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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던전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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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듯
작품등록일 :
2020.11.16 20:21
최근연재일 :
2021.01.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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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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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DUMMY

다시 공동, 돌아온 우리들을 쳐다보는 일행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막스때와는 달리 랜턴덕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전부 볼 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쎄주··· 정말로 있냐?”


무치가 어쩐지 가라앉은 듯한 음색으로 질문했다. 그러고는 내 굳은표정과 침묵에 스스로 어떤 결론을 유추해낸듯,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런 씨발······.”

“무, 무치씨? 있다는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건가요?”


빈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치는 연신 상스러운 욕소리를 내뱉으며 배낭을 뒤지기에 바빴다.


“빈, 로라, 렌··· 지금 당장 남은 탈취포션들 다 꺼내세요.”


빈의 의문을 해소시켜줄 시간은 없었다. 나 또한 무치와 마찬가지로 매고 있던 배낭을 풀고 그 속에 있을 탈취포션을 찾기 시작했다. 내 행동에 느낀바가 있었는지,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제 배낭을 뒤졌다.


그렇게 모인 탈취 포션 열 병. 아껴쓴다면 이틀은 쓸 수 있을 양이지만··· 지체할 것 없이 모든 포션을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에 흩뿌렸다.


어떻게든 냄새를 지워놓아야 했다. 최소한 이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기 전까지,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고블린은 없어야 했으니까.


시체를 한구석에 모으고, 핏자국을 흙으로 덮어 없애고, 마지막으로 피가 묻었던 곳 마다 포션을 뿌리는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때쯤, 우리는 조용히 공동을 벗어나 왔던 길로 향했다.


“제발······.”


누구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통로속을 달려가는 우리들 사이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다급한 발자국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 모두가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제발, 이 곳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고블린에게 들키는 일이 없기를······.


***


터널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우려했던 고블린들의 습격은 없었다. 등 뒤에서 특별히 큰 소음이 들려온 것도 아니었으니,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제 겨우 놈들의 본거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 여전히 사정권 내에 있었다. 더군다나 시체를 발각당하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리라.


그러니 추적조가 달라붙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했다. 우리는 서둘러 대열을 변경했다. 추격에 대비해서 막스가 뒤로, 그나마 멀쩡한 내가 앞으로 나서서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했다.


고블린 도시와 이어진 길이다. 바로 앞에서 새로운 고블린 무리가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었다.


허억- 허억-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막스를 제외한 일행들은 누구나 할 것없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다. 현재 시간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지만, 최소 자정이 지났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저녁때 먹은 육포덩어리도, 이미 모두 소화된지 오래였다. 격렬한 전투와 휴식없는 강행군은 갑작스레 닥쳐온 허기와 함께 우리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추적조가 따라붙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속으로 얼마나 더 가야할지를 헤아려 보았다.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온다. 우리가 이 길을 따라 탐색을 진행한지 수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기약 없는 도주, 실체 없는 적, 온 몸의 피로감. 문득, 마력숲에서의 추격전이 생각난다.


목숨이 위험하기는 매 한가지였지만, 적어도 그때는 실력있는 마법사 동료가 있었고, 여러가지 마법도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숲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작디작은, 그래서 더 밝아보이는 작은 희망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같이 있는 동료들은 다 고만고만하기 짝이 없는 F급 모험가에 지나지 않았고. 막스와 무치가 가진 능력은 유용하나 지금상황에선 쓸모가 없었다. 그때 내 목숨을 지켜줬던 마법도구들은··· 씨발. 돈 없어서 사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지하였다. 그저 무작정 달린다고 벗어날 수 있을만큼, 속편한 장소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얼마나 더 도망쳐야하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조그맣게 타오르는 촛대는 비록 미약해보일지언정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 진한 어둠을 밝히는 것이 그 조그마한 촛대 밖에 없으니까.


허나 그 불빛마저 없을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한치도 남지 않은 촛대만을 붙잡고선 불을 켜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은··· 얼마나 애처로운가.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러했다. 고블린들이 그 시체를 늦게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 발견하더라도 우리를 뒤쫓지는 못할 것이라는 희망, 많은 모험가가 던전내에 들어온 만큼 조금만 더 가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 거짓된, 한치의 불 꺼진 촛대에 불과한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는 내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대장, -대장!”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막스의 목소리,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발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좀 쉬고 가자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대답이 없어? 다른 사람들 상태 좀 봐!”


그제서야 일행들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막스를 제외한 일행들은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가쁜 호흡을 들이 마시기에 바빴다. 몇몇은 아예 그대로 드러누워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내 호흡도 제법 가빠져 있었다. 그 사실을, 막스가 날 부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얼얼하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리더란 놈이, 리더랍시고 앞에서 나선 놈이 제 일행들 상태하나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막스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누군가 쓰러졌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행들이 힘에 부쳐 힘겨워하고 있을 때, 나는 도망칠 때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따위나 하고 있었다. 애초에 파티를 이지경에 처하게 만든 놈이 바로 자신일 진데, 무슨 자격으로?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일행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애꿎은 주먹만 쌔게 말아쥐었을 뿐.


