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ㅇㅇ

표사는 수라를 보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백로천성
작품등록일 :
2020.09.23 21:22
최근연재일 :
2020.11.05 03:41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29,650
추천수 :
453
글자수 :
247,414

작성
20.10.15 23:55
조회
571
추천
9
글자
11쪽

굽이치는 장강행

DUMMY

마원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일행은 이미 나갈 채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마원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듯 사헌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코를 골고 있었고, 미화는 차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여긴...."



마원이 입을 열자 사헌이 졸다 말고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고, 미화는 빻아놓은 찻입 위에 물을 부었다, 김이 펄펄나는 물 위로 차향이 아른거렸다. 미화는 그 따뜻함을 즐기듯 얼굴에 차를 가져다대며 미소를 지었다.



"일어났느냐."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됐겠느냐?"



마원은 물어보는 것만도 못한 질문을 했고, 사헌은 칼같이 대답했다. 미화에게 쓰러지면서 판정패 당했고, 어차피 시합 도중에 대머리가 사망해서 마원의 실격패였다고 했다.



마원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미화를 공략할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았는데, 아직 역량이 부족하여 실천할 수가 없었다. 미화가 말했다.



"그래도 많이 성장하셨습니다. 이제 저도 방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특히 마지막에 한 방 먹인건 제법 훌륭했다. 칼은 안쓰고 왜 주먹질로 자꾸 이겨먹는 지는 모르겠다만."



주변에서 보는 게 전부 주먹질이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구낙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원이 물었다.



"구낙손 어르신은 어디계십니까?"


"그놈은 먼저 곤륜산으로 갔다. 우리가 다 같이 갈 줄 아느냐? 구낙손도 그렇고, 이번에 만나러갈 장선웅(長善熊)도 전부 천마 비급창에서 다시 합류할거다."


"왜 굳이 거기서 합류를 하는 겁니까?"


"제일 큰 형님이 곤륜산에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일이 무사히 끝나서 그 아이가 이 중원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하고, 우리가 곤륜산에서 전부 만난다면 형님도 수련을 그만두고 돌아오시겠지."



분명히 사헌의 형님은 곤륜파 출신으로, 현재 곤륜산에서 폐관수련 중이라고 했다. 검룡 이중선이라고 했던가. 미화가 그 이야기에 뭔가 생각난 듯 사헌에게 물었다.



"곤륜의 마지막 전인이라면 저도 들어본 적 있습니다. 사헌 어르신께서 검룡 이중선이라 말씀하신 그 분 아닙니까."


"그렇다."


"혹시 그 검룡이시란 분은 세간에서는 그 곤륜광인(崑崙狂人)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져 있는 그 분을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곤륜광인 마원은 그 별호에 침을 꿀꺽 삼켰다. 바닥을 파고다니는 사헌도, 갑옷을 입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구낙손도 광인이라는 별명을 얻지는 못했다. 대체 얼마나 괴상한 짓을 하고 다니길래 광인이라고 불린단 말인가?



"곤륜광인이 아니다. 곤륜파의 검룡이시다. 네가 몰라서 하는 이야기니 이번 만은 용서해주겠다만, 다시는 내 앞에서 형님을 곤륜광인이라고 부르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사헌은 이중선을 곤륜광인이라 부르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대해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마원은 지금은 그걸 캐물을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마원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북해빙궁으로 가는 겁니까?"


"그래. 구낙손은 서장 여기저기를 뒤져야 하지만, 그 놈은 북해빙궁에 처박혀 있을테니 더 찾기 쉬울게다. 우리는 흑룡강으로 바로 간다."


"흑룡강은 어디 있는 곳입니까?"



중원 남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흑룡강의 위치를 몰랐다. 세외 무림에 맞닿아있는 흑룡강 지역은 그만큼 변두리였다. 사헌은 그래서 마원의 질문에 화내지 않고 설명했다.



"요동(遼東) 만큼 멀리 있다고만 알면된다."


"요동은 또 어딥니까?"


"그냥 멀리 있다고만 알아둬라. 어차피 길은 나와 같이 갈것 아니냐?"


"알겠습니다."



물론 사헌 역시 정확하게 흑룡강의 위치를 설명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릴 뿐이었다. 미화도 흑룡강의 위치는 모르는 듯 하였다. 맹인인 근로서는 지도 상의 위치를 익히는 것이 힘들법도 하였다.



