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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표사는 수라를 보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백로천성
작품등록일 :
2020.09.23 21:22
최근연재일 :
2020.11.05 03:41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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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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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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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북해빙궁의 불청객 장선웅

DUMMY

살기가 넘치는 대립 뒤에 돌아온 것은 융숭한 대접이었다.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아서 구석에 내던져진 장선웅이 악다구니를 퍼부었지만, 빙궁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사헌에게 아주 정중한 태도를 취하며 북해빙궁의 내부를 안내하고 있었다.



북해빙궁의 내부는 마원이 상상한 그대로였다. 난방을 하지 않아서 사방이 얼어붙을듯이 추웠고, 창문은 바람막는 공간 없이 뻥 뚫려있어서 냉기가 숭숭 들어왔다. 마원은 외풍이 들어오는 초가집도 이보단 덜 추울거라고 생각했다.



거대하고 넓은 복도가 바람이 오가는 통로역할을 해서 사람을 얼려죽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해빙궁은 외적의 침입을 경계하듯 외부보다 내부가 더 추운 구조였다. 그 안에서 빙궁주와 그를 따르는 일행들은 한겹의 얇은 옷만 입고 신선처럼 거닐고 있었다.



사헌도 추워서 인상을 찌푸리는 판국에 북해빙궁 사람들의 저 강건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긴 복도를 걸었다. 마원은 빙궁주가 북해빙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내부에 대한 설명을 아주 길게하고 있엇는데 마원 입장에선 들을 이유가 없는 내용이었다. 대체 냉동고나 수련실, 소빙궁주를 비롯한 북해빙궁 가족들의 침실의 위치를 알아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마원은 빨리 벽난로나 화로가 있는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미화와 몸을 부대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손님들을 너무 추위에 떨게 했구만."



마원이 마침내 참다 못해서 이를 딱딱 부딪히며 몸을 떨어대자 빙궁주가 마원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사헌이 물었다.



"부탁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 사헌 그대에겐 부탁이 있소. 우리가 할 수도 있지만 장선웅이 우리에게 입힌 피해를 감안하자면, 그 쪽에서 해결해주면 좋겠소."


"들어보고 정하겠소."



사헌이 말했다. 빙궁주는 그 전에 다시 마원과 미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손님들에게 방을 안내해주어야겠지. 그 다음에 부탁할 일을 알려주겠소."



마원과 미화는 서로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력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북해빙궁은 추위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융통성이 있었다. 자신들이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남들도 그럴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단 뜻이었다. 놀랍게도, 북해빙궁의 손님방은 북해빙궁 내부에서 유일하게 난방이 쓰이는 공간이었다.



뜨끈한 화로가 불타고 있었고 방의 창문은 단단히 봉해져 있어 외풍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마원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림인 답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며 녹아내려갔다. 풀어진 마원의 어깨에 빙궁주가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여기 이쪽의 공자는 이 방에서 지내면 된다오."


"저, 저 혼자 말입니까?"


"무림에서도 남녀는 유별한 법. 어찌 한 곳에서 같이 재우겠소? 우리는 남녀의 숙소를 따로 하기에 기강을 위해서라도 동침은 허할 수 없소."



미화가 말했다.



"우리는 실로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어찌 안되겠습니까?"



마원은 부부의 연이라는 말이 낯간지러워서 살짝 웃었고, 빙궁주는 부부의 연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미화는 느낄 수 없었고, 마원은 당황하는 통에 그의 표정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 더더욱 안된다고 말할 수 있소. 그쪽 어르신에게 부탁드릴일이 그리 오래걸리는 것은 아니기에 오래 머무르지도 않을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오."



미화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원은 저도모르게 미화와 마주 잡은 손을 더욱 꼭 쥐었다. 얽혀있는 손가락이 마치 끈적한 풀을 붙인것처럼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미화는 자신의 숙소로 안내해주겠다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걸음을 떼었다.



마원은 아쉬운 눈초리로 멀어져가는 미화를 쳐다봤다. 미화 역시 아쉬운 얼굴로 마원을 쳐다보며 점점 멀어져 갔다.



미화에게 제공된 곳은 마원과 정 반대 위치에 있는 좁은 방이었다. 북해빙궁의 구체적인 지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미화에게 방의 위치는 사실 별 상관이 없었다. 미화가 인지하고 있는 현재 북해빙궁의 형태는 길다랗고 넓은 복도에 마원의 방과 자신의 방만 있는 형태였다.



"본디 손님 방은 더 넓으나, 이 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을테니 침대와 간단한 가구만 있는 방으로 준비했소. 문제가 있거나 어딜 가고싶으면 침대에 붙어있는 종을 누르시오."



미화가 맹인이란 점을 고려한 방 배치인듯 싶었다. 미화는 그 씀씀이를 진심으로 감사해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이쪽이야 말로."



빙궁주가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미화는 의아할정도로 정중한 그 어조와 내용에 의아한 빛을 띄웠지만 빙궁주의 속내를 알 방법은 없었다.




깊은 밤. 북해빙궁의 밤은 살인적인 추위를 동반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바람 소리는 마원의 심금을 울렸고, 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한기는 마원이 문 쪽으로 몸을 돌릴 때 마다 온 몸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창틀에 맺힌 서리와 벽을 만질때마다 느껴지는 냉랭한 촉감은 마원이 지금 빙한지옥에 있는 것인지 북해빙궁에 있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똑. 똑. 똑.



그리고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온기에 몸을 내맡긴 마원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내심 마원은 미화가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마원 본인이 찾아가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손님이 여자 숙소에 숨어들다가 잡힌다. 사헌을 볼 면목도 없을 뿐더러, 북해빙궁에서 무슨 조치를 취할지 몰랐다.



