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ㅇㅇ

표사는 수라를 보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백로천성
작품등록일 :
2020.09.23 21:22
최근연재일 :
2020.11.05 03:41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29,703
추천수 :
453
글자수 :
247,414

작성
20.10.17 07:00
조회
441
추천
10
글자
11쪽

굽이치는 장강행

DUMMY

장강수로십팔채를 벗어난 마원 일행은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기색은 없었으나, 이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했다. 중간 중간 미화를 마원이 업거나 두 사람을 전부 사헌이 들쳐매고 경공을 발휘하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 해가 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사헌은 김이 펄펄나는 몸뚱이를 강물에 식히며 말했다.



"좀 쉬자. 놈들도 이렇게까지 멀리오진 않을거다."



벌써 앞서 역겨움에 치를 떨었던 장강수로십팔채는 점이 되다 못해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마원이 모닥불을 피웠고, 미화는 주변을 둘러보며 수시로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사헌이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채선자는 우선 광서성으로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모닥불의 재가 뜨겁게 타올랐다. 마원이 물었다.



"여기가 대체 어딥니까?"



사헌은 그 질문에 눈을 찌푸리며 사방을 살폈다. 분명 선원이 말하길 호남성 인근에 도착했다고 말했고, 주변이 평탄하고 멀리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호남성(湖南省) 근처인 듯 했다.



"호남성 어딘가가 아닌가 싶은데, 일단은 계속 걸어봐야 알겠구나. 날이 어두우니 내일 가자. 깊은 밤에 길을 잘못들면 좋은 꼴 보지 못한다. 더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마원이 잠자리를 준비했다. 주변의 나무나 풀을 꺾어서 미화에게 주면 미화가 그걸 솜씨좋게 엮어내고 순식간에 풀 이불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몇겹을 쌓으면 제법 쓸만한 잠자리가 만들어졌다.



"어르신."



모두가 잠자리에 들기위해 바닥에 눕자 마원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미화도 사헌도 그 기척에 놀라 일어났다. 모두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자 마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그냥 여쭤볼게 생각나서 일어났습니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방금 전에 무림고수를 만나 한껏 날카로워진 신경에 마원이 불을 붙인 셈이었다. 사헌은 마원을 때려죽일듯 윽박지르곤 한숨을 쉬었다. 미화가 쿡쿡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장선웅이라는 분은 어떤 분입니까?"



사헌은 그 질문에 더욱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설명해주려면 못해줄 건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 무림사괴 중 막내다. 미화 너는 들어본 적 있지 않느냐?"


"네. 식육아귀(食肉餓鬼) 장선웅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들어본 적 있습니다."



미화는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눈이 안보이는 그녀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기보다는 무림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겼다. 무림사괴들은 전부 특이한 기행을 일삼았기 때문에 미화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무림인들 중 하나였다.



마원은 그 살별한 별호에 몸을 떨었다. 탁류마귀에 식육아귀, 거기에 곤륜광인에 이르기까지 무림사괴의 별호는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무서운 별호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데다가 자신의 식성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식성에 대한 자부심이라 하면......"


"항산에 있는 어느 마을에 그 덩치가 크고 가죽이 질긴 멧돼지 영물이 살았는데, 사람들은 이 멧돼지의 갑옷을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장선웅은 마을로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이빨은 멧돼지 가죽을 능히 뚫고 씹을 것이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 사흘 밤낮을 멧돼지를 찾아다닌 끝에, 멧돼지의 숨통을 끊고 가죽을 씹어먹었다고 합니다."



차마 마원은 미친놈이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그 무림사괴의 사헌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헌은 고개를 슥 돌리고 말했다.



"미친 놈이지. 내가 살면서 본 놈 중에 손에 꼽는 미친 놈이다. 무림사괴라는 말도 과해. 그 놈이랑 채선자만 해서 무림이괴로 묶어야 맞다."



그만큼의 괴짜라는 뜻이었다. 미화가 채선자라는 이름을 듣자 입을 열었다.



"채선자라는 인간도 그 성미가 잔인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무서운 사람이군요."


