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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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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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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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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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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8화

DUMMY

“뭐해? 마셔.”

“아, 예······.”


나는 서둘러 그의 말을 따라 찻잔을 들어올렸다. 맡아지는 향기가 예사롭지 않다. 필시 한 잔에 내가 먹는 밥 한끼값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는 고급품일 것이다.


“그나저나,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저는 왜 부르셨는지······.”


그렇게 차를 비워내며, 여전히 차를 홀짝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자칭 길드마스터라고 칭하는 이가 아닌가.


도대체 나 같은 F급 모험가를 그가 만나줄 이유는 없어 보였다.


“왜, 나는 뭐 너희 같은 초보자들 부르면 안되냐? 잘했다고 맛있고 비싼거 먹여주는거니까, 줄때 먹어. 인마.”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남자는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해왔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어딘가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는데, 나에 대한 호의가 뚝뚝 묻어나오는 기색이었다.


영문 모를 호의였지만, 말한것 처럼 이 갑작스러운 티타임을 즐기기로 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차맛이 정말 좋았다.


홀짝-


다시끔 차를 홀짝였다. 어쩐지, 처음에 긴장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편하게 풀어지는 기분이다.


“네가 얀, 그놈의 제자지? 여전한가 보더라, 뒷목좀 잡고 끌었다고 그리 바둥대다니. 걔 아직도 그러고 사냐?”

“아하하··· 아닙니다. 스승님은 항상 저한테 잘 대해주십니다.”

“지랄하네. 뭐··· 니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만, 아닌건 아니라고 해야지. 새끼, 패기없긴.”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이 대화로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 명목상 스승, 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사이인지 까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가까운 사이인 것은 확실했다.


음··· 그렇다면 지금 이건, 군대에 입대해서 표창장을 받으니, 알고보니 부대의 장이 아버지와 친한 친구여서 커피나 한잔 땡기자고 부른 자리인건가?


그 영감탱이 덕을 본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설마하니 인맥덕을 볼줄은 몰랐다. 워낙 성격이 개차반이니······.


“그래도 실력하나는 확실한가 보네? 우리 측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건데, 그 꽁꽁 숨겨져 있던 걸 어떻게 발견했냐? 이야기 좀 해봐.”

“아, 그게 말입니다. 첫 시작은······.”


그렇게 나는 길드 마스터 아저씨에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간략하게 보고형식으로 이야기하려 했는데, 그한테는 별것아닌, 좆밥들 이야기일텐데도 중간중간 맞장구까지 쳐주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싹다 꺼내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승리하고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밖엔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충분히 잘했구만. 자자, 넌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해. 내가 대신 쳐주마.”


그리 말하며 남자는 실제로 박수를 짝짝 쳐대기 시작했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앞에서 대놓고 박수를 쳐주고 있으니 굉장히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정말입니다. 제 능력보다 운 때문에 가능했던 탐사였지, 오히려 모험가로서 제 전체적인 실력이 모자란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습니다.”

“저기 저, 바깥에 있는 하이에나 새끼들 보다야 니가 훨 낫지. 지금이야 너가 딸려보일지 몰라도, 내가 장담하는데 나중가면 너보다 나은놈 한 명도 없어. 모험가면 모험을 다녀야지, 하여간 요즘 것들은 돈에 미쳐가지고··· 쯧!”


요즘 것들은 거리면서 궁시렁대는 그의 모습에,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해야했다. 아무래도 그는, 모험가라는 직업에대해 요즘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시끔 후르륵- 차를 마시며, 돈이랑 실적 때문에 탐사를 나섰다는 말을 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러지 마라. 모험가면 모험을 해야지. 벌써부터 조그만 명성에 안주해서 살아가지 말라는 소리야. 알겠냐?”

“걱정 하지 마십쇼. 절대 그럴일은 없을 겁니다. ···그보다 길드장님. 혹시 한가지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와 괜찮은 분위기에서 독대를 하게 되면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뭐? 너가 도시를 발견한 걸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았냐는거?”

“아닙니다. 그 부분은 나름대로 짐작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보다 좀더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모험가들의 시선에 갇혔을때는 식은땀이 날 정도로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의 ‘큰 건수’라고 하지 않던가? 마을에 대한 소문이 일개 여관에까지 퍼질 정도인 만큼, 소문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퍼졌었으리라.


