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아이린(Irin) 6장 동부의 소국 3

‘다음에 가는 게 신상에 좋겠지. 그리고 로얀에게도.’

에릭실은 자신이 하레일의 레어로 갔을 때 생길 일을 대충이나마 떠올리자 고개를 돌리며 난색을 표했다. 로얀이 사용하는 프로즌 하트의 자루를 감싸고 있는 가죽부터 로얀이 가진 몇 벌의 옷. 전부 하레일의 가죽이 사용되었으니 죽자고 덤벼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보다 싸가지 없는 새끼들. 어른이 가지도 않았는데…….”

에릭실의 꼬장꼬장한 노인공경에 대한 소리에 이어 마법이 발동되자 그의 모습은 방금까지 있었던 엘프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곧바로 아이들이 잠든 곳으로 이동한 에릭실은 큰 고민에 빠졌다.

‘로얀은 그렇다고 치지만 남은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이 보호해야할 대상은 엄연히 로얀. 로얀은 그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아니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이해할 것이라 믿을 테니. 상관없었지만 콜트레인과 제임스는 자신을 그저 마을에서 글을 가르치던 선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설명에 긴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좋아, 내 뜻을 따른다고? 어디 한 번 지고한 로드의 명을 받아봐라.”

에릭실은 그대로 콜트레인과 제임스를 양 어깨에 들쳐 업고 워프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난 곳에는 본체로 헌신한 베르토가 황금 위에 누워있었다.

“……로드!”

“둘 밖에 없을 때는 그냥 이름으로 불러. 너랑 나랑 함께한 세월이 몇 기인데, 낯간지럽다.”

“에릭실, 자리를 잡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녹색 비늘로 뒤덮인 베르토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

“언제? 신세를 진다고 했지, 그런 말은 한 기억이 없는데?”

에릭실의 능청스러움에 베르토의 코에서 황당한 듯 콧김이 훅하고 뿜어져 나왔다. 베르토의 황금빛을 띈 눈이 에릭실이 들고 있는 짐으로 향했다.

“그건 간식인가? 크크……. 참 너답군. 인간 사회에 섞여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잡아먹다니 말이야.”

명백한 조소. 에릭실은 잠들어 있는 두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숲 중앙에 있는 세계수 청수(靑樹)의 속에서 사는 베르토. 나무속에 사는 그답게 바닥은 부드러운 나뭇잎이 가득 쌓여있었다.

“부탁이 있다.”

“거절이다.”

에릭실이 제대로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베르토는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거부 의사를 표했다.

“아직 말 다 안했어.”

“알고 싶지 않아. 넌 내 부탁을 들어주었나?”

“몰라. 하지만 이건 급한 일이야. 생명이 달려있는 일이라고.”

“리치몬드의 수많은 생명보다 더 많고, 그리고 더 중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

단호한 태도와 그리고 베르토의 마지막 말에 에릭실은 입을 다물었다. 리치몬드 제국이 리치몬드 제국의 용병단이 자신의 영토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수도를 무너뜨린 에릭실. 그가 제국의 수도 상공에 도착했을 때 브레스를 뿜기 바로 전까지 그를 말렸던 것이 베르토였다. 하지만 베르토의 애걸복걸에도 에릭실은 인간을 보호하고 감싸는 베르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공간이동 시킨 후 그대로 수도를 파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