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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현kain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성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성시현kain
작품등록일 :
2019.07.22 05:24
최근연재일 :
2019.10.16 06: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16
추천수 :
260
글자수 :
186,037

작성
19.10.03 06:00
조회
65
추천
4
글자
12쪽

episode 5 약자가 늘 선한 것은 아니다. -6-

DUMMY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는 타인의 삶을 구경거리로 삼아 버티고 있었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는데, 옅어져가는 감정과 잃어버린 것들이 그리워 어느새 나는 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웅들의 삶을 보며 동료들을 떠올렸고, 악인들을 바라보며 증오를 상기시켰다.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자들을 비웃고, 이야기에 필요도 없으면서 타인의 발목을 붙잡는 놈들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들의 삶을 소모품 취급하며 멋대로 그들을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내가 가장 혐오하던 존재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바보 같은 일이지. 처음에 자각했을 때는 죽고 싶었어. 무슨 이유가 있던지 간에 고작 수 만년도 못 견디고 그놈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게 수치스럽기도 했고, 구역질이 나기도 했어.”


무엇보다 화가 난 것은 내가 이해해 버렸다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눈을 돌려도 알게 되더라고, 성좌라는 놈들이 왜 그렇게 이기적이고 점점 더 자극적인 이야기만 찾는지,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지. 이해할 생각도 없었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놈들을 이해해버렸어.”


성아는 아무런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태생부터 성좌였던지 해탈을 통해서 성좌의 반열에 올랐던지 성좌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또 많은 것을 잃어버려. 버리고 싶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지고 있던 것들은 희미해지고, 새로운 것을 담고 싶어도 그 긴 시간동안 탑을 바라보다 보면 모든 이야기는 식상해지지. 비극과 희극의 경계는 옅어지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작위적인 이야기로 보이지, 하다하다 악당의 악행을 봐도 그 악당의 사연을 들어도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아.”


이것이 내가 그들과의 싸움을 끝맺은 이유였다.


더 이상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흐르다보면 말이다. 정말로 어지간한 인간은 상상도 못할 시간을 그렇게 지루하게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딱 하고 아무래도 좋아져. 모든 게 그냥 아무래도 좋아지는 거야. 계속 버텨야할 이유도 생각나지 않고, 탑에 있는 자들이 생명으로 보이지도 않아.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줄 자극만을 찾게 되는 거야.”


물론 끝까지 자비심을 가지고 자신을 쥐어짜며 그들의 삶을 돌보려 하는 성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성좌들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다.


플레이어는.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인간은 너무도 나약하니까.


꼭 선인이나 악인이 아닌 보통 아이들이라도 쉽게 호의에 익숙해지고, 계속되는 호의를 어느새 권리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점점 인간에게 자비로운 성좌는 줄어들고, 인간을 장난감 취급하는 성좌들은 늘어나는 거지.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그냥 인내심이 부족했다는 거야.”


성아는 잠시 눈을 감고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제법 민감한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지루했던 모양이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성좌들이 왜 그렇게 비뚤어 졌는지 같은 게 아니다. 나는 네가 어떤 놈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결국 다른 성좌들과 마찬가지인 놈이었어. 그걸 감안하고 묻겠다.”


성아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그럼에도 다시 성좌에 오르고 싶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성좌에 오르고 싶으냐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그저 당연히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래 내가 꼭 다시 성좌가 될 필요는 없다.


이 몸은 인간이지 않은가.


감정도 돌아오고 있다.


평범하게 탑을 올라서 별것 아닌 소원을 빌고 인간처럼 살다 죽는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꼭 탑을 오를 필요도...


“아니지.”


“음?”


“탑을 올라가야 할 이유가 하나 있긴 하네.”


저 위에서 날 기다릴 성좌가 하나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내가 승부욕을 돌려준 자.


내게 감정을 되찾을 기회를 마련해준 자.


무엇보다 나를 기다리겠다고 공언한 자.


