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패검의 후계자 – 1
이 작품의 인물, 위치, 단체 이름은 모두 상상의 산물 입니다.
“문종아!!!”
언제나 자신만만한 친우의 눈이 잠기고, 하체가 잘린 채로 허무하게 엎어져 먼지에 뒤덮인다.
“자경!”
뒤늦게 도착한 별희는 벌어진 참상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문종을 죽인 천망을 포함해 잠깐 동안 고요함이 이곳을 감쌌다.
“... 백화는 어딨어.”
“어? 아... 하쌴이랑 만나서 얘기하고 있어.”
“별희야. 문종이 시체를 데리고 가줄래.”
언제나 한량 같은 백자경의 따듯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북쪽 겨울의 빙하처럼, 차가운 바람만이 느껴진다.
“응.”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문종의 상체와 하체를 짊어졌다. 콸콸 흐르는 피가 그녀를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떠나기 전, 나직이 하고픈 말을 전할 뿐.
“꼭 이겨.”
“...너도 조심해.”
탁. 땅을 박차고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자경의 목이 천천히 천망에게 돌아갔다.
“왜 그녀는 공격하지 않았지?”
“초월 경지라는 것을 그리 쉽게 사용할 수 없다는 느꼈을 텐데.?”
하긴, 백자경이 문종을 구하지 못한 이유가 무신경한 능력 이용의 대가였다. 여전히 제대로 된 광휘는 아직 불가능하다. 그러니 천망의 얼굴이 여유만만한 것.
“즐거운가.”
“이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래. 아주 흥미롭구나.”
“타인의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게 그리 즐거운가 말이다.”
후욱— 불어오는 찬바람이 자경의 몸을 감싸고 등을 떠밀었다.
속과 금리도천파로 파고든 자경은 연속으로 열 번을 찔렀다. 쉭쉭쉭. 보이지 않는 그 속도는 빠르고, 혼천기로 가득 차 있다.
“그리 억울하면, 친우의 복수를 해라.”
방어에 집중하는 천망의 검은 도포가 조금씩 찢어지고 파헤친다.
“문종이를...”
혼천기가 가득 찬 서약의 검이 혼천 검강을 만들어 찬란하게 빛났다.
“살려내!”
구패검, 회상(廻翔)
잔상을 남기는 천망의 빠른 찌르기가 자경의 옆구리를 스쳤다. 몸을 회전시킨 원심력으로 이어지는 파쇄검!
두껍지 않은 푸른 실 하나를 잘랐다.
스걱, 팡—
놀란 표정의 천망은 코로 피를 흘리며 약하게 튕겨 나갔다.
“큭, 겨우 이 정도로”
잊고 싶었다. 친우의 죽음을.
그러다 보니 세상이 느려지는 현상에 깊게 발을 들인 자경.
집중력이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였다.
멍한 머리에 인지하지 못하던 정보가 들어왔다.
여태까지 파쇄검을 사용할 때, 언제나 두껍고 진한 푸른 실 만 노렸었다. 특히 초월의 경지를 상대로는 광휘를 활성화하지 않고선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하고 얇은 실은 어떨까?
휙, 삭.
천망과 2보 떨어져 있는 실을 자르니,
그의 오른 다리가 흔들렸고.
휙, 삭
1보 떨어진 실은, 몸을 숙이게 한다.
그로 인해 얇은 푸른 실들이 두껍게 변하고, 파쇄검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스걱. 스걱. 스걱. 스걱.
“커헉!”
천망의 눈에는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백자경의 검강. 방어를 하려 해도 이상한 곳만 노리니 속속 무책이다.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피를 토하는 그.
“얕보지 마라!!”
입술을 깨문 그가 열초검을 제대로 휘두르기 전에 바꿔치기의 술로 사라졌다. 뒤를 잡은 자경은 크게 발을 굴러 힘을 증폭시킨다.
기본적인 발경.
뒤늦게 몸을 돌린 천망은 자경의 흐려진 눈과 달라진 전투법을 느끼고 깨달았다.
‘깨달음!?’
부웅.
이번에는 실이 아닌 천망의 심장을 노리는 백색 검강에 검을 세웠다. 그때, 잠깐이지만 자경의 몸은 황금색으로 빛났다.
계(界)의 경지
열초검(浖超劍), 공간참
넓은 공간을 도려내는 열초검의 오의!
‘무슨 짓을 하든 넌 죽는다.’
