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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Idolatry

웹소설 > 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현대판타지

완결

천영天影
작품등록일 :
2012.10.16 18:33
최근연재일 :
2011.11.10 23:19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32,171
추천수 :
255
글자수 :
166,125

작성
11.09.13 20:05
조회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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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Idolatry] 제1장 의뢰 (5)

DUMMY

“이제 왔어?”

아침 일찍 검은색 옷을 입고 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우현을 맞이해주는 서현. 그녀 역시 평소보다 더 짙은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 옆의 세희도 마찬가지였다.

“…….”

그는 먼저 세희를 향해 인사를 한 뒤 서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비록 협회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협회원 아들 장례식이니까. 무령 한 명쯤은 있어주는 게 예의겠지. 오랫동안 협회에 종사하신 분이기도 하고. 뭐, 원래라면 활인서장이 있어야 하겠지만, 할머니를 일하게 할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하며 서현은 팔짱을 낀 상태로 엄지손가락으로 방 안쪽을 가리켰다.

“가서 향 피우고 와. 자세한 얘기는 그 뒤에 하자.”

“……알았어.”

침울한 표정으로 우현은 빈소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조문 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족 역시 어머니밖에 없어서 식장이 비어 보였다.

“…….”

그는 향을 피우고 두 번 절을 하고, 현후의 어머니와 맞절을 할 때까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가 죽은 건 우현이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죄책감에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단다.”

그의 마음을 알아챘을까? 현후의 어머니는 차분한 어조로 우현에게 말을 건넸다.

“이것도 운명이겠지. 그 아이의 명이 여기까지였던 것뿐이야.”

“어머님…….”

그제야 우현은 겨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선을 돌리려던 걸 겨우 참았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과 슬픔을 애써 참고 있는 눈. 적어도 목숨을 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무법사로서 이 시선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제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비록 부서는 다르다지만 그녀 역시 협회에 소속된 몸.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예. 그럼 전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숙이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서현이 여전히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채 기다리고 있었다.

“권헌조와 권아란은 너보다 일찍 다녀갔어.”

그녀를 보고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우현에게 말했다.

“그래도 예의는 있는 모양이군.”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지.”

그렇게 말하며 서현은 품에서 서류 한 장을 넘겼다.

“읽어. 그리고 판단해.”

거기에는 이 사고에 관한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교통사고. 갑작스럽게 핸들이 고장 났고, 뒤이어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에 의한 충돌. 아무 이유 없이 핸들이 고장 났다는 점이 수상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특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적어도 평범한 경찰의 조사에서는 말이다.

“최현후가 순간적으로 결계를 펼쳤기에 권아란이나 운전수는 무사할 수 있었어. 아니, 원래라면 최현후 역시 무사했어야 했지.”

급박했던 상황에서 개개인을 대상으로 결계를 펼칠 여유는 없다. 현후는 차량 전체에 결계를 펼쳐 충격을 흡수했다. 동시에 차량의 진행 궤도를 틀어 정면이 아닌 빗겨 맞고, 멀리 튕겨나지 않도록 했다. 가진 실력 이상의 활약이었으나,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으니 순간적으로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최현후의 에텔체와 아스트랄체가 크게 손상당했다는 점이야.”

“에텔체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기 때문이겠지만, 아스트랄체가 손상당했다는 것은…….”

“영적 타격을 당했을 확률이 높아.”

영적 에너지를 담당하는 에텔체가 크게 손상될 정도로 힘을 썼지만, 다행히 모두를 보호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섬세한 작업을 하던 중에 영적 공격을 받았다. 때문에 밖으로 해소해야 할 충격을 온몸으로 그대로 받아들였고, 결국 그 영향으로 최현후는 목숨을 잃었다.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밖에서 보자면 권아란과 운전수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고, 최현후는 운이 없다고 보겠지.”

“…….”

우현의 주먹이 꽉 쥐여졌다.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팔 전체가 부들 떨리는 모습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서류 구겨지니까 힘 풀어.”

서현은 서류를 건네받은 뒤 우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결의에 찬 굳은 의지의 눈이다.

“비선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 일은 너에게 일임한다고 전에 말했잖아. 네가 생각하고 네가 판단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질문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그건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내가 직접 경호를 맡겠어. 어떤 녀석들인지 내가 직접 찾아내고 말거야.”

절로 이가 뿌드득 갈린다. 분노가 온 몸을 불태우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평정심이 중요하다.

“마법에선 가장 기본이 이완이라지. 하지만 네겐 다른 의미로 이완이 필요해. 머리에 피가 쏠리면 감정에 몸을 맡겨 그릇된 판단을 하게 돼. 그래도 그 의지 자체는 좋아.”

서현은 우현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 그녀의 키가 큰 편이라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처리는 내가 할 테니 걱정 말고 의뢰를 받아. 레포트 문제도 처리해 줄 게.”

“응, 그거 고맙네.”

농담 아닌 농담에 우현은 피식 웃었다. 덕분에 들어간 힘도 조금 풀렸다. 지나친 흥분과 긴장은 임무의 적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지예 언니한테도 내가 얘기할 테니까 로밍으로 비싼 돈 들여가며 보고할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며 서현과 여전히 말없는 세희가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는 타이밍이었다.

“그럼, 나도 약속대로 일을 해야지.”

우현은 휴대폰을 꺼내 전에 저장한 헌조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습니까? 그분께 큰 신세를 지고 말았군요.”