“저 위에서 날 보고 있을 성좌가 하나 있거든. 그러니까 다시 성좌가 되는 건 둘째 치더라도 위까지 올라는 가야지.”


성아는 잠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흑운검을 갈무리했다.


“이제 궁금한 건 없어?”


“나래와 나리를 배신할 생각은 없나?”


“없어.”


“나는 이 탑의 90층을 알고 있다. 정말로 그곳에서도 그 둘을 배신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그 둘 말고 너랑 흑아 소월이까지 누구도 배신할 생각 없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집고 넘어가지.”


“뭔데?”


“만약에 나와 다른 일행들 중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날 포기해라.”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건 그때 가서 봐야지.”


그리고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도 말이다.


던전 돌파는 더욱 쉬워졌다.


곧 다른 일행들도 찾을 수 있었고, 나래를 제외한 일행은 모두 상처 없이 무사했다.


헤어지기 전의 상황 때문에 다소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내가 불편하다기 보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제 언니만 찾으면 얼른 클리어 해버리자.”


나리가 다소 어색하게 말을 돌렸지만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글쎄?”


“응?”


“이제야 바알이 뭘 하려고 한 건지 알 것 같거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성아의 표정이 성대하게 일그러졌다.


변형된 것 치고는 몬스터 수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함정이 말도 안 되게 어려워 진 것도 아니다.


바알이 소모한 신성치고는 변화가 너무 적단 말이다.


무엇보다 동료들을 일직선으로 그저 내부로 다가가면 만날 수 있도록 배치해둔 것이 거슬린다.


지금 이 던전의 상태를 봤을 때 수정하는데 들어간 신성은 별로 많지 않아야 정상이다.


크게 무언가를 바꾼 것도 아니고, 일행들의 위치를 뒤죽박죽으로 뒤섞은 것도 아니니까.


신성이라는 것은 수치화하기 상당히 애매하지만 그래도 바알이 사용한 신성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탑에 더 많이 개입할수록 필요로 하는 신성은 말도 안 되게 늘어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즉 진짜 노림수는 던전이 아니라 아무리 걸어도 나오지 않는 나래라고 봐야겠지.


그 정도의 신성이면 플레이어 하나 정도는 괴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겠지.


그 후로 얼마나 걸었을까.


난이도는 별로 높지도 않은데 빌어먹게 길어진 던전도 어느덧 끝이 다가온 듯 했다.


스산한 느낌이었다.


악마라는 것들은 왜 다 이렇게 스산한 느낌을 풍기는 걸 좋아하는 걸까.


그리고 왜 이렇게 사람이 불쾌해 질 짓거리만 골라서 하는 걸까?


미궁하면 대표적인 몬스터로 꼽히는 것이 두 동강 난체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반인반우의 괴물.


“본래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궁은 지하 미궁은 아니다만, 미노타우로스 자체가 미궁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보니 여러 탑에서 사용하게 되고, 결국은 이렇게 미궁에서 등장하는 괴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지.”


미노타우로스를 동강낸 장본인은 아무래도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클리어 할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오면서 오늘은 너무 조용한 거 아니냐? 나래야.”


얼굴은 나래가 맞는데 참 기묘한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고양이 모자를 쓰고 양손에는 두꺼비와 모자 쓴 남자의 복화술 인형을 끼고 있다.


참 우리 나래한테 해괴한 것도 입혀 놨다.


“그래, 나래한테 미안하니까 나래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고, 고양이에 중년남자 두꺼비 얼굴까지 바알이냐? 억지로 강신하려고 했으니까 신성 소모가 엄청난 것도 납득이 가네.”


자기 신도도 아니고, 같은 성운의 신도도 아닌 나래에게 강신하려면 상당히 무리를 해야 했겠지.


“그런데 이해가 안 간다. 왜 뜬금없이 나래야?”


차라리 더 투자해서 현신을 했다면 이해를 할 수 있다.