"그럼, 그렇게 먼 곳을 저희는 걸어서 가는 겁니까?"


"시간 낭비를 얼마나 하려고 걸어가겠느냐? 사천과 서장 사이에 상해(上海)와 창도(昌都)를 오가는 배편이 있다. 우리는 그걸 타고 상해로 간다. 물론 이것도 엄청나게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어디로 갑니까?"


"상해에서 다시 배를 타고 요녕(遼寧)으로 간다. 가기서 위로 더 올라가면 흑룡강이 나온다."



사헌은 그 흑룡강에서 설원 지대를 지나야 북해빙궁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벌써부터 먼 길 간단 이야기를 꺼내서 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지금 출발하는 겁니까?"


"그렇다. 되도록 서둘러라. 참."



사헌은 갑작스럽게 마원의 얼굴을 붙잡았다. 마원은 자신의 광대뼈를 꾹꾹 누르며 얼굴을 조물락대는 사헌에게 당황하여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아 네 놈의 얼굴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그 칼도 천을 쓰는 색칠을 하든 좀 모습을 바꾸고, 옷도 구낙손에게 부탁하여 새로 받았으니 그걸 입고 가자."



사헌이 힘으로 마원을 찍어 누른 뒤에 얼굴을 마구 주물럭대기 시작했다. 내공이 깃든 손길이 닿을 때마다 마원은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이 아파서 비명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허! 내가 미남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느냐!"


"그냥 이대로 살겠습니다! 살려주십...아윽! 끄악!"


"이 놈이... 이렇게 고통을 못이겨서야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미화야 빨리 이 놈좀 잡아봐라."


"네."



미화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마원의 양 팔을 붙잡았다. 무림고수 두 명이 자신을 제압하니 마원이 제 아무리 성취가 올랐다고 해도 움직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사헌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화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볼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암. 확실히 그럴 정도다."



마원은 혹시나 동경(銅鏡)같은 것들이 있나 찾았지만, 그런 사치품을 구비해놨을리가 없었다. 나중에 장강에 가면 얼굴을 비춰봐야 겠다 생각하고, 마원이 사헌에게 물었다.



"헌데 왜 얼굴을 이렇게까지 변장하는 겁니까? 이제 공자와 표사 행세는 그만두는 겁니까?"


"장강에서 배를 타고가다가 잡히면 도망칠 재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장에서 사라지면 놈들은 소문을 따라서 흑룡강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귀찮은 싸움도 피하고, 목적도 달성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그렇군요."


"그리고 다시 요녕에 도착하면, 우리는 공자와 표사가 되어 북해빙궁으로 갈게다. 그리고 북해빙궁에서 종적을 감추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은 끝나는게지."



천마의 자손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 북해빙궁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무림맹에 들릴 때 쯤이면 그들도 추격을 포기할게 분명했다. 사헌은 말했다.



"이것만으로 놈들이 추격을 포기해준다면 참 좋겠다만, 세상 일이 어떻게될지 누가 알겠느냐."



사헌은 본인이 세운 계획이면서도 찜찜한 듯 했다. 마원이 말했다.



"잘될겁니다."



마원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




사천과 서장 사이 거대한 강줄기를 두고 나무를 단단히 동여맨 간이 항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중원에서 오가는 사람이 많은 서장인 만큼, 임시로 만든 항구면서도 그 규모가 거대하고 또 정갈했다.


짐을 싣는 배와 사람을 싣는 배를 따로 구분하고 있었으며 항구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제법 거대한 규모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다. 돛대가 부러진 폐선을 활용해 만든 거대한 판자촌은 사람들을 불러세우는 호객꾼과 배에서 내린 뒤 돈쓸 곳을 찾아 기웃거리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헌은 배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변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헌은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거대한 근육질 노인이 표를 사고 있으니 판매원이 위축된 게 마원에게도 느껴졌다.



마침 시간에 맞춰 상해로 향하는 배편이 있었다. 물론 중원 대륙 전체를 가로지르는 배인지라 그 금액이나 걸리는 시간은 마원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사헌은 주머니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넣어 배삯을 지불했다. 어른 3명.



마원이 물었다.



"어린이로 변하시면 더 싸게 가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너는 고작 배삯 때문에 그러고 싶으냐?"



사헌이 역정을 냈다. 나름대로 자존심의 문제인듯 하여 마원은 더 건드리지 않았다. 사헌은 앞장서서 배로 향했다. 배는 마원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마원이 생각한 크기는 나룻배 정도였건만, 항구에 서있는 배는 군함을 연상케했다.