자연스레 그 진위여부나 위치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쯤 우리가 나타난 것이니··· 직접 봤던지, 던전을 지키는 병사한테 들었던지, 아니면 동료들한테 이야기를 들었던지 간에 어떤식으로든 정보를 입수할 경로는 많았다.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은, 그 정보가 고블린 마을에 관심이있는 모험가들에게 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런 것 보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보다 앞에서 있던 일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 고블린 도시까지 발견하게되는 사건의 시발점이 된 일.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칼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도망치기만 했던 그 날의 일이, 아직도 가끔 꿈에서 나타난다.


“···마력숲 참사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마력숲 참사, 하··· 그래, 그런일도 있었지. 그 씨부랄 새끼들. 그자리에서 모조리 다 쳐 죽였어야 했는데.”


희미하게 미소를 띄고 있던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는다. 척보기에도 살기등등한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상상 이상으로, 그는 그 사건에 깊은 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나에 대한 의심이 이제 벗겨졌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생각했던 것 보다 반응이 격렬했다. 섣불리 말했다간, 자칫 저 분노가 내게로 향할 수도있는 노릇이라, 나는 조심스럽게 할 말을 골라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당시 실제로 숲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꽤나 끔찍한 기억이었죠. 아직도 그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남았다던 두사람 중 한 명이 너였나···.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냐?”

“그날 숲을 습격했던 놈들··· 대체 정체가 뭡니까? 아니, 뭐하는 놈들입니까?”


내 말에,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려는듯,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그렇게 한참을 탁자를 두들기던 그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나를 게슴츠레 노려보며 말했다.


“···그때 세렌이 말했던 놈이 바로 너로구나. 놈들의 첩자로 의심된다고 보고했던··· 그래,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불안했던 모양이야. 그지?”


윽, 나름대로 돌려 말했던 건데 설마 세렌이 직접 보고까지 한 일인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자가 명백히 김샛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다행히 그의 분노가 내게로 향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약간 실망한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다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야. 세렌이 말해주지 않더냐? 너에 대한 의심은 애초에 추호도 없었어.”

“···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응? 너 못들었냐? ···이거, 또 흥미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구만. 들어줄테니, 한 번 이야기 해봐.”


그가 갑자기 의자에 기대던 몸을 튕기듯 일어나며 다시 앞으로 당겼다. 도대체 뭐가 그리 기대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리던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최대한 자세하게, 그날 있었던 일을 그에게 말했다.


“뭐, 뭐? 다시, 다시 한번 말해봐. 세렌이 뭐라고 했다고?”

“아, 예··· ‘이 누나만 믿고 따라오면 키워주겠다.’고 했었······.”

“크흡. 아니, 아니! 그 전에!”

“예···? ‘내꺼되라’라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고개를 푹 수그리곤 온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질 않았지만, 얼굴색이 새빨게 질 정도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으나, 5분 10분이 다되도록 간헐적으로 터지는 웃음 때문에 도저히 대화를 이어나갈 형편이 되질 않았다. 개인적으론 그게 그렇게나 웃을일인가 싶었지만······.


겉보기엔 영락없는 부녀사이처럼 보이는 둘이었으니, 아마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추측일 뿐이지만.


“-후. 아, 이제야 좀 멎었구만. 뭔가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일줄이야···. 좋은 무기가 생겼어.”

“아하하하, 만족하셨으면 다행입니다.”

“그래그래. 흐흐. 좋은 이야길 들은 답례는 해야 겠지? 원래 너는 알 필요 없는 일인데, 특별히 이번만 알려주마. 네가 방금전에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방금했던 질문이라면··· 날 습격한 놈들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도대체 그놈들 정체가 뭐길래, 답례운운하면서 특별히 알려준다고 하는 것일까?


“놈들은, 지하세계와 붙어먹은 변절자들이다. 알고싶지도 않은 엿 같은 논리로 사람을 쳐 죽이면서, 자기네들끼리 ‘지하세계로 한 생명을 돌려보냈다.’라고들 떠드는 미친 새끼들이지.”

“···그럼, 단순한 살인강도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뭐, 겸사겸사 살인강도 짓도 하는 거고. 제 놈들도 물자는 있어야 할 테니까. 하여간, 지상을 배신하고 지하에 투신한 놈들 정도로만 알아둬라. 그 이상은 아직 일러.”


그는 그리 말하더니,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찻물을 쭉 들이켰다. 그러면서 몸을 일으키는 폼이, 어째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기세다.



뭐야. 각잡고 제대로 이야기해줄 것처럼 말하더니, 이건 뭐 끝부분만 살짝 맛보여주고 끊어버린 셈이지 않는가. 그것이 조금 불만족스러웠으나, 사실 정체를 알아낸다고 해서 당장 복수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자, 그럼 여기까지가 답례였고. 혹시 선물로 가지고 싶은거라도 있냐? 한 번 속시원하게 말해봐.”


