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대학 간다.
본문은 작가의 창작에 의한 허구입니다. 설정과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제2장. 대학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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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살다 1991년으로 돌아온 소감? 개짜증이다. 회귀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어이는 탈탈 털렸고, 사채 업자들에게 추심을 당할 때도 당당했던 맨탈은 안드로메다로 행을 탔다.
짜증이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상 자체가 겁나 불편하다. 인터넷과 컴퓨터, 스마트폰 등 문명의 이기가 없는 건 제쳐놓고, 이동 수단인 대중교통 자체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2019년을 사는 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버스 중앙차로? 이 시대에는 없다. 정류장에 정차했던 버스가 편도 4차선 대로를 가로질러 1차선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김 여사급 막장 운전이 당연시 여겨지는 시대다.
테블릿PC 하나만 들고 다니면 동영상 강의나 각종 학습 자료를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1991년을 살아가는 학생들은 보부상 봇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가방에 각종 참고서와 노트, 교과서, 그리고 점심, 저녁 도시락까지 짊어지고 다녔다.
‘겁나 무겁네.........’
매일 괴나리봇짐마냥 텅 빈 가방을 덜렁 들고 등교를 하던 몸이라 그런지, 각종 참고서와 교과서를 착실하게 채워 넣은 책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근데 웃긴 건 이 모든 불편함이 그냥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야! 정유진. 뭐냐?”
교문에서 마주친 준혁이 녀석이 내 가방을 보더니 벙찐 표정을 하고 물었다.
“가방 처음 보냐?”
태연하게 대꾸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준혁이 이 녀석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친구로 남을 놈이다.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어울리지 않게 말이 많은 게 흠이지만, 의리 하나만큼은 진국이다.
“가방 속에 뭐 들었냐? 무게로 봐서 비디오테이프는 아니고......... 책 같아 보이는데......... 만화방에 빌린 책 반납하는 날이냐?”
제 딴에는 정곡을 찔렀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준혁이를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맘때에 책대여점이나 만화방이 있었다. 사라진지 오래 되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만화책은......... 가방에 성문이 형님하고 정석이 형님 모셨다. 이놈아!’
그러거나 말거나 준혁이 요맘때 사내아이들이라면 죽고 못 사는 연예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예의 투머치 토커의 원조 자리를 지켰다.
난 그저 교문에서 시작된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 줄 뿐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아 귀찮다........’
신인 연예인의 등장이 신선한 이야기겠지만, 2019년을 살다 온 내겐 수십 년이나 지난 케케묵은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뉴스가 아니면 텔레비전을 볼 일이 없어졌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건 요맘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환기하기 좋았다.
원래 기억력이 대단히 좋은 편도 아니고, 대학을 마치고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도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한심하게 그저 마시고, 먹고, 놀기 바쁜 방탕한 시기였다. 특히, 이성에 눈을 뜨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인생을 낭비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었다.
‘거참........’
어지간한 건 다 기억이 나는데 이놈의 머리엔 뭐가 들었는지, 수업 시간에 듣는 내용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새롭기만 했다.
공부해서 대학에 가겠다는 뜻을 세웠지만, 잘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사실 이맘때라면 집안 사정이 괜찮은 편이라 아버지께 말씀만 드리면 보습학원이나 과외를 받는 것도 가능할 거다. 하지만 그러진 않을 생각이다.
‘이놈의 머리는.........’
내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명문대 출신인 아버지와 달리 난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번 듣고 바로 기억하는 법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분명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증거는 없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어머니도 길치고, 나도 길치다.
아버지는 그런 날 두고 원리를 이해해야 기억하는 이과 타입이라고 하셨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그저 어린 내가 실망하지 말라고 그러신 것뿐이다.
‘멍청하긴........’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명문대를 진학하긴 어려울 거다. 아니,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어쩌면 어려울 수도........
“정유진!”
날 선 국어 담당인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업이 지루한 나머지 연습장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젠장.........’
어차피 야구부라고 수업시간에 대놓고 자도 코만 골지 않으면 뭐라고 하지 않던 양반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
“네?”
일단 대답은 한다.
“야구부 감독님이 찾으신다. 수업은 여기까지. 반장?”
‘응? 뭐지? 수업이 벌써 끝났다고?’
잠시 딴생각을 했을 뿐인데 50분 수업이 끝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위기감이 느껴진다. 50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 입력된 국어 수업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 감독님이 날 불렀다는 걸 보니 아버지께서 내가 야구 그만둔다는 말씀을 하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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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과 이야기는 의외로 싱거웠다. 하지만 야구 선수로 가망이 없다는 식의 팩트 폭격을 당한 내 속을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만둘 거야?”
준혁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 나 대학 가려고.”
“지랄. 개나 소나 다 대학간데?”
“원래 개나 소나 다 가는 데가 대학이다.”
맞는 말이다. 대학 나와서 취업도 못 하고 빌빌거리는 백수가 널린 세상을 살다 온 내 눈에 대학이 대학으로 보이질 않았다.