"들리는 소문이 있었습니까?"


" 사람 죽는 소식은 제일 먼저 당문에게 전해지다 보니, 소문을 들은 게 많습니다. 그 이야기가 워낙 잔인하여 밤 중에 꺼내고 싶진 않습니다만."


"뒤숭숭한 이야기는 그만하거라. 자야 내일 일찍 출발하지 않겠느냐?"



사헌의 호령에 마원과 미화 모두 입을 다물었다.



모닥불 소리 위에 강물이 흐르는 잔잔한 물결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자장가처럼 덧씌워졌다. 마원은 모닥불에 비친 미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금씩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라 이놈아!"



어느새 깊이 잠든 마원을 깨운 것은 사헌의 불호령이었다. 마원이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면 야영했던 장소는 깔끔하게 정리된 뒤였다. 마원은 부랴부랴 자기가 잤던 자리를 치웠다.



"잘 잤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럼 움직이자. 여기 마을에서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해봐야겠다."



마원 일행은 밤 중에 불이 환하게 빛나던 마을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마을에 가까이 갈수록 불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을에 치솟는 연기는 밥짓는 연기보단 건물에서 쏟아내는 매연에 가까웠다. 마을 중심에서 빛나던 불빛은 민가의 불빛이라기보단 막사의 불빛에 더 가까웠다.



마을 중심에 우뚝 솟아있던 지붕은 민가의 지붕이 아니었다. 붉은색 천으로 이루어진 천막의 지붕이었다. 마원이 물었다.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우릴 잡아먹기야 하겠느냐?"



사헌이 벌써부터 뒤로 빼려는 마원의 태도를 질책하며 더욱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마을의 울타리 앞에는 도복입은 무림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사헌을 보자 경계하는 눈초리로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누구요?"


"행인이다. 여긴 어디냐?"


"동정호(洞庭湖) 근방에 있는 마을이오. 당신들은 누구요?"


"나는 사헌이라고 한다. 여기 이 둘은 내가 목적이 있어 데리고 다니는 지인들이고. 신분을 증명하길 원한다면 내 아패(牙牌)를 보여주마"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헌은 딱히 마을 안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무림인은 사헌을 일단 기다리게 한 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에서 보고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소란이 일더니 긴머리의 여인이 핼쑥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사헌을 슬쩍 쳐다보고 다시 책자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무림사괴가 이 곳엔 어쩐 일입니까? 제갈세가(諸葛世家)에서 지금 사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단순한 방문 용건이라면 물러나 주셨으면 합니다만."


"사건? 사건이 있었느냐?"


"어떤 놈이 마을 전체를 몰살시키고 사람 머리로 제삿상을 차려놓고 갔습니다. 마을 주민 중에 우리 제갈세가 속가제자의 장인이 있어 이렇게 조사를 나왔습니다만 근처에 비슷한 사건도 없고, 원한을 산 일도 없어서 골치군요. 혹시 뭐 아시는 거 있으십니까?"


"너는 누구냐?"



사헌이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여인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여인은 자신의 입을 가리며 고개를 꾸벅숙였다. 사헌이 아무리 사파의 무림고수라 해도 해서는 안될 무례였다.



"제갈세가의 여식 제갈륜(諸葛倫)이라고 합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현재 이 일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소개가 늦은 점 죄송합니다."


"그래? 그 일이라면 범인이 짐작이 간다."


"그렇.... 네?"



제갈륜은 사헌의 그 말을 대충 끄덕이려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헌은 생각보다 신선한 반응이었는 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제갈륜은 그 시선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또 무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범인을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까?"


"녹림채주 채선자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 있는 장강수로십팔채도 네놈들이 말한 것과 똑같은 흔적이 있으니 확실할게다."


"녹림채주 채선자? 그 방랑 도적단의 채선자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만."



제갈륜은 고개를 저었다.



"채선자가 무슨 연유로 이 마을을 습격한단 말입니까? 제갈세가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제갈세가에 원한이 있는게 아니다. 놈은 자기 딸을 찾고 다니는 게다."


