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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바라기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관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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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담바라기
작품등록일 :
2023.06.30 18:49
최근연재일 :
2023.10.31 20:03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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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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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0,210

작성
23.07.0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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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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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12쪽

오래 버틸수록 좋다니

DUMMY

눈을 뜨자마자 악취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막 씻고 말린 것처럼 뽀송뽀송하다.


벌떡 일어난 우진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다가 깨끗해진 옷을 들쳐 구석구석 살펴보고는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옆구리 흉터가 사라졌어."


고등학교 수학여행 갔을 때 길고양이를 구해주는 과정에서 녹슨 못에 깊게 찍히고 긁히는 바람에 제법 큰 흉터가 남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흉터는커녕 아기 피부처럼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보드라웠다. 아니 모든 면에서 완벽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제야 후보자다운 면모를 갖추었군요.]


"그 정도로 많이 변했어?"


[변한 정도가 아닙니다. 다시 태어난 수준이니까요.]


그 정도라고? 진짜 대박이네. 어쩐지 시야도 조금 변한 것 같고, 손바닥의 굳은살도 사라져 말랑말랑해졌다.


"하긴, 흉터도 사라졌는데 굳은살쯤이야."


[어떤 질병도 침범할 수 없는 완벽한 몸이 된 겁니다.]


"병들지 않는 육체라, 끝내주는데?"


[그러니 감사하세요.]


감사해도 에르다나 차원수한테 해야지, 왜 네가 생색 내냐?


[뭔가 불순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응. 됐고."


두 번 하라고 하면 죽어도 못하겠지만 그 끔찍한 고통의 결실이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게다가 체감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변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특별한 곳이라는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와는 와닿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상쾌한 공기, 머리를 맑게 해주는 향, 확연히 밝아진 시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결, 생생하게 살아있는 생명력까지.


마치 감각이 최대치로 뻥 뚫린 느낌이랄까. 숨을 흡 들이마시고 내쉰 우진의 입가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끝내주는군.”


무엇보다 몸이 가벼웠다. 어깨가 조금 넓어진 것 같고 골격이 단단하면서 쭉 뻗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뼈가 교정되며 키가 컸을 수도 있겠다.


가장 좋은 건 나이 들면서 살짝 나왔던 아랫배가 쏙 들어가고 대신 선명한 복근이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이야, 내 몸 맞아?”


32년 인생 통틀어 학창시절 체육 시간에 잠깐씩 뛰고 이후로는 가끔 러닝머신을 이용한 것 외에는 운동이라고는 안 했다.


한마디로 허여멀건 물렁살이었지. 그런데 강우진 인생에 이런 잔 근육의 완벽한 몸매라니!


“나, 복근 처음이야.”


“그게 뭐야?”


“배에 있는 근육.”


어디 복근만 처음일까. 워낙 운동과 담쌓고 살아서 근육 자체가 발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복근도 생기고 어깨 근육에 팔근육도 탄탄해졌다.


거기다 허벅지도 튼실하다니! 말벅지 수준은 아니지만, 만져지는 느낌 자체가 달라졌다.


“헬창들이 이런 기분으로 운동하는 건가?”


[그냥 본인이 게을러서 안 한 거면서 너무 심각하게 감탄하는 거 아닙니까?]


“응. 됐고.”


게으른 게 아니라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껴서 공부한 것뿐이다. 우진이 입을 삐죽이고 팔 부분을 쓸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피부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빛이 나는 거 맞아. 육체가 마력을 품기 시작해서 그래. 어느 정도 마력이 차면 빛은 사라질 거야.”


“호오, 그래?”


“응. 그래서 새로 태어난 기분이 어때?”


당연한 걸 왜 물어?


“최고지.”


이제 이 몸을 유지하는 게 관건인데.


“운동해야 하나?”


“여기서는 굳이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 마력이 체내에 쌓이기 시작하면 육체는 언제나 최상을 유지하게 되거든.”


“그건 좋은데 지구에서도 가능해?”


“아니지. 지구는 마력이 없잖아? 세계수가 성장할 때까지는 탁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지. 그 부분은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일단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마력을 쌓는 게 중요해. 어차피 마력을 쌓기 전에는 마법도 배우지 못하니까.”