본체만큼은 아니더라도 바알 정도면 분신도 무시하지 못할 위력을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나래한테 강신했다는 건, 내가 나래는 공격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아니면 인질로 잡아보려고?”


어느 쪽이던 상처하나 없이 구해낼 자신 있다.


그런데 왜인지 성아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골치 아프게 됐군.”


“뭐가? 강제로 연결한 강신을 푸는 것 정도는 간단해. 네가 잠시만 제압하고 있으면 내가 처리할 수 있어.”


“네 신안이라는 능력은 상당히 어중간한 능력인가보군.”


“뭐?”


“나래와 나리에 대해서 좀 더 잘 아는 게 좋을 거라는 뜻이다.”


성아가 흑운검을 뽑아들었다.


“야, 너 미쳤냐?”


“닥치고 준비나 해라. 신이 들렸을 때의 나래는...”


그리고 곧바로 나래의 신형이 흔들렸다.


“나보다 강할지도 모르니까.”


이형환위.


나타난 나래의 손에서 두 줄기의 빛이 쏘아졌다.


“이게 뭐야.”


마찬가지로 이형환위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그곳에는 나래가 자세를 잡고 창을 조준하고 있었다.


몸속을 화전하는 마력을 한계까지 가속시켰다.


연속된 이형환위로 겨우 거리를 벌렸나 했더니, 이번에는 나래의 손에 들린 두 자루의 창 중 하나가 너 눈앞에 당도해 있었다.


투창.


몇 번인가 하는 것을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이정도 위력은 아니었다.


“이 애 굉장하네?”


나래의 목소리였지만, 나래라기에는 말투가 상당히 간드러졌다.


“사실 처음에는 흑백 당신 말대로 인질로 삼거나 자살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는데, 이런 걸 숨기고 있었구나?”


붕붕하고 붉은 창을 돌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평상시의 나래라면 무기를 받아내기라도 하겠는데, 지금 저 창에는 바알의 마기가 검강처럼 완벽하게 감겨있다. 호신강기를 믿고 맨손으로 만졌다가는 그대로 양손이 잘려나가겠지.


“나래는 강신이랑 상성이 무척 좋다. 아니 무척 나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성아는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본인들이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말해줄 수는 없으니 일단 이걸 해결하고 직접 들어라.”


흑운검에 세 가지 오러가 휘감겼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었다.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방금 전 그 움직임은 틀림없이 초월자 급의 움직임 이었으니까.


순백의 창이 너무도 쉽게 흑운검을 쳐냈다.


이어지는 흑아의 주먹도, 소월의 오러도, 나리의 단검도 무엇 하나 나래의 몸에 스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신들린 움직임.


신창합일 정도로는 설명도 못할 수준의 창술이었다.


나래의 입을 빌려 바알이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억지로 한 강신인데도 이정도로 힘을 낼 수 있다면, 원래는 얼마나 잘 맞는다는 거야?”


바알은 본래 창을 다루는 마왕이 아니다.


오히려 특기는 압도적은 마력을 이용한 버프와 섬멸 쪽.


그러니까 창술은 순전히 나래의 기량에 의존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


나래의 창술은 제법 진보했지만, 그래도 성아를 상대하면서 소월이와 흑아 나리까지 견제할 실력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건 이걸 해결하고 해도 늦지 않다.


“내가 이래서 너희를 이해하면서도 싫어하는 거야.”


무기가 있거나 조금 더 힘을 되찾았다면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지금 나래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힘을 쓸 수는 없다.


나래를 죽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은 둘.


첫 번째. 바알보다 방대한 신성으로 억지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이건 무리다.


악마를 잡으면서 유명해진 덕분에 조금 회복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회복한 신성을 전부 털어 넣어도 바알이 투자한 신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비교적 간단하다.


나는 나래가 신봉하는 성좌니까 놈처럼 복잡하게 신성을 소모할 필요 없이 강신이 가능하다.


“내 몸 좀 잘 부탁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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