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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표사는 수라를 보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백로천성
작품등록일 :
2020.09.23 21:22
최근연재일 :
2020.11.05 03:41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29,628
추천수 :
453
글자수 :
247,414

작성
20.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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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DUMMY

사헌이 천마의 아이를 왜로 보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지 꼬박 이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구주에 있는 어느 여관에서는 재밌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여관 3층에 문둥이와 맹인 부부가 있는데 문둥이가 다른 것은 못해도 하물이 튼실하여 매일 밤마나 부인을 아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옆방에서 잠을 자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여관 주인은 자신이 가꿔온 여관이 이런 음탕한 소문의 주역이 되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약간의 불쾌함은 있었으나 이 불쾌함이 마원 일행을 쫓아낼 만큼 큰 것은 또 아니었다.



어찌됐건 여관 주인은 사헌에게 큰 은혜를 입은 바 있었고 이를 감안하자면 민망한 소문도 감수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이주일. 사헌은 장장 이주일만에 구주로 돌아왔다. 구주로 돌아온 사헌은 생각보다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번 일에 대해 마원과 미화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았다.



여관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주인을 불렀다. 남들보다 두배는 더 큰 거대한 노인은 쉬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사헌이 주인을 부르라고 말하기도 전에 여관 주인은 사헌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이구나."


"사헌어르신. 그 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주인은 사헌을 보자마자 깍듯하게 인사하여 예의를 차렸다. 여관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도 사헌과 주인의 관계를 몰랐는지 어안이 벙벙한 눈초리로 그들의 재회를 목도할 뿐이었다.



"너는 잘 지냈느냐?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겠구나.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말이다."



사헌은 주인의 때깔좋은 얼굴을 가리키며 농을 했다. 주인이 그 농담에 맞받아 웃으면서 여관 내부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복도에 꽉 끼일만큼 거대한 체구의 사내와 농담을 나눌 수 있는 남자라니.



직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여관의 주인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내 이름을 대고 이곳에 온 아이들이 있을텐데."



사헌은 간단한 담소를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왔다. 구주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마원과 미화가 이 여관에 들어와있을 것이었다. 사내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3층으로 안내했다.



오늘 3층에는 마원 일행 외에 없었다. 덕분에 사헌의 발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주인은 사헌이 3층 복도를 거닐다가 복도에 구멍이 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숙련된 무림인에게 그런 변고가 있을 리 없었다.



사헌은 몸의 체중을 분산시키는 독특한 걸음걸이를 구사하여 낡은 복도를 무리없이 거닐었다. 주인은 언제봐도 무림인은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사헌 어르신이 오셨군요."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미화가 문을 빼꼼 열었다. 방 안에는 문둥이 분장을 한 마원이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는 사헌이라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고 일어나서 문을 활짝 열었다.



주인은 문둥이 행세를 하던 사내가 갑작스럽게 멀쩡하게 행동하자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갑자기 병이 심해져 발작이라도 일으킨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안중에도 없던 마원이 당황한 얼굴로 사헌에게 물었다.



"벌써 오셨습니까?"



사헌은 그 말에 한 번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방 안을 훑어보고 수염을 매만졌으며 어렴풋하게 풍기는 냄새를 맡고 헛웃음을 켰다. 사헌은 기껏 좋은 일을 하고 온 스승에게 벌써 왔냐는 망발을 일삼은 제자를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기로 했다.



"당적양이 이 꼴을 보았으면 사단을 냈겠구나."


"아버님께선 제 혼사를 포기하신지 오래입니다."



미화가 사헌의 놀림을 적당히 흘려냈다. 사헌은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주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엇하느냐? 당장 내려가거라? 외부인 앞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갈테니."


"아이고,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주인은 정신을 차리고 헐레벌떡 1층으로 내려왔다. 대체 3층에서 사헌과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궁금했던 직원들이 우르르 주인에게 몰려들었다. 주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며 직원들을 다시 쫓아보냈다.




"그래서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사히 왜로 향하는 배에 실어다 보냈다. 둘이서 왜에 가서 어떻게 살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본인들이 바라는 방향대로 최대한 도왔으니 우리가 할 일은 다한셈이라고 봐야겠지."


"무사히 갔다니 다행입니다."


"말이 무사히 간 것이지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다. 천마의 비급창을 열기위해 혈안이 된 놈들이니 왜까지 사람을 보내서 추격할 가능성도 있다."


"왜까지 따라간다니 너무 지독하군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다. 암만 비급창에 미쳤다고 해도 설마 애 하나 잡겠다고 왜까지 따라가겠느냐?"


"그것도 그렇습니다."



사헌의 말에 마원이 맞장구쳤다. 어떻게보면 이제 큰 문제를 하나 해결한 셈이었지만,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억지로 웃으며 시선을 맞췄으나, 마음 속 한 구석으로는 현재의 무림맹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원 일행이 천마의 아이를 따라 왜로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보호해줄 것이며 어디까지 보호해줄 것인가?



사헌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이 보호는 중원을 벗어난 시점에서 끝난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사헌도 마원도 이 일이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원은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그대로 우리는 흑룡강으로 가는 겁니까?"


"그래. 흑룡강으로 간다. 북해빙궁에 처박혀있는 그 놈을 데리고 와야 형님이 얼굴을 비추실테니까."



"북해빙궁이라,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간 적 없는 곳입니다."