교육 문제에 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2019년의 대한민국에는 대학교가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많았다. 말이 대학이지 대학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이름만 대학인 곳도 여럿이었다.
굳이 대학을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경험상 일단 출발선이 달라진다. 군 복무와 대학을 마치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IMF라는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2019년의 청년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절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공무원? 어지간한 고졸이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공무원이었다.
“대학 가서 뭐 하려고?”
“돈 벌어야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
아니긴 뭘 아니야?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어도, 돈 없는 인생은 없어.
짜식. 네가 인생을 알아? 인생이 ‘인’자도 모르는 급식충 주제에 어디서 주워들었다고. 아........ 급식충은 취소. 일단은 급식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라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니까.
“나 먼저 간다. 연습 열심히 해. 넌 주전이잖아.”
준혁이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잽싸게 교문을 빠져나왔다. 준혁이는 나하고는 다르게 운동 센스도 괜찮고, 체격도 좋은 편이다. 대기만성형이라 고교 시절에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고 체격 조건이 좋다며 두산에서 준혁이를 데려간다.
솔직히 운동 센스만 놓고 보면 내가 훨씬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사십 대 중반을 넘긴 삶을 살아보고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운동선수가 될 몸을 타고 나지 못했다.
부실한 관절. 어머니 영향을 받았다. 서른 즈음부터 퇴행성관절염에 시달렸고. 마흔 넘어서 찾아온 통풍으로 쓴맛도 봤다. 아마 야구 선수를 고집했으면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했을 운명이다.
그러고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모든 일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공부를 하는 거다. 회귀 물 판타지의 주인공처럼 딱히 목표가 있어서 공부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하려는 것뿐.
“엄마. 나 왔어.”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부터 챙겼다. 오전에 와서 어머니 점심을 차려놓고 퇴근하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가고 줄곧 혼자 계신 어머니.
“일찍 왔네?”
“네. 좀 어때? 오렌지 주스 좀 따라 줄까?”
어머니 침상 주변 쓰레기와 빈 잔을 치우며 물었다.
“괜찮아.”
“그럼 공부할게. 뭐 필요하면 불러.”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한다는 말에 걱정하셨던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하긴 자식이 공부한다는데 싫어할 부모님은 없으려나?
독서실은 가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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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니 성적이 올랐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영어 덕분에 반에서 꼴찌를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내 석차는 총원 50명 중 45등 전후를 오락가락했다. 어쩌다 찍은 문제가 많이 맞으면 40등 근처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죄다 틀려버리면 49등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당당하게 무려 32등.
“수고했다.”
성적표를 건네는 담임 선생님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성적표를 받는 난 왠지 모르게 뜨끔했다.
모든 과목에서 점수가 올랐는데, 우리 담임이 가르치는 국어만 여전히 꼴찌다. 물론 국어A도 꼴찌다.
‘쩝.........’
국어 공부를 안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국어 시험이 어렵다. 언어에 소질이 없다? 그건 또 아니다. 영어는 늘 상위권이다. 영어는 쉬운데 왜 국어는 어려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어는 쉽게 느껴지는데 국어는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 놈 뺨치게 영어를 씨불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성적이 오른 건 회귀 이후 내가 만들어낸 첫 변화라고 볼 수 있었다. 그걸로 만족이다.
여기서 더 열심히 해서 1등을 노린다? 그건 고려해본 적이 없다. 1등 할 머리도 아니고, 1등 하겠다고 덤비는 것도 귀찮다.
2019년까지 살아보니까 알겠더라. 1등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 모인 곳이 서울대다. 근데 2019년 서울대 졸업생들의 취업 성적은 1등이 아니다. 또 설령 졸업 이후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 생활의 시작일 뿐이니까.
공부는 적당히 하고, 이제부터 뭘 하면 좋을지를 천천히 고민해보려고 한다.
이왕 대학에 가는 거 앞으로 도움이 될 만한 과를 정해야 하는데, 수많은 학과 중에 내 눈에 가장 띄는 건 농과대학이다.
농대에 간다고 농사를 지을 건 아니다. 일단 내 기준에서 볼 때 어느 대학에서도 농과가 커트라인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고로 성적에 비해 네임 벨류가 높은 대학에 진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학을 가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을 뽑으라면 바로 인맥이다. 세상살이를 조금 해보니 그렇게 욕했던 이놈의 학연이라는 걸 우습게 볼 수가 없더라.
그래서 농대를 노린다.
그러고 다음은 비싼 돈을 들여 대학을 다니며 배운 지식을 어떻게 써먹을 거냐는 건데........
대부분 대학 졸업생들 중에 자신의 전공을 살려 밥벌이를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학 졸업장? 그건 대충 자신의 스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간판일 뿐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른 게 또 농대다.
회귀 이전 가장 즐겨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자연인이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함께 사는 야인들.......
자연인 프로그램에 푹 빠져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재미있어요! 꾹~! 부탁드려요~!
- 작가의말
아침 전녁 공기가 선선하네요.
말이 살찌는? 독서의 계절? 입니다. ㅎㅎㅎ
과거로 돌아가면 정말 많이 불편할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우리 현실 일상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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