쫘아악—
벌려진 큰 공간은, 모든 것을 무로 돌렸다. 하지만 갑자기 답답한 느낌이 든 천망은 가슴 쪽을 내려다보니, 명치를 깊게 뚫은 서약의 검이 보였다.
“어, 언제?”
보이지 않았다. 아니, 공격을 인지하지 못했다.
“빛의 속도를 초월하면, 원하는 미래에 도달하지. 그게 광휘의 오의다.”
뒤쪽에서 들리는 자경의 목소리.
“너의 몸이 빛났을 때... 난 이미 죽었단 뜻이군...”
참으로 신묘한 무리다. 방어가 할 수 있는 기미도, 징조도 느끼지 못하는 능력이라니.
“...지친 게 아니었나?”
털썩.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었다.
“지쳤지. 그런데 짧은, 마지막 타격 순간은 가능하더군.”
“크크... 구패검의 무···리인가. 네 놈은 도대체...”
더 이상 듣기 싫었다.
명치에서 서약의 검을 뽑은 자경은 그대로 천망의 목을 거두었다.
***
“고구려의 후손들이여, 돌격!”
“Charge!!”
개마무사대와 섞인 서역의 중기병이 장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구세교의 엽구리로 들이받았다. 망치로 때린 듯한 충격에 흐트러지던 적이 완벽하게 갈라졌다.
“쟌!”
“Oui”
고진철이 던진 장검.
말을 박차 뛰어오른 여기사, 쟌 다르크는 그 장검을 밟고 궁신탄영을 펼쳤다.
“허. 벌써 중원의 무리를”
“(우리의 발키리가 함께하신다!)”
프랑스어로 그녀의 별명을 외친 서역 용병들이 모두 그녀를 뒤따라 말에서 뛰어내린다. 장검과 긴 양손 검을 휘둘러 학살을 시작하는 중검의 고수들.
“질 수 없지.”
말 위에서 비검술을 출수해 실의 끝을 잡고 둥그렇게 휘둘렀다. 은은하게 실린 검기가 넓은 광역을 휩쓴다. 마치 벼를 수확하는 것처럼 적의 잘린 목과 상체가 분리됐다.
흑의인 한 명을 죽인 쟌은 앞면 가리개를 올리고 소리쳤다.
“어둠이 물러났다!”
발음은 이상했지만, 완벽한 한어였다.
그녀의 말처럼 전쟁터를 먹어 치우던 어둠이 완벽히 물러났다. 혼란스러워 하던 연합군은 다시 정렬했고, 고진철과 쟌의 합류에 후퇴하는 적의 뒤를 쫓아 전공을 확대했다.
후욱. 후욱.
뜨거운 숨을 내쉰 고진철은 확인 사살을 하는 쟌과 서역 무인들의 섬뜩함에 고개를 돌리고, 멀리 우두커니 서 있는 백자경과 그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자경을 부르려던 고진철은 입을 닫았다.
자신도 알고 있는 사내의 시체를 수습하는 걸 보았기에.
엉엉 우는 고백화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우별희.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남궁상과 눈을 감은 노자.
상처투성이인 지둥보와 머리를 잡고 흔드는 나이등.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는 백자경. 문종의 시신가 관에 들어가자 그것을 등에 멘 무림맹 사람들이 천천히 마차에 실어 본진으로 돌아갔다.
“...백화야. ‘그’ 녀석이 남긴 말이 있지?”
“흐윽··· 네. [일주일] 후, [그곳]에서 보자고 했어요. 근데... 일주일이 뭐에요?”
백화의 질문에 자경은 질문을 돌려줬다.
“녀석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너는 알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녀를 본 별희도 물었다.
“누군데 그래?”
“천망보다 강한 사람.”
자경은 말에 올라타 모두에게 말했다.
“혼자 갈 거야. 노자 할배, 나머지를 부탁합니다.”
“일주일이 얼마나 긴 것인진 모르겠지만, 어디를 가는 게냐?”
“죄송합니다. 확인할 게 있어서요. 이랴!”
자경을 태운 고구려 혈통의 말은 먼지를 일으키고 달렸다. 떠나는 그의 뒤를 보던 쟌은 성호를 그렸다.
“마음의 비가 깊다.”
“?”
“무거운 마음의 비는, 태양을 밝혀야 숨길 수 있으니.”
백자경의 현 감정을 그리는 프랑스의 명언을 들은 고진철.
그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위문종
소림의 제자
구세교 대전투에서 잠들다.
팝 컬쳐의 퓨전입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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