운전을 하고 있던 헌조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현에겐 영광스럽게도 그가 직접 차를 몰고 데리러 온 것이다.

“후회되네요. 그냥 제가 일을 맡았으면 녀석이 그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프로 경호원처럼 슈트를 빼입고 조수석에 앉은 우현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임무에 들어갔기에 슬픈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웃으며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았다.

“제가 요구한 건 잊지 않고 계시죠?”

감정을 해소하고 분위기도 전환할 겸, 우현은 일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예, 준비는 끝냈어요. 어차피 비어있는 방도 있으니까요. 딸아이가 크게 반대하겠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우현씨, 혹시나 하는 말인데 딸아이에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 헌조.

“걱정 마세요, 제 얘긴 들으셨잖아요. 그리고 선생님도 계실 텐데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으니까요.”

난처하게 웃으면서도 헌조는 우현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우현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그가 먼저 제안을 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지금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아직까지도 아란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자각을 못하고 있지만, 헌조는 극심한 공포를 느낄 정도로 걱정하고 있으니까.

다만 그도 한 딸의 아버지인지라 다른 쪽으로 걱정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고급스러운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 우리 집은 다른 곳에선 비밀로 해주세요.”

“당연하죠. 비록 일반 경호원과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비슷해요.”

집주소를 인터넷에 남기면 큰 반향을 이끌 수 있겠지만, 그건 굳이 경호원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도리 상 할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바른생활과 도덕만 배웠어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우현은 트렁크에서 캐리어가방을 꺼내 헌조의 뒤를 따라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생각보다 짐이 적네요.”

보통 가방보다 꽤 큰 편이지만, 아무래도 헌조 역시 연예인이라 그런지 가방이 작게 느껴졌다.

“여기서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필요한 건 모두 갖췄어요. 필요하면 집에 들러 가져오면 되고요.”

말을 끝내자마자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오늘은 일이 없는 모양이네요.”

“어제 그런 사고가 있었으니까요. 오래 쉬게 하고 싶은데, 겨우 오늘 뿐이라 미안할 뿐입니다.”

그녀가 무리하지 않도록 헌조가 직접 스케쥴을 관리한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인기 아이돌 가수이다 보니 하루를 빼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일도 있고 하니 당분간 일정을 계속 비울 생각이지만, 프로로서 미리 정해진 스케쥴을 모두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딩동~

헌조가 벨을 누르자 우현은 가볍게 긴장했다. 연예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니 아무리 일이라도 마음이 설렐 수밖에 없었다.

“아빠, 어디 갔다가 오시는…….”

철컥거리며 문이 열리자 TV에서나 보던 여신 한 명이 나타났다. 아무리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우현이라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

여신은 우현을 가리키며 헌조에게 물었다. 아침에 현후의 빈소에 다녀오고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지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만한 포니테일에 요즘 유행하는 검은색 십자 목걸이. 무엇보다 아직 고등학생일 텐데도 큰 키에 성숙한 외모가 눈에 띄었다. 아이돌이냐 아니냐를 떠나 남자로서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날만한 여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늘부터 네 경호를 맡게 될 박우현씨란다.”

“경호?”

그녀는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굳이 집까지 데리고 올 필요도…….”

“오늘부터 당분간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거다.”

“네?”

불평을 하려다 곧바로 경악으로 바뀌는 표정.

“왜 그렇게 되는 건데요?”

“요 한 달간 있었던 일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단순한 우연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일에 경호원은 왜 필요하고, 또 왜 우리 집에서 살아야…….”

“필요하다.”

이어지는 모든 말을 막고 헌조는 단 한 마디만 했다. 여신은 뭔가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헌조의 단호한 표정을 보곤 한숨을 내쉬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응석을 받아주는 아버지이지만, 이렇게 단호히 결정한 일에는 결코 물러나지 않으니까.

“먼저 들어갈 테니 인사 나누거라. 우현씨, 짐은 제가 가지고 들어가죠.”

헌조는 우현의 짐을 들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둘만 남게 된 그들은 한동안 어색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크흠. 인사할게요. 저는 박우현이라고…….”

“난 권아란. 어쩌다 이런 꼴이 돼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같은 사람 인정 못해. 경호원이 집에까지 같이 산다고? 처음 듣는 얘기야. 아빠를 어떻게 속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안 속아. 보나마나 어디 사이비 무당이 그럴듯하게 입은 거겠지.”

“…….”

우현은 잠시 할 말을 잃다가 비틀어진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다 참고 넘겨도 ‘사이비 무당’이라는 소리는 결코 흘러들을 수 없었다.

“나도 노래는 못 부르면서 외모로 먹고 사는 아이돌 가수를 경호할 생각은 없었어. 요 얼마간 인생이 불쌍해서 일을 맡아주는 것뿐이야.”

“그러세요? 난 별로 안 불쌍하다고 생각하니 그냥 그만두는 게 어때?”

“이미 계약서에 싸인 했어.”

“그깟 계약, 언제든지 파기해줄 수 있어. 위약금도 이쪽에서 물려줄게. 얼마면 돼?”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마치 축구하는 파란 날개의 천사와 수호천사 사이처럼 앙숙 같았다.

“어휴, 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하아, 아빠만 아니었어도.”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또 동시에 서로를 찌릿 노려봤다. 앞으로 상당히 피곤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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