"딸? 채선자에게 딸이 있습니까?"



제갈륜은 급보를 전하는 전령같은 얼굴로 사헌을 캐물었다. 사헌은 그 열렬한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인데, 채선자 본인은 딸로 삼고 싶어하고..... 아니. 그냥 딸이 있다. 아주 예쁜 딸이라고 하더구나. 그냥 그렇게만 알아둬라."



사헌은 채선자의 딸에 대해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본인이 바보가 되어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설명을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발언만으로도 제갈륜에겐 제법 큰 수확인듯 했다.



"그렇군요. 채선자가 범인이라. 그가 딸을 찾아다니러 탐문하는 중에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사헌이 뒤편을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마원도 미화도 의아한 얼굴로 사헌을 쳐다봤다. 제갈륜은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사실. 저도 기껏해야 이대제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채선자 상대론 벅찹니다. 복수는 해야합니다만, 지금 저희가 데려온 병력만으로는...."


"내가 가세한다면 말이 다르지 않겠느냐?"



사헌이 대뜸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원도 미화도 놀란 얼굴로 사헌을 쳐다봤다. 사헌의 표정에는 투지가 활활타오르고 있었다.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채선자를 놓아준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제갈륜은 그의 적극적인 협조 요청에 얼떨떨한듯 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첫째. 그 놈은 우리가 타고있던 장강 유람선을 침몰시켰으나, 장소가 여의치않아 거기서 결판을 내지 못했다. 둘째, 그 놈은 광서성으로 가고 있는데 가는 동안 그 놈이 몇명이나 더 죽일지도 알 수 없다. 셋째. 그 놈을 내가 놓아줬으니 내가 결판을 내야 한다."



제갈륜은 그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서둘러야 겠군요. 사헌 어르신께서 협조해줘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제갈세가의 전력으론 이길 수 없다고 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 속전속결로 은원을 마무리짓고 마두의 목을 자르는 게 맞을 겁니다."



제갈륜은 판단이 빠른 편이었다. 그녀는 즉시 막사를 철수시키고 무림인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사실 마원도 장강수로십팔채나 이 마을에서 채선자가 벌인 행각을 보면 당장 무진표국이 어떻게될지 걱정되는 바였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트는 것이긴 했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였다.



채선자같은 살인마가 더 미쳐날뛰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마원 일행은 다시 광서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작가의말

귀주성이 광서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표사는 수라를 보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휴재에 들어갑니다. 20.11.10 76 0 -
공지 계약 안했습니다. 20.10.30 131 0 -
공지 제목이 다시 롤백되었습니다. +1 20.10.14 548 0 -
48 무림맹에서 출발한 조사대 20.11.05 258 4 11쪽
47 무림맹에서 출발한 조사대 +1 20.11.04 248 5 11쪽
46 북해빙궁의 불청객 장선웅 20.11.03 246 5 11쪽
45 무림맹에서 출발한 조사대 20.11.02 285 6 11쪽
44 북해빙궁의 불청객 장선웅 20.11.01 305 7 11쪽
43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20.10.30 309 8 11쪽
42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1 20.10.30 334 6 12쪽
41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1 20.10.28 352 8 11쪽
40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20.10.27 387 7 11쪽
39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20.10.25 392 8 11쪽
38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3 20.10.24 401 10 11쪽
37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1 20.10.23 419 7 11쪽
36 상해로 향하는 쪽배 +2 20.10.21 411 7 12쪽
35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20 395 7 11쪽
34 상해로 향하는 쪽배 20.10.19 420 7 12쪽
33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19 6 11쪽
32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34 8 11쪽
31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17 8 11쪽
30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21 10 12쪽
» 굽이치는 장강행 +3 20.10.17 442 10 11쪽
28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495 7 11쪽
27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510 7 12쪽
26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5 574 9 11쪽
25 서장의 구낙손 +2 20.10.14 465 10 12쪽
24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478 9 11쪽
23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511 8 11쪽
22 서장의 구낙손 +1 20.10.13 492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