미화가 흑룡강 이야기를 꺼내자 끼어들었다. 그녀는 북해빙궁이라는 곳에 관심이 있었다. 이름부터 '빙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니 흥미가 갔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그렇다. 평생 세외무림이라는 이야기만 들어왔지 실제로 북해빙궁에 발을 들인 무림인들은 거의 없다. 아마 장사치들이 무림인보다 더 많이 가는 곳일게다."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오늘은 자고 내일 출발하도록 하자."



마원의 질문에 사헌이 답했다. 그리고 미화와 마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묻는 것이었다.



"내가 오늘 밤에 다른 곳에서 자는 게 서로 편할 것 같지 않느냐?"



마원이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미화를 쳐다봤다. 미화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답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헌은 마원의 그 부탁이 재밌는 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올 때는 복도에 낑겨갔으나 돌아갈 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헌은 창문을 향해 걸어가더니 3층 아래로 몸을 날렸다.



마원은 사헌이 가자마자 잠시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미화가 마원의 등을 쓸어내리고, 마원은 미화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밤이 지나면 내일부턴 다시 야영을 해야했다.



이는 이렇게 밤을 보낼 기회가 한동안 없을 거라는 의미기도 했다.



밤을 지새우는 호롱불이 밝게 타올랐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은 문둥이였던 사내가 갑자기 말끔한 피부로 여관을 나서는 것을 보며 사헌이 무엇인가 술수를 부린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사헌이라도 맹인의 눈을 뜨게 만드는 재주는 없었는지 부인은 여전히 맹인인 상태였다.



주인은 사헌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신세를 졌습니다."


"아무쪼록 잘가시오. 사헌 어르신의 지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



마원이 여관 주인과 인사를 주고받고 나오면, 사헌이 구주의 외곽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화와 함께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사헌이 손을 흔들었다.



"어르신. 그럼 배편은....."


"이미 구해놨다."



사헌은 천마의 아이를 왜로 밀항시켜준 뒤 상해에 들려서 길림성(吉林省)으로 가는 배편을 하나 구해놓았다고 말했다. 화물선이라 출발 예정일에 여유가 있었으며 뱃삯도 싸다고 말했다.



"허나 이번엔 개인실 같은 건 기대하지 말아야 할게다. 화물선을 타고 가는 것이니 말이다. 짐들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짝 못한 채 가야할 수도 있다."


"배편을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마원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한참동안 궁금한 것이 남아있는 표정으로 사헌을 쳐다봣다. 사헌은 마원의 표정을 읽고 물었다.



"더 할말이 남았느냐?"


"어르신은 어떻게, 그러니까 저번 서장에서의 배삯도 그렇고 어디서 돈을 버시는 겁니까?"



마원은 배삯이야기를 하니 문득 떠오른 의문점을 물었다. 서장에서 배삯을 지불할 때도 그렇고 사헌은 돈에 미련이 없으면서도 고정적인 수입원이 있는 것처럼 돈을 쓰고 다녔다. 사헌은 답했다. 별게 다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옛날에 도적떼를 털거나 투기장에서 싸우는 걸로 돈을 벌었다. 아직 집에 가면 창고에 돈이 제법 쌓여있을텐데 이번엔 집까지 다녀올 시간이 없어 근처 산에서 멧돼지를 잡아 선원과 흥정했다."


"집? 사헌 어르신이 집이 있으십니까?"


"내가 그럼 집도 절도 없는 거렁뱅이로 보이더냐?"



마원이 보았던 사헌의 첫인상을 생각하자면 그에게 집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거처를 정한다기보단 전재산을 주머니에 넣어놓고 전국을 방랑하는 떠돌이 괴짜같은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그보다는 거처를 정해두지 않는 느낌을 주셔서 그랬습니다."


"나도 엄연히 집이 있다. 안들어간지는 10년이 넘었다만."



마원은 그게 없다는 소리랑 다를게 뭐냐고 따지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런 문제로 말싸움을 시작하면 얻는게 없었다.



"정 배삯이 필요하시다면 당문에 연락을 취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만."



미화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가 당문의 이름을 대면 화물선에 살짝 얻어타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헌의 수고스러운 행동이 내심 미안했다. 사헌은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썼다.



"내가 구주로 너희들을 데리러 가야하니 빠른 배편을 미리 잡아두는 것이 훨씬 낫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미화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림인 세 사람은 구주를 벗어나 흑룡강으로 가고 있었다. 마원은 구주를 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관 주인은 친절했고 숙소의 만족도도 높았다. 마원은 특히 침대와 이불이 매우 부드러웠다고 회상했다.



지난 이주일 간의 사건을 생각해보자면, 천마의 아이가 왜로 밀항을 시도하는 중이고, 미화와 마원은 사랑을 속삭였다.



마원의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고 흑룡강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원은 생각했다. 지금 이대로만 일이 계속 잘풀린다면 참 좋겠다고. 정말 더이상 귀찮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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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20.10.27 386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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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20 395 7 11쪽
34 상해로 향하는 쪽배 20.10.19 419 7 12쪽
33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16 6 11쪽
32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32 8 11쪽
31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14 8 11쪽
30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21 10 12쪽
29 굽이치는 장강행 +3 20.10.17 441 10 11쪽
28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494 7 11쪽
27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509 7 12쪽
26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5 571 9 11쪽
25 서장의 구낙손 +2 20.10.14 464 10 12쪽
24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477 9 11쪽
23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511 8 11쪽
22 서장의 구낙손 +1 20.10.13 49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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