그때였다. 땅을 바라보고 있는 시야에, 분홍빛 몸체가 보였다. 막스, 그녀가 어느샌가 내 앞에 와 있었다.


“대장.”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두렵다. 나의 오만이, 실패의 조각이 그녀의 얼굴 표정 속에 걸려 있을까 무섭다.


그럼에도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죄책감 때문일까?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막스는 여전히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평소와 같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듯 미소를 띄우며 지켜보는 그 표정.


그 안에 나를 향한 굳은 신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알려줘.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멍하니, 막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른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들 각기 표정은 달랐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시선만은 똑같았다. 그 속에 담긴 그 무거운 믿음을 느꼈을 때, 꽉 쥔 두 손은 이미 저절로 풀려있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희망이 없니, 자격이 없니, 그런 헛소리들은 이제 그만 한구석으로 치워놓아 버렸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따위 하잘 것 없는 것들이 아니었다.


여섯명의 목숨이, 내 어깨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무거워 죽을 지경인데, 그 위로 더 무거운 신뢰가 쌓였다. 아예 어깨가 폭삭 내려앉을 판이다.


그러니, 깔려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발버둥 쳐 봐야지 않겠는가. 다시 감았던 눈을 뜨자, 여전히 변함없는 시선을 보내오는 일행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딱 한 번만 설명하겠습니다.”


저들을, 꼭 살려 보낼것이다. 생명과 신뢰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는 와중에,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


화르륵-


장작불이 타올랐다. 일행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나와 막스만이 깨어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우리들이 임시로 야영지로 정한 곳은, 갈림길 없이 한 길로만 연결되있는 통로 중간에 위치한 작은 공동이었다. 우리들이 맨 처음에 넘어간, 고블린통로 너머에 위치한 곳이다.


그곳에 다다르기까지, 기적적으로 고블린과 조우하는 일은 없었다. 몇 번 멀리서 일렁이는 누군가의 불빛을 본 적은 있지만, 다행히도 직접 마주친적은 없다.


그 덕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무사히.


하지만, 이제 그 운도 한계에 다달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혹사당한 파티는 휴식이 필요했고, 아직 우리는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고블린들의 도시로부터 꽤 멀리 도망쳐왔다지만, 여전히 상황을 낙관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것이, 내가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자청해서 불침번을 서는 이유였다. 더 이상 낙관에 빠져 또다시 일행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쨍그랑-


바닥에 내려친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고, 이리저리 흩어진 조각들을 그러모아 깔아놓은 헝겊위에 올려두었다. 이것으로, 작업이 끝났다.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모인 유리조각들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는 고블린들에게 이 조각들은 훌륭한 덫이 되어 줄것이다. 배낭과 돌을 집어넣은 침낭으로 쌓은 바리케이트를 넘어서 유리 조각을 흩뿌렸다. 반대편 통로도 마찬가지였다. 그 곳에는 미처 바리케이트를 쌓지 못한 만큼, 더 신경써서 뿌려 놓았다.


한쪽에선 막스가 랜턴 기름을 이용해서 화염병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체액 일부와 기름을 섞어 만든, 막스표 특제 화염병이다. 다만 심지는 따로 연결해두지 않았는데, 화염물약을 이용해서 불을 붙일 심산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순간에도 고블린들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을 테니까.


···최대 고비는 바로 지금이다.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운은 이미 제 몫을 다하였고, 끈질긴 고블린들은 끝까지 우리들을 추격해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준비하는 수 밖에. 밤이 늦도록 부지런떠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대장, 다 만들었어. 여기 방벽앞에 쌓아 둘께.”

“그래. ···고생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는 굳은표정으로 여전히 어두컴컴한 통로 저편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준비를 끝마친 그 순간에도, 고블린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아직까지도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발견하고 한번에 덮치기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조금있으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언제든 뽑아들 수 있도록 검집을 옆에 차고선 묵묵히 기다렸다.


매섭게 타오르던 장작불의 불길이 사그라 들 때쯤, 습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막스가 다음 순번 불침번을 깨우기 위해 일행들에게로 다가갔을 때였다.


바스락- 바스락-


순식간에 칼을 뽑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뿌려둔 유리조각을 밟는 소리, 어두운 통로 넘어 모닥불의 불빛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었다.


조용히 막스에게 손짓했다. 내 손짓을 본 막스가 일행들을 전부 깨우고, 그들은 마치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벌떡일어나 미리 약속해두었던 제자리로 향했다.


탁탁탁탁탁-


최초, 기습하기 위함이었는지 조심스레 접근하던 놈들이, 자기네들이 들켰음을 안 것인지 유리조각을 막 밟으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유리조각은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도대체 몇 마리나 몰려온 것일까? 땅을 내달리는 놈들의 발소리가 심상찮다. 제때일어나 놈들을 맞이할 준비가 다 끝났음에도, 일행들은 긴장한 낯빛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발소리만 들리던 놈들의 신형이 나타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한손에 칼을 쥐고 다른 한손으로 방패를 든 고블린들, 아무래도 놈들은 미리 우리를 발견하고 습격할 준비를 단단히 해온 것 같다.


케에엑-!

크르르르르륵-!


기세가 제대로 오른 고블린들의 함성소리가 던전을 가득 메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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