당장은 무리라는 말이다.


“그럼 마력은 어떻게 쌓는데?”


“뭔가를 할 필요는 없는데?”


“응?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안 하고 마력을 어떻게 쌓으라는 건지. 우진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에르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아니다. 진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럼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가 알아서 마력을 쌓을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가능하다고?”


“응. 이곳은 축복받은 곳이니까. 시스템이 자세히 안내를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시간이 곧 답이 돼. 오래 있을수록 얻는 게 많아지거든. 마법은 부가적인 거지.”


그러고 보니 시스템이 힌트랍시고 해줬던 말이다. 오래 있을수록 강한 힘을 얻는다고 했지? 문제는 그 시일이 어느 정도냐인데.


“다른 후보자는 보통 얼마나 있다가 갔는데?”


“이종족은 500년은 버티는데 인간은 보통 150년에서 250년 정도 머물러. 아마 제일 오래 머물렀던 인간이 350년 정도일걸? 어차피 귀환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더 오래 있어도 될 텐데 다들 마음이 급한 것 같더라.”


대수롭지 않은 듯 얼굴은 웃고 있지만 감추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런 에르다를 우진이 탐색하듯 관찰했다.


‘외로웠던 건가.’


작은 인간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절대 평범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감정이 묻어난다.


마치 평범한 인간이 사고하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보다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에르다가 태초부터 이곳 정원의 관리자로 살아왔다면 그 삶이 어땠을까. 아니 자신이라면 아득한 세월을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간다고 해도 정상은 아니겠지.’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비록 대화가 통하는 정령들이 있다고 해도 외로움이 완전히 상쇄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감정이 마모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신기하게 에르다의 감정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후보자들이 도움이 된 걸지도.’


언제 올지는 모르나 가끔 찾아오면 적어도 몇백 년간은 함께할 수 있는 반가운 손님이 아닌가.


외롭다가도 한 번씩 찾아오는 후보자 때문에 다시 묵은 감정을 풀어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아쉽고 그것이 쌓여 외로워지고. 아득한 세월을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미치는 게 정상이라고 봐야지.’


그래서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한다. 미워서 지지고 볶다가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연인, 하다못해 남과도 같은 이웃을 통해서도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매 순간을 함께 공감하고 공유한다는 것이 기쁘고 같이 하기에 참을 수 없이 행복할 때도 있었다.


[정원 관리자는 이 세계의 의지니 인간과는 근본부터가 다릅니다.]


‘알아. 그래도 감정을 느끼는 건 다를 게 없어 보여서. 그보다 내가 짐작한 게 맞는 것 같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쳐 보이기는 합니다. 강우진님이 느끼신 대로 외로움을 타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쯧, 왜 하필 어린아이 모습을 해서는.’


신경 쓰이게. 평소 오지랖하고는 거리가 먼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조금은 착해지실 생각입니까?]


‘닥쳐.’


이미 도움을 받았고 또 앞으로 더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다 제대로 안 가르쳐주면 자신만 손해가 아닌가. 무엇보다 무시하기에는 더럽게 찝찝하다고.


‘뭐 내가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역시 이해득실부터 따지는 강우진님. 착해졌다는 건 착각이었습니다.]


‘닥치라고 했지?’


사람을 꼭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시비를 걸어대는 시스템에 우진이 혀를 차고는 손을 뻗어 에르다의 머리에 턱 하니 올렸다. 그리고 쓰담쓰담.


“응? 갑자기 뭐야?”


“에르다 잘 들어. 나는 일찍 갈 생각이 없어. 최대한 오래 남아서 강한 힘을 얻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너도 각오하고 있어.”


나중에 지겹다고 쫓아내기만 해봐라. 악착같이 들러붙을 테다. 우진의 말에 에르다의 표정이 순간 환하게 풀어졌다가 이내 헛기침을 하고는 새침하게 말했다.


“진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얼씨구? 이미 다 봤어, 인마. 저거 좋아하는 거 맞지?’


[확실히 좋아하는군요.]


좋으면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내숭은. 우진이 픽 웃음을 흘리자 에르다가 새초롬하게 노려보다가 씩 웃었다.


