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아이린(Irin) 6장 동부의 소국 2

리쿠나 서쪽, 그러니 키리루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인 검은 숲. 울창한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착륙한 에릭실은 마법으로 컨디션을 조절했다. 이후 그 육중한 몸을 인간의 몸, 인간 마법사 에릭실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채 잠든 아이들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다.

“뭐, 위험한 것들은 없겠지.”

에릭실은 그대로 아이들을 대지에 뉘여 두고 눈을 감고 숲의 마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신고나 해둘까.’

숲의 수많은 자연마나 중 거대한 덩어리 하나를 포착한 에릭실의 머릿속에서 바로 워프 마법이 발현되었다. 공간을 이동한 에릭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열 명의 엘프들이었다.

“이거, 이거. 오랜만이야, 혈족들이여.”

“로드를 뵙습니다.”

가운데에 서있던 가장 늙은 엘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낮추자 남은 엘프들도 그를 따라 몸을 낮추었다.

“일어나.”

에릭실의 말에 엘프들이 천천히 일어났다. 가장 먼저 몸을 낮추었던 엘프가 차가운 눈으로 에릭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북부에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알고 싶나.”

“이곳은 동부의 숲. 우리 그린 드래곤에게 허락된 장소입니다. 그러니 로드시라도 함부로 이곳에서…….”

“시끄러. 인간의 보호자가 되어서 온 것뿐이니 흥분하지 마. 이 숲 옆에 조그만 인간의 나라가 있지? 그곳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잠시 머물 테니 조금의 아량을 보이라고.”

에릭실의 말에 그린 드래곤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가장 늙은 엘프, 그린 드래곤 베르토 가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이를 갈며 에릭실에게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는 에릭실이 리치몬드 제국을 쓸어버린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인간의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 조화를 깨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글세, 과연 내가 하려는 짓이 조화를 깨는 일일까? 순리에 맞추어 조화를 깬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베르토, 말해보게. 조화……. 아니, 자네가 말하는 평화를 깨는 행위가 신이 만든 순리에 맞춘 것이라면 자네가 내게 이렇게 질책할 수 있을까?”

“…….”

로드의 말에 베르토는 미간을 좁혔다. 순리에 맞추어 조화와 평화를 깨뜨리는 것. 베르토는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말고 몸을 돌렸다. 그의 몸에서 마법 반응이 일어나며 에릭실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도망쳤군.’

에릭실은 혀를 찼다. 여태까지 그랬지만 결국 꼬장꼬장한 늙은이가 되었으니 심히 불편하게 하는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에릭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남아있는 9인의 엘프들. 모두 베르토의 자식이 틀림없었다.

“로드의 뜻을 따릅니다.”

체구가 가장 큰 엘프가 말을 한 뒤 다시 몸을 낮추었다가 마법으로 사라졌다.

“로드의 뜻을 따릅니다.”

“편하신 대로.”

“모든 것이 로드의 뜻대로.”

덩치 큰 엘프를 시작으로 남은 엘프들도 동의를 표하고 몸을 낮춘 뒤 몽땅 마법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에릭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꼬장꼬장한 것들. 아차, 그러고 보니 동부에 하레일의 레어가 있었지?”

에릭실의 눈이 호기심과 장난기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