그래서 마원은 행여나 지금 온 것이 미화가 아닌가 하는 약한 기대감을 가졌다.



"북해빙궁에서 왔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마원은 시종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남녀는 유별해야 한다더니 시종은 여자를 쓰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굳이 못들어오게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낯선 여인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 오똑한 콧날과 귀염성이 다분한 얼굴. 얇은 옷차림 너머로 호리호리한 나신이 엿보였으며 유려한 몸짓이 아주 고혹적이었다.



마원은 이 여인을 알고 있었다. 빙궁주의 뒤에서 그를 수행하고 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당황하여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마원이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조용히 해주시길."


"누, 누굽니까? 당신은."


"저는 북해빙궁주의 둘째 딸. 설진(雪珍)이라고 합니다. 중원의 사내가 이 곳에 왔다고 하기에, 이렇게 찾아뵈러 왔습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마원이 꾸벅 인사하자 설진은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마원은 설진의 옷차림에서 눈을 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의 곡선이 그대로 비추어질만큼 얇은 옷이 마원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설진의 몸에서 풍기는 독특한 체향이 마원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마원은 미화를 생각하며 끝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설소저. 그대가 무엇을 생각하는 지 저는 알 수 없으나. 야심한 시각에 사내의 방에 오는 것은 좋은 행동이 압니다. 모름지기 남녀가 유별한 법인데, 어찌 마음대로 방에 들어오신단 말입니까?"


"제가 언제 마음대로 들어왔습니까?"



설진이 물었다. 마원이 그 말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설진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 대협께서는 저보고 들어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야심한 밤에 아녀자를 침소에 들이시다니, 어찌하여 이리 무도한 짓을 하시는지요."



설진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색기있는 웃음을 흘렸다. 목을 타고 시냇물처럼 흘러내리는 목소리가 마원의 귀를 희롱했다. 더운 방 안과 아찔한 체향. 마원은 가까스로 미화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 그대가 북해빙궁주님의 따님인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겁니다. 나는 당신이 방을 청소하러 온 하인이나,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러 온 사람인줄로 알았으니. 나는 북해빙궁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고, 그대와 나는 이렇게 정분이 날만큼 연이 있는 사이도 아닙니다. 돌아가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정분이 난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정 문제가 생길 것 같거든 북해빙궁에 눌러 앉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설진이 마원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원은 그 손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마원이 거리를 벌린만큼, 설진이 침대에 앉은 채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북해빙궁에 눌러앉을순 없습니다."


"북해빙궁의 사위가 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입니까?"


"어찌 나를 원하는 겁니까?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북해빙궁의 여인들은 음기가 매우 강하기에, 무림인들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협같이 잘생긴 무림인이 이곳에 왔으니, 어찌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현재 마원은 수배를 피하기 위해 사헌의 도움을 받아 역용술로 얼굴을 바꾼 상태였다. 그런 마원에게 잘생겼다는 칭찬은 다소 꺼림칙하게 들렸다. 내면을 봐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외면만 보고 들이대는 것도 영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결혼한 몸입니다."



엄밀히 다지자면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나 마원은 미화가 자신의 반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백지신(淸白之身)을 취한 것도 취한 것이오. 미화가 마원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만큼, 마원 역시 미화를 깊이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진은 그 말에 고개를 돌리며 미화를 떠올렸다. 맹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색이 가려지지는 않는 여인이었다. 걷는 모습에서 오랜기간 수련한 무림인이라는 사실 역시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해빙궁의 상대는 아니었다. 세상 어느 문파라도 북해빙궁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설령 무림맹 전체가 북해빙궁을 적대시한다고 해도 교착상태만 이어질 뿐 확실한 타격을 입힐 방법은 없으리라.



그래서 설진은 이렇게 말했다.



"부부의 연이라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한 번 맺어진다면 끊어질수도 있는 법.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하늘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고하자면, 저는 대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설진은 특히 마원이 추위에 못이겨 발을 동동 구르던 것이나, 북해빙궁의 복도를 거닐며 바들바들 떠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 동기는 가벼울지언정, 첫눈에 반했다고 할 수 있었다.



"연이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협은 왜 있으며 우리는 왜 무를 배운단 말입니까? 의와 애를 중시하지 않는 인간이 어찌 중원을 당당히 다닐 수 있단 말입니까?"


"그토록 그 부부의 연이란 것이 중요한 겁니까? 정 마음에 걸린다면, 북해빙궁의 이름으로 직접......"


"그대는, 이득에 눈이 멀어 아내를 갈아치우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설진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매를 더욱 가늘게 만들며 씩 웃었다. 설진의 가슴속에서 마원을 가지고싶다는 충동이 더욱 솟아나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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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해빙궁의 불청객 장선웅 20.11.03 246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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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20.10.27 387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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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3 20.10.24 401 10 11쪽
37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1 20.10.23 419 7 11쪽
36 상해로 향하는 쪽배 +2 20.10.21 411 7 12쪽
35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20 395 7 11쪽
34 상해로 향하는 쪽배 20.10.19 420 7 12쪽
33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19 6 11쪽
32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34 8 11쪽
31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17 8 11쪽
30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21 10 12쪽
29 굽이치는 장강행 +3 20.10.17 441 10 11쪽
28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495 7 11쪽
27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510 7 12쪽
26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5 574 9 11쪽
25 서장의 구낙손 +2 20.10.14 465 10 12쪽
24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478 9 11쪽
23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511 8 11쪽
22 서장의 구낙손 +1 20.10.13 492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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