마원이 멍하니 배를 쳐다보고 있으니 사헌이 물었다.



"배는 처음보느냐?"


"네. 이렇게 큰 배일줄은 몰랐습니다."


"몇번이나 갈아타는 것보다 이런 배를 타는 게 더 싸게 먹힌다. 배 안에 들어가면 이름있는 문파 출신들이 많을테니 적당히 언행에 주의해라. 시비가 붙으면 귀찮아진다."



지금까지 온갖 방식으로 시비를 겪어온 바, 마원은 사허느이 그 말이 앞으로 누군가에게 시비가 걸릴 것이라 말하는 예언처럼 들렸다.



그렇게 들어선 배 내부는 갑판만큼 웅장했다. 직원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고, 목조 바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비단이 깔려있었다. 마원은 대체 사헌이 이 배를 위해 얼마를 지불한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미화는 배에 들어온 후 부터 영 기분이 좋지 않아보였다. 마원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배에 탄 건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되네요."



그녀는 머리를 짚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땅의 균형을 중시하는 태극권 수행자라 바닥이 흔들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동안은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직원이 건네준 물을 한모금 마셨다.



사헌은 밖에 나가서 강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원은 자신도 경치를 구경할까 하다가 아직도 미확 어지러워 하는 걸 보고 옆에 있어주기로 했다.



"마원."


"네. 미화."


"손을 좀 잡아주시겠어요?"


"여깄습니다."



마원이 손을 내밀면, 미화가 허공을 더듬다가 마원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 듯 다소 풀어진 표정으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배가 출발을 알리고 아래층에서 노잡이들에게 명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강을 떠도는 철새들이 갑판에 앉아있다가 육중한 움직임에 놀라 자리를 떴다.



"괜찮으십니까?"


"조금만 더 있어주세요."



미화는 어지럽다는 말을 계속하며 마원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화를 끌어안다시피하고 있는 마원을 보고 휘파람을 불거나 코웃음을 치고 지나갔다.



"좋을 때요 도령."



그런 말을 하며 어깨를 두드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원은 이번 여정은 그래도 순탄하게 가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좋았고, 문 너머로 보이는 장강의 물결도 아름다웠으니까.


그런 셈 치기로 했다.


작가의말


사실 상해가 무역도시로 발전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지만


작중 허용으로 이 작품 속 상해는 대충 먹고살만한 무역도시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표사는 수라를 보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시 휴재에 들어갑니다. 20.11.10 75 0 -
공지 계약 안했습니다. 20.10.30 129 0 -
공지 제목이 다시 롤백되었습니다. +1 20.10.14 545 0 -
48 무림맹에서 출발한 조사대 20.11.05 257 4 11쪽
47 무림맹에서 출발한 조사대 +1 20.11.04 247 5 11쪽
46 북해빙궁의 불청객 장선웅 20.11.03 245 5 11쪽
45 무림맹에서 출발한 조사대 20.11.02 285 6 11쪽
44 북해빙궁의 불청객 장선웅 20.11.01 305 7 11쪽
43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20.10.30 309 8 11쪽
42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1 20.10.30 333 6 12쪽
41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1 20.10.28 352 8 11쪽
40 길림성에 도사리는 악마 20.10.27 386 7 11쪽
39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20.10.25 391 8 11쪽
38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3 20.10.24 401 10 11쪽
37 절강에서 만난 그들은 +1 20.10.23 418 7 11쪽
36 상해로 향하는 쪽배 +2 20.10.21 408 7 12쪽
35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20 395 7 11쪽
34 상해로 향하는 쪽배 20.10.19 419 7 12쪽
33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17 6 11쪽
32 상해로 향하는 쪽배 +1 20.10.18 432 8 11쪽
31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15 8 11쪽
30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7 421 10 12쪽
29 굽이치는 장강행 +3 20.10.17 441 10 11쪽
28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495 7 11쪽
27 굽이치는 장강행 +2 20.10.16 509 7 12쪽
» 굽이치는 장강행 +1 20.10.15 572 9 11쪽
25 서장의 구낙손 +2 20.10.14 464 10 12쪽
24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477 9 11쪽
23 서장의 구낙손 +1 20.10.14 511 8 11쪽
22 서장의 구낙손 +1 20.10.13 491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