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천재공학자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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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으로 돌아오게 된 나의 목적은 너무나 확고했다.
살아생전 내가 이룩하지 못했던 장비개발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고 또 어머니의 죽음을 막기 위한 장비개발에 몰두하는 것.
이번에 참가하게 될 첨단 산업 박람회가 나에게로 하여금 그 첫걸음을 내딛는 무대가 될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황지훈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박람회 참가비라던가, 연구소 대관이라던가. 그런 물질적인 도움말이다.
속물이라 비난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지금의 나는 당장 주머니 속을 털어봐도 10원 한 장 나오지 않을 때였으니까.
어떤 말로 첫마디를 꺼내야 할까 깊은 고민에 잠겨 주위의 소리가 단지 배경음으로 들리던 그때, 누군가 내 팔을 부여잡고는 다급히 외치기 시작했다.
“야 주은호!”
“·····?”
팔목에 느껴지는 감촉에 정신을 차려 보니, 앞에 있는 녀석이 무척이나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뭘 멍을 때리고 있어, 몇 번을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아, 미안.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이 새끼들 좀 말려 보라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방금전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던 녀석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서로의 멱살을 쥐고 다투는 장면이 보였다.
‘결국 사달날 줄 알았다, 이래서 이런 자리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건데···’
물씬 후회가 밀려오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기에 나는 한 녀석의 팔을 붙잡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 노력했다.
“야야, 친구들끼리 왜 그러냐, 그만 좀 해!”
하나 이들은 도저히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오히려 더 흥분에 차 허공에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리 안 와! 쫄았냐 이 새끼야?”
“뭐래 이 개새끼가! 쫄리는 건 본인이겠지!”
오만가지 욕설이 오고 가던 것도 잠시.
가만히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듣자 하니 한 놈이 먼저 다른 녀석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다.
그것도 누가 더 게임을 잘하네 마네 이런 터무니 없는 이유로, 딱 20대 중반 철없는 사내들의 득도 실도 없는 언쟁이었다.
그 순간 내 헛기침 소리가 둘에게 까지 미쳤는지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이 새끼······ 너까지 비웃는 거야?”
“비웃을만 하지 새끼야, 은호 이 새끼는 마스턴데. 야 은호야, 더 웃어 더!”
의도하지 않은 헛기침 한 번에 사건이 더욱 심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내 마음이 상했는지, 한 녀석의 손이 내 멱살로 날아오기 시작했고, 흠칫 놀라 몸을 피하려 하던 그때 황지훈이 그 녀석을 제지하고는 급히 나를 가게 밖으로 끌고 나왔다.
“야! 너 거기 안 서!!”
황지훈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가게 옆 골목에 있는 흡연실이었다.
그는 담배를 하나 물고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채 나를 가볍게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서 갑자기 웃으면 어떡하냐 인마.”
다그치는 말투와는 다르게 그의 입가엔 통쾌하다는 듯한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에휴··· 됐다, 내가 죄인이다. 괜히 끌고 와 가지곤······, 그냥 신경쓰지마 저것들 원래부터 만나기만 하면 저러니까, 잠깐 저러다 말 거야.”
불편한 광경을 목격하게 한 게 마음이 쓰였는지, 거듭 사과를 하는 황지훈이었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다. 그것보다, 황지훈과 단둘이 있게 된 지금, 나에겐 더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뿌린 씨앗을 거두는 일.
그런데···
막상 말을 꺼내려니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자칫 말실수를 하게 되면 그에게 환심을 사기는커녕 적으로 돌아서게 만들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자본을 대달라고 하기엔 김 교수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고, 그렇다고 에둘러 말하기엔 내 자신의 언변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황지훈에게 그런 부탁을 해도 될 정도로 우리의 친분이 두터워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쉽게 가능한 거였으면, 지난 세월을 그렇게 살지 않았겠지······’
거듭되는 고민에 지병이었던 두통이 다시금 도지는 것 같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결론을 내리려던 그때 황지훈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근데 아까 박람회 참가하겠다는 말 말이야, 그거 진심으로 한 말이야?”
“당연히 진심이죠.”
“굳이? 너 이미 다른 곳에서 수상도 많이 받고 학점도 좋잖아, 그 정도 스펙이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기저기서 부르는 데가 많을 것 같은데,”
합리적인 의심이다.
가끔 너스레를 떠는 부분이 있지만 확실한 건 황지훈은 가게 안에 있는 놈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너는 개인 참가자라 비용이 많이 들어갈 텐데······ 그런 걸 감당해야 할 정도로 꼭 참가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그의 말은 즉 이랬다.
박람회를 참가할 수 있는 자격 중 ‘중소’, ‘중견’ 또는 독자적인 출전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독자적 지원에 해당해 기업 출전자들과 다르게 참가비 부담이 많이 된다는 얘기였다.
이를테면 부스 제작비와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금같은 것들 말이다.
일개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그이기에 나름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분명한 건 이 말은 황지훈에게로 하여금 실수였다.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닌 본인이기에 걱정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분위기상 말을 꺼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제가 취직에는 뜻이 없어서요, 박람회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투자를 받아보려 합니다.”
이윽고 나는 곧바로 계획했던 일을 시작했고, 황지훈은 수긍하는 듯했다.
“하긴, 너 정도 능력 되면, 바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지.”
염치없는 동기가 본인에게 무슨 부탁을 해오려는 지도 모른 채.
“그래서 말 인데요 지훈이 형······.”
“응?”
“저한테 투자 한번 안 해보시겠습니까?”