“정원은 구경할 게 많아. 지루할 틈이 없을걸? 내가 구석구석 구경시켜줄 테니까 나만 믿어.”


“그래? 그래서 어디부터 갈 건데?”


“당연히 위지!”


위라니 어디? 하늘을 향해 번쩍 든 에르다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든 우진은 아득한 높이의 차원수를 보고는 할 말을 잃은 채 입술만 달싹거렸다. 설마 차원수 꼭대기는 아니겠지?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었나?’


저 정도면 없는 병도 생길 것 같은데 저길 올라가자고?


“미쳤구나?”


“괜찮아. 내가 있잖아.”


전혀 믿음이 안 간다만. 미처 뭐라 할 틈도 없이 몸이 살짝 떠오르자 우진이 다급하게 에르다의 손을 꽉 잡았다.


“야! 미리 말을 했어야지!”


“했잖아?”


그게 한 거냐? 하다못해 보호막이라도 해주든지. 작은 손 하나에 의지해서 저길 올라가라니.


맙소사. 떨어지면 죽는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피곤죽이 돼서 죽겠지.


“에르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다른 곳부터 가자.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잖아?”


“저기가 제일 좋아. 그리고 기다리는 애들도 있으니까 소개해줄게.”


필요 없어! 변태도 아니고 나무 꼭대기에 왜 사는데? 분명 제정신이 아닌 놈들일 게 뻔하다.


그런 놈들을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날 필요는 없는지라 우진은 재빨리 에르다의 손을 놓고는 땅 위로 올라온 차원수 뿌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겁쟁이 강우진님. 꼴불견입니다.]


“알게 뭐냐. 저기 올라가는 것보다는 나아!”


높아도 어지간히 높아야지. 올라가는 상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곧 죽어도 가지 않겠다는 우진의 의지가 전해졌는지 에르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안전하다니까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그건 네가 정한 기준이고. 지극히 평범한 나한테는 아니야.”


“어디가 평범한데?”


[이미 평범과는 거리가 멉니다만.]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우진이 입을 삐죽이고는 고개를 팩 돌리자 한숨을 내쉰 에르다가 이내 결정한 듯 씩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우진이 끌어안은 차원수 뿌리가 땅속으로 쏙 사라졌다. 동시에 우진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우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


개소리를 아주 찰지게도 하는구나. 너를 믿는 게 아니라 패고 싶다만. 속 시원하게 퍼붓고 싶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어 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올라가는 속도가 무시무시해서 입을 벌렸다가는 그대로 혀를 깨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지.’


기절은커녕 올라갈수록 정신만 더 또렷해졌다. 육체개조 하면서 정신력까지 키운 건가.


실없는 생각에 헛웃음을 흘린 우진은 옥죄어오는 바람과 압력에 눈을 질끈 감고는 뻣뻣하게 굳어 나무토막 같았던 몸의 힘을 풀었다.


그러자 한결 편안해졌다. 이러다 고소공포증보다 고산병이 먼저 생길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혼자 내려갈 수도 없는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빨랫감처럼 축 늘어졌던 우진은 도착했다는 에르다의 말과 함께 안전하게 발바닥을 받치는 딱딱함을 느끼고는 슬쩍 눈을 떴다. 동시에 우진의 표정이 멍해졌다.


“미친.”


작가의말

저녁에 올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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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단 출근부터 23.07.13 2,254 5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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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드디어 돌아왔다 23.07.12 2,377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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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해산물 파티 +3 23.07.05 2,352 50 16쪽
10 먹거리 탐방 +1 23.07.05 2,464 43 17쪽
9 제대로 된 음식이 먹고 싶다고! +1 23.07.04 2,586 45 12쪽
8 사막여행 23.07.04 2,756 52 14쪽
7 두고 보자, 이놈들아 +1 23.07.03 2,867 51 12쪽
» 오래 버틸수록 좋다니 23.07.03 3,018 54 12쪽
5 환골탈태 +2 23.07.02 3,359 55 18쪽
4 태초의 정원 +1 23.07.02 3,814 66 15쪽
3 까짓거 가보자 23.07.01 4,142 6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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