파티와 난동 22.11.19 259 5 21쪽
167 파리 공항에서의 이미지 메이킹 22.11.18 267 5 15쪽
166 대기업의 오너가 되다 22.11.17 282 5 16쪽
165 돈, 돈, 돈 22.11.16 285 5 18쪽
164 계획 22.11.15 294 5 19쪽
163 선택의 무게 22.11.12 294 5 18쪽
162 소라의 기묘한 하루 22.11.11 311 5 19쪽
161 구원 22.11.10 300 5 19쪽
160 선택 22.11.09 285 6 17쪽
159 분기점 22.11.08 297 6 17쪽
158 해방군과의 조우 22.11.05 313 6 17쪽
157 유성의 비밀을 파헤치다 22.11.04 318 6 20쪽
156 인공 유성 프로젝트 22.11.03 328 6 21쪽
155 타 차원의 힘을 빌리다 22.11.02 363 4 16쪽
154 연쇄소원마가 되다 22.11.01 349 5 18쪽
153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되다. 22.10.29 348 6 20쪽
152 얻어낸 것 22.10.28 342 6 18쪽
151 여느 때처럼 증명하다. 22.10.27 351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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