그 순간 당연히 황당해 할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황지훈은 10초간 정적을 유지하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실장님. 접니다, 황지훈······.”
전화를 들고 멀리 떨어진 탓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왠지 느낌이 좋았다.
‘설마 이게 되나?’
이내 통화를 끝마친 황지훈이 비장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딱―!
내 이마에 딱밤을 한 방 매기고는 담배를 문 입술을 씰룩거렸다.
‘이런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지긴 했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구랑 통화하신 거예요?”
“응. 내 전담 수행비서. 인마, 그런 게 문제였으면 형한테 미리 말을 하지, 그거 뭐 어려운 부탁이라고 무게를 잡고 있어 건방지게.”
정말이지 황지훈은 카멜레온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이 인간 내 말이 무슨 뜻이지 제대로 이해는 한 거 맞아?
“형 근데 제 말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걸 뭐 들어봐야 아냐? 너 같은 애들이 나한테 부탁할 만한 게 뭐가 있는데. 머리도 나보다 좋고 스펙도 나보다 뛰어난 데 물어봐 봤자 내 입만 아프지. 돈 빌려 달라는 소리 아니야 인마!”
황지훈은 생각보다 눈치까지 겸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역시 훗날 내 동업자가 될 사람으로서 부합하는 인재상이다.
“마침 TK 본사에 공실인 연구실이 있다고 하고, 그 뭐 참가비 정도야, 너 정도면 충분히 갚을 수 있겠다 싶어서 빌려주는 거니까 졸업하고 회사 차리게 되면 10배로 갚아.”
“정말 고마워요 지훈이 형.”
감사를 전하는 내 태도에 쑥스러웠는지 마지막 말을 끝으로 황지훈은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됐으니까 꼴값 그만 떨고 빨리 들어와.”
“네. 형, 금방 들어갈게요.”
그렇게 나 또한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주은호.”
그 순간 본능적으로 등 뒤에서 역한 썩은내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한껏 찡그려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교수진들은 다 자리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가셨습니까?”
김 교수는 기가 찬 듯 하소연하며 말했다.
“뭐 이 자식아? 그러게 왜 연락을 안 받아서 사람을 밖에서 기다리게 만들어!”
핸드폰을 꺼내 문자 메세지를 확인해 보니 정말로 김 교수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그것도 15통씩이나.
[김 교수: 잠깐 할 말이 있으니까 밖으로.]
[김 교수: 빨리 빨리 안 나오고 뭐해!]
상대할 가치도, 그렇다고 아까운 시간을 써가며 그의 얘길 들어줄 이유도 없었지만, 여태까지 나 하나를 위해 우두커니 기다렸을 그의 노력이 가상해, 이번만큼은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비밀리에 해야 할 얘기라는 걸 보면, 그리 좋은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용건만 간단히 말씀하시죠.”
“저 저!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안 그러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황당한 그의 말에 그저 탄식만 나올 뿐이었다.
기껏 사람 불러 세워서 한다는 소리가 우정 놀이나 하자는 거였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다시금 상기시키게 됐다.
그래.
확실한 건 이 시절 내가 김 교수의 덕을 많이 보고 우호적인 관계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게 김 교수의 치밀한 계획이었다는 게 들통나기 전까지의 얘기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에겐 더 이상 같은 방법이 먹히지 않을 것이란 걸 이 양반에게 똑똑히 새겨놓아야 한다.
더 이상 나에게 어줍잖은 이간질로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시간이 많으신가 보네요, 이럴 시간에 저를 찾아 오실 게 아니라,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해보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예로 들면 연구라던가, 아니면 교수님이 잘하시는 게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에요? 아, 그것마저도 없으신가.”
김 교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새끼가 근데, 너 진짜 사과할 마음이 없는 거야? 기껏 생각해서 찾아왔더니 말하는 꼬라지가 그게 뭐야!”
“네. 그럴 마음 죽어도 없으니까 우리 서로 갈 길 가자고요.”
분노에 찬 그의 얼굴을 뒤로 하고 가게로 향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김 교수가 내 팔목을 붙잡고는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보니, 박람회를 참가한다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단 말입니까?”
순간 김 교수의 호주머니 안쪽에서 종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는 보란 듯이 내 눈앞에 종이를 펼쳐 보이며 얘기했다.
[첨단 산업 기술 박람회 심사위원 초청장]
“니가 참가하려는 박람회에서 말이야 나한테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보내왔다. 내가 만약 이 제안을 승낙한다면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일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겠지?”
그러나, 김 교수의 협박은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내 목적은 수상이 아닌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이었기에, 제 아무리 심사위원이라도 모두의 눈을 속이진 못할 것이다.
한 편으론 어떻게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나의 기를 꺾어 놓으려 했던 그의 시도가 불쌍해지기까지 했다.
이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고, 그런 내 태도에 김 교수는 당황한 듯 뒷짐을 풀었다.
“그래서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요? 제자한테 복수라도 하시려고요?”
“니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마음대로 하세요~ 과연 그런 협박이 저한테 씨알이나 맥힐는지.”
“그래 두고 보거라, 니놈의 그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세가 어디까지 올라갈런지.”
“그래요, 날도 추운데 얼른 들어가시죠, 저도 안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럼 이만.”
그렇게 나는 김 교수를 뒤로하고 가게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방금까지 앉아있던 녀석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테이블 덩그러니 놓여진 메모 하나만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다. 은호야 계산은 형이 했으니까, 이거 보면 너도 바로 집에 들어가. 다음에 연락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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