마신 찻잔을 컵씻는 곳으로 보이는 계수대위에 올려 두었을 무렵, 그에게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선··· 물 말씀이십니까?”

“엉. 그래도 친구 제자놈인데, 어른된 도리로 선물하나쯤은 챙겨줘야지. 뭘 원하냐? 실적 쌓기 좋은 적당한 의뢰? 아니면 떼돈을 벌만한 원정에 참여시켜줄까? 그래, 토벌대도 있었지. 거기에 한자리 마련해주랴?”


이건 뭐 대놓고 청탁을 들어주겠다는 말이다. 그의 저의가 궁금했으나, 남자는 말그대로 순수한 호의로 하는 말 처럼보였다.


···무려 길드마스터에게 직접하는 청탁이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번에 쌓은 실적이나 포상금이 우습게 느껴질만한 어마어마한 의뢰들을 받을 수 있을터. 그것도, 성공확률이 백프로 보장된 일들이다.


짧은 순간, 무수히 많은 고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흔적이기도 했다.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결코 떼어버리지 못할 과분한 욕심과 성공에 대한 갈망의 흔적······.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 흔적을, 미련을 뗴어냈다. 지금 내린 이 결정이, 미련을 떼어낸 자리에 화인처럼 남아 두고두고 날 후회하게 만들겠지만, 다짐한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 말을 바꾸겠는가.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업적이나 명성, 큰 돈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당당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부심. 이 자부심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가져야할 것이리라.


“···그래? 알겠다. 이제 일해야하니까, 더 할 말없으면 나가봐.”


한켠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뭔지모를 서류를 작성하면서, 그는 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


나는 짧게 목례하곤, 방을 나섰다. 그 사이에 길드 안을 가득메우고 있던 모험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길드는 평소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여전히 바쁘게 일하고 있는 세렌을 지나쳐 길드 밖으로 나갔다. 해가 어느새 중천에 떠 있었다.


“후··· 잘한 일이야. 잘한 일······.”


여관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서둘러 검이라도 몇시간 휘두를 요량이었다.


***


똑똑똑-


“들어와!”


시준이 떠나간 방 안, 남자가 업무를 보던 와중에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소심쟁이 알렌이 저렇게 노크를 크게 할리가 없으니, 지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이는 분명 세렌 그녀일 것이리라.


과연, 문이 벌컥열리고 흑발, 흑안에 앙증맞은 키를가진 노움 여성, 세렌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당당한 모습에 남자는 어쩐지 방금 얀의 제자놈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나라니, 키워준다니. 대관절 저 짜리몽땅한 팔다리로 누가 누굴 키워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남자의 갑작스런 웃음에 당황한 세렌이 남자를 흘겨보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굉장히 나쁜 웃음이다.


“···마스터? 대체 뭐 때문에 그리 웃으시는 건지······?”

“크흣- 별, 별거아니야. 그냥, 아까전에 했던 웃긴 이야기가 떠올라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기분이 나쁘네요. 마스터. 자꾸 그렇게 실실 쪼개실 거면, 저 그냥 이대로 나갑니다. 예?”


그제야 남자는 찔끔하며 웃음을 멈추었다. 사실상 길드업무의 45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그녀가 삐지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것은 바로 그였다.


“미안, 미안. 그만 웃을께. ···그보다, 무슨 일이야?”

“토벌대 인원에 대한 인가 서류와, 소요 시간, 경비등을 계산한 재정업무 보고서입니다.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됐어. 세렌, 너가 알아서 했겠지. 여기다 도장찍어주면 되지?”


남자가 까딱 손짓하자 작은 서랍이 덜커덩걸면서 열리더니 그 속에서 도장이 쏜살같이 남자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그 어떤 시동어조차 없이, 마나의 움직임 없이 그저 손짓한번으로 만들어낸 놀라운 광경.


마법 화살이나 겨우 만들어내는 마법사들이 지금 이광경을 목격했더라면, 제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장님행세를 할만큼 굉장히 수준높은, 진정한 마법의 한 순간이었다.


허나, 정작 그 광경을 목격한 흑발의 노움은 이제는 지겹다는 티를 팍팍내며 남자를 나무랄 뿐이었다.


“마스터! 그러면 제가 결재서류를 공들여 만들 이유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좀 보고서를 만들어 바치면 읽는 시늉이라도 하세요!”

“널 믿는데, 내가 뭐하러?”


물론 남자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항상 먼저 뒷목을 잡게 되는 건 바로 그녀였지만 말이다. 세렌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후··· 그보다 마스터. 시준, 그녀석하고 대담해본 결과는 어때요? 아까 그렇게 웃는 걸 보니, 잘 끝난 것 같던데.”


사실, 그녀의 진짜 목적은 이깟 결재서류를 결재받는 일이 아닌, 최근 그녀가 신경쓰고 있는 녀석과 마스터의 대담 결과였다.


“음··· 그녀석? 뭐, 괜찮았어. 패기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만, 그거야 얀, 그 미친놈 밑에서 배우고 있으니 어쩔수 없는 노릇이고··· 일단, 나는 합격.”


남자의 합격이라는 말에 세렌은 남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불안한 요소가 몇 개 있었는데, 다행히 마스터의 눈에 특별히 거슬리는 것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워낙 마스터의 생각을 읽기 힘들었기 때문에, 혹시나 싶은 심정에 물어보았다. 막말로, 말을 재밌게 한다고 합격- 이래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지 않는가.


“마스터, 제대로 본거 맞아요? 그녀석 3년전까지만 해도 어디 있었는지 전혀 소재파악이 되질 않는데다가, 갑자기 이 도시에 나타났다구요. 거기다가 갑자기 얀의 제자로 들어가선, 모험가가 된지 1년도 안되서 참사에 연루되질 않나, 뜬금없이 고블린 마을에 대한 소문이 돌더니 베테랑들도 발견하지 못했던 고블린 도시를 발견하질 않나, 수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에요.”


어라?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그녀가 말하고도 굉장히 수상한 낌새가 풀풀 난다. 세렌은 혹시나 그녀가 별 의심을 하지 않고 있던 마스터에게 의심을 불씨를 남기기라도 했을까 봐, 서둘러 입을 닫았다.


“크크, 너무 걱정하지마. 제대로 캐물은건 아니지만··· 일단 확실한건 스파이는 절대 아니야. 애초에, 그런 놈을 스파이로 삼으면 뭐 제대로 활동하기도 전에 잡혀버릴걸?”

“그··· 그럼, 확실히 지하인은 아닌거죠? 그쵸?”

“흠, 그건 모르겠다. 제대로 확인을 안해봐서··· 그 녀석, 지하인이려나?”


아니, 지하인이면 지하인인거지. 지하인이려나는 또 뭔가? 세렌은 또다시 무신경한 마스터에게 한 마디를 하려다가, 그래봤자 소귀에 경읽기라는 사실을 상기하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입에서 푸념이 나오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에휴··· 하여간 마스터는 진짜······.”

“그보다, 왜 그렇게 그녀석을 신경쓰는거냐? 내친구 제자놈이긴 하지만, 너가 신경쓸만한 구석은 없는 것 같던데.”


···그러게, 그녀는 왜그렇게까지 그 F급모험가를 신경쓰는 걸까? 그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음···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아마 안쓰러워서 그런게 아닐까요?”


그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득바득 움직이는 모습이 그녀의 감정 중 어떤 부분을 건드린게 아닌가 싶다. 왜 유독 그녀석한테만 이런 감정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허나 그녀의 마스터는, 그 대답에서 뭔가 다른 것을 도출해낸 모양이었다. 그의 나른한 인상에 숨길수 없는 장난끼가 드러난다.


“그거 말이야. 내가 보기엔, ‘연상인 누군가’가 ‘키운다음’ ‘내껄로 만들려’는 수작이 아닐까 싶은데···. 넌 어떡게 생각- 블링크!”


남자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그가 앉아있던 곳에 어느새 날아든 칼이 대롱대롱 꽂혀있었다. 세렌은 씩씩거리며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붕으로 몸을 피신시켰던 남자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빙글빙글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꽂혀있던 칼을 빼내었다.


드디어, 그의 말괄량이 같은 의붓딸에게도 청춘이 찾아오는가? 조금 모자라긴 해도, 그만하면 훌륭한 신랑감이었다. 남자는 그 날이 온다면, 진심으로 둘을 축하해줄 용의가 있었다.


“흠흠, 요즘엔 여자쪽에서 혼수를 많이 해간다고 하던데, 무슨 의뢰를 내줘 볼까······.”


자신의 선물을 거절하는 시준의 의기는 높게사나, 그에게는 당연히 금쪽 같은 의붓딸 세렌이 더 중요했다.


자고로, 여자가 소박맞지 않기 위해선 혼수를 잘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의뢰지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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